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0화 (20/236)

<제20화>

“하하하하!”

내 말에 진성이 크게 웃었다.

“우리 후배님 목표가 크네.”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들었습니다.”

“흐음, 그 말은 맞지. 목표를 크게 잡으면 그보다 작은 목표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니까.”

한진성이 특유의 빛나는 갈색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후배님이 먼저 그래미를 탄다는 건, 나도 탈 수 있다는 건가?”

“언젠간 타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보다는 늦으실 거예요.”

“후후후, 재밌는 말이네. 우리 후배님이 너무 띄워주는데?”

“제 말을 믿으셔도 좋아요. 나름 신기가 있거든요. 이런 거 꽤 잘 맞춥니다.”

“하하하!”

내 말에 진성이 크게 웃었다.

“그럼 자작곡으로 곡을 선택하자는 것도 그 신기 때문인가?”

“비슷하죠.”

“후후, 오랜만에 재미있는 후배를 만났네. 그냥 특출난 후배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신기가 진짜였으면 좋겠다. 후배님보다 늦어도 그래미 상을 탄다는 건 가수한테 큰 영광이니까. 후배님, 고마워. 덕분에 오랜만에 웃었던 거 같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은 진성이 내게 말했다.

“후배님도 데뷔까지 잘 할 수 있을 거야. 내겐 후배님의 재능이 보이거든.”

F급 연습생에게 재능이 보인다고 말하는 진성의 눈썰미에 순간 의심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다.

“나도 나름 신기가 있을지도?”

말을 마친 진성이 다시 한번 웃었다.

대체 저 말에 어디가 웃긴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저게 톱스타의 감수성인가.

“아무튼 고생해. 조만간 같이 연습하자고.”

내 머리를 헝클어트린 진성은 마스크를 올려 썼다.

대기실 문을 벌컥 열어.

“오늘 공연 재밌게 봤어. 나중에 데뷔하고 보자.”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문에 바짝 기대고 있던 멤버들에게 여유로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어…. 하하하, 문에 왜 이렇게 먼지가 많지?”

문에 귀를 대고 있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멤버들이 딴청을 부렸다.

다 듣고 있었냐.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우와! 우와! 미쳤다! 건하 형, 나도 명함 좀 보여줘!”

우주가 내게 달려들었다.

“다 들었어?”

“당연하지! 대기실 안에까지 다 들렸다고!”

다들 호들갑을 떨며 내 손에 든 명함에 달려들었다.

“명함에 몬스터즈 로고야! 진짜네!”

“그럼 가짜겠니?”

“한진성…. 진짜 진성 선배 명함이네.”

딱 한 명.

성훈만이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공연으로 얻었던 점수를 다 까먹은 느낌이다.

*    *    *

“애들이랑 얘기는 잘했나?”

“예, 대표님.”

“어땠냐?”

최강훈 대표의 차 조수석에 올라탄 진성이 다리를 쭉 뻗으면 기지개를 켰다.

꼭 이번 데뷔조 애들의 공연을 봐서 평가해 달라는 대표의 부탁에 스케줄도 비우고 찾아왔다.

“잘하던데요? 애들 포텐도 있고, 분위기도 좋아요.”

진성의 담백한 칭찬에 운전대를 잡은 최강훈이 껄껄 웃었다.

“크하하! 너라면 알아줄 줄 알았다. 그거 황 프로가 이를 갈고 준비한 거야. 알잖아. 그 친구 한 번 물면 제대로 하는 거.”

“이서 형을 못 본 게 아쉽네요.”

“뭐, 조만간 볼 텐데. 황 프로는 중요한 게 아니고. 마음에 드는 애가 있더냐?”

“네. 있었어요.”

특히 눈이 가는 후배가 있었다.

“누군데?”

“윤건하요. MAE 엔터에서 왔다던.”

“건하 녀석도 물건이지.”

“명함도 줬습니다.”

MAE에서 장수 연습생을 하다가 GH 엔터의 데뷔조에 합류했다고 하던데.

왜 그런 친구가 MAE에서 데뷔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약간 어설프긴 해도 기본기는 확실했는데.’

그들만의 기준이 있는 거겠지.

그를 처음 보는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운명적인 끌림이 있었다.

마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분명 처음 만나는 아이였는데, 눈에 익고 반가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친숙함은 둘째 치고.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묘한 매력과, 다섯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외모.

거기에 자작곡을 올리자고 말한 아이디어와 프로듀싱 능력, 거기에 빠르게 팀원들과 친해진 적응력까지.

처음 데뷔를 준비할 때 진성과 비슷해 보였다.

‘하는 행동이 꼭 나를 닮았단 말이야.’

그래서 명함까지 줬다.

“명함까지 줬다고?”

그 말을 들은 최 대표의 눈이 커졌다.

거기까진 예상 못 하셨나 봅니다?

“예.”

한진성은 치아가 드러나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특별한 스타에게 인정받기]

[업적 – 픽미 업]

[보상: 9 오픈 마일리지]

[가용 오픈 마일리지: 15]

“…….”

공연의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업적을 달성했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거 설마, 한진성인가?”

그 말고는 없었다.

명함을 받은 게 키포인트였나?

무려 9 마일리지.

퀘스트를 세 개는 성공해야 얻을 수 있는 보상을 한 번에 받았다.

이래서 다들 톱스타 톱스타 하는 건가.

진성이 이렇게 좋은 보상을 줬으니, 나도 기대에 부응해줘야겠지.

그러기 위해선 노력이 최고다.

그 전에.

‘퀘스트를 깨야겠지.’

[서브 퀘스트: 소속사 합동 공연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세요]

[성공 조건: 골든트랙보다 높은 순위]

[실패 페널티: ???]

[보상: ???]

페널티도 보상도 베일에 싸여 있는 이 서브 퀘스트 말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남은 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    *    *

마지막 공연까지 전부 끝이 났다.

관객들은 퇴장했고, 관계자들의 투표가 이어졌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연습생들이라, 빡빡한 평가는 거의 없었다. 무대의 강점은 어땠고, 단점은 어땠는지에 대한 간단한 평가가 있었다.

발표는 신인상과 특별상, 그리고 미래상이었다.

별도의 순위는 언급하지 않지만, 자리에 있는 기획사들과 연습생들은 알고 있다.

신인상이 1등, 특별상이 2등, 미래상이 3등이라는 걸.

그 아래의 순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 최하위가 될 팀을 조금이라도 지키려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미래가 기대되는 그룹에게 주는 미래상은 에어 엔터의 큐티클.”

서정적인 발라드로 승부를 보았던 여자 아이돌 연습생들이 3위를 차지했다.

엄청난 가창력이었다.

메인보컬의 천장을 뚫는 고음에 무대 뒤에서 구경하던 우리도 입을 쩍 벌렸었다.

“개개인의 가창력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전체적인 무대 구성이 아쉬웠지만, 원곡의 맛을 확실히 살린 무대였습니다.”

미래상을 받은 그녀들에게 관계자 대표가 말했다.

“진짜 잘 부르긴 했지.”

나도 모르게 나직하게 혼잣말을 뱉었다.

내 말에 옆에 있던 성훈이 3위로 올라가는 여자 연습생들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메인 보컬을 바라보는 성훈의 눈에서 강인한 의지가 느껴졌다.

지금 올라간 연습생에게 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적어도 연습생 중에선 가장 노래를 잘하고 싶었던 거 같았다.

그리고 특별상은.

“MAE의 골든트랙.”

골든트랙 멤버들은 특별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신인상을 노렸을 테니까.

“전체적인 무대 완성도와 퍼포먼스가 좋았습니다. 개개인 비주얼도 확실하고,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쇼맨십도 탁월했습니다. 아쉬운 건, 너무 어려운 곡을 골랐던 게 아닌가 싶네요. 원곡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골든트랙이 특별상.

역시나 너무 유명한 곡을 선택한 리스크가 뒤따른 거다.

좋은 무대였으나, 비교 대상이 존재하니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못했다는 단점.

그게 그들의 무대가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애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선 신인상을 타야만 했다.

가능할까?

골든트랙이 신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가 신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곳에 참여한 아이돌 연습생들 모두가 최고의 무대를 펼쳤고,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러니 충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후우, 떨린다.”

의외로 호진이 떨리는 마음을 고백했다.

우주나 정민이는 이미 긴장감에 잡아먹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성훈이는 생각이 많은 거 같고.

“건하야, 우리가 될 거 같아?”

호진이가 먼저 말을 거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도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신기가 있다고 했잖아. 네가 보기엔 어때?”

“내가 보기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가 상을 타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나.

“우리가 탈 거 같아. 신인상.”

이렇게 떠는 애들 앞에서 나까지 떨어버리면 사기가 곤두박질칠 거 같아서 약간의 거짓말을 보탰다.

“네 신기가 맞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기대를 품고 무대 위의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회자 입에서 나오는 마지막 테스트 공연의 신인상을 받을 팀은.

“신인상 수상팀은 GH 엔터의 올리오스입니다. 구성이 확실히 좋았고, 들고 온 자작곡의 완성도 또한 훌륭했습니다.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매력이 굉장히 특출했습니다.”

발표를 기다렸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이 반짝였다.

성공했다.

데뷔가 미뤄지는 일은 없을 거다.

거기다가.

이번 결과로 정민의 자작곡이 데뷔 무대에 올라가게 되겠지.

“됐어!”

정민의 얼굴이 유독 밝았다.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보상: 3 오픈 마일리지, 슈퍼스타의 인정, 스킬 뽑기 오픈]

나도 새로운 보상을 얻었다.

슈퍼스타의 인정.

공연이 끝나고 한진성이 명함을 내민 것도 이것 때문이었구나.

기분이 좋았다.

보상을 받았다는 것보단 무대의 1등을 차지했다는 게 기뻤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거 같아서.

“형, 우리가 신인상이야!”

“건하의 예지가 맞았어! 건하는 신이야!”

“우와아!!”

“야, 다들 진정…. 커헉!”

애들아, 좋은 건 알겠는데. 너무 세게 껴안는 거 아니냐?

갈비뼈 부러지겠어.

*    *    *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즐겼다.

데뷔를 위해 식단조절을 하고 있는 터라, 대단한 걸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소소한 축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이블에 올라간 게 닭가슴살과 샐러드만 아니었다면 더 즐거웠을 텐데 말이야.

“진짜 고생 많이 했다.”

“하아, 치킨이라도 먹고 싶은데.”

“이런 날 치킨에 콜라 한 잔이면…. 크으!!”

우주가 허공에 손을 뻗으며 닭다리를 뜯는 시늉을 했다.

아마 지금쯤 한 마리를 혼자서 다 먹었으리라.

“…정말 정민이 자작곡이 통했네.”

“운이 좋았지 뭐. 하하.”

정민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워하자, 포크로 샐러드를 먹던 성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만큼 정민이 네 곡이 좋았으니 가능했던 거다. 형편없는 곡이었으면, 1등을 못 했을 거야.”

“하하, 이렇게 말해주면 부끄러운데. 사실 이게 다 건하 덕분이긴 하거든.”

정민의 말에 모두가 거의 동시에 나를 보았다.

“나?”

“맞아! 건하 형이 이거 하자고 제안했잖아. 정민이 형 노래 피드백해준 것도 건하 형이고!”

“…맞네. 건하가 그랬었지.”

“그랬지.”

다들 나를 보며 눈을 빛냈다.

마치 대단한 귀인이라도 만난 얼굴이었다.

“건하가 들어오고 뭔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네.”

“건하 형이 성공의 상징이라든가 그런 거 아닐까? 저번에 신기 있다고 그랬잖아.”

그것도 들었냐.

“신기 없어. 그냥 진성 선배한테 농담으로한 말이야.”

“형이 말하는 거 보면 그 신기라는 거 정말 있는 거 같은데.”

“나 다음 자작곡은 힙합 쪽이 좋을까? 아니면 발라드 쪽이 좋을까?”

우주와 정민이 내게 착 달라붙어 물었다.

야, 나는 무당이 아니야.

“신기 따위 없다니까?”

“우리 데뷔 날짜는 이대로 좋을까?”

“형이 얘들을 말려줘야지!”

여기서 끼면 어떡해?

“나도 절박해서 말이야. 아, 복채가 부족해서 그런가?”

주섬주섬, 성훈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꺼내 내밀었다.

아이돌 연습생의 지갑 사정이 좋을 리 없지.

남은 건 호진이 너뿐이다.

나는 말 없이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호진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복채는 얼마를 줘야 하지…?”

야, 너마저 그러기냐.

불붙은 상담 경쟁은.

띵동!

갑자기 울린 알람에 의해 잠시 사그라들었다.

“누구지?”

의아해하던 성훈이 문을 열자.

“역시 다 안 자고 있었구나?”

황이서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손엔.

“축하 파티는 제대로 즐겨야지 않겠어?”

치킨이 있었다.

“우와아! 프로듀서님! 사랑해요!”

치킨을 본 우주가 난데없이 사랑 고백을 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치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와, 기름 냄새.

너무 오랜만에 맡아서 그런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랑합니다. 프로듀서님.”

*    *    *

파티를 끝내고.

오랜만의 기름칠에 다른 멤버들은 금세 숙면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확인을 해봐야겠어.”

서브 퀘스트를 깨고 얻은 스킬 뽑기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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