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스킬 뽑기.
<마이 아이돌>에서 아이돌을 성장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스탯, 스킬, 멤버 간 케미, 곡과 맞는 컨셉 스킨 등등.
수많은 변수와 요소를 가진 육성 게임이기 때문에, 단순 가챠 게임보다 훨씬 더 지독한 과금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 중 스탯과 더불어 성장 효과가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콘텐츠가 바로 스킬.
어떤 스킬을 뽑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컨셉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댄스 스탯이 낮더라도, S급 춤 스킬을 획득하면 춤 부분이 일정 수준 보정되는 경우가 있었고, SNS 팔로워를 쉽게 모으게 만들어주는 스킬을 갖고 있는 경우엔 적극적으로 SNS 팔로워를 모아 팬 수를 늘릴 수 있었다.
스탯이 기본기라면 스킬은 필살기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됐다.
‘좋은 스킬을 얻으려고 돈을 엄청 때려 박았지.’
매번 픽업 스킬이 나올 때마다 천장을 매번 찍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운이 더럽게 없었다.
픽업 스킬도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고, 가끔 좋은 스킬이 나오더라도 이미 있는 스킬이라 게임 내 재화로 환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늘 천장을 찍었지.
“후우, 갑자기 옛날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치킨으로 좋아졌던 기분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으으.”
좋지 않은 추억이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그런 추억이었는데.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언젠가는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악마 같은 가챠 뽑기를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발악했지만, 항상 지는 건 나였지.
‘아니. 지지 않았어.’
결국 천장을 찍고 원하는 걸 얻었다.
목적을 이룬 내 승리지.
‘과연 첫 픽업은 뭘까.’
나는 스킬 뽑기 창을 열었다.
[스킬 뽑기]
[픽업 스킬: SS급 스킬 - 빛나는 스타덤]
[효과 1: 팬들에게 호감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효과 2: 무대 위에 있을 때, 무대가 ‘대성공’으로 완성될 확률이 올라갑니다.]
시작부터 엄청난 스킬이네.
<마이 아이돌>에서 일명 시민권이라고 불리는 스킬이었다.
이걸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육성 난이도가 확 달라질 정도였으니까.
빛나는 스타덤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무조건 SSS급, 진엔딩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스킬 하나만 지니고 있어도 굿엔딩을 볼 확률이 상당히 올라갔다.
‘빛나는 스타덤’은 특정 스탯을 올려주는 스킬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 대성공 확률.
본래 게임에선 무대의 완성도에 따라 완벽한 공연, 대성공, 성공, 준수, 연마, 실패, 대실패, 완벽한 실패로 나뉘었다.
등급은 차례대로 SSS, SS, S, A, B, C, D, F.
SSS급인 완벽한 공연은 아니더라도 SS급 무대, 대성공의 확률을 올려준다는 뜻.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공연 숙련도도 함께 올려주는 효과가 이 스킬의 진짜 핵심이었다.
‘테스트 공연에선 공연 평가가 따로 나오지 않았지만, 데뷔를 하게 되면 대중들의 냉철한 평가를 받아야 할 테니까.’
이제 데뷔를 앞둔 내게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1회 뽑기 5,000포인트]
[10회 뽑기 50,000포인트]
1 오픈 마일리지당 25만 포인트.
그렇다는 건 1 오픈 마일리지당, 50연차를 돌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마일리지가 총 18.
모든 마일리지를 쏟아 붓는다면 총 900연차까지 돌릴 수 있었다.
‘여긴 천장이 몇 연차이려나.’
나는 뽑기 버튼 밑에 보이는 [음표 교환소]를 클릭했다.
스킬을 1회 뽑을 때마다 하나씩 주는 음표를 모아서 픽업 스킬을 구매할 수 있는 교환소였다.
이게 제작사의 자비인지, 아니면 제작사가 만든 늪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빛나는 스타덤(SS) - 600음표]
600연차를 실패해야 살 수 있다라.
재밌네.
얼마나 뽑아먹으려는 건지는 몰라도.
상술을 알고 있음에도 뽑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 내게는 충분히 뽑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다.
600연차.
나는 오픈 마일리지로 쓸 수 있는 어플을 확인했다.
[18 마일리지 이하의 어플을 검색합니다.]
[루룰 페이: 5 마일리지.]
[루룰 페이 보유금액: 1억 2,800만 원] (구매 완료)
[LP 적금 어플: 8 마일리지]
[LP 적금 어플 보유 금액: 2억 801만 1,557원]
[리브릴 코인: 17 마일리지]
[리브릴 코인 보유 금액: 4억 2,580만 3,500원]
바로 리브릴 코인 어플을 열어 포인트를 구매했다.
425만8천 포인트가 그대로 입금됐다.
우선 100만 포인트로 노래를 D+급까지 올렸다.
[노래: 20 (E) → 36 (D+)]
그 이상으로 올리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만, 당장은 스탯보다 이 스킬이 중요했다.
천장을 찍을 각오로 600연차를 돌릴 수 있는 300만 포인트를 남겨뒀다.
남은 포인트는 약 325만 포인트.
계산해보니 천장을 찍으려면 300만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천장을 찍을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으니, 남은 돈은 스탯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마 다 쓰겠어?
“후우, 한번 해보자고.”
나는 10회 뽑기를 눌렀다.
핸드폰에서 빛이 나며, 아이템 10개가 동시에 떴다.
하나하나 깔 시간이 없다.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뽑는다.
나는 스킵 버튼을 눌렀다.
“하얀색….”
기대도 말라는 거다.
스킬은 무슨.
[F급 스킬 조각 5개]
[E급 스킬 조각 5개]
[B급 스킬 조각 1개]
…….
꽝이다.
금빛 하나 없었다.
“첫 번째에 뽑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B급 스킬 조각을 제외하고 전부 아이템을 소각했다.
[뽑은 아이템을 소각합니다.]
[아이템이 재화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번엔 황금빛이 떴다.
[F급 스킬: 오디오]
완성된 스킬 하나.
그러나 F급은 괜히 스킬 슬롯이나 채우는 용도밖에 되지 않았다.
‘필요 없어.’
나는 그대로 스킬을 갈았다.
[뽑은 아이템을 소각합니다.]
[아이템이 재화로 전환됩니다.]
자, 이제 다음.
30연차.
역시 꽝.
40연차도?
꽝.
50, 60, 70도 마찬가지였다.
화아앗!
화면에 황금 불빛이 반짝였어도.
[D급 스킬: 노력파 스타]
쓸 수 있는 스킬은 없었다.
등급이 낮은 스킬들은 차라리 얻느니만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 번에 쓸 수 있는 스킬들은 한계가 있었다.
10개.
그게 캐릭터를 한 번 공략할 때마다 얻을 수 있는 스킬 한계였다.
게임 또한 그랬으니,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거기다가 D급 스킬들은 장점 하나를 얻기 위해 반대되는 단점을 하나씩 섞어주는 특징이 있었다.
D급 노력파 스타엔 노력했을 때 능력 상승 효과가 붙어있지만, 하루라도 쉬면 오른 능력이 깎이는 디버프가 들려 있었다.
이런 식으로 C급 이하의 스킬은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전재조건이 필요했다.
“이것보단 차라리 B급 스킬 조각이 훨씬 낫겠다.”
그건 100개를 모아서 완성된 스킬 하나로 만들 수 있으니까.
뭐 괜찮다.
운이 없으면, 돈으로 찍어누르면 된다.
그게 내 게임 공략 방식이었으니까.
“다음.”
그리고 300연차에 돌입했을 때.
화아앗!
화면에서 무지갯빛이 솟구쳤다.
‘떴나!?’
300연차, 천장의 딱 절반.
흔히 반 천장이라고 불리는 지점에서 무지개!
최소 A급 이상의 스킬이 뽑혔거나, 픽업 스킬이 뽑혔다는 뜻이었다.
‘과연….’
[S급 스킬: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각]
[댄스 스탯에 비례하여 칼 군무가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함]
“으으읍!”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아쉬움의 탄성을 최대한 가라앉혔다.
아쉽다.
너무 아쉬워.
한 단계만 더 높았다면 픽업이었는데.
하필 픽뚫이라니.
유저들 사이에선 픽업 스킬이 아닌 다른 스킬이 떴을 때, 흔히들 픽업을 뚫고 나왔다고 해서 픽뚫이라고 불렀다.
픽업 SS급보다 뽑기 힘들다는 픽뚫 S급.
하필이면 지금 이게 뜨냐.
댄스 스탯이 낮은 내가 당장 쓰기엔 애매한 스킬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일단 남은 거까지 전부 다 털어보자.’
그리고 남은 300연차를 전부 다 털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뽑기를 눌렀다.
흰, 흰, 흰, 흰, 금, 흰, 흰, 금, 흰, 흰….
아무리 내가 운이 없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니들 대체 확률을 얼마나 만진 거야.
흔히 <마이 아이돌>에서 자주 쓰던 미신도 몇 번이나 써 봤다.
서버를 옮겨야 한다며, 메인 로비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뽑아보기도 했고.
내가 아끼는 아이돌의 사진을 봐야 한다는 말에 거울로 내 얼굴을 살짝 보며 다시 뽑기도 했는데.
‘전부 꽝….’
이놈의 뽑기 운은 나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입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네.”
정신없이 뽑다 보니 벌써 마지막 10연차만 남았다.
여기서 뽑히면 더 화가 난다.
모아놨던 600음표를 쓰지도 못하는 꼴이니.
차라리 픽뚫 나와라.
그러면 내가 용서해줄게.
1천장 2픽뚫이면 나쁘지 않다.
“후우.”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마지막 스킬 10연차를 눌렀다.
“…하아.”
금이었다.
그마저도 D급 스킬.
마찬가지로 슬롯을 채울 바엔 차라리 갈아서 게임 내 재화로 만드는 게 이득인 스킬이었다.
기적의 600음표.
이걸 진짜 천장을 찍을 줄 몰랐네.
하지만.
“내 승리다.”
나는 600음표를 이용해 픽업 스킬인, [빛나는 스타덤]을 구매했다.
[SS급 스킬 - 빛나는 스타덤]
-언젠가 최고의 스타가 될 거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며, 눈앞이 순간 하얘졌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무지갯빛이 나를 감쌌고, 빛과 빛이 함께 섞이면서 눈부신 조명이 되었다.
-와아아아아!
눈을 감았다가 뜨니, 나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상태였다.
수천, 수만 명의 관객이 내 앞에서 우리 그룹의 응원봉을 들고 흔들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에 내가 강제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
팬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내 옆에는 함께 이 무대를 이끌어준 멤버들이 있었다.
성훈, 우주, 정민, 호진.
모두가 밝은 조명 아래에서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나는 능숙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노래가 끝날 즈음, 마지막 동작을 마치고 난 후.
-올리오스! 올리오스! 올리오스!
우리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심장의 고동이 빠르게 뛰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무대 아래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팬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무대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화아아앗!
빛이 빠지는 느낌과 함께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두근두근.
방금 느낀 열기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뽑았다….’
나는 화면 속에서 빛나는 스킬 카드를 보았다.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스킬 카드에는 무대 위에서 팬들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한진성이 서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환희에 가득 찬 눈으로 무대 아래에 있는 팬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환상에서 본 그 장면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젠가 내가 겪을 일.’
30초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거기서 오는 감동이 상당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많은 팬을 부를 수 있는 스타가 된다면?
환상 속의 한진성이 아닌, 나를 보러 오는 팬들이라면.
이보다 더 흥분되겠지.
“진짜 뽑길 잘했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스킬이었다.
[SS급 스킬: 빛나는 스타덤을 등록하겠습니까?]
당연히 예.
[이름: 윤건하]
[나이: 20]
[스킬: 과금(EX), 평범함(F),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각(S), 빛나는 스타덤(SS)]
[노래: 36 (D+)]
[춤: 40 (C)]
[외모: 61 (A)]
[예능: 25 (E+)]
[가용 포인트: 43만 포인트]
스킬이 두 개 더 추가됐다.
‘노래 스탯도 올랐겠다.’
이제 슬슬 볼만한 능력치가 되었다.
사람 구실은 할 정도?
좋아.
이젠 능력치가 부족해서 뒤떨어질 일은 없을 거다.
물론 아직도 외모 말고는 특출난 게 없긴 하지만, 나름 평균치는 충분히 가져갈 정도는 됐다.
‘그나저나 스킬 조각을 소각하고 얻은 재화는 어디에 있지?’
[B급 스킬 조각 100개]
[A급 스킬 조각 30개]
[S급 스킬 조각 8개]
이걸 제외한 나머지 조각은 전부 소각 처리를 했다.
재화가 되었다고 했는데.
‘어디 있는 거냐?’
그런 내 눈에.
“이 시간에 문자가 왜 이렇게 많이 왔어?”
-[Web발신] @월@일 *******윤건하 입금 216,300원 잔액 77,150,500원
-[Web발신] @월@일 *******윤건하 입금 332,700원 잔액 77,483,200원
…….
“…….”
-잔액 80,019,200원
8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문자 메시지였다.
“이게 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