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38화 (38/236)

<제38화>

“우주야, 고생 많았다. 앞으로 종종 연락하자고. 너 진지하게 예능 패널로 나가도 되겠다. 그런데 괜찮니? 너희 컨셉이랑 달리 너무 구겨진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이것도 매력이잖아요. 헤헤.”

이창모와 연락처를 교환한 우주는 세상 날아갈 것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진효원에게 받았던 피드백과는 상반된 표정이었다.

다행이네.

그렇지 않아도 진효원에게 피드백을 세게 받은 뒤부터 주눅이 들었던 우주였다.

예능 촬영이 있다는 황이서의 말이 아니었다면 기분이 바닥을 뚫고 맨틀까지 떨어졌을 게 분명했다.

그런 우주가 본인이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칭찬을 받았으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지?’

그걸로 마음이 풀린다면 다행이지.

형도 마음이 놓인다.

오늘 너를 위해 광대가 되었다고 생각할게.

“우주야.”

“아, 건하 형.”

나를 본 우주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졌다.

“그, 있잖아. 나는 진짜 재밌었어. 아까 살려달라고 말할 때 배꼽 빠지는 줄….”

“아니야. 괜찮아. 재미없다는 거 알았어.”

“어, 어?”

“나도 눈치라는 게 있는 사람이야. 스태프분들 반응 살벌하더라.”

“아….”

그래도 필사적으로 나를 위로해 주려는 우주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그들의 싸늘한 시선 따위, 우주의 진심 어린 위로 한 번이면 다 치유되지.

“고맙다. 네 덕에 살았다.”

만약 우주가 무마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성대모사를 하지 않았다면, 방송을 끊고 다시 갔을지도 모르겠다.

쫓겨났을걸.

멤버들 말고, 나 혼자.

“나는 예능이랑 안 맞나 봐.”

“아니야. 형. 형 진짜 좋았어. 나중에 TV로 보면 진짜 재밌게 찍혔을 거야.”

“짜식, 더 위로 안 해도 돼. 형은 다 치유됐어.”

“진짠데…. 그 표정 진짜 대박이었는데.”

그 표정이란 건 분명 이창모가 칭찬한 그거겠지?

나는 모르겠더라.

재밌는지.

나는 우주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아아, 형.”

“고마워서 그래.”

“나도 맨날 형한테 도움받는데, 이럴 때라도 도와야지. 앞으로 예능 나갈 일 있으면, 무조건 내 옆에 있어. 내가 다 도와줄게! 형 커버는 나 최우주가 맡을 테니까!”

그 말이 어째 관심병사를 맡게 된 분대장의 말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다.

“다들 고생 많았다.”

스태프들과 섞여 우리의 촬영을 보고 있던 황이서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얘기 들어보니까 다음 주에 바로 방영된다고 하네.”

“그렇게 빨리요?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원래 방송하려고 했던 그룹의 요청이었나 봐. 괜히 일정 바꿔서 이것저것 꼬이는 것보단 본래 예정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얘기가 나와서. 우리 입장에서도 좋지. 애초에 우리도 운이 좋게 들어온 거니까.”

황이서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한 표정.

저 표정만으로 우리의 방송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유 PD, 고생 많았어!”

“들어가십쇼! 선배님!”

주중 아이돌 PD가 황이서 후배였나.

그제야 우리가 운이 좋게 아이돌 예능에 꽂힌 이유를 깨달았다.

우연이 겹친 필연이었구만.

“프로듀서님도 고생하시네요.”

“역시 알아주는 건 건하 뿐이구나. 내가 진짜 이거 꽂아주려고 저놈한테 술을 얼마나 먹였는지 아니? 지갑이 너덜너덜….”

황이서 프로듀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거 어차피 법카면서.”

그의 뒤를 따라온 김예리 스타일리스트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예리야, 그거 법카라고 막 내려치면 안 돼요. 내가 저놈 취하게 만들려고 평소에 안 먹던 견디셔에 상태환에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억지로 먹으면서 멕였다고. 진짜 내 고생을 알아줘야 한다니까?”

“프로듀서님 공짜 술 먹을 수 있다고 방방 뛰던 거 봤어요.”

김예리가 툴툴거리며 황이서의 말에 토를 달았다.

어째 그 말에 정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진짜 내 팀이 한 명도 없다. 아니, 한 명 있구나. 건하야, 진짜 잘 부탁한다. 저번처럼 나 없을 때 네가 리더로서 애들을 잘 다독이고….”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잠깐만.

“제가 리더라고요?”

“당연하지.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 아니었어?”

“어…. 들은 적이 없는데요?”

“어제 진효원 왔다 갔을 때도 그렇고, 방송할 때도 그렇고 완전 리더던데?”

“성훈이 형은요?”

“이미 동의 다 얻어놨어.”

우리 프로듀서님 행동력 하나는 미쳤네.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한다. 리더.”

인정받는 건 좋은데.

어째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다.

“건하야, 프로듀서님 말 너무 듣지 마. 되게 깐깐하고 일 엄청 시키니까.”

김예리가 황이서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속삭였다.

*    *    *

모두 정리한 우리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출발하겠습니다!”

두현의 운전은 생각 이상으로 편안해서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지몬스 침대.

잠깐 잠들었는데.

“우와아아악!”

별안간 터진 황이서의 괴성 때문에 다시 깼다.

“엥? 무슨 일입니까?”

“야, 떴다!”

“뜨다뇨?”

말보다 보여주는 게 빠르다고 느꼈던 걸까.

황이서가 바로 뒤에 앉은 우주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우와아아!!!”

우주도 비슷한 괴성을 지르며 핸드폰을 다음으로 넘겼고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대체 뭔데.

뒷좌석에서 핸드폰을 돌려받은 나는.

“오오오!!”

다른 멤버들과 다를 것 없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레몬 차트, 차트인 했다!”

-(new)Angel 99위.

가장 큰 음원 사이트인 레몬 차트에서 차트인!

싱글 타이틀곡 Angel의 차트인.

그야말로 끝자락에 링크된 거지만, 우리가 데뷔곡을 낸 지 48시간도 아직 지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성적이었다.

됐다.

두 번째 퀘스트인 Top 10을 가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안심했다.

그동안 티를 내지 않았지만 걱정이 많았다.

이리저리 활동을 많이 하는데도 차트인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저 헛된 자신감뿐인 거라면 어떡하지.

나라도 처음 가보는 길에 대한 불확실성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순히 데뷔하라는 퀘스트보다 더 어려운 단계의 퀘스트.

네 달 안에 10위 안을 찍으라는 퀘스트는 이루기까지 변수가 너무 많았다.

남자 아이돌은 최대한 초반에 터트려야 한다는 얘기를 황이서에게 들었다.

1주 안에 차트인을 하지 못하면 좋은 성적은 기대도 하지 말라던 그의 말.

48시간 안에 들었다는 건.

‘희망을 가져도 되나?’

데뷔 앨범으로 두 번째 퀘스트까지 클리어하나?

“Angel이 됐다! 크으으으!”

“와, 이거 실화야?”

“아직도 안 믿겨….”

차 안에는 환호로 가득했다.

정민이는 아직 ‘New Taste’의 순위는 낮은 것을 보며 아쉬워했지만, 그런 그의 얼굴에도 환희의 미소가 차올랐다.

타이틀곡의 성적이 좋다는 건 우리의 무기가 통한다는 뜻이니까.

“하트 수도 벌써 1만 개를 넘겼네요?”

“댓글도 벌써 100개가 넘어!”

모두가 레몬 차트를 틀어 댓글을 확인했다.

-벌써 다섯 번째 듣고 있음.

-N번째 듣는 사람.

“엄청 많이 들어주나 봐!”

-데뷔곡 왜 이리 좋음? 자꾸 듣게 되는데?

-이 노래 구멍이 좀 있는 듯, 황‘홀’.

⌎아재요….

“반응 좋다. 지금 계속 듣고 계신 분도 있나 봐.”

“댓글 하나 새로 달렸다.”

댓글을 보며 싱글벙글 웃는 멤버들.

정민이와 우주는 댓글을 하나하나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너튜브 보고 유입된 사람 손.”

“성훈이 형, 형 노래 보고 징이래.”

“징? 갑자기 웬 징이야.”

“어메이징. 크크큭.”

“…….”

잠깐만 손가락이 막 구부러진다.

주접 댓글을 막상 육성으로 그 말을 들으니까 너무 오글거린다.

그렇게 다들 감상하고 있는데.

“시니 뮤직은 아까 차트인 했고 지금 92위, 박스 뮤직은 아직 소식 없는데 추세 보면 내일 아침에는 차트인 하겠다. 어? 박스 뮤직은 New Taste가 차트인 먼저 했네!”

“정말이에요 프로듀서님?”

정민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박스 뮤직에 올라온 자신의 노래를 본 정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좋은가.

“호재만 계속 나오네. 흐흐.”

황이서가 후련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이제 좀 안심해도 되겠다. 하으으.”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뒤에 있던 우리를 노려봤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차트 구경에 신이 나서 황이서가 쳐다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야, 그러고 보니까 너희 나 몰래 뭐 먹었다면서?”

“아….”

우주의 얼굴에서 땀이 삐질 흘렀다.

험상궂게 생긴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던 황이서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당장이라도 담배를 물 거 같은 얼굴이었다.

“뭐, 너희도 식단 조절한다고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한 번만 봐준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모두가 미소를 짓는 이 시간.

‘10위, 가능하겠지?’

나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메인 퀘스트: 제한 시간 내 Top 10에 성공하세요.]

[성공 시: ???]

[실패 시: 캐릭터 삭제]

이 퀘스트 때문에.

1위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후우, 마음이 무겁다.

무거워.

*    *    *

차트인의 기쁨은 잠시였다.

<주중 아이돌> 녹화 이후 하루도 되지 않아 우리는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

행사.

경기도 소도시에서 진행하는 작은 행사라고 들었다.

아직은 그런 작은 무대도 소중한 우리였다.

아이돌이 음악 방송 말고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진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바쁠 줄은 몰랐다.

“두 곡 모두 부르고, 우리 쪽 카메라가 영상도 찍을 거야.”

“네!”

차에 함께 올라탄 김예리가 이동 중에 우리들의 화장을 고쳐주고 있었다.

“두현아, 운전 조심히 해. 지금 메이크업 중이니까.”

“알겠습니다. 누님.”

김예리와 이두현도 그새 친해졌는지, 호칭이 꽤 가벼웠다.

“예리 누나, 오늘 화장 잘 먹었는데요?”

“그래? 오늘 힘 좀 썼는데. 티 나?”

“엄청 티 나요.”

“호호, 역시 우주가 보는 눈이 있네.”

“그럼요. 이렇게 화장하면 마주 보게 되는데요.”

그 말을 듣던 황이서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아이돌들 무대 가는데 스타일리스트가 왜 힘을 주는 건데?”

“보여줄 사람이 있으니까 힘준 거 아닐까요? 프.로.듀.서.님?”

“참 나, 젊은 매니저 들어왔다고 힘주는 거야?”

“예예, 당연하죠오.”

“진짜 예리 너는 젊은 애들한테 들이대는 것 좀 자제해야 돼.”

우주의 칭찬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김예리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진다.

“하아, 눈치 더럽게 없네. 진짜.”

뒷좌석에 앉은 그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을 황이서는 듣지 못했다.

저 한숨의 이유는 역시 그거지.

나는 옆자리에 앉은 정민에게 속삭였다.

“예리… 누나 황 프로듀서님 좋아하는 거 맞는 거 같지?”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말에 정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얘가 눈치가 더럽게 없네.

작곡하는 것도 좋은데, 가끔은 주위를 둘러보고 그래라.

누가 봐도 예리가 티 내는 거 뻔히 보이는데.

황이서와 김예리를 번갈아 바라보던 정민이 보다 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집중해야 간신히 들렸다.

“프로듀서님이 스타일리스트 누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나는 반사적으로 앞 좌석에 앉은 황이서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일정 없을 때랑은 달리 유독 머리도 관리하고 수염도 깎은 모습이.

“오오….”

“맞지? 내 말이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이거, 흥미진진한데.

그러나 황이서와 김예리 중에 상대를 진짜로 좋아하는지 의견을 알아보고 싶었던 우리의 수다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건하야, 메이크업 하자.”

목소리가 북극 얼음보다 차가운데….

괜찮겠지.

아무렴 프로인데.

잘 해주시겠지.

[돌발 퀘스트: 첫 사설 무대]

[데뷔 무대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제 프로로서 작은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져야겠죠?]

[현 시간부로 무대 등급이 매겨집니다.]

[성공 시: 등급에 따른 신규 팬 확보]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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