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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99화 (99/236)

<제99화>

우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실수하는 것 때문에 건하 형이 여기까지 따라온 거잖아.

그렇게 회의 시간 동안 대기하게 두고 있으면서, 회의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으면 어떡해.

회의에 집중하지 못할 거 같으면 차라리 연습이라도 했어야지.

일만 벌여놓고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거야.

‘내가 우물쭈물한 탓에 건하 형이 저렇게 고생하는 거잖아.’

멍청했어.

너무 안일했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

자신 때문에 건하 형이 성훈이 형과 다툰 걸 보고서도 정신을 못 차렸다.

이래선 안 된다.

이렇게 애매하게 이도 저도 아닌 태도를 보이면 팀에게 민폐다.

나아가 회사와 프로그램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뭐라도 하나 확실하게 해야만 해.’

입술을 깨문 우주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PD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조금 일찍 돌아가도 될까요?”

“돌아간다고요?”

“예. 지금 공연 준비 때문에 내부적으로 바빠서…. 개인적으로 공연 준비가 미흡해서요. 대신 연습이 다 끝나고 일정 해결되면 바로 회의에 빠진 만큼 열심히 참가하겠습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주를 보던 PD가 그 말에 손짓했다.

“바로 가보세요. 사실 요즘 이렇게 기획 회의에 참여해주는 연예인이 잘 없거든요. 혹시 너무 고생시키는 거 같아 걱정이었는데. 아이돌에겐 무대가 제일 중요하죠. 대본은 저희가 정리하고 넘겨줄게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우주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회의실을 나갔다.

그는 복도에서 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건하에게 달려갔다.

“형! 나 회의 끝났어!”

“뭐야. 벌써 끝났어?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 이번에 우리 팀 연습 때문에 며칠만 빠진다고 말씀드렸어.”

“너 바리스타 자격증 따야 하는 거 아니었어?”

“그건 시즌2 들어가면 기획으로 쓴다고 한 거라서 괜찮아. 프로그램보단 팀이 먼저잖아!”

“그래?”

잠시 생각하던 건하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일이니까 알아서 잘했겠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PD님께 얘기 잘하고 왔어. 얼른 가자. 우리 연습해야지.”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응?”

“내가 지금 네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다 짜놨단 말이야. 이거 돌아가면 다 까먹어서 안 돼. 간단하게 설명할 테니까, 여기 앉아.”

건하가 복도에 놓인 벤치를 두드렸다.

“여, 여기서 연습한다고?”

“그래. 참고로 무반주로 할 거야.”

“엉? 무반주?”

“그래. 무반주.”

우주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가슴을 펴는 건하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두현을 보았다.

매니저 두현은 건하를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현이 형, 그래도 되는 거예요?”

“괜찮아. 프로듀서님도 오케이 하셨어. 무반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더라도 무슨 곡인지 아무도 모를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미친 듯이 부끄러울 거 같은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해. 빨리 춰야지.”

“으으, 알았어. 잠깐만.”

주위 눈치를 살피며 잠시 심호흡을 하던 우주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탓. 타닷. 탓!

우주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무반주로 춤을 췄다.

반주가 없으니 스텝을 밟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그런 우주의 춤을 핸드폰으로 녹화하며 하나하나 지켜봤다.

반주는 없었지만, 수록곡을 수백 번 들었던 내 머릿속에선 해당 반주가 흘러나왔다.

반주가 직접 귀에 들리지 않아서 그랬을까.

나는 조금 더 우주의 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동작이 조금은 어설펐지만, 우주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동작이 이어지며, 문제의 지점에 도달했다.

자주 실수하는 지점.

우주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초조한 거다.

나는 그런 우주를 보았다.

어떻게 실수하는지, 어디서부터 박자가 밀렸는지, 내가 분석한 게 맞았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역시 박자가 밀렸어.’

박자가 조금 더 리드미컬하게 변주되는 구간부터 우주의 박자가 살짝 밀렸다.

겉으로 보면 티가 나지 않을 정도.

그러나 막상 제일 어려운 구간을 들어가니, 아주 조금 밀린 박자 때문에 실수하게 되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아….”

발을 잘못 디딘 우주가 안무를 실수하고 말았다.

“괜찮아. 바로 다음으로 가자. 일단 끝까지 추는 거야.”

“알았어.”

“박자 맞춰줄게. 하나, 둘, 셋, 넷.”

다음 부분도 비슷한 이유로 틀렸다.

내가 한 분석이 맞았다는 걸 확신했다.

그거면 됐다.

이유를 알았으면 해결책 역시 따라오는 법이니까.

“하아, 하아.”

우주가 땀을 흘리며 숨을 골랐다.

원래라면 이 정도로 지칠 애가 아니었지만, 자주 틀리던 안무를 혼자서 무반주로 춘다는 게 심적 부담감을 준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평소보다 더 지친 걸 거다.

“잘했어.”

“하지만 여기저기 다 틀리고 엉망진창이었는데.”

“그 부분은 지금부터 고치면 돼.”

“…….”

나는 내 핸드폰과 이두현의 핸드폰을 들었다.

이두현의 핸드폰에는 내가 복도에서 무반주로 춤을 추는 모습이, 내 핸드폰에는 우주가 무반주로 춤을 추는 영상이 녹화되어 있었다.

“어디가 문제인지 알려줄게. 바로 여기야.”

“여기라고? 하지만 여기는 내가 틀리는 거랑 전혀 관련이 없는데.”

우주가 자주 틀리는 안무의 10초 전을 가리키자,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여기는 문제 없이 넘어간 것처럼 보였으니 당연했다.

“여기서 우주 네가 0.5초 정도 박자가 밀려. 그리고 이 밀린 박자가 실수하는 부분까지 계속 이어져.”

“…….”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잘 봐.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보여줄게.”

나는 영상을 동시에 재생하고 멈췄다.

프레임 단위로 끊어지는 안무 영상에서는 정말 미세한 차이로 내 팔이 먼저 뻗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늦게 뻗는 우주.

영상으로 보면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재생과 정지를 반복하니, 그 차이가 확연하게 보였다.

“아.”

그걸 본 우주의 입이 벌어지며 탄성을 질렀다.

“정말이네.”

영상 속 우주는 그 이후로 10초간 반 박자가 밀린 채로 춤을 이어갔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실패.

처음 밀린 0.5초가 쌓이고 쌓여, 10초 뒤에는 돌이킬 수 없는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박자를 당기는 것부터 연습할 거야.”

“알았어.”

나는 우주 옆에 붙어서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여기서 쉬지 말고 템포를 끌어올리자. 무슨 말인지 알지?”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펀지처럼 빠르게 빨아들인 우주가 곧장 동작을 따라 했다.

구분 동작으로는 곧잘 따라 한 우주였다.

스탯을 올려준 보람이 있다니까.

습득 속도가 확실히 이전보다 빨랐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쪽 발을 고정한 채로 부드럽게 턴.”

그러다 문제의 그 구간에 돌입했다.

“스텝을 잘게 쪼개면서 하나, 둘, 셋, 넷.”

여기까지도 문제는 없었다.

그래.

구분 동작으로 연습할 때는 괜찮았다.

이제 빠른 속도로 이어가도 괜찮은지가 중요했다.

‘여기서 성공하면 나머지 디테일은 연습실에서 고치면 돼.’

지금 느껴지는 이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복도에서 연습을 했던 거다.

이것으로 우주가 자주 하는 실수를 해결한다면, 마음 놓고 연습에 몰두하면 될 거다.

“그럼 이제 바로 빠르게 간다. 아까 연습 시작한 부분부터 너랑 나랑 교차하는 지점부터 갈 거야.”

“응.”

“하나, 둘, 셋, 넷.”

우주가 결의를 다진 얼굴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다.

긴장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초조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무반주에서 춤을 연습하는 것도 익숙해졌는지,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지금의 춤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주의 눈에는 결의가 넘쳤다.

어느 때보다도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리고.

“어?”

늘 똑같은 실수를 하던 부분을 무사히 넘어갔다.

우주는 놀란 듯 자신의 몸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지금 이거….”

“잘했어. 이거 봐. 하니까 되잖아.”

“너무 어려운 부분이라서 무작정 연습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났네.”

당황한 얼굴로 말을 되뇌던 우주가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혹시 우연찮게 성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러나 우연만으로 성공한 게 아니라는 것처럼 우주는 다시 같은 부분을 무사히 넘겼다.

우주의 눈이 내게 향했다.

다다다 달려온 우주가 내 손을 붙잡았다.

“형은 진짜 신이야.”

“신은 무슨, 그냥 운이 좋게 발견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이게 어떻게 운만으로 가능해. 아까 봤어. 나 회의하고 있을 때 혼자서 계속 춤추던 거.”

“아, 그거 봤냐?”

“응. 아까 작가님이 봤다고 하시더라.”

다른 사람이 봤다고 하니, 괜히 부끄럽네.

“크흠, 너 연습 도와주려고 따라온 건데 아무것도 안 하면 그렇잖아.”

“그러니까 형이 대단한 거지! 그 상황에서도 해결법을 찾은 거잖아.”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계속 형한테 도움만 받는 거 같아서 미안해.”

“야야,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예능 한다고 혼자서 애쓰고 있는 너를 같은 멤버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냐?”

나는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능에 출연하는 것.

그건 우주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우주가 소속된 우리 그룹, 올리오스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우주의 유명세가 올라갈수록 올리오스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성훈이 형도 너를 아끼는 마음에, 연습을 더 하라고 말한 거야. 싫은 뜻으로 한 말 아니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응….”

“그럼 마지막으로 동작 맞춰보고 돌아가자.”

“뒷 부분은 안 하려고?”

우주의 질문에 나는 슬슬 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여기서 무반주로 더 췄다간 공개 망신 당할지도 몰라.”

연습에 열중할 때는 몰랐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일 줄.

연습을 마치고 우주가 혼자서 자신의 춤을 다시 돌아봤을 때 알아챘다.

복도에서 두 명의 아이돌이 춤을 추는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는 걸.

“어? 최우주 아니야?”

“옆에는 윤건하네?”

“둘이서 뭐하는 거지?”

이제는 얼굴이 알려진 우리였다.

특히 KTV에서는 최근 우주카페가 흥행하면서 우주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졌다.

그런 우리가 복도에서 같이 춤 연습을 하고 있으니, 모일 법도 했다.

“촬영인가?”

우주가 예능을 자주 하다 보니, 촬영인가 싶어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렸으니까 남은 부분은 연습실에서 마저 하자고.”

이렇게까지 모이는 건 생각 못 했다.

뒤늦게 사람들을 확인한 우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으악! 힉! 으힉!”

요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숨겼다.

그 모습에 주위에 몰린 사람들이 전부 하하호호 웃었다.

리액션이 찰지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혹시 뭐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 사람들에 대한 사과였다.

우리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인파 속을 헤치며 지나갔다.

* * *

연습실로 돌아와서도 연습을 이어갔다.

호진이도 자세를 잡는 걸 도와줬다.

어째선지 유독 적극적으로 우주를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여기서는 이런 느낌으로 스텝을 밟는 게 좋을 거 같아. 골반을 살짝 틀면서 포인트를 주면….”

메인 댄서인 호진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잡고 케어해 줬다.

예를 들어 춤을 출 때의 표정과 박자를 당기는 것에만 집중해 잡지 못한 동작의 디테일과 멋 등을 말이다.

“우주야, 잘하고 있어.”

우주가 연습하고 있을 때면, 정민이 옆에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까지 챙겨다 주며, 우주의 케어에 전력을 다했다.

평소에도 정민이 다른 멤버들을 먼저 챙기곤 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뭐지?’

뭔가 애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거 같은데.

성훈과 내가 티격태격한 게 애들한테도 자극이 되었나?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우주를 도와주는 두 사람과 달리, 성훈은 그저 자기 연습에 매진할 뿐이었다.

잠시 우주를 가르치던 나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관심이 없는 척 연기를 했다.

그에게는 아쉽게도 성훈은 연기를 정말 못했다.

성훈아, 네가 시킨 거구나.

짜식.

나는 웃음을 삼키며 성훈을 보았다.

그 역시 나쁜 감정으로 우주를 탓한 게 아니었다.

당연하지.

성훈도 누구보다 우주를 아끼는 형 중 한 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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