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13화 (113/236)

<제113화>

N-스포츠.

국내 최대의 스포츠 브랜드.

세계적으로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지는 않지만, 러닝화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 웨어의 품질과 가성비 면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회사였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회사였다.

“예전부터 컨택하고 있던 브랜드 중 새로운 스타 모델을 요청했던 브랜드가 많았어요. 신년을 맞이해서 S/S 시즌에 새로운 모델과 함께 제품을 선보이고 싶던 업계의 니즈와 딱 들어맞은 거죠.”

여러 브랜드 이름이 화면에 적혀 있었다.

쟁쟁한 스포츠 웨어 브랜드부터 의상, 화장품 브랜드까지 없는 게 없었다.

“저와 기존에 같이 하기로 했던 브랜드들에 기획안을 보내 제안해 봤어요. 올리오스라는 그룹이 가진 이미지, 신선함, 라이징 스타 같은 키워드를요. 그중 가장 열정적으로 답신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 N-스포츠죠.”

빠르게 화면이 넘어가면서 우리의 사진과 키워드가 깔끔하게 정리돼서 올라왔다.

그녀가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며 우리에게 자료를 건넸다.

거기엔 N-스포츠가 원하는 그림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봄의 싱그러움.

-스포츠 웨어의 건강미.

-20대.

-새로운 시작.

거기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진을 찍을지에 대한 것도 디테일하게 잡혀 있었다.

봄과 여름 시즌에 맞춰 사용할 스포츠 웨어의 컨셉과 리스트가 빼곡했다.

스포츠의 계절.

봄은 여름에 있을 휴가를 위해 몸을 만든다고 운동을 시작하거나 계획하는 시기였다.

“친구들끼리 밖에서 노는 느낌으로 찍는 것도 좋죠. 날이 좋으니 자연스럽게 아웃도어가 활성화되니까요.”

구희성이 우리에게 화보를 찍어보자고 제안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그런데 벌써 이렇게 리스트를 짜왔다고?

업계 탑이라고 하더니,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기업이 움직이는 게 얼마나 둔한데.

사업체를 운영해 봤기에 잘 알고 있다.

덩치가 클수록 한 번 정해진 걸 바꾸는 게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파격적으로 바꿨다는 건.

박한솔의 능력이 그만큼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거지.

‘주기적으로 컨택을 하고 있었던 덕이겠지만.’

행동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심지어 시즌별 컨셉과 제품별로 어울릴법한 구도까지 짜왔다.

“박 작가님이 제대로 말씀해 주셨네요.”

나는 박한솔의 옆에서 미소를 짓는 남자를 보았다.

N-스포츠의 광고 담당자인 김주성 실장.

그가 바로 오늘 미팅에서 박한솔이 이렇게까지 프레젠테이션을 만든 이유였다.

미팅에 찾아온 관계자의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이번에 저희 N-스포츠에서 만든 신제품 기능성 러닝화를 비롯한 기능성 트레이닝복을 홍보하기 위한 화보를 촬영할 겁니다. 잡지, 신문, 지하철 광고 등으로 사용될 예정이고요.”

이후 김 실장은 자신들의 신제품이 갖는 강점을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가벼운 무게.

-땀이 잘 빠지는 기능성 재질.

-간결하면서도 주목받을 수 있는 디자인.

이외에도 다양한 강점이 있다며 설명하는 김주성 실장의 얼굴엔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이런 강점을 우리 올리오스와 오리진 픽처스에서 잘 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김 실장.

그런데 사실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가 음악 방송 1등을 했다고 해도.

음원 차트 1위를 했다고 해도.

최근에 조금 알려졌다고 해도.

N-스포츠에서 이렇게까지 단시간에 연락을 보낼 정도로 유명해지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김 실장은 그런 내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하하, 예전에 봤거든요. 올리오스가 박 작가랑 같이 찍은 앨범 자켓을요. 그거 말고도 박 작가랑 찍은 굿즈 사진도 봤습니다. 브로마이드도 하나 챙겼죠. 하하하.”

“그걸 다 보신 겁니까?”

“물론이죠. 광고 담당자가 최근 핫한 아이돌을 놓쳐서야 되겠습니까.”

김 실장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나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박 작가가 업계 탑이라서가 아니라, 올리오스가 보여주는 이미지와 가능성을 보고 있었어요.”

김 실장의 눈이 반짝거렸다.

“최근 우주 카페도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신선하던데요? 바리스타라면서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담아주는 모습이요.”

손으로 커피를 휘휘 젓던 김 실장이 허허 웃었다.

“정말요?”

“물론이죠.”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봤다는 말에 우주가 반색했다.

“데뷔하고 단기간에 메인스트림까지 올라오는 아이돌이 그리 많지 않아요. 대형 기획사 아이돌들도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말이죠.”

담담하게 자신의 소감을 말한 김 실장이 우리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저는 올리오스가 우리 N-스포츠와 장기적인 관계를 맺었으면 해요. 성공한 신인 아이돌의 성장하는 이미지, 풋풋함, 명랑함 등을 기업 이미지로 활용하고 싶거든요.”

우리를 컨택하는 것에 이 사람의 입김이 많이 닿았음은 분명했다.

기존에 N-스포츠가 가진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변화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해야 할 거다.

‘장기적인 관계라.’

그러기 위해선 성적이 뒷받침이 되어야 할 거다.

우리를 써서 판매량이 떨어진다면 장기 계약은커녕 이번 화보가 마지막이 되겠지.

“스포츠 스타가 아닌, 아이돌 스타를 대중에게 선보여도 브랜드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합니다.”

담담하지만, 각오가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그는 우리와 화보 하나만 찍고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김 실장은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 박한솔이 N-스포츠와 미팅을 잡은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아, 그리고 하나 더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내 말에 김 실장이 웃으며 말을 붙였다.

“이번 화보 반응이 좋으면 N-스포츠의 자선 콘서트에 올리오스를 초대하려고 합니다.”

“콘서트 말입니까?”

“예.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여름 시즌에 맞춰서 계획하고 있거든요.”

“가능만 하다면 저희야 좋죠.”

웃으며 대답한 나는 이두현 매니저를 보았다.

콘서트 같은 일은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사치레로 할 수는 있어도, 진지하게 얘기가 오간다면 기획사에서 처리할 일이었다.

“그건 추후에 저희 프로듀서님과 따로 말씀하시죠.”

“하하, 물론이죠. 날치기로 계약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우리 모델과 앞으로의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말씀드린 거라고 생각해줘요.”

너털웃음을 지은 김 실장이 말을 넘겼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계속되었다.

오리진 픽처스와 N-스포츠가 계획하고 구성한 틀을 듣고 공유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회의는 짧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찍을 건지에 대한 안내를 받고.

“저희 멤버 개개인의 매력을 살리는 방향을 잡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달리는 느낌으로 찍어보는 건 어떨까요?”

하는 식의 간단한 의견을 전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미 잡힌 틀이 탄탄해서 우리가 뭔가를 더할 필요도 없었다.

회의라고는 진절머리나게 했던 내 감상은.

‘잘하네.’

이게 전부였다.

딱히 흠을 잡을 곳이 없었다.

짧지만 알찼던 회의가 끝이 나고.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다 끝난 거지요?”

“예.”

회의를 마친 김 실장이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가방에 손을 집어넣더니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아, 혹시 이거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김주성 실장이 꺼낸 건 우리 다섯 명이 찍힌 브로마이드였다. 거기에 우리의 앨범 CD까지.

“이거 직접 구매하셨습니까?”

“하하하, 아이돌 분석 겸 한번 들었다가 완전히 빠져버려서 그냥 하나씩 질렀습니다. ‘All we once’ 너무 좋던데요?”

멋쩍게 웃은 김주성 실장의 얼굴에 나는 왜 그가 이렇게까지 우리를 좋게 봤는지 깨달았다.

‘팬심인가.’

사인을 해주는 우리를 보던 김주성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갔다.

“고마워요. 집에 보관할 보물이 하나 늘었네요. 콘서트 관련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시죠.”

김 실장이 콧노래를 부르며 떠나고, 박한솔 디자이너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요. 저 사람이 저렇게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올리오스가 매력적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렇습니까?”

능력이 있는 건 확실했다.

본인만의 주관과 확실한 시장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저 사람이 조금 가벼워 보여도, 능력은 아무도 부정 못 해요. N-스포츠에 스카우트 되기 전에 다른 업계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거든요.”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겠네요.”

“그럼요.”

나는 N-스포츠의 광고 담당자인 김주성 실장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업계 관계자의 눈에 우리 올리오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은 신호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화보 촬영이었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수익을 얻은 기분이었다.

확신.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깨달았다.

거기서 오는 자신에 대한 확신은 앞으로 우리가 다음 활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회의를 끝마친 멤버들의 얼굴도 밝았다.

기대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조금 섭섭하네요.”

그런 우리를 보던 박한솔 디자이너가 말했다.

“섭섭하다니요?”

“나는 올리오스에서 먼저 연락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안 들었나 싶었다니까요?”

앨범 자켓 촬영을 마무리한 뒤에 우리에게 명함을 내밀었던 박한솔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 연락한 게 아니라, 구희성을 통해 연락이 닿았다.

“죄송합니다. 사실 이번 화보 촬영이 계획했던 게 아니라서요.”

“알고 있어요. 희성이가 갑자기 하자고 했죠?”

“예.”

“원래 그런 친구죠. 조용하다가 뭔가에 팍 꽂히면 갑자기 추진력이 생기고, 예상할 수가 없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는 박한솔의 모습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을 걱정하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덕분에 올리오스랑 작업하게 돼서 나는 좋지만요.”

“저희가 영광이죠.”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이 좋네요.”

미소를 짓는 박한솔 작가의 눈가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본격적으로 작업이 들어가는 건 3주 후, 설날 바로 다음 주에요.”

“아체대가 방영한 뒤겠네요.”

“그렇죠. 거기서 성적이 좋았다고 들었는데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녀의 말처럼 아체대가 방영하면 조금 더 스포츠 웨어에 걸맞은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D가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갈리겠지만.’

아닌 척 내게 어필했던 이영일 PD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윤 회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 컷이라도 더 넣으려고 했을 거다.

‘악의적 편집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곧 있을 화보 촬영이 기대되었다.

* * *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그러고 보니 성훈이 형 생일도 얼마 안 남았네.”

차에서 핸드폰을 보던 우주가 말했다.

목소리에 설렘이 가득했다.

이벤트라도 해주고 싶은 얼굴이다.

“벌써 그렇게 됐나?”

정작 당사자인 성훈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생일.

날짜별로 공략을 진행하는 게임 <마이 아이돌>에서 아이돌의 생일은 중대한 이벤트였다.

팬들이 옥외 광고를 걸어주면 인기도가 상승하고.

선물을 보내주면 팀의 사기가 올라가며.

멤버들과 파티를 열면 상태 이상이 사라지고 체력이 상승했다.

랜덤한 이벤트가 발생하고, 그로 인한 버프를 받는다.

그 때문에 각기 다른 멤버들의 생일을 하나하나 다 기억해야만 더 효과적인 공략이 가능했다.

그래서 멤버들의 생일을 전부 알고 있었다.

올리오스 뿐 아니라 게임에 나왔던 아이돌 전부를.

“2월 6일이지?”

나는 무심결에 입을 열었다.

“건하가 어떻게 알고 있어? 내가 저번에 얘기했었나?”

아, 맞다.

생일 얘기는 안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고 프로필을 봤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얘기했던 걸 들었어.”

“그랬나?”

이래저래 믿는 눈치였다.

“이왕 얘기 나온 김에 각자 생일 얘기하는 건 어때? 건하 형은 잘 모를 테니까.”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자기 생일을 말했다.

호진이 생일이 5월 12일, 우주 생일이 7월 5일, 정민이 생일이 8월 27일.

사실 다 알고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자신의 생일을 말하는 멤버들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건하 네 생일은 언제야?”

마지막으로 자기 생일을 말한 정민이 물었다.

내 생일?

그러고 보니 언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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