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안녕하십니까.”
“아, 반가워. 하하. 최근에 잘 나가는 우리 올리오스 성훈 씨.”
<명곡 배틀>의 메인 CP인 김준환 PD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년에 예능부 데스크에 올라갈지도 모르는, 경력 있고 잘 나가는 PD.
황이서와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유성훈이라고 합니다.”
성훈은 그런 김준환 PD의 손을 잡았다.
“급하게 연락했는데 받아줘서 고마워.”
“고마운 제안을 주셔서 바로 받았습니다. <명곡 배틀>은 가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하거든요.”
“하하하, 그런 자세 아주 좋아.”
김준환 PD는 미소를 머금으며 테이블 위에 있는 노트북을 성훈 쪽으로 돌렸다.
“이번 회차에서는 전설적인 가수들의 명곡을 리메이크해서 무대를 구성할 생각이거든.”
“예, 프로듀서님에게 들었습니다.”
“준비성이 좋아. 얘기가 빠를 거 같네.”
김준환 PD의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건 성훈이 이번에 무대에서 부를 노래였다.
“한번 들어보는 게 좋을 거 같네. 곡은 미리 받아뒀어. 올리오스는 바빠서 곡 준비가 어려울 테니까.”
김준환 PD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딴따단! 뚜루드단!
트로트 반주가 노트북에서 흘러나왔다.
템포가 빠른 반주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없던 흥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사람에 따라서 조금은 유치하다고 느껴질 법한 뽕짝 바운스에 최신 트렌드의 느낌을 섞은 그런 곡이었다.
성훈은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트로트 쪽에서 알아주는 대선배 성우경의 대표곡 중 하나인 ‘님의 열차’라는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었다.
곡 컨셉은 트로트, 구성 요소는 밴드 세션.
드럼의 비트와 베이스의 저음, 기타와 키보드의 멜로디가 어우러져 하나의 곡으로 승화되었다.
김 PD가 어깨를 흔들며 콧노래를 불렀다.
“아직은 프로토 타입이라 편곡가랑 추가적으로 협의가 필요하긴 한데, 이 정도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야.”
노래가 끝나자 김 PD가 말을 이었다.
성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보았다.
멜로디 라인은 다소 투박했고, 밴드 세션의 하모니는 트로트보단 록에 가까운 느낌에 가까웠다.
‘나쁘지 않은 노래야.’
하지만 그럼에도 듣는 사람에게 흥 하나만큼은 제대로 전해줄 수 있는 곡이었다.
단점이 보였지만, 장점이 명확하달까?
그러나 성훈의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정민의 노래를 너무 많이 들었다.
정민은 곡이 만들어질 때마다 멤버들에게 들려줬고, 이보다 좋은 노래도 부족하다며 보류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내 기준이 너무 올라간 건가.’
성훈은 마냥 좋아하고 있는 김 PD의 표정을 보며 그렇게 결론지었다.
정민의 노래를 너무 들어서 자신의 기준이 올라갔다고.
매번 좋은 노래만 부를 수는 없었다.
좋지 않은 곡을 살리는 것도 가수의 역량이었다.
게다가.
‘이런 밴드 세션이 나랑 잘 어울리기도 하고.’
충분히 장점이 있는 곡이었다.
“고음이 많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있긴 하지만, 최근에 잘 나가는 아이돌의 메인 보컬이라면 이 노래를 소화하는 게 어렵지 않잖아? 안 그래?”
아까부터 은근히 자존심을 긁는 김 PD의 말에 성훈은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런 자세 좋아. 그럼 간단하게 이야기하도록 하지. 황 프로한테 얘기 들었던 것처럼 촬영 일정은 3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고….”
김 PD와 방송작가, 성훈이 함께하는 회의가 30분 정도 이어졌다.
방송 일정과 촬영 방식, 녹음할 때 대기 시간과 투어와 일정 겹치는 것으로 인한 여러 일정 변경 등을 공유했다.
“노래에 대한 의견은 없나?”
성훈에게 편곡한 노래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밴드 세션이긴 한데, 본래 트로트였던 게 록으로 편곡되는 과정에서 트로트의 색이 너무 빠진 거 같아서 약간 아쉽습니다.”
“좋아. 그 부분은 편곡자한테 얘기해둘게.”
“감사합니다.”
30분이 조금 넘는 회의가 끝이 나고.
“성훈 씨, 고생했어. 참, 밴드 세션 아직 퇴근 안 했을 텐데 한번 맞춰보고 가겠어? 노래를 부르는 걸 직접 들어보고 컨셉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거든.”
“그래도 괜찮습니까?”
“당연하지.”
“그럼 한번 해보겠습니다.”
“크크크, 좋아. 이대로 회의만 하고 가는 건 재미 없으니까.”
예정에는 없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
노래를 부르면, 듣기만 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 위화감이 생기기도 하니까.
스스로 어디까지 소화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고.
“그럼 가보자고.”
성훈은 김 PD와 방송작가를 따라 녹음실 부스로 향했다.
“방송사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다 여기서 나온다고 볼 수 있죠.”
녹음 부스에는 밴드 세션이 전부 들어가 있었다.
기타, 베이스, 밴드, 키보드, 드럼, 거기에 쉽게 볼 수 없는 실로폰이나 특수 장비들도 구석에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연락 받았습니다. 녹음을 하고 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나른한 표정의 기타리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에 절어버린 눈빛은 당장이라도 퇴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듯했다.
시간이 늦긴 했지.
“그러죠. 바로 시작할까요?”
“잠시 목 좀 풀겠습니다.”
목을 풀기 위해 허밍을 하며 간단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아아! 음, 아! 아아아~.”
그러는 동안 각자의 위치에 선 기타리스트와 드러머가 음을 이리저리 튕겼다.
“그럼 간단하게 테스트해 보겠습니다.”
탓, 탓, 탓, 탓.
드러머가 시작 박자를 맞췄고.
따라란!!
노래가 시작되었다.
-사람 없는 간이역 쓸쓸히 지나는 기차.
성훈의 목소리가 반주 위에서 춤을 췄다.
* * *
“이야, 저놈 노래 한번 잘 부르네.”
녹음 부스 밖에서 성훈의 노래를 듣던 김준환 PD가 턱을 쓸며 웃었다.
“목소리 진짜 좋죠?”
김준환 PD는 옆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며 성훈을 바라보는 <명곡 배틀>의 메인 방송작가 한우리를 보았다.
<명곡 배틀> 321회차에 출연하기로 했던 기존 가수가 급하게 생긴 일정 때문에 고사하는 바람에 급히 대타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기존 가수에게 전부 맞춘 노래를 버릴 수도 없었다.
예산보다는 시간의 문제였다.
곡과 무대 설정을 처음부터 다시 회의하고 작업하면, 무대의 완성도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최대한 완성된 노래에 가수를 맞추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성훈을 눈독들이고 있던 한우리 작가가 김 PD에게 올리오스의 유성훈을 추천했다.
‘이 친구 노래 잘 불러요. 고음도 시원하게 찢어지고, 평소 목소리도 살짝 중저음이라 그런지 음역대가 넓어서 준비한 노래에도 잘 맞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반신반의했다.
한우리 작가가 방송 기획은 잘 짜도 그녀가 추천한 가수들은 취향을 타는 바람에 성공률이 반타작이었다.
그마저도 시청률을 터트린 이들은 증명된 가수들이 대부분이라 걱정했는데.
“좋네.”
“그렇죠? 이번에는 확실하다니까요.”
“한 작가가 오랜만에 2루타 쳤네.”
“2루타라니요! 저 정도면 홈런이죠.”
“아직 방송 결과는 나오지도 않았어. 홈런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방금 고음 못 들었어요? 와…. 솔직히 저런 맛을 누가 내요.”
“…그렇긴 하지.”
그야말로 실력파였다.
트로트의 간드러지는 꺾임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밴드 반주에 어울리는 폭발력을 내고 있었다.
솔직히 성훈 앞에선 곡이 좋다고 포장했지만, 그와 어울릴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건 어울린다는 수준이 아니라.
‘가수가 노래를 잡아먹고 있네.’
성훈의 보컬이 노래의 매력을 더욱 살리고 있었다.
김 PD는 반주를 맡은 세션 멤버들의 표정이 바뀌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퇴근 시간이 미뤄졌다는 사실에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성훈을 맞이했던 그들이, 지금은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의 의지까지 올리는 실력이라.
“굉장하긴 하네.”
김 PD는 마이크를 잡은 채 열창하는 성훈을 보았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었다.
고작 테스트 녹음에 불과한 노래에 얼마나 힘을 쏟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진짜 록 밴드 보컬 느낌으로 세우면 반응 괜찮을 거 같은데.’
그가 가진 거친 남성미가 시청자들을 끌어당길 거라 확신했다.
“정말 좋죠? 방금 고음 좀 봐요. 와….”
한우리 작가가 탄성을 지르며 두 손을 모았다.
그녀는 벌써 팬 모드가 돼서 녹음실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자기 팬심을 채우려고 추천한 거 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덕분에 위기를 넘길 것 같거든.
“편곡자가 이거 들으면 골 깨지겠네.”
자기 노래가 가수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애써야 할 테니까.
“시청률은 잘 나오겠어.”
김 PD는 처음 회의에서 말했던 무대 컨셉을 전부 지웠다.
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무대 컨셉이 떠오르고 있었다.
처음보다 더 멋지고 괜찮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지독할 정도로 강렬한 남성미를 강화할 수 있는 그런 무대를 만들 수 있으리라.
성훈이라면 할 수 있을 거다.
* * *
“이거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요.”
성훈은 한숨을 퍽 내쉬며 운전하는 매니저 이두현에게 말했다.
“힘들어?”
“네. 생각보다 더요. 새로운 스케줄 때문에 따로 이동하는 것도, 방송국 사람들 만나서 작업하는 것도 전부 다요.”
“그런 것치고는 엄청 잘 부르던데.”
“뭐든 최선을 다해야죠.”
“후후, 그런 정신이면 충분히 잘할 거야. 컨디션 조절 잘하고.”
“네.”
문득 성훈은 우주가 예능 MC를 하면서도 빡빡한 연습 일정을 소화했다는 걸 떠올렸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한 번 하고 나서야, 우주의 고충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무대 위의 모습이 중요하다며 압박했던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멍청했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었구나.
나란 놈은.
“뭐라고 했어?”
“아닙니다. 두현이 형.”
힘내자.
다른 멤버들이 고생했던 만큼.
지금은 내가 힘든 것보단 우리 팀이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야.’
복귀 앨범이 나오기 전에 이어지는 투어, 그리고 공중파 음악 예능 출연.
말재주가 좋은 우주나, 곡을 잘 만드는 정민과는 달리 자신은 노래만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음악 예능은 그런 자신의 장점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니.
‘힘들어도 참아야지.’
한계에 도전하는 거다.
건하가 말한 세계를 노린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가 마주한 한계를 뛰어 넘어야만 해.’
생각을 마친 성훈은 눈을 감았다.
귓가에 방금 불렀던 ‘님의 열차’의 반주가 들리는 듯했다.
“흐으으음~.”
허밍을 하며 더 좋은 멜로디가 없을까 머릿속으로 노래를 되뇌었다.
이동하는 순간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