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명곡 배틀> 리허설을 위해 방송국을 찾았다.
차에서 잠깐 잤다지만, 편한 수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평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힘들다고 해도 투덜거릴 생각은 없었다.
성훈 스스로가 하겠다고 나선 일이었다.
누구보다 올리오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훈이었기에 나섰고, 그랬기에 힘들더라도 각오하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 성훈 씨 왔어? 주말부터 부산에서 투어 시작했다고 들었어. 고생이 많아. 몸은 좀 괜찮나?”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이지.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 목 관리는 내가 기가 막히게 하거든. 하하하!”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비꼬던 말투가 사라진 나긋나긋한 말투였다.
‘그날은 기분 탓이었나.’
묘하게 사람의 속을 긁어 대던 말투가 사라진 김 PD가 기분 좋은 미소를 실실 지었다.
“오늘은 밴드 세션이랑 같이 곡을 맞춰볼 거야. 그저께 새로 편곡한 곡 샘플이랑 무대 컨셉은 다 받았지?”
“네. 받았습니다.”
성훈은 투어 준비 중에도 편곡자가 보냈던 곡 샘플을 확인했었다.
성훈이 밴드 세션과 노래를 불렀던 걸 듣고 추가로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곡으로 다시 편곡했다고 들었다.
‘이번 건 느낌이 좋아.’
반주가 좋았다.
물론 밴드와 합주할 때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좋았다.
이제 이 노래를 자신이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느냐가 포인트였다.
김 PD가 편곡한 노래를 바탕으로 새로 만들었다는 무대도 좋았다.
트로트 색이 빠진 거 같아서 애매하다는 말에 진짜 전통 밴드의 느낌을 물씬 나게 하는 무대 구성으로 바뀌었다.
변경하기 전의 무대는 밴드 반주만 따로 빼며 트로트적인 요소를 강조했던 무대였다.
성훈이 락의 느낌이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던 이유였다.
무대 컨셉은 트로트인데, 노래가 완전히 밴드 음악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예 노래와 무대를 모두 트로트 향이 섞인 밴드 무대로 바꿨더라.
그게 좋았다.
성훈의 보컬과도 더 잘 맞았고.
“어땠어?”
“좋았습니다. 더 드릴 말은 없을 거 같습니다.”
성훈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상 멘트였다.
“가수가 만족했다니, 다행이네. 아, 그리고 오늘은 막내 PD랑 한우리 작가가 성훈 씨 촬영을 맡아줄 거야.”
“그렇습니까?”
“사전 녹화고, 방송을 위한 마지막 테스트용 녹화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훈은 막내 PD와 한 작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려요. <명곡 배틀> 담당 작가 한우리라고 해요. 오늘 스케줄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녹음실에서 음원 사전 녹음하고요. 연습과 합주 관련된 촬영 하고, 다다음 주에 있을 본 녹화 전 사전 인터뷰 진행할 거예요.”
“네. 제가 알아야 할 건 더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한우리 작가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그런데 다른 선배님들은 안 보이시네요.”
“아, 저희가 사전 녹화 때는 출연자들끼리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게 원칙이라서요.”
“그래서 본 녹화 때 처음 뵙는 거군요.”
“뭐, 짬 되는 분들은 다들 물어물어 미리 알아내지만요. 하하핫.”
한우리 작가는 유독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럼 잘 부탁해. 나는 다음 주 방영본 편집 때문에 가봐야 할 거 같아서. 다들 수고하고.”
“들어가십쇼! PD님!”
“성훈 씨도 파이팅이야!”
김 PD가 떠나고, 성훈은 한 작가와 막내 PD를 따라 녹음실로 향했다.
“녹음부터 진행하고 인터뷰는 그다음에 딸 거예요.”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어요. GH 투어를 시작한다는 얘기 듣고 꼭 예매하고 싶었는데, 일 때문에 도무지 시간이 안 나지 뭐예요?”
성훈은 수다를 떠는 한우리 작가를 바라봤다.
GH 투어가 인기인 이유의 70%는 몬스터즈가 차지하고 있었다.
역시 몬스터즈 팬이시겠지?
“작가님도 몬스터즈 선배님들 팬이신가요?”
무심코 말해 버리고 말았다.
성훈은 자신의 성급함을 후회했다.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 아닌가.
“네? 그래 보이나요?”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종민 선배님?”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아니죠? 저 올리오스 팔로잉하고 있어요. 이번 정규 앨범이었던 ‘All we once’ 부르는 거 보고 완전 팬 됐잖아요.”
“아, 감사합니다.”
“그래서 성훈 씨를 PD님께 추천했어요. 꼭! 좋은 무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성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녹음을 시작했다.
처음 여기서 녹음을 같이 진행했던 그 밴드 세션이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야말로 잘 부탁해요.”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짙은 피로감은 사라진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연주를 하고 싶다는 듯 안달 난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 한 분 있었다.
“누구….”
“얼굴을 뵙는 건 처음이네요. 편곡자 정만수라고 합니다. 성훈 씨 녹음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서 왔어요.”
“아, 노래 잘 들었습니다. 좋은 편곡 감사합니다.”
“하하, 성훈 씨가 노래를 너무 잘 부르셔서, 좋은 곡이 나온 거죠. 다시 편곡하느라 골이 깨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만수 편곡자가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편곡자 분이 이렇게 직접 오시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만큼 본인도 결과물이 좋았다는 뜻이거든요.”
한 작가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
“부끄럽지 않게끔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성훈이 벤드 세션과 함께 녹음실로 들어갔다.
밴드와 함께 동시 녹음을 해도 좋을 정도로 넓은 부스였다.
“그럼 우선 음원 녹음 전에 밴드 세션과 함께 테스트 녹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막내 PD가 음원 프로듀서와 함께 신호를 보냈다.
드러머가 신호를 보냈고.
-♩♪♬~~.
곡이 시작되었다.
성훈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노래를 불렀다.
록 밴드 스타일의 노래로 탈바꿈한 ‘님의 열차’가 밴드 세션과 성훈의 목소리로 완성되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성훈의 무대를 감상했다.
한차례 테스트 녹음이 끝이 나고.
“진짜 기가 막히네요.”
편곡자와 한우리 작가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 * *
음원 녹음까지 전부 끝나고, 인터뷰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마지막까지 인터뷰를 맡았던 한우리 작가가 큐카드를 접고 일어났다.
“이제 곧 본 녹화네요.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훈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혹시 성훈 씨, 그….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사인받을 수 있을까 해서 브로마이드랑 정규 앨범 갖고 왔거든요.”
“물론입니다.”
그 말에 한 작가의 얼굴이 밝아졌다.
“와, 정말 고마워요. 처음 방송 작가가 된 이후로 이렇게 작가를 시작하기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에요.”
성훈은 그녀가 가지고 온 앨범과 브로마이드에 친절하게 사인을 해줬다.
사인을 받은 팬의 미소를 보는 건 언제 느껴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런 모습을 계속 보기 위해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실망하지 않게 해야만 해.’
그게 아이돌이 보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니까.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다운 덤덤하고 담백한 감사 인사를 한 성훈이 최대한 밝게 미소지었다.
단지 무대 위에서만 좋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도 모르게 지은 미소였다.
“진짜 오늘을 기념일로 삼을게요.”
그녀는 진심으로 감동한 얼굴이었다.
성훈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전혀 몰랐다.
방송에서도 웃는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무뚝뚝한 이미지였던 성훈이 짓는 미소였기에 그 데미지가 더 컸다는 걸.
본인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 * *
투어는 성공적이었다.
첫 투어였던 부산 벡스코 투어를 시작으로 두 번째 주부터는 서울에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연달아서 무대 공연을 진행했다.
그야말로 피 말리는 일정이었다.
한 번 소화해도 빡센 무대를 사흘 연속으로 소화하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이 필요했다.
아이돌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내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단순 외부 행사를 위해 무대를 뛰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으으, 피곤해…. 팔다리 쑤셔….”
일요일, 이번 주에 있는 마지막 무대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주가 다리를 주무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하아, 그래도 너무 좋았다. 마지막에 다들 손 흔들어주실 때 나 살짝 울 뻔했어.”
우주가 다리를 주무르며, 그때의 장면을 회상했다.
황홀한 표정이었다.
이런 거 보면 우주는 확실히 무대 체질이 맞았다.
물론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몸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무대 아래 객석에서 우리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을 보다 보면 그 고됨을 잠시 잊곤 했으니까.
지금 힘든 건 사실이지만, 누구도 앓는 소리를 쉽게 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곡 배틀> 때문에 방송국 일정까지 있는 성훈이 제일 덤덤하게 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으니까.
‘가끔 보면 정말 로봇이 아닐까 싶단 말이야.’
걱정했던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훌륭하게 스케줄을 소화했다.
부모님이 군인이라던데, 덕분에 강철 체력을 가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 맞다. 성훈이 형 이번 주에 <명곡 배틀> 녹화 들어가지?”
감상을 끝낸 우주가 성훈에게 물었다.
“어.”
“혹시 다른 선배님들 뵈었어?”
“아니. 못 뵀어. 사전에 다른 출연자들끼리 만나지 못하게 하더라. 서로 처음 만났을 때 장면을 살리고 싶다고 하셨어.”
“그거 진짜 처음 만나는 거였구나. 나는 지금까지 대본인 줄 알았어.”
우주의 눈에 호기심이 깃들였다.
“녹음은 어땠어? 잘 끝났어?”
“음원 녹음까지 다 끝냈다.”
“노래는…. 알려줄 수 없는 거지?”
“응. 그게 방침이래.”
“컨셉도?”
“응.”
“으으으…. 아쉽다. 성훈이 형 노래를 라이브로 들어야 하는데….”
우주가 아쉬운 듯 주먹을 쥐며 팔을 붕붕 휘둘렀다.
“다음 주에 우리 무대가 없었으면, 구경 가서 응원해 줬을 텐데….”
“됐다. 괜히 프로듀서님이나 두현이 형 졸라서 올 생각 하지 마. 너희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까 나도 안심하고 외부 스케줄 가는 거야.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괜히 오려고 하지 마.”
성훈의 담담한 말에 멤버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형, 방금 뭐라고 했어?”
정민이 먼저 성훈에게 물었다.
“뭐가?”
“방금 뭐라고 했냐고. 이상한 말을 들은 거 같아서.”
“괜히 오려고 하지 마?”
“아니, 그 전에.”
“나도 안심하고 외부 스케줄 간다고 말한 거?”
“그것보다 뒤에.”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 말에 멤버들이 서로를 보았다.
마음이 통했는지, 다른 멤버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런 애들을 바라봤다.
뭐지?
“형들, 방금 들었지? 성훈이 형이 고맙다고 했어!”
우주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나 진짜 오랜만에 들은 거 같은 기분이야.”
정민이 가슴을 움켜쥐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고마워. 형.”
호진이 담담하게 받아쳤다.
나는 그 감동이 조금 덜했다.
내게는 종종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도 있고, 게임에서도 간혹 이렇게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가 있었으니까.
동생이었던 멤버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얼마나 애들한테 감정 표현을 안 했으면, 다들 그 한마디에 감동하고 그러겠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쉽지 않던데.”
성훈이 헛기침을 하며 내 눈을 피했다.
“형이 지금 제일 고생하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가끔은 너무 부담만 갖고 일하지 말고 우리한테 털어줘.”
“…알았다.”
“갈 수는 없겠지만, 응원하고 있을게.”
내 말에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성훈이 형이 제일 고생하고 있잖아. 우리도 열심히 하자.”
우주와 정민이 그리고 호진이까지 모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에겐 투어를 성공적으로 끝내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우리의 의지가 다시 한번 불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