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성훈은 밴드 세션과 함께 무대에 올라갔다.
조명이 꺼졌다.
어두운 무대, 그 위에 선 성훈은 숨을 골랐다.
이 모습까지 카메라가 담고 있을 거다.
‘진정하자.’
침착하게 무대를 만들자.
이제 이 무대는 내가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샷 들어가겠습니다.
김준환 PD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탓! 탓! 탓! 탓!
드럼이 시작 박자를 쳤고 그의 박자에 맞춰.
따라란!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키보드가 합주를 시작했다.
다양한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멜로디가 되었고, 반주가 되어 성훈의 귀에 박혔다.
-♩♪♬~~.
그리고 그 신호와 함께 조명이 쏟아졌다.
스포트라이트가 성훈을 비췄고, 스탠드 바에 꽂힌 마이크를 쥐고 첫 소절을 불렀다.
성우경 선배님의 ‘님의 열차.’
떠난 애인을 그리워하며, 혹시 그가 탄 열차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담은 간절한 노래.
성우경 선배님이 트로트 특유의 울림과 떨림으로 기다리는 이의 감정을 표현했다면.
성훈은 기다리는 이의 애절함보단, 그가 떠나갔다는 사실에 자책하며 과거를 추억하는 감정을 표현할 생각이었다.
-너를 잊지 못해
기타 반주에 얹어진 성훈의 감정 섞인 목소리.
-서지 않는 간이역에
-혹여나 네가 탄 기차가 오지 않을까.
한 소절 한 소절 부를 때마다 감정이 점점 올라왔다.
밴드의 반주가 강렬해졌고, 그에 맞춰 성훈이 쏟아내는 감정 역시 점점 짙어졌다.
과거 사랑했던 이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감정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노래가 점점 하이라이트를 향해 나아갔다.
성훈은 느꼈다.
리허설을 할 때보다, 음원 녹음을 했을 때보다, 연습을 위해 밴드와 호흡을 맞췄을 때보다 훨씬 더 좋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은 날 있지 않은가.
그런 날에 불렀을 때 나오는 최상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노래에 만족한 성훈의 가슴이 가열차게 뛰었다.
입가에 미소가 나올 뻔한 걸 간신히 막았다.
감정에 몰입해야만 했다.
가수뿐 아니라 보고 듣는 사람들까지.
표정 연기 또한 노래의 일부.
성훈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마지막 고음을 내질렀다.
그리고 눈을 감는 행동이 관객들에게 보다 더 진한 감정을 전달해 줬다는 걸 성훈 본인은 알아채지 못했다.
-빈자리에 네가 없다는 것을~.
성훈의 시원한 고음이 쭈욱 뻗어 나가며, 객석 끝에 있는 관객에게까지 닿았다.
3분 30초짜리 짧은 무대가 끝났다.
성훈은 다시 조명이 꺼질 때까지 처음 느꼈던 감정을 유지했고.
짝짝짝!
무대가 끝이 나며, 청중들의 박수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성훈이 고개를 숙일 즈음, 강정수 MC가 멘트를 시작했다.
“좋은 무대였습니다. 우리 성훈 씨의 무대가 좋았다면, 다들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성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볼 수가 없었다.
괜히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이 적으면 실망할 거 같아서 일부러 보지 않는 걸 선택했다.
“이제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과연 우리 성훈 씨의 점수는 몇 점일까요?”
무대 뒤에 설치된 모니터에 평가단의 점수가 떴다.
400명의 평가단들 중 몇 명이 눌렀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졌다.
‘꼴찌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성훈은 떨리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391.
“오! 391점! <님의 열차>를 부른 성훈 씨가 1등으로 치고 올라갑니다! 성훈 씨는 무대 옆에 있는 우승자의 의자에 앉아주시면 됩니다.”
성훈이 왕좌를 차지했다.
* * *
“와…. 성훈이 형, 노래 더 잘해진 거 같지 않아?”
정민이 감탄하며 무대 위에 선 성훈을 보았다.
눈을 반짝이는 정민은 악상이 떠오르는 듯 무대 위의 성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성훈이 평소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는 이유는 역시 관중의 환호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S급 스킬 ‘관중의 환호’의 영향이 컸을 거다.
<명곡 배틀>은 가수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량을 쏟아내는 자리였고, 성훈은 그걸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잘하네.”
나는 객석에 있는 한 관객을 보았다.
나이가 조금 있는 관객은 성훈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눈물을 닦아내며 성훈의 노래를 감상했다.
단순히 잘 부른다는 말로 끝날 실력이 아니었다.
감정 전달이 돋보였다.
성훈이 표현하고 싶었던, 님을 보내고 기다리는 애달한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었기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노래가 끝나고, 성훈이 새로운 1등에 올라섰을 때.
“됐어! 성훈이 형이 1등이야!”
우주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1등만이 앉을 수 있는 왕좌에 앉은 성훈이 무대 뒤편에 선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우와아! 명곡왕님이 나를 봐줬어!”
우주가 잔뜩 오버하며 손을 흔들며 방방 뛰었다.
“잘했어! 형!”
“유성훈 멋지다!”
성훈을 향해 환호하는 멤버들, 나는 그들 옆에서 성훈을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훌륭한 무대를 보여준 가수를 향한 찬사였다.
성훈의 다음으로 6번째 무대에 올라간 최수혁이 ‘무정의 데이트’를 불렀다.
발라드의 황태자다운 무대였다.
무정의 데이트 특유의 꺾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발라드의 황태자가 부르는 트로트에는 짙은 감정이 있었다.
겨울에 듣기 좋은 노래였다.
아직 겨울의 한기의 조각이 남아 있는 3월 말에도 듣기 좋은 그런 노래.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성훈 때와 비슷한 세기의 박수.
“과연 발라드의 황태자 최수혁 씨는 패기 넘치는 신예 성훈 씨를 넘을 수 있을까요? 점수는 몇 점일까요?”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힘을 꽉 주었다.
긴장감 때문에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다른 애들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점수가 공개되었다.
390.
“아! 성훈 씨를 넘기엔 1점이 부족했습니다!”
안타까워하는 탄성을 뱉은 강 MC의 말이 끝나고, 최수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됐다!”
점수가 공개되자마자 우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수혁을 넘겼다.
우승을 노린다면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였다.
“진짜 성훈이 형이 우승하는 거 아니야?”
호진이마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직 한 분 더 남았어.”
“우리 팀 메인 보컬이 명곡배틀 1등이라니. 가창력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들 아무 말도 못 하겠다.”
“애초에 가창력을 지적한 사람도 없었잖아.”
“그렇긴 하지. 헤헤헷.”
우주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 최수혁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마지막 가수가 무대에 올라왔다.
마지막 무대의 점수는 382점.
“됐다!”
<명곡 배틀> 이번 회차의 우승자가 성훈으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우승자인 성훈 씨에겐 명곡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트로피, 그리고 상금 백만 원이 수여됩니다. 시상자는 성우경 가수님의 동생분께서 해주실 겁니다.”
강 MC가 성훈을 불렀다.
성훈은 무대 위로 올라가 성우경의 동생에게 트로피를 받았다.
몸이 불편한 성우경 본인 대신 참가했다고 들었다.
트로피를 받은 성훈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동시에 꽃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제 올라가도 돼.”
김준환 PD의 허락을 받은 우리는 성훈을 향해 달려갔다.
“오늘의 우승자다!”
“성훈이 형! 우와아아!”
“여기 꽃다발 받아!”
“추, 축하해. 형!”
우리는 마치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요란을 떨며 올라갔다.
꽃다발을 성훈에게 건네며, 바닥에 깔린 꽃가루를 들어 성훈의 머리 위에 뿌렸다.
“너희들….”
“형, 오늘 저녁 두 그릇 먹어!”
우주가 신나서 소리쳤다.
닭가슴살을 두 그릇이나 먹으라니.
악마가 따로 없었다.
신인 가수 유성훈의 우승으로 <명곡 배틀>의 녹화가 끝이 났다.
* * *
성훈의 <명곡 배틀> 녹화가 끝이 났다. 우리들의 숙소에 트로피가 하나 더해졌다.
<명곡 배틀> 트로피 옆에는 트로피를 든 성훈과 그 옆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의 사진이 함께 걸렸다.
이제 <명곡 배틀>도 끝났겠다, 우리는 다시금 투어에 집중했다.
당장 내일에도 콘서트가 있었다.
<명곡 배틀>에서의 좋은 성적 때문일까, 팀 내 분위기도 평소보다 더욱 좋았다.
“다들 와줘서 고맙다. 그 영상은… 조금 감동이었어.”
성훈의 표정이 예전보다 조금 더 밝아진 거 같은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거다.
무대에 앞서 우리가 준비한 영상이 뭔가 계기가 된 게 아닌가 싶었다.
무뚝뚝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이전보다 웃음기가 살짝 감돌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앞으로 잘해보자. 그리고 우주야.”
“응?”
“저번엔 미안했다.”
성훈이 우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 어어? 성훈이 형, 갑자기 왜 그래?”
“예전에 네 노력이 부족해서 연습을 못했다고 한 말에 대해 사과하려고.”
“우주카페 때 얘기하는 거야?”
“그래.”
우주를 보는 성훈의 눈은 진지했다.
진심으로 건네는 사과에 우주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었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성격 때문일까.
성훈의 진지한 사과에 어쩔 줄을 모르는 듯했다.
“근성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내가 직접 해보니 알겠더라. 스케줄을 여러 개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 그런가? 하, 하핫!”
“앞으로 서로 이해하는 자리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형, 그, 그러지 마. 내가 당황스럽다.”
진중한 얼굴로 진심으로 사과를 건네는 게 성훈이다웠다.
우회전 따위 하지 않는 직진남.
이게 성훈이지.
성훈이다운 사과에 드물게 쩔쩔매는 우주도 볼 수 있어 진귀한 경험이었다.
“나, 나도 그때는 반성하고 있어. 그때는 집중을 못해서 연습에서도 폐를 끼친 건 사실이었으니까.”
비 온 뒤 땅 굳는 훈훈한 모습이 이어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추가 보상으로 최우주 - 유성훈 케미가 오픈됩니다.]
[최우주 - 유성훈 케미]
[유성훈과 함께하는 무대에서 최우주의 안정감이 높아집니다.]
[유성훈이 최우주의 예능 스탯의 일부를 보정 받습니다.]
[최우주가 유성훈의 노래 스탯의 일부를 보정 받습니다.]
[안호진이 스탯 보정을 받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나아진 덕분일까.
둘의 케미 효과가 새로 떴다.
최우주와 케미가 걸린 호진의 능력치도 일부 보정된다는 메시지도 함께 떴다.
“이제 투어에 집중하자. 그리고 그게 끝나면 복귀 앨범도 준비해야 할 테니까.”
그때가 되면 정민이 더욱 바빠질 거다.
작곡도 해야 하고, 앨범 준비도 하고 바쁠 테니까.
‘그 안에 마에스트로 특성이 각성했으면 좋겠는데.’
물론 이건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당장 각성하지 않더라도 시간만 충분히 가진다면, 알아서 알을 깨고 성장할 거다.
지금은 내가 말한 것처럼 투어에 집중해야지.
“이제 몬스터즈 선배들이 없는 GH 투어 콘서트도 있으니까.”
그들의 빈자리를 우리가 완벽하게 메꿔야만 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더 좋겠지.
“힘내자고.”
* * *
우리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금방 찾아왔다.
대전 종합 경기장에서 진행하는 GH 투어 대전 편.
몬스터즈가 없는 무대.
이전 무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무대였지만,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이게 현재 우리의 위치라는 거니까.
오히려 감동이었다.
몬스터즈가 없음에도 이 경기장을 채울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찾아온다는 뜻이었으니까.
“잘 해보자! 올리오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자리야!”
나는 멤버들을 향해 외쳤다.
올리오스 멤버들의 눈에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전원 출격할 준비를 마쳤다.
꺄아아악!!
밖에서 팬들의 함성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