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39화 (139/236)

<제139화>

윤 회장이 사는 본가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작은 호수가 있는 넓은 마당, 그 중심에 있는 3층짜리 건물.

관리를 매일같이 하는 건지, 깔끔하게 정리된 집과 정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윤 회장과 함께 2층에 있는 테라스에서 차를 마셨다.

“아직도 생각은 변함이 없느냐?”

“아이돌을 한다는 생각 말씀이십니까?”

“그래.”

“변함 없습니다. 재밌거든요, 무대 위에 서는 게.”

“아쉽구나. 나는 네가 누구보다 좋은 사업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 말이다.”

그 말에 웃으며 차를 마셨다.

좋은 사업가라.

될 수도 있겠지.

한 번 경험해 봤으니, 두 번 이뤄내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하지만 저번에도 말했듯 한 번 간 길을 두 번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맛있네요. 이 차.”

역시 비싼 차는 맛도 달라.

화제를 돌려버리자, 윤 회장도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자(父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맛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휴식이었다.

멀리 정원을 바라보던 윤 회장이 입을 열었다.

“네가 곧 복귀한다니, 믿어 보마. 단단하게 준비해야 할 게다. 네가 실패하면 바로 우리 기업으로 데려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쇼. 성공했을 때의 약속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래, 걱정 마라. 약속한 건 꼭 지키니까 말이야.”

그렇게 윤 회장과 헤어졌다.

아들이 언제 복귀하는지 알기 위해 불렀다라.

윤택수 회장도 은근히 아들 바보였다.

본인은 엄하고 깐깐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거 같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 속에 품은 애정이 확실히 느껴졌다.

이런 사람이 어쩌다가 윤건하랑 그렇게 싸웠던 건지.

‘원래 윤건하는 느끼지 못했겠구나.’

사람이 익숙한 나니까 알아챈 거다.

사람에 익숙하지 않은 사춘기 윤건하는 윤택수 회장의 내심을 모르고 오해가 쌓였겠지.

“가 봐라. 나중에 앨범이 나오면 다시 얘기하자. 최 실장이 데려다줄 거다.”

나는 최 실장이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올랐다.

차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두현도 운전 실력이 좋다고 느꼈지만, 최 실장의 그것은 이두현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훌륭했다.

괜히 윤 회장을 모시는 게 아니었다.

“회장님의 말씀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딱딱하게 말씀하시기는 하지만, 도련님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진심이신 분입니다.”

나는 룸미러로 나를 보는 최 실장과 눈을 마주쳤다.

“아시지 않습니까? 예전에 제가 도련님의 보호자인 척, MAE와 계약했던 거….”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랬던 적이 있다고 했다.

미성년자인 윤건하가 혼자서는 MAE의 연습생이 될 수 없었으니, 보호자가 필요했다.

미성년자가 계약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절차였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윤건하가 아이돌이 되기 위해 최 실장이 도움을 주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기억납니다.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 사실, 회장님께서 윤허하신 일입니다. 도련님께 따로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아버지께서 알고 계셨습니까?”

“예. 제가 어떻게 도련님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

“직접 말로 표현하지는 않으시지만, 늘 보고 계셨습니다.”

역시 윤 회장, 과하게 츤데레라니까.

“역시 회장님의 허락이 없었으면 못했겠죠.”

“…….”

윤택수 회장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건, 아무래도 그가 하나의 그룹을 이끌어가는 회장이기 때문일 거다.

지금도 그의 근처에는 충성스러운 신하와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간신이 가득할 테니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건, 약점을 내비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연습을 했을 거다.

“그러니 회장님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최 실장은 윤 회장 대신 사과를 건넸다.

윤 회장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며 말이다.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오히려 제가 가진 무기죠, 아버지는.”

놀랐다는 듯 룸미러를 통해 나를 보는 최 실장.

“제가 이런 말을 할 줄 모르셨나요?”

“허, 허허허. 예, 사실 그렇습니다. 도련님께선…. 회장님을 닮아 고집이 강하셨으니까요. 본인이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하지 않으셨는데.”

“필요성을 느낀 것뿐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능력들처럼, 아버지의 도움 또한 제가 가진 하나의 강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내 말에 최 실장이 웃었다.

“하하하, 그 모습도 회장님을 닮으셨군요. 정말… 판박이십니다.”

어느새 차는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회장님께선 많이 기대하고 계십니다. 제 주제넘은 참견일지 모르겠지만…. 꼭 성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최 실장도 함께 내렸다.

“저도 뒤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꼭 성공하십시오. 도련님.”

“고마워요. 그 응원이 헛되지 않게, 열심히 할게요.”

그는 내가 숙소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    *

곡이 완성되었다는 정민의 말에 황이서는 작업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일찍 완성됐네.”

정민이 이번 복귀 앨범에서 맡은 곡은 총 세 곡.

이전부터 준비했던 곡들과 이번에 새로 완성된 노래까지 총 세 곡이었다.

프로듀서 입장에선 두 곡만 해도 충분했지만, 정민 본인이 세 곡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작곡하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요. 꼭 하나 더 하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그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말리기가 어려웠다.

올리오스 애들은 누굴 닮은 건지 고집이 강했다.

‘리더인 건하를 닮은 건지….’

아니면 자신을 닮은 건지.

“잘 해주고 있으니 뭐라 말은 못 하겠는데….”

괜히 언젠가 이런 고집 때문에 크게 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뭐, 나이 많은 어른의 노파심이길 바랄 뿐이었다.

아직은 각자 허용 수치 안인 거 같기도 했고 말이다.

작업실 문을 열자, 후작업을 마친 정민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작업 다 끝났다면서?”

“아, 프로듀서님! 오셨어요?”

정민이 들뜬 목소리로 황이서를 맞이했다.

“꼭 작업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고 했잖아. 이게 그 노래야?”

“네, 맞아요. 이게 그 노래예요.”

“한번 들어보자.”

황이서는 정민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 GH 엔터에서 성장하는 전도유망한 작곡가 정민이 만든 노래가 얼마나 좋게 나왔는지 듣기 위해서.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

나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돼주고

기댈 수 있게 해줘서.

전주와 첫 소절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리드미컬한 힙합 반주에 올라탄 건하의 목소리.

“이거….”

“역시 프로듀서님은 바로 눈치채시네요.”

황이서는 놀란 얼굴로 정민을 보았다.

“건하랑 같이 작업한 거야?”

“그런 셈이죠. 건하가 부른 노래를 가지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으니까요.”

“흐음…. 확실히 둘의 호흡이 좋네.”

황이서는 노래를 가만히 감상했다.

노래가 좋았다.

프로듀서로서 여러 가지 소감을 말할까도 고민했다.

전문 용어를 써가면서 이 노래의 맛깔나는 점을 찬양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단어를 써도 지금 황이서가 느낀 감각을 전부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어쩔 땐 수많은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돋보이는 경우가 있다.

“좋네.”

황이서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짧은 감상과 간단한 동작이었음에도 그 행위가 가진 파급력은 강했다.

“무반주로 노래를 들었을 때도 좋았는데, 거기에 반주를 더하니 맛있네. 노래가 입에 짝짝 달라붙겠어.”

노래의 엔딩까지 감상한 황이서는 입술을 핥으며 이 노래를 어디에 배치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전체적인 앨범 컨셉과 맞는지, 타이틀곡으로 세워도 괜찮은지, 녹음을 한다면 구성을 어떻게 짤지 등등.

‘확실히 노래는 좋아. 정말로 좋아.’

‘New Taste’, ‘All we once’, 그리고 지금 노래까지.

전부 건하가 크고 작게 도움을 줬던 노래들이었다.

건하가 작은 영감이라도 선물했던 노래는 전부 반응이 좋았다.

특히 ‘All we once’는 음원 차트 1등까지 한 노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노래 역시 반응이 좋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과는 조금 안 맞네.”

“그렇긴 하죠. 앨범에 계획된 다른 노래들은 고려하지 않은 곡이라서요.”

“흠….”

황이서는 잠시 고민했다.

“타이틀곡은 힘들겠다. 다른 수록곡들이랑 안 어울리니까. 타이틀곡은 수록곡과 컨셉을 공유하고 앨범을 대표하는 곡이어야만 해.”

타이틀곡이 다른 노래들과 너무 따로 놀면 앨범의 컨셉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조화와 균형.

황이서가 앨범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노래는 좋아. 진짜 좋다. 수록곡 중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노래가 될 것 같아.”

“감사합니다.”

“노래가 안 좋아서 타이틀곡으로 선정 못 하는 건 아니니까, 절대로 오해하지 말고.”

“알고 있어요. 아마 이 노래가 타이틀곡보다 더 주목을 받을지도 모르죠. 하하핫.”

황이서 프로듀서가 턱을 쓸어내리며 다시 한번 노래를 틀었다.

“중독성 있네.”

“최대한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멜로디 라인을 써봤습니다.”

“고생 많이 했다.”

황이서는 정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랑스러웠다.

고민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었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여러 번 좌절했던 정민이었다.

그 고민을 이겨낸 정민은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이었다.

불길에서 고통을 인내한 강철은 보다 더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정민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고열을 이겨낸 뒤 더 강해진 강철처럼.

평소라면 타이틀곡을 따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아쉬운 소리를 했을 정민이 지금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실히 이번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가져가기엔 기존 앨범과 어울리지 않긴 하네요. 그 부분은 다음번에 생각해 봐야겠어요.”

어떻게 하면 다음 노래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걸 보면, 한 단계 더 성장한 건 분명했다.

‘보기 좋네.’

황이서는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제목은 뭐로 지었어?”

“‘For you’, 건하가 이미 제목으로 생각해둔 게 있다고 해서요.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너를 위해라…. 떠나간 사람에 대한 송별곡이네.”

“맞아요.”

“괜찮은 거 같다. 노래도, 제목도.”

황이서는 이번 앨범의 미래도 반짝거리며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듣기 좋네. 노래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정민과 함께 ‘For you’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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