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54화 (154/236)

<제154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우리를 비췄다.

‘For you’의 반주에 맞춰 터지는 조명.

리허설에서 맞췄던 호흡 그대로 우리는 몸을 움직였다.

이별을 노래하는 가사와는 달리, 격렬한 춤사위였다.

노래와 멜로디, 그리고 춤은 어느 노래보다 신이 나는 곡이었다. 때문에 슬픔을 삼키려는 가사 내용이 더욱 선명하게 전달되는 노래였다.

이런 춤을 추면서 라이브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꽤나 예전부터 체력과 폐활량을 키워왔다.

그 노력의 결실이 지금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우주의 매력이 톡톡 터지는 보컬이 이어지고, 호진이 그 뒤를 받친다.

상반된 매력을 갖는 두 사람의 보컬이 어우러진 후에 내가 들어간다.

떠나는 뒷모습이

얼마나 슬픈지를 말하지 않을래요

마이크로 전해지는 내 목소리가 인이어에서 들린다.

그리고 나를 촬영하는 지미집 카메라를 향해 한 쪽 눈을 찡긋거렸다.

몇십 번이고 연습한 동작이었다.

연습생 때는 윙크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교를 부린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팬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객석에서 구경하고 있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그 환호성은 우리를 더욱 열심히 움직이게 만들었다.

훅을 부르는 정민의 파트가 끝이 나고, 노래의 클라이막스가 다가왔다.

그 말인즉슨 우리의 메인 보컬이 활약할 시간이 왔다는 뜻이었다.

춤을 추던 성훈이 한 발 옆으로 빠져 가슴에 손을 얹으며 고음을 내질렀다.

이렇게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고음을 지르는 성훈의 호흡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짜 체력 하나만큼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저래야만 메인 보컬을 할 수 있는 건가.’

험난하구나.

메인 보컬의 세계는.

클라이막스가 끝나고 이어지는 피날레.

마지막 반주의 엔딩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앙!

무대 위에 설치된 폭죽이 터지며 꽃가루가 날렸다.

와아아아!

꺄아아악!

팬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하아, 하아.”

떨어지는 꽃가루 속에서 리허설대로 우리는 각기 다른 카메라를 응시했다.

숨이 벅차올랐다.

단순히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기분 좋은 성취감에 가슴이 뛴 탓이었다.

복귀 첫 무대에서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가슴뛰게 만들었다.

“하아, 하아.”

어깨가 들썩이고 숨이 차올랐다.

다시 한번 느꼈다.

왜 선배들이 그렇게 마지막에 카메라를 볼 때 숨을 헐떡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나는 한 손으로 반쪽짜리 하트를 만들어 내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향해 힘껏 웃어줬다.

땀을 흘려 빛나는 피부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컴백 엔딩 무대가 끝이 났다.

*    *    *

“우와! 우와아!”

과거, 지하철 광고판 앞에서 올리오스의 사진을 찍어줬던 유아린은 TV에서 나오는 올리오스의 무대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날 사진을 찍어줬던 인연 이후에 조금 더 올리오스에게 깊게 빠져든 그녀였다.

굿즈도 꽤 많이 사고, 팬미팅도 몇 번 찾아갔다.

“예전에 제가 사진 찍어줬었는데 기억 나세요? 그 지하철 광고 앞에서요!”

라는 말 한마디에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던 멤버들의 얼굴이 생생했다.

“정말요? 그때도 원스셨어요?”

우주가 놀라며 답하는 말에 윤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들! 예전에 우리 지하철에서 사진 찍어주신 분이래!”

그녀 대신 호들갑을 떨며 소개해준 우주와 그걸 들은 멤버들이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었다.

‘그때는 뭔가 많이 민망했었는데.’

그래도 가슴 한 켠이 충만해졌다.

그 사진을 찍어줬다는 것을 기억해주고 같이 공감해준다는 사실에.

그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된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는, 물론 다섯 명 모두 좋아하지만, 유독 정이 가고 눈길이 가는 멤버는 단연 성훈이었다.

생일날 올린 장문의 감사글에서 그의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사진 찍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생일에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어요.”

“제가 준비한 것도 아닌데요.”

“팬들이 선물해준 건데, 당연히 아린 씨한테도 감사하다고 해야죠.”

그 친절한 감사 인사가 유아린의 마음을 녹였다.

그때부터였다.

성훈의 굿즈가 올리오스 전체 굿즈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건.

오늘 복귀 첫 무대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본방사수를 할 각오로 TV 앞에 앉았다.

거의 대부분은 부모님이 점령하시는 TV를 몇 안 되게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겹치는 드라마가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TV를 틀었고, 올리오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엔딩 무대를 장식한다는 말에 마음을 놓았지만, 혹시 갑자기 인터뷰가 나오지 않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본방사수를 했다.

그리고 보여준 그들의 무대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

최고였다.

너튜브에 선공개된 뮤직 비디오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보여준 건하의 연기와 다른 멤버들의 케미, 노래의 구성도 좋았고, 연출도 환상적이었다.

각기 다른 멤버들의 매력이 살아나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성훈의 노래가 특히 최고였다.

그런데 TV 무대는 더했다.

춤사위는 뮤직비디오에서 봤던 것보다 더 격렬하고 역동적이었고, 그러면서도 가창력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유아린은 보았다.

고마워요.

나와 함께해줘서.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성훈의 보컬을.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고음.

동시에 그 끝에 느껴지는 간절함.

때와는 다른 느낌의 고음에 유아린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꽈악 쥐었다.

손에 땀으로 흥건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그녀의 작은 주먹이 붉다 못해 하얗게 질렸다.

“진짜 멋지다.”

마지막으로 꽃가루가 터졌다.

다시 한번 성훈의 매력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    *    *

“이번 주 뮤직에어 1등은 를 부른 해피뉴스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걸그룹 해피뉴스가 눈물을 흘리며 1등 상패를 받았다.

1년 만에 갑자기 이뤄진 역주행 1위라고 들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1등이었고,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이룬 성과였기에 더더욱 기뻐 보였다.

정말 그룹의 이름처럼 행복한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진 거다.

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바라며 우리는 뒤에서 그런 선배들을 축하했다.

짝짝짝.

“축하해요! 선배님!”

해체 직전의 그룹이 이뤄낸 인간 승리에 모두가 축하를 보냈다.

“우리는 다음 주부터 성적이 잡히겠네.”

“아마도?”

우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첫 복귀 무대를 펼쳤다.

너튜브 영상이 올라간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높은 순위를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음 주에는 저 앞에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호진이 바로 옆에 있던 나와 성훈만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되뇌었다.

해피뉴스 선배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모습을 보는 호진의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음방 1등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도, 여전히 열정이 넘쳤다.

좋은 모습이다.

끊임없이 위를 바라보는 저 눈빛.

조금 내성적이어도 자신의 목표만큼은 확실하게 잡고 나아가는 친구였다.

“할 수 있을 거야. 노래가 좋으니까. 정민아, 안 그래?”

“물론 좋지. 혼신의 힘을 다했어. 전부 내 노래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작곡한 노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

그리고 우승자의 세레머니 시간이었다.

“자, 다른 분들 전부 내려가주세요!”

들러리였던 우리는 서둘러 물러섰다.

이제는 주인공의 시간이었다.

빠져줘야지.

우리가 내려간 무대엔 해피뉴스의 피날레 공연이 이어졌다.

“선배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내려간 선배들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성공한 척도로 대우가 달라지는 곳이 연예계라고는 하지만 예의는 항상 지켜야만 한다.

성공했다고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가 올라가면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

그리고 그 질투는 언젠가 우리를 노리는 칼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몸가짐을 잘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연예계 같은 정글에선 더.

*    *    *

뮤직에어의 스케줄이 끝나고 돌아온 우리에게 황이서가 엄지를 치켜올렸다.

저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치켜든 엄지.

“축하한다.”

담담한 축하까지.

“어떻게 됐습니까?”

내 질문에 황이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앨범에 올린 여덟 곡 전부 차트인이다. 전곡 줄 세우기는 불가능했지만, 그 중에 타이틀곡인 ‘For you’와 ‘유화’가 10위권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요?”

“그래. 이제 너희도 티켓 파워를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지.”

황이서가 달려와 우리를 껴안았다.

담배 냄새와 더불어 제대로 깎지 않은 수염이 거칠었다.

“고생 많았다. 내 새끼들!”

이전 앨범 때보다 훨씬 더 좋은 반응에 황이서가 잔뜩 흥분해 외쳤다.

“이번 앨범 반응 좋다. 저번 앨범보다 훨씬 빠르게 등반할 거야. 그리고 아마 이 분위기라면 음원차트 1등도 가능할 거다!”

“정말요?”

“당연하지! 정민아 고생 많았다!”

“가, 감사합니다!”

“내는 곡마다 음원차트 1위 찍으면 너도 이제 콜라보 요청 많이 들어오겠다.”

“콜라보….”

유명스타와 콜라보.

그것도 인지도 높고 가창력 좋은 가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번 성적만으로도 앞으로 정민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길은 더욱 넓어진 것이다 다름없었다.

정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던 황이서의 눈이 내게 향했다.

눈에 담긴 깊은 안도.

그것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1등만 하면 회사로 안 돌아간다고 했지?”

아.

프로듀서도 신경 쓰고 있었구나.

나와 윤 회장이 한 내기를.

“마음 졸였는데 이제는 한결 편안해져도 되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황이서가 말을 이었다.

“이제 이 정도 성적이면 신인이라고 무시할 사람들 많이 없어질 거다. 오히려 너희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대우도 해주겠지. 그런데 말이다.”

황이서의 얼굴에 힘이 들어갔다.

“이럴 때 제일 조심해야 된다. 여기서 힘 잘못 들어갔다가 거만해지면 그때 사고 터지는 거야. 알았어?”

“네!”

“성적으로 설레는 건 오늘까지다. 최대한 진정하고 활동에만 집중하자. 다음에 알려주는 건 1등한 이후부터야. 너희 괜히 차트 검색하지 마라. 특히 우주!”

“알겠습니다.”

첫 활동이 성공적으로 끝난 우리들의 얼굴은 밝았다.

*    *    *

‘For you’의 홍보를 위한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예능, 라디오, 음악방송은 물론이고 점점 시장이 커지고 있는 너튜브에도 나갔다.

물론 우리 멤버들 전체가 나간 건 아니고.

-그러니까 형들이 막 놀라는데….

우주 혼자만 나갔다.

우주가 너튜브 활동을 하는 동안 나와 성훈 그리고 호진이 라디오를 나갔고, 그러는 와중에 정민이는 최근 핫한 작곡가 인터뷰라며 잡지사 인터뷰를 나갔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하루였다.

진짜 엄청 바빴다.

돌아오면 녹초가 될 정도로.

“으으으…. 죽을 거 같아.”

화장도 지우지 않고 대자로 뻗은 우주가 말했다.

“오늘 운동해야 하는데, 힘이 안 나…. 어떡하지?”

“움직이면 힘이 난다.”

“성훈이 형은 악마야….”

나도 죽을 것 같았다.

으으, 힘이 안 나.

우우웅!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

아버지, 윤택수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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