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63화 (163/236)

<제163화>

최 실장과 홍우선, 이렇게 두 사람과 함께 레프픽션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금방이었다.

그들의 사무실이 그리 멀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그, 그러니까 ‘All we once’는 정민 씨가 전부 혼자 만든 음악이라는 거죠? 소속사의 도움 없이?”

“맞습니다.”

“‘New Taste’도요?”

“네. 정민이가 직접 프로듀싱한 노래죠. 원래부터 작곡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첫 데뷔 EP 앨범부터 자기 자작곡을 메인으로 걸 실력이라니…. 참, 이번 앨범에선 ‘For you’를 포함해서 3곡이 정민 씨가 전부 작곡한 노래인 걸로 아는데. 맞나요?”

“그거 때문에 정민이가 고생을 엄청 많이 했었죠. 날밤을 많이 새기도 했습니다.”

“와, 그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요. 저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대표곡은커녕 믹싱과 레코딩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 저도 옛날 꿈은 가수였습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게 너무 좋았는데, 생각보다 제 노래 실력이 형편없더라고요. 그래서 작곡으로 틀었는데 그것보다는….”

홍우선은 말이 엄청 많았다.

특히 음악 쪽으로 말이다.

우주가 온갖 스몰 토크로 상대의 친밀도를 높이는 대화법을 주로 사용한다면.

홍우선은 약간 자신이 흥미 있는 이야기와 주제만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스타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피곤했다.

“재능이 있는 작곡가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참, 정민 씨는 레코딩이나 믹싱을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엔지니어가 있습니까?”

“소속사에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

“아…. 아쉽네요.”

아쉬움의 탄성을 지르며 축 늘어졌다.

한숨을 내쉬는 그는 정민과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내뿜고 있었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십쇼. 트레블리 애들과 작업하는 곡은 저희 소속사 엔지니어들과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오! 그럼 제게도 기회가 있는 겁니까?”

“정민이가 원한다면요.”

전부 정민 본인의 의사가 중요했다.

내가 애들을 위한 노래를 부탁하더라도, 정민이 싫다고 거절한다면 방법이 없었다.

“음, 그럼 정민 씨를 설득할 포토폴리오를 준비해야겠네요. 우선 제가 작업했던 곡들을….”

홍우선과 대화를 마친 나는 최 실장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잠시 교차한 그는 마치 내 의도를 알았다는 듯 작게 미소지었다.

“회장님께서 저런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고 홍우선 씨를 뽑으셨습니다. 포토폴리오도 물론 보셨지요.”

“회장님은 진중한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허허, 그렇게 보셨습니까?”

“예.”

“젊었을 때는 그랬던 걸로 압니다만, 최근에 바뀌셨죠.”

“최근이요?”

“언젠지는 도련님이 잘 아실 겁니다.”

그는 룸미러로 씨익 웃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윤 회장이 변한 것이 내 덕분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이런 분위기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레프픽션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    *    *

“반갑습니다. 레프픽션의 대표 안명학입니다.”

흰머리가 지긋하고 선한 인상에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가 주름진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가장 먼저 내게 향했다.

연락은 최 실장과 나눴으면서도 오랜 사업가의 감으로 내가 이 딜의 주동자라는 걸 알아챈 거다.

“반갑습니다. 아시다시피, 올리오스의 윤건하입니다.”

“하하하, 올리오스의 윤건하라…. 어째 황룡그룹의 관계자로 오신 건 아니라는 뜻처럼 들리네요.”

내가 황룡그룹의 총수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라는 걸 연예계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몇 번이고 뉴스에 탔으니, 아마 대한민국의 상당수는 알고 있을 것이다.

윤택수의 아들이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예, 맞습니다. 오늘은 황룡그룹의 회장, 윤택수 회장님의 아들로 온 게 아니라서요.”

“그렇습니까? 흠흠, 그렇다면 경쟁사인 레프픽션에는 어쩐 일로 오신 거죠? 윤건하 씨가 여기까지 오실 만한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안명학 대표가 내게 물었다.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투자 말입니까?”

“예.”

이런 사업가를 상대할 때는 때론 본론을 빠르게 꺼내는 것이 필요했다.

어중간하게 떠보면서 간을 보기보다는 직진.

동시에 내 속내를 전부 드러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건 좀 당황스럽네요. 다른 소속사 연예인이 저희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라….”

“그렇습니까?”

나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야 재미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볍게 웃은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레프픽션이 자금난 때문에 소속 아이돌 케어가 힘들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디서 들으신…?”

비밀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정보의 출처보단, 그 정보를 듣고 온 사람이 무엇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세요.”

“레프픽션에서 키우고 있다는 트레블리 애들을 봤습니다.”

“예, 이번에 저희가 키우고 있는 데뷔 조입니다.”

“네. 그 친구들이 자금 문제 때문에 데뷔가 몇 번이고 밀렸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그걸 해결해 드리죠.”

“애들을 데뷔시킬 자금을 투자해 주겠다는 겁니까?”

“네.”

레프픽션의 대표 안명학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레프픽션이 자금난을 겪는다는 건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소속사 연예인들의 관리와 육성에 몇 번이고 실패한 기획사.

안명학이 아이돌을 보는 눈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온 군소 기획사.

확고한 성공 신화인 몬스터즈를 가진 GH와는 다르게 대표 아이돌 하나마저 없는 작은 기획사.

오죽하면 탈 레프라는 단어가 팬들 사이에서 돌까.

어렵게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사실 알려진 것보다 레프픽션은 더 어려운 상태였다.

트레블리를 데뷔시킬 돈은 이미 없었다.

빚을 지고도 간당간당했다.

실패한다면 대표 본인이 빚더미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태였다.

그 정도로 어려웠다.

그러나 확신이 있었다.

‘트레블리는 성공할 수 있어.’

몇 번이고 아이돌을 발굴했던 그의 감이 말했다.

트레블리는 진짜라고.

그가 지금까지 키워왔던 연습생 중에서도 가장 빛이 나는 애들이라고.

그래서 억지로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그럼에도 어려웠기에 트레블리를 데뷔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윤건하가 왔다.

“…투자를 하신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얼마를 투자해주실 생각이십니까?”

“애들이 데뷔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5억.”

5억.

적지 않다.

충분했다.

이 정도 투자금이면 데뷔시키고 2집 앨범까지 낼 수 있는 자금이었다.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

“트레블리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순수익의 절반을 저희가 가져가는 겁니다.”

“절반….”

순수익의 절반. 총매출에서 제반비용을 뺀 것의 절반이지만, 그럼에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매출의 절반이 아닙니다. 순수익의 절반이죠.”

“…….”

“만약 투자를 하였음에도, 레프픽션에 악재가 겹칠 경우 트레블리 멤버들을 양도받아 데뷔시킬 생각도 있습니다.”

돌려 말했지만, ‘너희 망하면 우리가 데려간다’라는 뜻이었다. 최 실장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그럼 금액은 황룡그룹에서 지원해 주시는 겁니까?”

안명학 대표의 눈이 내가 아닌 최 실장에게 향했다.

아직 이 딜의 주체는 황룡그룹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연예인으로 성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아니요. 투자 비용은 전적으로 윤건하 님이 지원해주실 겁니다.”

“…건하 씨가 말입니까?”

그제야 그의 얼굴이 내게로 향했다.

“예, 나름대로 용돈으로 받은 돈이 있어서요.”

“용돈….”

안명학 대표가 입술을 깨물었다.

“5억이라면 당장 급한 불 끄고, 데뷔하고 활동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이 돈은 레프픽션이 아닌, 레프픽션에 소속된 트레블리에게 투자하는 돈입니다. 허튼 곳에 쓸 생각은 마세요.”

“알고 있습니다.”

“결정하세요. 투자를 받으실지 아니면 여기서 헤어질지.”

안 대표의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받지 못하면 망한다.

수입의 절반을 내준다는 건 치명적이지만, 이 5억이 없다면 데뷔조차 못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안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겐 다른 선택이 없네요.”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대표님.”

“알겠습니다. 그럼 애들 육성 관리는 그대로 저희가 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했더라도, 함께 지낸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끝까지 관리해 주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일 테고. 애초에 인성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면 트레블리도 진작에 떠났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도 가능한 레프픽션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싶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5억이라는 거액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이돌 윤건하이기도 하지만, 투자자 윤건하이기도 했다.

“트레블리의 관리에는 제가 초빙한 인사가 함께할 겁니다.”

“예?”

“뭘 놀라시고 그럽니까? 저는 트레블리가 최고의 그룹이 되길 원하고, 그러려면 최고의 전문가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 옆자리에 앉은 홍우선을 가리켰다.

“제가 모셔온 전문가입니다. 앞으로 황룡엔터에서 아이돌 관리 및 음반 제작을 총괄해주실 홍우선 엔지니어 님이십니다.”

“…….”

안명학 대표가 홍우선을 보았다.

“황룡엔터…?”

내 입에서 거론된 황룡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안명학 대표의 표정이 바뀌었다.

의도한 부분이었다.

그저 아무런 타이틀이 없는 홍우선이라면 이명학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도 한 사업체의 대표.

나름대로 고집과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홍우선에게 황룡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줬다.

황룡이 선택한 사람.

그것만으로도 홍우선에겐 거대한 브랜드가 생기는 거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그런 브랜드.

갑작스럽게 자기가 지명되자 당황한 홍우선이 말을 더듬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아, 안녕하세요! 홍우선이라고 합니다. 급하게 만들었지만, 짧게나마 트레블리의 자료를 보고 만든, 현재 장단점과 차후 발전 방향에 대한 포트폴리오입니다. 그리고 이건 레프픽션 출신의 다른 아이돌들에 대한 제 개인적인 분석 자료입니다.”

홍우선이 서류 가방에서 두꺼운 서류철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나 이명학 대표는 그 서류철을 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홍우선이라는 사람을.

“그렇다면 이분께서…?”

“예, 트레블리의 데뷔부터 이후까지 전반적인 프로듀싱을 맡아주실 겁니다.”

“그럼 저는…?”

“대표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네…?”

“대표님의 그 안목으로, 다른 유망주들을 발굴해 내셔야죠.”

“……!”

안명학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내가 괜히 트레블리의 50% 수입을 가져가겠다고 했겠는가?

아무리 많은 수익을 올려도, 50%나 수익을 떼이면 출혈은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프픽션은 트레블리를 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투자한 5억을 이용해 트레블리가 아닌 다른 유망주들을 발굴한다면 어떨까?

어느 정도 준비가 된 트레블리의 데뷔에 5억이란 거액의 투자금이 전부 쓰이진 않을 것이다.

그럼 그 5억으로 다른 아이돌을 발굴해 키워, 트레블리의 수익에서 떼이는 것 이상으로 벌면 그만이다.

자칫 트레블리를 빼앗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안명학 대표에게는 크나큰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아, 그리고 레프픽션의 현재 직원과 프로듀서가 트레블리의 육성 계획에 간섭하는 걸 막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곳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애들이 혼란스러워하니까요.”

“그건 제가 일러두죠.”

안명학 대표는 제안을 받았다.

그만큼 황룡그룹이라는 타이틀이 거대한 거다.

내가 굳이 윤 회장을 찾아가 부탁한 이유였다.

올리오스의 윤건하라면 하지 못했을 거래를, 황룡그룹의 외동아들 윤건하라면 해냈을 테니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    *    *

“저는 애들 먼저 보겠습니다. 어떤 애들인지 봐야 어울리는 노래를 떠올릴 수 있거든요.”

협상이 끝나고, 홍우선은 레드픽션 사무실에서 트레블리를 직접 보겠다며 남았다.

나는 올리오스 일정 때문에 최 실장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내내 최 실장은 내게 묻지 않았다.

5억이라는 큰돈이 어디에서 났는지를.

그는 알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소속사로 향했다는 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 투자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될 겁니다.”

그럼에도 나를 걱정하는 말 한마디만 남길 뿐이었다.

아마 윤 회장의 옆에서 이런 식으로 일해왔겠지.

눈이 있으나 보이지 않고, 귀가 있으나 들리지 않는 그런 삶 말이다.

그리고 그랬기에 지금까지 윤 회장의 옆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거겠지.

“역시 도련님도 회장님의 아드님이시네요.”

“예?”

“방금 협상 때 안 대표 앞에서 말씀하시던 모습, 젊었을 때 회장님과 똑같았습니다.”

“…그렇, 습니까?”

“예. 회장님이 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겁니다. 동시에 많이 안타까워하셨죠. 유능한 인재를 잃었다면서 말입니다.”

“그런가요?”

“예.”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은 성공하실 겁니다.”

“트레블리요? 당연하죠. 제가 직접 보고 투자한 애들인데요.”

“아니요. 올리오스 말입니다.”

“이미 성공하고 있는데요?”

“더 높은 곳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

“세계 무대에서 성공하는 거 가능하실 겁니다. 오늘 보았습니다. 도련님 앞에 펼쳐진 길을 말이죠.”

그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최 실장이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하는 것 말이다.

“고, 맙습니다.”

“응원합니다. 도련님.”

나는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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