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67화 (167/236)

<제167화>

“안녕하십니까! <쇼쿠도 타이무>의 메인 MC, 야마모토입니다!”

“타케루입니다!”

이제 50줄을 넘긴 일본의 국민 MC 야마모토와, 말재주가 좋은 30대 미남 가수인 보조 MC 타케루가 오프닝을 열었다.

우리는 카메라 뒤에 서서 <쇼쿠도 타이무>의 오프닝을 지켜봤다.

한국의 예능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스태프들의 분위기는 조금 더 엄숙한 반면 두 일본 MC는 어느 때보다도 하이 톤이었다.

이 상반된 분위기에 괴리감을 느끼며 두 MC의 티키타카를 지켜보았다.

“요즘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에? 타케루 상, 피곤한 겁니까? 어제 또 뭘 했길래!”

“요즘 한국 가수들 노래 인기 많아서 그것 좀 보다가 늦게 잤어요.”

“에에? 한국 노래? 갑자기 그건 왜?”

“요즘 인기잖아. 방송은 물론이고 거리를 다녀봐도 한국 노래가 많이 들린다고요.”

마치 연기를 하듯 대화를 나누는 두 MC였다.

조금은 유치한 느낌마저 드는 두 사람의 대화는 곧 우리를 소개하는 멘트로 이어졌다.

“최근에 잘나가는 아이돌 아는데 들어 봐.”

야마모토의 말에 우리의 노래인 ‘For you’가 현장을 가득 메웠다.

“어? 이거 한국 아이돌 올리오스 노래 아니야?”

“맞아! 오늘의 특별 게스트, 특별히 모셨습니다! 떠오르는 한국의 아이돌 올리오스입니다!”

다소 작위적으로도 느껴지는 오프닝이 끝나고 우리가 나갈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두 사람의 환호를 받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이야, 방금 그건 한국 아이돌이란 느낌이네요.”

“한국 아이돌이 이런 느낌의 인사 많이 하죠. 손을 딱 펼치고.”

“야마모토 상이 하는 건 싸우자는 거잖아요.”

손을 마치 멱살 잡듯이 쥔 야마모토를 향해 타케루가 딴지를 걸었다.

한 명이 엉뚱한 말을 하고, 다른 한 명이 태클을 거는 일본식 만담인 츳코미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 그럼 올리오스가 제대로 보여 주시겠습니까?”

야마모토가 멋쩍은 연기를 하며 우리에게 물었다.

확실히 한국 예능과는 느낌이 달랐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행동과 반응으로 웃음을 만드는 걸 추구하는 한국 예능과는 달리, 일본 예능은 작위적인 느낌이 나도 웃기면 그만인 느낌이었다.

50대인 나이에 맞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최대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는 야마모토의 말에 우리는 올리오스의 시그니처 인사를 가르쳐줬다.

“고개를 숙이면서 우렁차게 인사하고, 파이팅을 가득 담아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외치면 됩니다.”

“와, 건하 군. 일본말 엄청 능숙하네요.”

“외국어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요.”

“에에? 나는 다른 나라 언어 보면 머리가 아프던데.”

조금은 적응이 되지 않는 타국의 예능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오프닝을 마쳤다.

“오늘 우리가 찾아온 식당은 텐동 맛집입니다. 도쿄에서 200년 정도 명맥을 이어온 맛집인데요. 한국에서도 텐동을 많이 먹는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요새는 프랜차이즈도 생겨서, 많이들 먹습니다. 오늘 본토 텐동을 먹어 보겠네요.”

오래된 노포집 특유의 나무 향이 감도는 식당이었다.

특히 우주의 표정이 가장 밝았다.

“여기는 아무리 검색해도 본 적이 없는 곳인데….”

진짜 본토인의 추천 맛집이라는 소리에 벌써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텐동을 종류별로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은 우리는 주방장이 요리하는 걸 잠시 지켜보면서 근황 토크를 했다.

우리가 왜 일본에 왔는지, 뭘 할 건지, 그리고 우리가 누군지를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멤버들이 각자 좋아하는 메뉴도 말했다.

“일본 투어 콘서트를 오사카에서 합니다! 나중에 잘 돼서 도쿄 돔에서도 콘서트를 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콘서트 홍보도 했다.

사실 콘서트 홍보보다 우리를 알리는 의미가 더 큰 촬영이었기에, 홍보에 무게를 많이 두진 않았다.

게다가 이 방송이 나갈 때쯤엔 콘서트도 끝나 있을 테니까.

“건하 군이 일본말을 잘하니까 대화하기 편하네요.”

“통역사가 필요가 없겠어요. 하하핫!”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인서트를 따로 따는 것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우리는 주문했던 텐동을 맛볼 수 있었다.

뒤에는 일반적인 한국의 먹방 예능과 비슷했다.

두 MC와 함께 음식을 먹고, 그에 대한 리액션을 함께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첫 튀김을 한입 물었을 때, 우주의 반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와! 진짜 맛있어!”

방송인 걸 까먹고 진심 리액션이 나오는 바람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하하! 우주 군, 먹는 걸 정말 좋아하나 봅니다.”

“어우, 네. 엄청 좋아해요. 그런데 이건 진짜 튀김옷이 바삭바삭하면서 내용물은 촉촉한 게, 처음 먹어보는 맛이에요. 한국에선 이런 튀김을 겉바속촉이라고 하거든요.”

“거트바소크초크?”

“겉바속촉이에요.”

“구트바속초크? 이거 어렵네요.”

일본인에겐 다소 어려운 발음을 몇 번 교정해 주기까지 했다.

나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텐동 이후에 나온 디저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마지막으로 <쇼쿠도 타이무>의 촬영이 끝이 났다.

“고생 많았습니다. 올리오스 멤버들이 아주 맛있게 먹어준 덕분에 방송에 쓸 수 있는 장면이 많을 거 같아요. 하하하.”

우주가 맛있게 먹는 장면이라든가, 디저트를 쟁탈하기 위해서 우리끼리 간단한 게임을 하는 장면이라든가, 벌칙으로 먹지 못한 성훈이 어떻게든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테이블 옆에서 노래를 부른다든가.

나름 알짜배기 포인트가 많았다.

“올리오스 팀, 일본 방송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잘하는데요? 조만간 우리 채널에 고정 패널로 초대하는 거 아닌가 몰라요. 하하.”

PD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나중에 한국 놀러 가면 한국 맛집 소개해 주셔야 합니다?”

그새 친해진 야마모토와 타케루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특히 우주를 보는 눈에 꿀이 떨어졌다.

촬영 내내 분위기를 주도했던 우주였기에 그런 걸 거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주는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언제든 오세요! 제가 맛있는 집들 전부 소개해 드릴게요!”

“이거 우주 군이랑 한국 특집으로 한번 가도 되겠는데요?”

PD와 야마모토, 그리고 타케루까지. 이 3명이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우주에게 속삭였다.

“우주 너 이제 일본어 공부 해야겠다.”

“외국어 공부는 자신 없는데….”

일본 첫 스케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    *    *

일본에 온 우리는 일주일간 여러 방송국과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현지 인터뷰를 마쳤다.

잡지, 신문, TV 방송국, 심지어 라디오까지.

방송국 예능 녹화 때문에 조금 일찍 일본으로 입국한 덕분에 스케줄이 바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일본 활동 중간엔 연습하는 시간도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온천을 즐기고 노곤해진 몸으로 낮잠도 잘 수 있을 정도였으니.

오히려 이렇게 해외에 나오는 게 더 나은 거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까지 올리오스의 윤건하 씨였습니다.”

멤버 중에서 일본어로 프리토킹이 가능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기에, 어쩔 수 없이 라디오는 나 혼자서 출연했다.

일본의 개그우먼인 유키 씨와의 라디오 녹음을 마친 나는 PD와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혼자서 라디오 녹화를 마치고 이두현과 함께 돌아가는 길.

“건하 씨, 잠깐 인터뷰 괜찮을까요?”

오랜만에 한국어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뉴연예의 정종찬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인터뷰 괜찮을까요? 간단한 인터뷰라도 부탁드립니다. 올리오스 인터뷰하려고 두 시간 전부터 기다렸거든요.”

이거 난감하네.

타지에서 만난 본국 사람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이건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인터뷰였다.

인터뷰는 공적인 자리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면 대화 내용이 기삿거리가 되고, 그 내용이 전부 공유된다.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진행할 수 있는 가벼운 자리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사전에 허가되지 않은 인터뷰는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정종찬 기자를 이두현이 막아 세웠다.

“아이, 한 번만 해주세요. 그래도 같은 한국 기자인데. 아까 보니까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다 하고 계시잖아요.”

“죄송합니다. 공식적인 인터뷰는 사전에 협의한 것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두현이 죄송하다며 그를 말렸다.

“한 번만 해주십쇼! 오랫동안 기다렸다니까요?”

“죄송합니다.”

이두현의 대답은 똑같았다.

“건하 씨, 매니저 좀 말려주세요. 인터뷰 어려운 거 아니잖습니까?”

나는 정종찬 기자를 가만히 보았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인터뷰를 할 생각은 없었다.

기자와의 인터뷰는 나 혼자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과 엮여 있는 문제다.

나와 함께한 멤버들은 물론이고 올리오스를 도와주는 GH 엔터의 여러 스태프, 황이서 프로듀서와 최강훈 대표, 그리고 지금 함께 있는 이두현 매니저까지.

기자의 ‘부탁’만으로 받아주기엔 짧다고 해도 인터뷰는 너무나 무거운 자리였다.

“죄송합니다. 사적인 인터뷰는 지양하고 있어서요.”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나는 이두현과 함께 정찬종 기자를 지나쳤다.

“아이 씨, 그냥 해주면 덧나나. 이제 잘나간다고 뻗대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며 그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하지만 굳이 상대하진 않았다.

다 들리라고 하는 저 말 역시 기삿거리를 만들기 위함임을 알고 있으니까.

빌어먹을 기자놈들.

저놈들의 심성은 도무지 변하질 않았다.

“잘 참았어.”

현지 프로덕션에서 준비해준 차에 올라탄 이두현이 내게 말했다.

“형도 고생 많았어요.”

“하아, 여기까지 따라와서 저러냐.”

“유명한 기자인가요?”

“저 사람이 유명한 건 아닌데. 그냥 해외에 투어 나간 연예인들을 귀찮게 하는 기자들이 좀 있어. 그 있잖아, 타지에서 고향 사람 만나면 조금 너그러워지는 마음을 노리는 거지.”

“영악하네요.”

“그렇지. 그러면서 나중에 단독 뉴스 내는 경우도 있고.”

“GH 엔터도 당한 적이 있나요?”

“글쎄? 그런데 다른 기획사 연예인들이 여럿 당했지. 특히 어리고 감수성 많은 애들 말이야.”

“조심해야겠네요.”

“최대한 접근 못 하게 내가 잘 붙어야지. 방금 전에도 내가 아예 접근부터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는 동안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사람의 심리가 가진 허점을 노린다는 영악함도 영악함이지만, 끝내 자기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니 도발하는 행동까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진짜 내가 연예인만 아니었다면 제대로 손봐줬을 텐데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사흘 뒤면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지.

내일이면 오사카로 이동할 거고, 남은 이틀간은 미리 대여해둔 연습실에서 연습만 할 생각이었다.

이제 스케줄도 다 끝냈으니, 연습에만 몰입해야지.

차라리 그게 마음이 더 편하다.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다.”

*    *    *

공연을 하루 앞둔 밤.

멤버들과 함께 온천을 만끽하고 후끈후끈해진 몸으로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이 열렸다.

“자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모여 봐.”

숙소를 찾아온 황이서가 박수를 치며 우리 모두를 모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