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69화 (169/236)

<제169화>

콘서트장에 흩뿌려지는 꽃가루.

마지막 앵콜곡까지 끝마친 우리는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꽃가루와 함께, 저 관객석에서 응원봉을 쥐고 흔드는 일본 팬들을 보았다.

5천 석.

다른 탑급 아이돌들과 비교하면 적은 객석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였다.

해외 첫 공연이자, 홍보를 할 시간도 충분치 않았던 콘서트가 만석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는 걸 느꼈다.

애초에 5천 석이 다 차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손을 흔들며 팬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뭔가 더 보여주고 싶어도,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본 콘서트에 맞춰 준비한 일본의 여러 유행곡.

우리의 앨범 수록곡.

MC 타임을 위해 짜온 짧은 만담.

거기에 콘서트에 온 팬들과 소통하는 짧은 이벤트 시간까지.

무대 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것뿐.

그런데 왜 이렇게 발이 안 나가냐.

그래서 괜히 무대 위에서 손을 조금 더 흔들었다.

일본말로 감사하다고도 인사하고, 괜히 무대 위를 한 바퀴 더 돌았다.

“감사해요! 다음에 또 봐요! 사랑해요, 오사카!”

우리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흔들어주는 응원봉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기분 좋은 인사였다.

일본에서 열린 콘서트임에도 한국에서 하는 것만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

특히 ‘All we once’의 후렴구를 모두 따라 불러줬을 땐, 나도 모르게 멍하니 무대 아래에 있는 팬들을 보며 놀랐다.

이렇게 후렴구까지 따라 부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자국의 언어도 아닌 외국어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한 우리는 인사를 끝으로 콘서트장을 나섰다.

우주는 팬들의 떼창에 감명을 받았는지.

“형들, 그때 기억나? 다들 우리 노래 막 따라 불러주셨던 거 말이야! 나 그때 소름이 엄청 돋았어! 일본 팬들이 저렇게 다 따라 해주실 거라고는….”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차 안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본인이 떨지 않고 멘트를 잘 이어갔다는 건 떠오르지도 않는지, 후렴구 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주의 말을 막지 않았다.

“나도 눈물이 날 뻔했어. 힘들었던 옛날 생각이 막 났거든.”

“감동 100배야.”

정민이도 호진이도 감탄 어린 목소리로 거들었다.

나나 성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무대 위에서 느꼈던 감동을 공유했다.

창밖에 뜬 달과 거리를 가득 채운 가로등 불빛이 아름다웠다.

한국과 다르지만 묘하게 익숙한 느낌의 일본 거리를 바라보며 우리는 잠시 감상에 잠겼다.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일본 일정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오늘이 아닐까.

[조건을 완료했습니다.]

[무대 등급 SS급을 달성했습니다.]

[무대 등급: SS]

[보상 : 10 오픈 마일리지]

[등급이 높습니다. 추가 보상을 받았습니다.]

[추가 보상: 10 오픈 마일리지]

[일본 열도에 올리오스에 대한 호감도와 유명세가 올라갑니다.]

*    *    *

“내일까지 쉬고 모레 새벽에 바로 태국으로 출국할 거야. 여기 온천이 좋다고 하더라. 고생 많았다. 기분 좋게 쉬고, 내일 보자.”

기분 좋은 얼굴로 숙소까지 찾아온 황이서가 우리를 일일이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만석을 채운 것도 채운 거지만,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콘서트의 반응이 좋은 덕이리라.

“프로듀서님, 빨리 가요! 이러다가 늦겠어요!”

스타일리스트인 김예리가 황이서를 재촉했다.

“알겠어. 금방 나갈게. 아무튼, 푹 쉬어라!”

그는 곧 김예리와 함께 바삐 숙소를 떠났다.

“프로듀서님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이번에 반응이 좋아서 현지 프로덕션 쪽이랑 회식이 잡혔다고 하더라고. 아마 거기서 다음 콘서트 얘기까지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저렇게 웃으셨던 거구나. 그나저나 바쁘시네요. 피곤하실 텐데.”

“체력이 좋은 분이지. 그만큼 간도 튼튼하고.”

바삐 뛰어가는 두 사람을 보던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껴 이두현에게 물었다.

“근데 예리 누나는 왜 황이서 프로듀서님이랑 같이 가는 거예요?”

“엉? 몰랐어?”

“……?”

뭐지?

내가 모르는 큰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다른 멤버들을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나만 몰라?

무슨 일인데?

“저 두 사람 사귀잖아.”

“네?”

이건 무슨 소리야?

“언제요? 아니, 언제부터? 그런 낌새는 전혀 못 느꼈는데.”

“몰랐구나. 하긴, 건하가 연습을 많이 하니까.”

“아니, 예리 누나가 프로듀서님을 좋아하는 티를 내는 건 몇 번 보긴 했는데 프로듀서님도 좋아하셨대요?”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르는데, 예리 누나가 프로듀서님한테 고백했대.”

“언제요?”

이두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입을 열었다.

“너희 2집 앨범 준비하고 있을 때.”

“얼마 안 됐네요?”

“그러니까 저렇게 꽁냥꽁냥거리지.”

“바로 받아주셨나 보네요.”

“아니? 그때는 거절하셨대.”

“그런데 왜…?”

“나도 들은 얘기라 정확하지는 않은데, 누굴 사귈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거절했다고 하셨어. 너희 앨범이 차트 1위 찍은 뒤에 프로듀서님이 다시 고백하셨다고 하더라.”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고 나서 고백이라. 뭔가 로맨틱하네요. 참, 그런데 이렇게 얘기해줘도 돼요?”

솔직히 다른 사람의 연애사였다.

타인에게 전해 듣는 건 조금 그런데….

“아, 그거 이미 예리 누나랑 프로듀서님이 술자리에서 몇 번이고 말해서 소속사 대부분은 다 알고 있더라. 아마 모르는 사람 몇 명 없을걸?”

이 놀라운 소식을 이제 알았다는 게 뭔가 좀 억울한데.

“그래서 우리 앨범 차트 1등 한 날 프로듀서님이 그렇게 좋아했던 건가.”

조금은 의외였다.

“참, 형은 연애 안 해요?”

“연애?”

“네.”

“안 한다. 너희 서포트 하려면 못해. 너희 스케줄에 거의 매일 붙잡혀 있는데 어딜 가냐.”

자조적인 미소를 짓던 이두현이 한숨을 퍽 내쉬었다.

“그러니까 성공하자.”

“물론이죠.”

“오늘은 푹 쉬어. 내일 자유시간 즐기려면 지금 쉬어야지.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주고.”

“네.”

“알겠습니다!”

이두현도 떠나고, 방에는 우리만 남았다.

오늘의 숙소는 일본 전통 여관인 료칸 형태의 방.

숙소라는 느낌보다는 일본 가정집의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5명이 머물기엔 충분한 숙소였다.

“애들아, 우리 온천에 몸 담그러 가자!”

정민이 우렁차게 외쳤다.

일본 온천.

여름이지만 몸 지지는 데 이만한 게 없긴 하지.

“내일이면 온천에서 몸 지질 시간도 없긴 하겠다.”

서둘러 유카타로 갈아입은 우리는 세면도구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실내 탕이라고 들었어. 여름이라 노천보단 실내 탕이 좋다고 하더라고.”

“나는 밖이든 안이든 상관없어.”

노천탕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더운 여름이라 노천탕보단 실내 온천이 더 나았다.

아니, 몸만 지질 수 있으면 어디든 좋았다.

공연을 마치고 느껴지는 피로감을 한 번에 쫓아내고 싶었다.

온천에 도착하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 온천탕에선 편백나무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으어어.”

온천 최고.

*    *    *

온천에서 몸을 지지고 노곤노곤한 밤을 보낸 우리는 하루 동안 주어진 휴가를 만끽했다.

아직 일본에서는 우리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은 여유로운 휴가를 맞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과는 별개로, 이런 자유로움은 해방감을 느끼게 해줬다.

관광객들은 무조건 가야 한다는 오사카의 유명 관광지인 우메다 공중정원과 오사카성, 그리고 덴노지 동물원에도 들렸다.

정민이와 우주는 토끼 머리띠를, 호진이는 기린 뿔이 달린 머리띠를, 나와 성훈은 팬더 곰 모양의 머리띠를 찼다.

내 의지대로 찬 게 아니다.

“형들, 이건 무조건 해야 돼!”

관광객 모드로 들어간 우주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막내가 휴가 느낌 내겠다고 하자는 일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이건 내가 살게!”

…라며 지갑을 여는 우주의 행동도 막지는 않았다.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거든.

우리는 한국과 묘하게 비슷한 풍경을 가진 일본 도시를 거닐었다.

동물원에서 나온 우리는 도톤보리에도 들렸다.

도시를 따라 이어지는 하천에서 배를 동동 타며 시내의 분위기도 즐겼다.

“우와! 저거 봐!”

“진짜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다!”

멤버들은 도톤보리에 있는 유명한 사진을 가리키며 카메라를 들었다.

완전 관광객 모드로 돌아간 우리는 파티용 선글라스까지 하나씩 사서 썼다.

멀리서 봐도 관광객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 올리오스! 호진 상 맞죠?”

우리를 알아보는 일본 팬이 있었다.

“어? 아, 네…. 안녕하세요.”

“꺄아악! 진짜야. 진짜 호진 상이네요. 어머, 여기에 올리오스 멤버들이 다…. 어제 콘서트 봤어요! 진짜 멋있었어요!”

“콘서트 오셨었나요?”

“네! 물론이죠! 여기에서 만나다니. 아직 한국으로 안 가셨나요?”

“내일 새벽에 출발합니다.”

“제가 운이 진짜 좋았네요. 혹시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주섬주섬 핸드백에서 작은 종이와 펜을 꺼낸 팬이 우리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물론이죠!”

우리는 기꺼이 사인을 해줬다.

“꺄악, 감사해요!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종종 우리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이 나타났다.

“감사합니다!”

“올리오스 사랑해요!”

“꺄악! 너무 좋아!”

첫날 도쿄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과는 정말 다른 반응이었다.

솔직히 우리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어제 있었던 콘서트의 영향이었을까?

“앞으로 좋은 노래 부탁드릴게요!”

덕분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응원을 받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우리의 팬이라서가 아니라.

“연예인인가?”

“사인받고 있는데? 진짜 연예인 아니야?”

“한국 가수인 거 같은데? 아까 한국말 하더라.”

우리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의 부탁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은 호기심이 대부분이었다.

“애들아,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야겠다.”

사람들이 많은 도심이었다.

이보다 시선이 모이면 곤란했다.

우주도 성훈도, 정민, 호진도 전부 알았다는 듯 우리는 한 몸처럼 도톤보리를 빠져나갔다.

조금 아쉬웠다.

여기 라멘 집이 그렇게 맛있는데.

로비 막스와 콜라보로 얻었던 유명세, 그리고 이번 콘서트에서 새로 얻은 일본인의 호감도와 유명세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게 된 것 같았다.

‘기분은 좋네.’

라멘을 먹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우리를 알아봐줬다는 기쁨이 조금 더 컸다.

*    *    *

첫 해외 콘서트였던 일본 일정이 전부 끝이 났다.

우리는 곧바로 태국으로 타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태국에서 있을 두 번째 콘서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일본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꺄아아악!

심지어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정도였다.

이렇게 인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우리에게 관심이 그리 많지 않았던 일본 때와는 다르게, 알아보는 눈이 너무 많아 자유로운 일정은 사실상 없었다.

대부분 소속사와 현지 프로덕션의 관계자들과 함께 다녔다.

태국어와 중국어는 아쉽게 나 역시 완벽하게 마스터하지 않아서 전부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출국 날까지 우리를 반기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떠났다.

중국은 태국보다는 덜했지만, 우리를 향한 열기가 약하지는 않았다.

중국이 해외 콘서트 중에선 가장 많은 객석을 채운 무대였다.

사람이 정말 많더라.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중국도 태국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자유 일정은 받지 못했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네.”

3주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을 떠나 있으니, 이제 슬슬 한국의 김치가 그리워졌다.

한국말도 자꾸 생각났고.

숙소에서 대자로 뻗은 채로 천장을 보고 있으니, 호진이 입을 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우리 1주년 콘서트 하겠지?”

“다음 달에 바로 콘서트 들어간다고 들었어.”

“빡세다.”

“그러게….”

잠시 침묵.

호진과 대화를 하면 종종 이런 침묵이 이어지곤 했다.

어색하다기보단, 이 침묵 속의 고요함이 좋았다.

뭐랄까.

생각이 깊어진다고 해야 할까?

“1주년 콘서트 때, 우리 동생 오기로 했어.”

“동생? 현진이?”

“응.”

“잘 완치된 거야?”

나는 옆에 누운 호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호진이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건강해. 자기 혼자서 운동도 할 정도라니까?”

그는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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