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음.”
나는 거울을 봤다.
스탯을 올렸다고 바로 반영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괜히 거울을 보고 싶은 게 사람 심리였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어쩌다가 화장실 거울을 봤는데 문득 내가 평소보다 더 잘생기고, 예뻐보인다는 생각 말이다.
“턱선이 조금 더 살아난 거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보던 나는 이런저런 표정을 지었다.
괜히 셀카를 찍을 때처럼 각도를 살짝 틀어보기도 하고, 일부러 턱선과 목선이 드러나게끔 고개를 들어보기도 했다.
정면샷을 찍듯 살짝 미간을 구부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썩 나쁘지 않았다.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었다.
“팩이라도 할까.”
한 차례 얼굴을 씻은 나는 뽀송뽀송해진 피부에 스킨과 로션을 바르며 중얼거렸다.
“형, 뭐해?”
너무 오랫동안 감상했던 탓일까.
우주가 화장실로 들어와 물었다.
그의 얼굴엔 새하얀 팩이 붙어 있었다.
오이 팩이라고 했던가?
수분 보충에는 이게 최고라며 멤버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우주였다.
“별거 아니야.”
“형도 팩 하고 싶어? 드디어 팩의 매력을 알았구나?”
“…….”
“형도 이제 관리가 필요해. 연예인이잖아. 물론 관리 없어도 피부가 미치긴 했지만…. 그래도 관리가 있어야 더 좋아지지. 자자, 일로 와. 내가 팩의 멋짐을 알려줄게.”
머리띠로 앞머리를 위로 올린 채 하얀 팩을 얼굴에 붙인 우주가 내 팔을 붙잡았다.
“어떤 걸로 할래? 사실 초심자에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은 하얀 팩을 무난하게 추천하긴 하는데. 숯가루 들어간 팩도 괜찮아.”
“자, 잠깐만 우주야.”
“아무래도 민감성 피부일지 모르니 알로에 팩으로 해볼까? 이게 거의 무자극에 가까워서 처음 쓰기엔 좋거든. 형이 지성 피부는 아니니까 살짝 수분감만 줄 수 있으면 좋을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우주에게 붙잡힌 채 거실에 누워서 알로에 팩을 얼굴에 붙이고 있었다.
“내가 머리띠도 빌려줄게.”
우주가 자기 머리띠로 내 앞머리를 올렸다.
한동안 염색하지 않아 뿌리가 검게 물든 금발이 올라가며 반듯한 이마가 드러났다.
“자, 손님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피부요? 완전 깨끗하시네요.”
진짜 얘는 아이돌 안 했어도 영업직으로 먹고살았을 거다.
확신한다.
“형, 어때?”
“괜찮네.”
우주가 추천한 알로에 팩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팩을 선호하지 않았던 건, 계속 한 자리에 누워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데 이번에 생일 파티로 형네 집에 갔었을 때 진짜 신기한 경험 많이 했어. 그렇게 비싼 차를 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니까?”
옆에서 함께 팩을 하는 우주가 쉬지 않고 얘기해준 덕분에 지루할 새도 없었다.
“성훈이 형이 안 보이네. 어디 갔어?”
“아침부터 헬스장에 갔다고 하던데.”
“진짜 열심이네.”
성훈은 진짜 체력 하나만큼은 괴물이었다.
정민은 영감을 얻겠다고 산책하러 나갔고, 호진이는 늦잠을 자고 있었다.
거실에 누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숙소는 조용했다.
“조용하네. 오늘은.”
“그러게.”
내 말에 우주가 씨익 웃었다.
“아, 팩할 때 웃으면 안 되는데.”
웃는 바람에 주름이 생긴 팩을 다시 펼친 우주가 다시 천장을 보며 누웠다.
“건하 형.”
“응?”
“우리 말이야. 다음 앨범도 성공하면 정산 엄청 받겠지?”
“아마 그러겠지.”
손익 분기점을 넘긴 이후, 우리는 소속사에서 매달 정산을 받고 있었다.
이제는 돈 없이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과거와는 안녕이었다.
호진이는 내게 빌려 간 돈을 갚기 시작했고, 우주는 부모님께 자신이 번 돈을 들고 찾아가 인정을 받았다.
성훈도 정민이도 각자 가족에게 드디어 어깨를 펼친 채로 자랑할 수 있는 거리가 생겼다.
드디어 하고 싶었고, 계속 꿈꿨던 일로 돈을 벌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럼 형들도 각자 집으로 가려나?”
“숙소에서 나가고?”
“응.”
“글쎄, 잘 모르겠다. 애들은 어쩌려는지.”
“건하 형은 어떻게 할 거야?”
“나?”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보는 그는 빨리 대답해 달라는 듯 눈빛으로 재촉했다.
“형네 집 엄청 넓었잖아. 거기서 다시 지내고 싶지 않아?”
“아니.”
“진짜?”
“만약 숙소를 나가서 지내야 한다고 해도 본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그래?”
“넓지만 답답하거든. 그래서 나왔던 거고.”
“아.”
“이왕이면 자취하는 게 최고지.”
혼자 사는 게 제일이다.
여러 가지로 자유롭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 방을 구해서 나갈 생각이야?”
“흠….”
우주가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가 있겠지.
아마 걱정하는 걸 거다.
모두가 나가고 혼자 숙소에서 지낼까 봐.
우주 역시 가족들이랑 마냥 웃으면서 지내는 건 아닐 테니까, 집에 가는 것보단 숙소 생활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숙소를 나가야 한다면 혼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다.
“굳이 숙소를 나가고 싶지는 않아.”
“정말?”
내 대답을 듣자마자 반색하며 외치는 우주였다.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 나를 보았다.
출제자의 의도가 너무 보이잖아, 우주야.
“나갈 생각은 없어. 아직은 나갈 때도 아니고.”
“그렇지? 형이 생각해도 숙소를 나가는 건 조금 이르겠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굳이 숙소를 벗어나 새로 방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투자를 위해서.’
트레블리에게 한 투자가 시작이었다.
트레블리에만 돈을 쏟을 생각은 없었다.
연예계가 아니더라도 부동산, 주식 등 내가 할 수 있는 투자는 다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돈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윤택수 회장은 내가 아이돌로 나아갈 방향을 지원해주는 것이지, 내게 직접 돈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돈이 충분히 모인 뒤면 모를까, 지금은 최대한 시드머니를 확보해야 했다. 지금도 돈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투자에 뛰어들기엔 얼마가 있어도 부족하니까.
“다른 애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있을 거야.”
“다행이다.”
“우주 너는?”
“응?”
“너도 숙소에 있을 거야?”
“응, 나중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전까진 있을 거야. 나도 혼자 사는 게 꿈이라서.”
“다른 애들한테는 물어봤어?”
“형한테 처음 묻는 거야. 성훈이 형이나 민이 형은 아무래도 고향이 멀어서 한동안은 숙소에 있을 거 같고, 호진이 형은 그래도 가족이랑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을까 싶어. 동생이 있으니까.”
“그렇긴 하네.”
나는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동생을 다루듯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게 걱정이었어? 형들이 혹시 숙소 나갈까 봐?”
“그,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궁금했던 거야. 하하하.”
“걱정 마라. 갑자기 너만 두고 다 숙소 떠날 일 없어.”
그렇게 막내를 안심시킬 즈음, 팩을 떼어낼 시간이 됐다.
“오.”
피부가 반짝반짝한 게, 이게 물광인 건가 싶었다.
SS급으로 올린 외모 덕인지, 아니면 팩의 효과가 뛰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잘생겨진 거 같기도.
“근데 형은 팩이 진짜 잘 받나 보다. 윤곽이 더 날렵해진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기분 탓만은 아닌 거 같다.”
“어때? 조금 흥미가 돌지 않아? 피부 관리의 세계에?”
“좋긴 하네.”
나중에 한 번쯤 더 경험하고 싶었다.
물론 이게 스탯의 영향인지, 팩의 영향인지는 한 번 더 실험해보면 알 수 있겠지.
‘우주 말대로 관리가 필요하긴 해.’
스탯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선 그만큼의 노력이 더 필요하니 말이다.
“나중에 한 번 더 하자.”
“꼭 같이하기다?”
안 하면 강제로라도 시킬 기세였기에, 그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기분도 좋고, 뭔가 나아진 기분마저 들어서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 *
우주와 팩을 마친 뒤, 나는 연습실로 출근했다.
딱히 연습을 위해 출근한 건 아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왜 왔어?”
사무실을 바삐 돌아다니던 황이서가 물었다.
“그냥 심심해서 구경 왔습니다.”
“하하, 그래. 일하지 않을 때 오는 사무실이 또 각별한 법이긴 하지. 그런데 조금 바빠서 아마 다들 정신없을 거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직 못 들었어? 내년에 치러질 골든 콘서트 때문에 초기 안을 준비한다고 다들 난리야. 황룡 측에서 적극적으로 준비중이라 관련 프로덕션이랑 업체들 미팅이 있을 거거든. 우리도 지금부터 제대로 준비해야지.”
황이서의 얼굴이 밝았다.
“덕분이다, 건하야. 하하하!”
황이서와 헤어진 뒤, 나는 연습실로 들어갔다.
내가 지금 연습실에 온 이유는 하나.
[트레이닝 (S)]
[포인트를 투자해서 케미 시스템이 오픈된 동료의 능력치를 올리거나 보유한 스킬을 수여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닝(S)은 소속사 연습실에서만 발동이 가능합니다.]
[현재 연습실에 위치했습니다.]
[현재 트레이닝 가능한 멤버: 최우주, 안호진, 정민, 유성훈]
[기존 포인트의 2배가 소모됩니다.]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 동료들의 능력치를 올려주기 위함이었다.
연습실에 들어온 나는 멤버들의 스탯을 펼쳤다.
[유성훈]
[나이: 22]
[노래: A+]
[춤: B+]
[외모: B+]
[예능: D+]
[스킬: 고집(A), 폭포수 같은 고음(A) - 성장 중(담당 멘토: 이종민), 관중의 환호(S), 자양강장제(C), 번역(SS), 2개의 심장(A)]
[최우주]
[나이: 20]
[노래: B]
[춤: A]
[외모: B]
[예능: A]
[스킬: 친화력(A), 청산유수(B), 원샷을 위하여(B), 번역(SS), 2개의 심장(A)]
[안호진]
[나이: 21]
[노래: C]
[춤: S]
[외모: A+]
[예능: D]
[스킬: 남다른 춤선(C), 끈기(B), 번역(SS), 2개의 심장(A)]
[정민]
[나이: 21]
[노래: B+]
[춤: B]
[외모: B+]
[예능: C+]
[스킬: 작곡(B), 마에스트로(SS), 번역(SS), 2개의 심장(A)]
‘성훈은 보컬 중심에 스킬 배분이 좋고, 우주는 평균적인 스탯이 전체적으로 높고 균일하네. 원래는 예능 특화였는데 춤이 확실히 많이 올랐어.’
호진이는 스킬 배분이 거의 없지만, 압도적인 춤과 외모로 본인의 장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정민 같은 경우는 전체적으로 스탯은 떨어지지만, 작곡과 마에스트로라는 확고한 스킬 하나가 돋보였다.
‘확실히 각자 강점이 확실하네.’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둘 수는 없었다.
남은 스킬 포인트는 2천만.
지금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숙제는.
성훈의 노래나 호진의 춤, 우주의 예능감을 강화하는 방법과.
정민의 부족한 스탯을 올리는 방법이 있었다.
모든 걸 다 만족할 수는 없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다른 것들은 포기해야만 했다.
‘흐으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성훈의 노래를 S급으로 올리는 것.
이것만큼은 가져가는 게 맞았다.
A+에서 S급으로 올리는 데 드는 포인트는 1천만.
남은 1천만으로 다른 걸 올린다.
“뭐가 좋으려나.”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