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86화 (186/236)

<제186화>

‘카메라?’

여기까지 쫓아오는 카메라라면 둘밖에 없었다.

기자 또는 파파라치.

사실 따지고 보면 기자나 파파라치나 이렇게 사적인 공간까지 쫓아와서 찍으면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기자들이 파파라치에게 돈을 주고 사진을 받아 기사를 내는 경우도 있었으니.

‘비슷하지.’

기자들의 카메라는 이제 질릴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카메라와는 전혀 다른 시선이었다.

내가 지금껏 경험했던 기자들의 카메라는 언제나 공적인 자리거나 스케줄이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숙소 근처에 찾아와서 몰래 찍는 건 처음이었다.

누구나 마음을 놓기 쉬운 집 앞에서 이렇게 몰래 찍다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누가 좋아할까.

본인의 사적인 공간을 침입하려는 외부인을.

성인군자도 고개를 내저을 거다.

‘멤버들에게 얘기해야겠네.’

거리가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 뒤편에 보이는 형체는 상당히 커 보였다.

아무리 작게 잡아도 175㎝.

‘덩치나 골격이 남자 같은데….’

파파라치처럼 보이는 그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슬그머니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인기가 커졌으니,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시선도 따라올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집 앞까지 쫓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사업가일 때는 경호팀이 붙어서 이런 일 자체가 생기지 않았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생길 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니, 기자들도 자주 붙지 않았다.

그나마 있었다면 젊은 회장의 모습이라며 가끔 휴양지에서 휴식할 때 찍힌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집 앞이라니.

‘안전한 곳이 없네.’

파파라치가 사라진 곳에서 시선을 거둔 나는 멤버들과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애들아.”

“응?”

“잠깐 모여서 할 얘기가 있어.”

이건 미리 경고해둘 필요가 있었다.

괜히 오해를 살법한 사진이 찍힌다면, 제일 힘든 건 당사자일 테니까.

“형,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건하가 그런 표정 지으니까 뭔가 무섭네.”

“무슨 일인데?”

나도 모르게 인상이 써진 모양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방금 숙소 앞에서 파파라치가 우리를 찍고 있었어.”

“어?”

“파파라치?”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어, 어디에 있어?”

“지금은 돌아갔어. 나랑 눈이 마주쳤거든.”

파파라치라는 말에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

연예인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열 중 다섯은 이렇게 얘기할 거다.

파파라치가 계속 쫓아와서 사생활을 침해당하는 것.

파파라치가 숙소 앞까지 쫓아왔다는 건 우리의 인기를 반증 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사생활 하나하나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계속 있을까?”

“한동안은 계속 있을 거 같더라. 아마 오늘부터 자리 잡았거나, 아니면 한참 전부터 있었던 걸 이제 발견했거나.”

“뭐 때문이지?”

우주가 불안해하며 물었다.

우리 중에 제일 활발한 우주지만, 동시에 가장 여린 아이였다.

“인기 때문이겠지.”

가만히 듣고 있던 성훈이 말했다.

“올리오스가 인기가 있으니까, 조회 수가 될 거 같으니까. 이제 상승세를 극한까지 탄 신인 가수에, 아직 터진 거 없는 미지의 그룹이니까.”

그 말에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파파라치가 붙은 거다.

인기 있는 그룹의 특종 사진은 높은 가격표가 따라붙는다.

“한 명이 아닐지도 몰라.”

내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다들 조심하자. 혹시 오해가 될 수 있는 자리는 피하고. 중요한 때니까.”

“응, 알겠어.”

쉽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저 사람들이 하루 이틀 있다가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고.

파파라치가 직업인 사람들은 몇 달이고 우리를 추적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조심한다고 안 찍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선 프로듀서님한테도 말씀드려야겠다.”

결국, 이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소속사였다.

황이서에게 얘기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는 것.

당장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들 주의하자. 그래도 이번 달은 바쁘게 돌아다닐 테니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

그렇게 말하며 트레블리를 떠올렸다.

본래라면 애들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레프픽션을 찾아갔을 텐데.

‘당분간 트레블리를 직접 찾아가는 건 피해야겠다.’

다른 소속사에 너무 자주 들르면 자칫 오해를 유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당분간은 화상 통화로 계획을 공유해야지.

나는 창문을 가린 커튼을 살짝 열었다.

멀리서 나를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떠난 건 아니다.

‘애들 다 있는 숙소에 뭐 찍을 게 있다고.’

나는 다시 커튼을 쳤다.

한동안은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 같았다.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다.

이런 걸로 무너질 수는 없지.

*    *    *

“파파라치?”

-네, 오늘 카메라가 붙은 걸 봤어요.

“숙소 앞에 말이냐?”

-네.

황이서가 이마를 짚었다.

몬스터즈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파파라치가 붙고, 기자도 붙었지.

“하아, 내가 한번 확인해볼게.”

-감사합니다.

수화기 너머의 윤건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른스러운 모습이라니.

당황하거나 무서울 법한데도 목소리는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오히려 그에게 소식을 들은 황이서의 목소리가 더 다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끔 보면 진짜 십수 년은 필드에서 뛴 베테랑 같았다.

“당분간은 쉬는 날에도 숙소에만 있도록 해. 연말이라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겠지만.”

-알겠습니다. 멤버들에겐 그렇게 얘기해 둘게요.

“그래, 고맙다.”

황이서는 전화를 끊었다.

“파파라치라….”

차라리 파파라치나 기자면 다행이었다.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

기자라면 사적인 공간 취재는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게 먹히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파파라치도 비슷했다.

오히려 파파라치가 더 쉽지.

‘하지만 그 둘이 아니라면?’

사생팬.

최악의 케이스였다.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쫓는다고 해서 지어진 별칭.

그들의 집착은 평범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집요했다.

몬스터즈도 한때 사생팬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으니.

“경호팀을 숙소에도 붙여야 되겠는데.”

이두현의 떡대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팀장이 돼 올리오스 하나만을 신경쓸 수는 없었다.

그만으로는 케어가 힘들 거다.

‘스케줄 때문에 자리를 비웠을 때를 대비해 경호팀을 배치해 둬야겠어.’

이제는 올리오스만 쓰는 숙소도 아니었다.

그들의 밑층에 새롭게 입주한 연습생들도 사용하는 숙소였으니 명분은 충분했다.

“우선 기자인지 파파라치인지부터 파악하고 나서 행동하자.”

황이서는 전화기를 들었다.

“한석원 팀장, 신문사에 연락 돌려서 혹시 기자나 파파라치 우리 애들한테 붙였는지 확인 좀 해봐.”

-네, 알겠습니다.

“서울 미디어랑 Y-TV 뉴스는 내가 물어볼게.”

-알겠습니다. 말고도 너튜브 렉카들도 붙었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탁하지.”

한마디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한석원 팀장이었다.

이래서 마음에 들어.

한 팀장과 전화를 마친 황이서는 곧바로 서울 미디어의 데스크를 맡은 박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박 부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엊그제 문수 시험 봤다면서요? 애가 똘똘한가 봐. 성적도 좋은 거 같던데. 아, 다른 게 아니고 물어볼 게 있어서. 혹시 ‘서울 미디어’ 기자들 저희 팀에 붙이셨나요?”

아무래도 한동안은 바쁠 거 같았다.

*    *    *

그날부터 밴에 타고 오는 사람이 바뀌었다.

운전석에 이두현이 있는 건 여전했지만, 조수석엔 몇 번 현장에서 본 경호팀장이 있었고 뒷좌석엔 경호원이 함께였다.

“안녕하심까.”

“아, 안녕하세요?”

경호원의 인사에 우주와 정민이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두 분은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호진의 물음에 차에서 내린 경호원이 주위를 휙 돌아봤다.

“스케줄 나가실 때 숙소 경비를 맡을 검다.”

“이유가 뭔가요…?”

이번엔 정민이 물었다.

“어제 발견하셨다던 카메라가 혹시 사생팬이 아닐까 하는 얘기가 있어서 그렇슴다.”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경호원에게 조수석에 앉은 팀장이 외쳤다.

“어이, 적당히 얘기해! 괜히 걱정거리 늘어나니까.”

“아, 죄송함다.”

우리가 올라타자 경호 팀장이 말했다.

“걱정은 마세요. 우선 예방 조치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파파라치일 수도 있고, 기자일 수도 있긴 합니다만. 이왕이면 확실하게 대비하는 게 좋겠다는 게 프로듀서님의 말입니다.”

“아하.”

우리가 전부 내리자 경호원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십쇼! 제대로 망보고 있겠슴다!”

우리를 태운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한동안은 이렇게 지낼 거야. 이왕이면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좋으니까.”

이두현이 그렇게 말하며 정면을 주시했다.

한동안 차에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두현 옆에 앉은 경호 팀장의 위압감도 위압감이지만, 평소에 분위기 메이커였던 우주가 입술을 깨물며 초조해하는 탓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생팬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다들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오늘 스케줄은 연말 콘서트 대비 연습이야. 2주 후에 있을 가요 어워드 준비도 해야지. 올해 가요 어워드에선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해줘야 하잖아.”

그런 분위기를 파악한 걸까?

이두현이 스케줄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보여줘야죠. 올리오스가 어떤 그룹인지. 작년에는 눈도장을 찍었으니, 올해는 임팩트를 줘야죠.”

여기서 움츠러들 때가 아니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것에 주눅들 필요는 없었다.

내가 파파라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굳이 꺼낸 건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올리오스의 방해가 되는 걸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다들 무대만 생각하자. 다른 생각은 최대한 접어두고.”

우리가 올라가야 할 무대가 많았다.

그동안 쉰 만큼 더 많은 곳에서 우리의 얼굴을 비출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래야지. 힘내야지.”

“후우, 무대…. 잊고 있었네.”

우주도, 정민도 다들 정신을 차린 듯 되뇌었다.

애초에 그리 신경 쓰지 않은 듯 덤덤했던 성훈도 기운을 차린 동생들을 보며 씨익 웃어줬다.

“힘내자.”

자신감이 전파되듯 차 안에 퍼졌다.

“화이팅!”

“으아!”

“할 수 있드아아!”

“으아악!”

밀려오는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듯 의욕적으로 고함을 지르는 멤버들을 보며 나는 마음을 놓았다.

저 모습을 보니, 무대에 올라서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지는 않겠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탄 차가 소속사에 도착했다.

“뭐야? 너희 오늘 왜 이렇게 에너지가 넘쳐?”

열정 장인 채남영도 놀랄 만큼 의지가 가득 찼다.

“연말 콘서트 가요 어워드 무조건 올리오스가 1등 할 겁니다!”

가장 과하게 자신감이 충전된 우주가 외쳤다.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콘서트에 공식적인 1등과 꼴찌는 없지만,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수는 있으니까.

‘최선의, 최고의 무대를 보여줘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우리는 연습실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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