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우리는 무대가 끝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우리의 손에는 꽃다발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혹시 정민이 상을 타지 않을까 싶어 소속사에서 준비한 꽃이었다.
다소 설레발일지도 모르겠지만….
‘올라갈 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우리가 자리에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곡상의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음악 관계자가 시상을 위해 무대 위에 섰다.
가수로 시작해, 여러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유명 선배였다.
가수보단 작곡가로 성공했고, 지금은 프로듀서까지 맡고 있는 대선배.
그는 마이크 앞에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축하합니다. ‘For you’의 정민 군!”
정민의 이름을 불렀다.
“예쓰!”
“축하해 형!”
호진과 우주가 가장 먼저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잘했다! 고생했어.”
“축하한다!”
나와 성훈 역시 거의 동시에 일어나 정민을 축하했다.
“우리 후배 고생했다.”
한진성과 몬스터즈 선배들도 축하를 건넸다.
정민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하해. 그동안 고생했을 텐데…. 많이 발전했구나.”
카이가 그런 정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빌보드에서 겪은 실패 이후에 침울해 있던 그도, 아끼던 후배가 상을 받는다는 얘기에 환하게 웃어줬다.
정민은 그런 카이를 보며 울컥했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고맙습니다. 카이 선배님.”
“선배님은 무슨, 형이라고 하라니까.”
“아니에요. 제 스승이기도 하시잖아요.”
“빨리 올라가 사람들 기다린다.”
카이와 가볍게 포옹을 한 정민은 상을 받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정민은 시상자인 선배 작곡가에게 상을 받았다.
황금색 음표 모양의 트로피와 상장이었다.
“지금!”
“가자!”
정민이 상을 받는 순간, 우리는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가 그의 손에 꽃다발을 안겼다.
“이 시대 최고의 작곡가!”
“최고다! 정민아!”
“형, 작곡상 수상 축하해.”
꽃다발 여러 개를 한 아름 안은 정민은 다소 당황해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제는 그의 시간이었다.
목적을 달성한 우리는 서둘러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어, 저에게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런 아이돌의 길을, 작곡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속사 최강훈 대표님 감사하고, 황이서 프로듀서님, 두현이 형, 예리 누나. 그 외에도 많은 GH 엔터 식구들 고맙습니다. 우리 올리오스 멤버들, 우주, 건하, 호진, 성훈이 형 모두 고마워요. 특히 첫 곡이었던 ‘New taste’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줬던 건하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팬들, 올리오스 팬인 원스들 정말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해주신 덕분이에요. 정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민이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을 바라봤다.
“카이 선배, 선배는 제 우상이자 목표입니다. 언젠가는 선배를 뛰어넘기 위해서 노력할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계속 지금처럼 빛나주세요.”
그의 눈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한진성의 옆에서 정민의 시상을 바라보던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울적해 보였던 그의 얼굴에 힘이 들어갔다.
“이거, 후배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었네.”
한진성이 그런 카이를 보며 말했다.
“부끄럽네. 정말로.”
그 말에 호응하듯 카이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정민과 눈을 마주쳤던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큰일 났다. 카이 눈물샘 터졌네.”
“그런 거 아니야.”
미국에서 있던 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좌절감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끼는 후배가 수상을 함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응원 메시지까지 수상 소감으로 말해 버렸으니.
감수성이 높은 카이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정민이 다시 내려올 때까지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조금은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이제 우리 차례네.”
몬스터즈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들의 무대는 언제나 그랬듯 멋졌다.
훌륭한 무대였고,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무대였다.
“진짜 잘한다.”
몬스터즈의 등장에 도쿄돔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커다란 함성.
우리가 나올 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열광했지만, 몬스터즈는 그보다 더 사람들이 불타올랐다.
지금껏 무대에 선 어떤 가수들보다 큰 성원을 받았다.
눈과 귀, 그리고 심장이 즐거워지는 무대였다.
그들의 무대가 끝이 나고, 댄스 퍼포먼스 시상이 이어졌다.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아이돌 부문입니다. 올해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데요.”
“작년에도 한 번 맞붙었던 상대죠? 올리오스와 골든트랙이 이번에도 함께 후보에 올랐습니다.”
“작년에는 올리오스가 수상을 했었는데요. 과연 올해는 골든트랙이 복수를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후보가 두 그룹의 경쟁을 부수고 영예를 거머쥘지!”
MC들의 멘트가 끝이 나고 시상자가 나왔다.
마이크 앞에 선 그는 담담하게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봉투를 열었다.
사실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우리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For you’가 댄스에 힘을 준 음악은 분명 아니었다.
춤보다는 음악, 그리고 노래에 조금 더 집중한 노래.
하지만 골든트랙은 그들의 장기인 댄스 퍼포먼스에 집중했다고 했다.
‘평가도 좋았고.’
나는 가만히 시상자를 보았다.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아이돌 부문, 수상자는 골든트랙입니다!”
골든트랙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됐어!”
골든트랙이 환호하며 일어났다.
이진우와 시선이 교차되었다.
‘이번엔 내가 이겼다?’
이진우는 들뜬 얼굴이었다.
음원 차트, 음원에 대한 평가 등의 객관적인 지표는 우리 올리오스가 더 높게 평가받았다고 해도.
그들은 댄스 퍼포먼스 상을 받은, 지금 이 순간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댄스에선 올해 골든트랙이 최고라는 얘기였으니까.
기분이 좋을 수밖에.
“아쉽네.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이겼을 거 같은데.”
“골든트랙의 춤이 좋긴 해.”
“쟤들 데뷔 전에도 춤은 진짜 잘 췄으니까.”
“내년에는 지지 말자.”
무대로 올라가는 골든트랙을 보며 다들 의지를 다졌다.
자극이 된 모양이었다.
애들의 얼굴에선 패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현상이다.
이렇게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번에 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가 실수하는 일을 줄여줄 거다.
언제나 승리할 거라는 자만심을 줄여줄 거다.
‘자신감을 잃어선 곤란하지만, 자만심을 갖는 던 더 안 될 일이지.’
가요 어워드는 계속 진행되었고.
“이제 남자 가수상이네요.”
“우선 후보들부터 만나보시죠!”
올해의 가수상, 남자 부문.
흔히 남자 가수상이라고 불리는 파트였다.
작년에는 이 상의 주인공이 바로 라이언이었다.
대상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상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가 그 상의 후보로 올라가 있었다.
“첫 번째 후보는 ‘For you’를 부른 올리오스입니다!”
“두 번째 후보입니다. ‘레퀴엠’의 나인틴입니다!”
“세 번째 후보입니다….”
“네 번째….”
총 다섯 그룹이 후보로 올라왔다.
다들 쟁쟁한 아이돌이었다.
같은 후보에 올라간 다른 아이돌은 모두 우리보다 선배였다.
“떨리지?”
한진성이 무대 뒤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떨리네요.”
“나도 처음에 올해의 가수상 받았을 때 엄청 떨렸어.”
그가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 잘될 거야.”
“긴장한 티가 나나요?”
“조금?”
“하하하.”
그렇게 티가 났나.
사실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내 목표였던 진엔딩에 몇 걸음은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후우.”
숨을 몰아쉬며 시상자의 멘트를 기다렸다.
마이크 앞에 선 그가 봉투를 열고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의도적인 시간 끌기.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연출이었다.
“축하합니다.”
시상자가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었다.
“올리오스! 축하합니다.”
시상자의 입에서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정말 우리야?”
“대박!”
아주 조금 눈물이 차올랐다.
흘릴 뻔도 했다.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이날만큼은 울고 싶었다.
참….
“진짜 됐네.”
자신감은 있었다.
그러나 자신감만 있다고 모든 게 다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나름대로 긴장도 했었다.
특히 댄스 퍼포먼스에서 상을 놓쳤을 땐, 어쩌면 올해의 남자 가수상도 얻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불안감.
그 때문일 거다.
이렇게 긴장한 건 말이다.
그리고 그 긴장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올라가자!”
우리는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가수상의 트로피도 음표 모양인 걸 보니, 올해는 모두가 음표 모양의 트로피인 모양이었다.
음표 모양의 트로피를 받아 소중하게 품에 껴안은 우주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럼 소감 발표해 주세요.”
MC의 말에 나는 마이크 앞에 섰다.
“작년에는 다른 상으로 이 자리에 섰던 거 같은데,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은 기대했지만, 정말 받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음,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다 남기고 싶지만, 너무 많아서…. 제가 오늘 주머니에 감사한 사람들 리스트를 하나하나 적어왔어요. 이 중에 세 분만 뽑아서 인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미리 준비해 둔 쪽지들을 하나하나 뽑았다.
“처음은… 올리오스의 팬클럽, 원스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은 한석원 홍보팀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몬스터즈의 이진규 선배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록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응원하고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전부 이름을 불렀다가는 밤을 새울 게 분명했으니, 딱 여기까지가 좋은 마무리였다.
게다가.
맞은편에 선 PD가 빨리빨리 해달라고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기에, 더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멤버들도 끝인사를 해야 하니까.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지금처럼 빛나는 아이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해요! 여러분!”
“댄스 퍼포먼스를 놓쳤을 때는 절망적이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기뻐요.”
멤버들 모두 각자의 수상 소감을 빠르게 마무리했다.
남자 가수상과 여자 가수상 수상이 끝나고, 라이언의 무대가 있었다.
마지막 엔딩 무대를 빛낸 그들.
그리고 마지막 대상.
대상은 진효원이었다.
작년의 복귀 이후에 최고의 모습을 연달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가요 어워드가 끝이 났다.
* * *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이제는 한국에서 있을 연말 콘서트 때문에 바쁠 거다.
게다가 성훈과 호진이는 M-TV에서 진행하는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 촬영까지 있어 더 바빴다.
<아이돌 스쿨>.
M-TV에서 하는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의 예선 라운드가 전부 끝이 나서, 멘토 역할인 두 사람이 빨리 와줬으면 한다고 했다.
“바쁜 한 달이 되겠네.”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의 스케줄을 확인하던 내가 말하자.
“그러게….”
성훈이 유독 깊은 한숨을 퍽 내쉬었다.
보컬 트레이닝을 한다는 게 신경이 쓰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걱정돼?”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형이 하던 것처럼 하면 돼.”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