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
나는 갑자기 핸드폰에 뜬 시스템 창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돌발 퀘스트: 성재영을 영입하세요.]
[보상: 연계 퀘스트 - 트레블리 데뷔, 10 오픈 마일리지, 트레블리 인지도 상승, 프로듀서 모드 오픈.]
성재영을 영입하라는 퀘스트가 갑자기 떴다.
이렇게 퀘스트가 떴다는 건,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뜻.
처음에는 최 실장님이 실패한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난이도가 급상승할 거라는 뜻일까?
퀘스트 창이 뜨기 전에 보았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현직 프로듀서 - 황이서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퀘스트 특수 조건을 완수했습니다.]
황이서의 인정.
내가 프로듀서를 했어도 잘했을 거라는 황이서의 인정 때문에 퀘스트가 떴다.
물론 갑자기 이렇게 조건을 완수시키고 퀘스트를 발동시킨 시스템의 의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성재영의 영입이 트레블리의 성장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것.
단순히 조언을 비롯한 서포팅을 해주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로듀서 모드라는 건 역시….’
이번에 트레블리를 서포팅할 수 있다는 거다.
이게 정확히 어떤 모드인지는 게임에서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퀘스트의 보상이니 적어도 나쁜 건 아닐 거다.
최 실장님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으려나.
아마 지금쯤 성재영과 컨택해서 계약 조건을 조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알아서 잘해주시는 분이니 성재영은 그분에게 맡기도록 하고….
“나도 나대로 일을 처리해야겠지.”
나는 문밖에 보이는 차를 바라봤다.
1월이 다 되었음에도 여전히 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차.
김성호 기자의 차량이었다.
도스 패치.
1월까지 빠지라고 유예 기간을 주었고, 이제 그 데드라인이 거의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초조할 테지.
위에서는 데드라인까지 정해서 압박하고 있고, 성과는 나오지 않고.
뭐든 건지고 싶을 거다.
아주 안달이 나 있을 상태.
작은 이슈만 던져줘도 상상력을 총동원해 어떤 이야기든 만들 수 있는 그런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친구일수록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지.
만약 기사를 내려고 한다면 곧바로 반박 기사를 낼 생각이었다.
반박 기사 내용은 내가 레프픽션의 트레블리에게 정당하게 투자를 하고,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
그에 대한 증거 영상도 기다렸다는 듯이 낼 거다.
어설프게 찍었던 기사는 곧 무너질 테지.
소속사의 경고에도 무시했던 김성호 기자였다.
애초에 막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거다.
황룡그룹에서 경고까지 했음에도 어떠한 움직임이 없다는 건, 그 역시 그만큼 각오를 했다는 것.
만약 기사를 내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괜찮았다.
결국 아무것도 성과를 내지 못한 김성호 기자는 끝내 물러날 테니까.
‘이제 슬슬 시작해야겠네.’
나는 김성호 기자의 차를 바라보며 전화기를 들었다.
“네, 안 대표님. 슬슬 준비해 주세요.”
-시작하실 겁니까?
“네. 한번 크게 움직여야죠.”
김성호 기자님.
제대로 이용해 먹겠습니다.
* * *
신년회에서도 아무 일이 없었다.
올리오스의 숙소엔 프로듀서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몬스터즈와 최강훈 대표가 전부.
너무나도 건전한 파티였다.
이렇게 잠복하고 있는 것이 억울할 정도로.
“후우, 짜증 나네.”
이제 슬슬 화가 뻗쳤다.
누구는 잠복한다고 휴일도 제대로 못 즐기는데, 누구는 저렇게 탱자탱자 놀고 자빠졌고.
신년이 지나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올리오스는 여전히 조용했다.
눈치챈 것치고는 너무 시끄러웠고,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다.
“대체 얼마나 독한 거야?”
설마 진짜 아무런 이슈 없는 건전한 그룹인가 싶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벌 2세였다.
설마 진짜 아무런 일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내가 기필코 잡고 만다.”
어떻게든 특종 잡아서 건수 올린다.
그는 이를 악물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되뇌었다.
상부에 어떻게든 미루고 미뤄서 하나 잡고 간다.
그때, 각오를 다진 김성호 기자의 눈에 윤건하가 보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무슨 일로 이두현 매니저도 없이 혼자서 이동하는 거야?
기자의 감이 외쳤다.
이거다.
지금 이거 잘만 잡으면 건수 하나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확신했다.
김 기자는 그것이 조급함이 낳은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접었다.
이제 물러설 곳은 없었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따라간다.
어떻게든 건수를 잡아야 하니까.
김성호 기자는 핸드폰을 든 윤건하를 조용히 따라갔다.
* * *
“따라오고 있죠?”
-응, 따라가고 있어.
이두현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렸다.
“계속 주시해 주세요.”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감사합니다.”
이두현과 통화를 끝냈다.
김성호를 낚을 미끼는 준비가 되었다.
이제 낚싯줄을 던져 물고기가 걸리길 기다리며 움직이면 된다.
이게 맛있는 먹이라고 착각하게끔 살랑살랑 움직여줘야지.
마스크를 쓴 나는 혼자서 레프픽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레프픽션 사무실은 차로 타고 가면 금방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간만에 혼자 생각할 시간도 가질 겸, 이런 시간을 갖는 건 나쁘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창가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잡았다.
골든 콘서트, 주기적인 국내 활동, 그 외에 팬미팅 같은 자잘한 스케줄들.
생각해야 할 게 많았다.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진엔딩을 보는 것.
하나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잊지 말아야만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아이돌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그런데….’
살아보니, 아이돌 생활도 재밌었다.
수많은 사람 앞에 서서 그들의 환호를 받는 건 즐거웠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 재미를 점차 느껴가는 중이었다.
사업가가 되어 돈을 버는 즐거움과는 다른 방식의 재미였다.
무대에 설 때마다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늘 새로운 즐거움을 느꼈다.
물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업가 시절에는 겪지 못했던 단점도 있었다.
유명인이라는 것.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마 가장 큰 단점이 아닌가 싶었다.
모두의 관심이 쏠린다는 건 여러모로 귀찮은 점이 있었다.
관심이 높은 만큼 그 관심을 빨아먹으려는 모기들이 붙을 확률이 높았다.
이렇게 나를 쫓아오는 김성호 기자도 그런 귀찮은 모기 중 하나였다.
“저 사람 윤건하 아니야?”
“윤건하가 왜 이 버스를 타.”
“그래도 좀 닮았는데….”
이제는 변장을 좀 해도,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게 됐는지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그녀들은 힐끗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애써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레프픽션 사무실 근처에서 내렸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 레프픽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김성호 기자의 차는 집요하게 쫓아왔다.
* * *
“레프픽션…. 윤건하가 여기에는 왜 왔지?”
전혀 접점이 없었다.
그가 이곳에 올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대체 왜?
김성호 기자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전혀 잘못된 방향으로 말이다.
윤건하가 관련도 없는 소속사에 대체 왜 왔을까?
그것도 매니저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굳이 와야 하는 이유라면?
역시….
‘열애설.’
사실, 아이돌이 타 소속사에 방문할 일이라면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김성호 기자의 머리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안을 볼 수 없으니 생각은 더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갔다.
‘레프픽션에 여자 연예인이….’
유명 가수 최슬아, 4인조 여성 그룹 큐티클, 모델 출신 배우인 신유리, 그리고 이름 모를 연습생들까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을 거다.
윤건하와 뜨거운 열애설을 띄울 사람이.
아니, 실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둘이 있는 사진 한 장만 건져도 충분하다.
“증거 사진만 찍는다면….”
김성호 기자는 레프픽션 안으로 들어가는 윤건하를 찍었다.
사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윤건하의 옆모습.
마스크를 내린 그는 누군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꼭 연인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거다.
찰칵!
상대의 얼굴까지 잡히길 원했지만, 아쉽게도 그쪽은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젠장.”
100퍼센트 확실한 사진이 아닌 것이 아쉽지만, 이런 사진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성호의 머릿속에 타이틀로 쓸 제목이 떠올랐다.
-[단독] 올리오스 윤건하, 그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는 상대는 누구?
거듭된 실패로 초조해진 김성호의 머리가 비약으로 소스를 짜내는 것에 가까웠지만, 김성호 기자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두 달 가까이 좁은 차에서 잠복했음에도 어떠한 소스도 건지지 못한 그에겐 이런 작은 소스 하나도 달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심리적으로 몰린 사람의 상상력이란 풍부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윤건하가 노리고 있는 점이라는 것도.
김성호 기자는 알지 못했다.
“후우, 흥분하지 말자. 아직 침착할 필요가 있어.”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아니면 윤건하가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했다는 증거라던가.
그때 윤건하와 인사하는 여성의 실루엣이 창문에 잡혔다.
‘이거다.’
김성호는 셔터를 눌렀고, 윤건하와 인사하는 여성의 뒷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제대로 건졌다.
“더럽게 긴 시간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기사를 터트릴 수 있는 건수를 잡았다는 생각에 김성호 기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곧장 곽인아 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따낸 거 같습니다.”
도스 패치가 제대로 어그로를 끌 시간이었다.
* * *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준비 다 해뒀습니다.”
안 대표와 만난 나는 그의 옆에 선 사무실 직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잘 지내셨죠?”
“하하, 트레블리는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 촬영은 왜 해달라고 하신 겁니까?”
안 대표가 카메라를 든 채 나를 찍으며 물었다.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엔 불이 들어온 상태였다.
내가 도착하면 카메라로 찍어달라는 부탁을 제대로 들어준 거다.
“애들 브이로그 찍어야죠. 데뷔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노출을 시켜야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어떤 콘셉트로……?”
“글쎄요.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다 보면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나는 창가에 보이는 김성호의 차를 힐끗거렸다.
아무래도 제대로 찍은 듯했다.
저 잘못된 사진을 들고 기사를 올릴 김성호가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럼 시작하죠. 아, 혹시 홍우선 프로듀서에게 들었습니까?”
“새로운 멤버 캐스팅 말이지요? 들었습니다. 영상으로 봤는데 괜찮아 보이던데요? 대체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안 대표와 함께 트레블리를 만나러 연습실로 향했다.
오늘 일이 끝나면, 이 영상을 이두현에게 보내야겠다.
* * *
“어…. 저를 말씀이십니까?”
“예, 두 달 뒤에 데뷔할 그룹에 성재영 씨를 포함하고 싶어서요.”
성재영은 눈앞에서 계약서를 내미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 전 <아이돌 스쿨>에서 떨어진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한 상태였다.
재능이 없다고 여겼다.
마지막 발버둥을 치기 위해 <아이돌 스쿨>에 나갔고, 결국 3라운드를 넘지 못하고 떨어졌다.
생방 무대에 오를 기회를 놓쳤고, 아마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겠지.
거기서 그는 느꼈다.
자신보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라운드에서 떨어지고 몇 개의 소속사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긴 했다.
그러나 대부분 연습생 계약이었다.
-3년간 연습해서 가죠.
-2년 정도 연습생 시절을 겪으면 충분히 대성할 겁니다.
누군 안 해본 줄 알아?
연습생 시절을 겪고 또 겪어도 안 되니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간 거라고.
그래서 다 거절했다.
그런데 이제 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이 시기에.
“데, 데뷔조요?”
왜 이런 제안이 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