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어…. 진심이신가요?”
“네, 진심입니다. 저희 레프픽션과 황룡엔터가 협업해서 트레블리라는 그룹을 런칭하는데, 거기서 성재영 씨가 비주얼로 활약해줄 거라 확신했거든요.”
홍우선 프로듀서는 눈앞에 앉은 성재영을 보며 말했다.
처음에 최성국에게 이 연습생을 영입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확 꽂히는 뭔가가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윤건하의 의견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아이돌 스쿨>을 정주행했다.
특히 성재영이 나오는 부분을 최대한 많이 돌려봤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특징이 없었다.
모든 게 다 애매하다고 해야 할까?
조금씩 아쉬웠다.
그런 게 하나 보이니, 두 개가 보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윤건하의 말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건 잠시뿐.
‘윤건하 사장의 안목은 대단하니까.’
아이돌을 보는 눈이 말도 안 되게 좋은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본인의 눈에 대한 믿음과 결단력도 확고했다.
그래서 몇 번 더 돌려봤다.
그쯤 되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성재영이 가지고 있는 묘한 매력.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알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시선을 끌어 당긴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특유의 미성에 가까운 음색이 자꾸만 듣고 싶어졌다.
대단히 잘 부르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매력이 있었다.
그때 느꼈다.
‘이거구나.’
윤건하가 이 연습생에게서 본 것이.
그리고 확신을 가졌다.
기존 트레블리 멤버들의 매력으로 화제성을 팡 터트린 뒤, 계속해서 미디어에 성재영을 노출한다면.
‘이 친구 역시 제 역할을 할 거야.’
확실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의 감이었다.
물론 지금은 촌뜨기 시골 청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 저 안에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당황스럽네요. 이런 제안을 받은 게 처음이라….”
“다른 곳에선 제안이 없었나요?”
“다들 연습생 생활을 다시 하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나이가 조금 있다 보니 그게 어렵겠더라고요. 이제 생계 문제도 있고….”
“아까 물어보지 못한 거 같은데, 나이가 어떻게 되죠?”
“스물 여섯입니다.”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외모로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은데?
“그래요? 스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합니다. 하하.”
“연습생 생활이 길었나요?”
“예, 7년간 연습만 하다가 계약 해지당하고 쫓겨났습니다.”
동안 페이스에 사연도 있었다.
나중에 트레블리가 잘 풀린다면 이야기를 풀 거리도 충분히 있었다.
“좋네요. 저희는 재영 씨만 괜찮다고 하면 바로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만, 재영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고민은 잠깐이었다.
이건 그에게 동아줄이었다.
아이돌을 포기한 그 순간에 내려온 동아줄.
그리고 나름 건실한 기업에서 내려준 물건이었다.
물론 레프픽션이 소속 아이돌을 제대로 못 살린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연습생들에겐 그것보다 중요한 게 데뷔 자체였으니까.
‘이제 달라지기도 했고.’
홍우선은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데뷔가 두 달 뒤라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내일까지는 대답을….”
“하겠습니다!”
성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셔서 좋네요. 그럼 계약 바로 들어가시죠. 계약은 업계 표준이긴 한데, 혹시 모르니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성재영의 눈이 빛났다.
홍우선은 윤건하에게 연락하기 위해 폰을 들었다.
* * *
-영입했습니다.
홍우선의 문자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성공을 짐작했다.
문자가 오기 전에 뜬 시스템 메시지.
[돌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성재영이 트레블리에 합류합니다.]
[오디션에 참가했던 멤버 합류로 트레블리의 인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보상: 10 오픈 마일리지]
[프로듀서 모드가 오픈됩니다.]
어지럽게 핸드폰에 알림창이 떴다.
하나하나 읽는 도중에 연달아 창이 올라왔다.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새로 오픈된 프로듀서 모드.
프로듀서 모드 오픈이라면서 뜬 알림창에는 예전에 내가 게임에서 보았던 화면과 비슷한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당시 <마이 아이돌>에서 플레이어는 엔터 기획 대표가 되어 아이돌을 육성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럼 이걸로 게임에서 얻은 기능을 쓸 수 있는 건가?’
우리 멤버가 아니더라도?
능력치 상승까지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 멤버들의 능력치와 현재 기분 상태, 피로도 등.
내가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챙겨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야말로 최고의 서포터였다.
홍우선과 안명학에게 맡기면서도 주기적으로 내가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최고였다.
“나쁘지 않네.”
[트레블리의 현재 잠재력을 분석합니다.]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는 트레블리 멤버들의 SD 캐릭터가 폴짝폴짝 움직였다.
[트레블리 잠재력: S]
[훌륭합니다. 국내에서 최고의 스타가 될 잠재력을 갖췄습니다.]
[전문 프로듀싱과 좋은 노래가 함께 맞물린다면 세계를 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는 큰 실패를 몰고 오기 마련입니다.]
그룹에 대한 종합 평가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성재영의 합류로 다소 상승할 예정입니다.]
[추후 프로듀서와 직원들의 보고서를 받은 후에 재평가를 진행하겠습니다.]
썩 나쁘지 않네.
마치 개인 비서처럼 트레블리의 시장성과 기타 능력에 대해 판단해주는 것이 꽤나 똘똘했다.
“추억이네.”
예전에 <마이 아이돌>을 했을 때의 그 감각이었다.
나만의 아이돌을 키우는 것.
그게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이 또한 나를 성장하게 해주는 하나의 요소였다.
결국 트레블리가 벌어주는 돈이 올리오스를 키울 스탯이 될 테니까.
추억에 잠겨 있었을 때.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연계 퀘스트: 트레블리 데뷔]
보상 중 하나였던 연계 퀘스트가 발동되었다.
[트레블리를 데뷔시키고 음원 차트에 진입하세요.]
[보상: 25 오픈 마일리지 or 프로듀서 윤건하 엔딩]
“…….”
또 나타났다.
추가 엔딩 분기.
재벌집 후계자 엔딩이더니, 이번엔 프로듀서 엔딩이냐.
시스템도 알고 있을 거다.
내가 프로듀서 엔딩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럼에도 이전 재벌 엔딩부터 시작해, 이렇게 분기 엔딩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
‘끝이 다가온다는 거겠지.’
진엔딩을 향한 발걸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선 데뷔를 안 시킬 수는 없으니까.”
퀘스트는 깨겠지만, 프로듀서 엔딩은 안 볼 거다.
차라리 마일리지 받는 게 낫지.
“성재영, 비주얼 멤버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많이 노출할 필요가 있어요.”
나는 홍우선 프로듀서에게 성재영의 쓰임새를 알려준 뒤 홍보팀에게 확인했다.
혹시 내 관련 기사가 나왔는지.
나왔다면 최대한 빨리 파악해 달라고도 전했다.
‘이제 슬슬 나오겠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같이 숙소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김성호 기자가 만족하고 돌아갔다는 뜻, 그리고 곧 관련 기사가 나올 거라는 신호였다.
어떻게 나오려나.
-올리오스 윤건하 레프픽션으로 이적?
아니면
-열애설?
뭐가 나오든 상관없었다.
해당 기사가 나올 때를 대비한 준비는 다 해뒀고, 이미 홍보팀에게 전달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대비하지 못하고 얻어맞는 건 곤란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면 해당 이슈가 터지기도 전에 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깨달을 거다.
파파라치를 하기에 재미없는 그룹이라는 걸.
괜히 귀찮아지고, 별다른 일상이 없는 그룹이라는 걸.
그때 전화가 왔다.
-건하 군!
홍보팀 한석원 팀장이었다.
“네, 한 팀장님.”
-도스 패치에서 기사 띄웠는데, 바로 반박 기사 낼까?
“생각보다 빨리 터트렸네요. 어제 취재해 갔는데.”
-그만큼 급하다는 거겠지. 아니면 베일에 싸인 신비주의 아이돌이자 재벌 2세 윤건하의 특종에 홀렸다던가.
한석원이 말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30분 뒤에 바로 반박 기사 올려주세요. 그래도 도스 패치가 거짓 기사를 올렸다는 걸 인식시킬 필요는 있으니까요.”
너무 빨리 대응하면 오히려 각인시키기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그런데 대담하시네요.
“저를 노출한 거요?”
-예.
“그래야만 했으니까요.”
앞으로도 파파라치가 따라다니면 곤란했다.
우주나 정민이 특히 마음을 많이 쓰는 게 느껴졌다.
그게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둘 수 있겠냐.
그래서 황이서 프로듀서와 최강훈 대표, 마지막으로 멤버들의 허락을 받고 움직였다.
올리오스는 내 그룹이 아니니까.
우리의 그룹이었다.
하나의 팀.
내 실수로 모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그런 팀 말이다.
그래서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고, 아무래도 그게 제대로 성공할 모양이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보내주신 자료가 너무 많아서 기사 하나에 담기에도 어렵더라고요. 하하하.
그도 도스패치에 당한 게 많은지 시원하게 웃었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GH 엔터의 홍보팀이 여러 기사를 통해 해명글을 올렸다.
올리오스의 윤건하가 레프픽션의 트레블리를 개인적으로 후원 및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재정적인 이유로 데뷔가 미뤄지는, 그들의 잠재력을 보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것도.
그 과정에서 찍힌 사진으로 팬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을 사과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고 첨부했다.
트레블리의 노이즈 마케팅도 덩달아 이뤄졌다.
* * *
“야, 김 기자! 확실한 건이라며! 100퍼센트라고 했잖아! 이게 뭐야!”
“…….”
김성호는 불같이 화를 내는 곽인아 부장 앞에서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새끼, 내가 분명히 1월까지 조용히 철수하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듣고 사고를 쳐. 어?”
“분명 확실했는데….”
“GH랑 레프픽션에서 공개한 영상에는 직원이랑 사무적인 인사일 뿐이었잖아! 뭐가 확실한 건데? 어?”
“죄송합니다….”
김성호는 억울했다.
자기만 잘못했나?
기사와 사진을 보고 이거 될 거 같다고 동조한 게 곽인아 부장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고, 문제가 생기니 나 몰라라.
이제 나 혼자 처리해라 이거지?
‘치사한 인간.’
김성호 기자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가 분노한 만큼 곽인아 부장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책임지고 그만둬.”
“그만 두라니요. 고작 기사 하나 잘못 낸 겁니다.”
“그 기사가 누굴 저격한 기사인지 몰라?”
황룡그룹 회장의 아들 저격 기사였다.
분명 그쪽에서 경고까지 했다.
더는 윤건하에 대해 취재하지 말라고.
그런 상황에서 거짓 기사를 내버렸으니….
너무 딱딱 맞는 반박 기사를 보면 그쪽에서 자신들을 이용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평범한 오보면 내부 징계로 시말서 한 장이면 끝날 일이었다.
크더라도 감봉이 최대.
그러나 황룡그룹의 2세에 대한 기사는 얘기가 달랐다.
“방법 없다. 그냥 그만둬. 책임을 지고 권고 사직으로 처리할게.”
김성호 기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명백한 대실패였으니까.
반박 기사가 올라가고 1시간도 되지 않아 도스 패치의 기사는 내려갔고, 곧 오해였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도스 패치가 망신을 당한 날이라며 그간 그들에게 당한 사람들이 즐거워했다는 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