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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12화 (212/236)

제212화>

차트 줄 세우기 이후에 뭔가 특별히 달라졌나?

그런 건 없었다.

이전부터 우리는 주목받는 아이돌이었고 촬영지에서도 평가가 좋았으며, 스태프들은 성공한 아이돌에겐 박하지 않았다.

메인 PD부터 작가, 카메라 감독님에 음향 및 조명 감독님들까지.

모두가 최근에 핫한 아이돌인 올리오스에게 친절했다.

적어도 앞에서는.

‘뒤에서 어떤 얘기가 도느냐까지 신경 쓸 건 아니니까.’

모두가 우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무사히 끝났네.”

예능 촬영을 마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하하, 그런데 오늘 진짜 사람들 많더라. 안 그래?”

“응.”

나는 오늘 함께 예능 촬영을 나온 우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예능엔 나와 우주, 둘이서만 출연했다.

그렇다고 다른 세 명이 노는 건 아니었다.

호진과 성훈, 정민은 다른 예능 촬영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을 찾아가서 문제를 내고 퀴즈를 맞추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오랜만에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돌아다니며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신선했다.

“야외 촬영은 진짜 오랜만이었지.”

우주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흘리며 말했다.

이제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더운데, 밖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나면 온몸에 땀이 주륵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클로징 찍고 가는 건가?”

“15분 정도 쉬는 시간 줬으니까 이때 잠깐 쉬어야지.”

“후우, 죽는 줄 알았어.”

PD의 배려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녹화가 빨리 끝난 덕인지 클로징 전 쉬는 시간도 마련해줬다.

이 얼마나 친절한 배려인가.

“선배님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벤츠에 올라타 땀을 닦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촬영을 마친 걸그룹 후배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따로 유닛으로 둘만 나온 우리와 달리 6명 전원이 이번 촬영에 합류한 애들, 이름이 ‘스타라이트’라고 했던가.

별처럼 빛나는 아이돌이 되겠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떠올랐다.

종종종 우리들에게 달려온 스타라이트 후배들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우물쭈물 하는 모습이 신인의 풋풋함을 담고 있는 거 같아 보기 좋았다.

“다들 고생 많았어.”

우주가 그런 후배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얘들도 우리처럼 앨범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한 애들이었다.

이번엔 우리 말고도 패널들이 굳이 우리와 걸그룹 멤버들을 엮으려고 얼마나 밀어대던지.

예능을 위한 패턴이었고, 우리도 적당히 호응하고 말았었다.

너무 과하게 호응하다 보면 종종 팬들이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적당한 선에서 끊어내곤 했다.

예능을 위해, 카메라에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기 위해 완전히 거절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과하면 안 되는 그 아슬아슬한 선이 있었다.

나름대로의 고충은 있었다.

“고생했다. 스타라이트, 꼭 기억하고 있을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나는 고개를 숙이는 후배들을 보았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피로에 쩔어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뭐 하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녔을 게 분명했다.

힘들겠지.

신인이니까 거절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았을 거다.

스케줄이 아무리 빡세도 거절하지 못했을 거고.

최대한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식단에 운동까지 병행했을 거다.

관리를 받고 메이크업까지 한 덕에 부드럽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피로와 배고픔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클로징까지 15분 정도 남았는데, 배고프지 않아?”

“네?”

“배고프면 이 앞에 샌드위치 맛있게 하는데 있는데 하나씩 먹어. 커피도 마시고.”

“아, 괜찮습니다. 선배님.”

괜찮다고 말하지만, 눈에는 불타오르는 식욕이 보였다.

“하루 정도는 몰래 먹어도 돼. 내가 비밀 지켜줄게.”

옛날 우리의 모습이 생각났다.

빡센 식단에 정민의 요리 솜씨로 간신히 버티던 우리 말이다.

정민이 그 얼마 없는 채소와 닭가슴살로 기가 막히게 요리했었지.

정민도 없으니 얼마나 힘들까.

나는 혹시 스타라이트의 매니저가 볼까 얼른 두현이 형을 불렀다.

내가 간다면 이 짧은 시간에 다 사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

“형, 부탁 좀 해도 될까?”

“알았다. 금방 사올게.”

내가 카드를 내밀자, 잠시 고민하던 두현이 형이 내 카드를 받았다.

“원래라면 법인카드로 쓸 텐데, 굳이 건하가 준다니까….”

“너무 많이 사진 말고.”

두현이 형이 카드를 받자, 스타라이트의 멤버들이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기 시작했다.

“저, 저는 치킨 샌드위치요!”

“저는 BLT!”

안 먹어도 된다는 애들이 우르르 손을 드는 모습이 조금은 짠했다.

두현이 형이 주문대로 사온 샌드위치를 하나씩 받는 동안 나는 커피를 들고 PD를 찾아갔다.

마침 MC인 차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석 형님, PD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건하 군, 오늘 고생 많았어. 즐겁게 찍었다. 역시 올리오스야. 그림이 기가 막혀.”

담당 PD가 거들먹거리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아, 건하 동생, 고생 많았어.”

일전에 촬영으로 친해진 차주석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 보기 좋던데? 공연도 멋졌고, 노래도 좋고 말이야.”

“하하, 형님 감사합니다. 다음 공연에 초대해드릴까요? 형님이랑 PD님은 언제든 오셔도 오케이입니다.”

“정말 가도 돼?”

“미리 말씀만 해주시면 티켓 보내드릴게요.”

나는 수다를 떨며 그들에게 샌드위치랑 커피를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이게 뭐야?”

“이 근처에서 제일 유명한 카페에서 사온 샌드위치예요. 이 집 맛집입니다.”

“이야, 맛있게 먹을게.”

“두현이 형이 곧 스태프분들 것도 가지고 올 거예요.”

“다른 스태프들도 챙기려고?”

“아, 네. 단체 주문을 미리 한 게 아니라서 시간이 좀 걸리네요. 괜찮죠?”

“오오, 그런데 괜찮아? 부담되는 거 아니야?”

“이래봬도 재벌집 아들입니다.”

“이야. 잘 먹을게.”

PD와 차주석이 샌드위치를 받아 먹었다.

“참, 이번 녹화에서 말인데요.”

“뭐 궁금한 게 있어?”

“아까 촬영분 중에서 저희 파트 말입니다. 여기….”

애들이 먹을 시간은 벌어줘야지.

나는 차주석과 PD와 함께 오늘 있었던 촬영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벌었다.

“조만간 또 한 번 얘기해요. 저희가 스케줄만 되면 회식이라도 가는 건데….”

“하하, 괜찮아. 조만간 자리 한번 잡으면 되지.”

그렇게 차주석과 담당 PD와 대화를 끝내고, 클로징까지 찍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확실히 처음보다는 기운을 차린 듯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또 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스타라이트 애들이 도도도 달려오며 말했다.

“나중에 너희도 후배 생기면 이렇게나마 도와주면 돼.”

나는 그녀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건넸다.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

선배로서 해주는 도움.

이 이상 넘어가면?

우리나 그녀들이나 다 곤란해지는 일 터지는 거지.

열애설 같은 거 말이다.

굳이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현장에서 자주 보자. 힘내고. 포기하지 마.”

그녀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우리는 스태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타라이트 후배들이 떠나고, 우리도 차에 올라탔다.

“진짜 예쁘더라. 작년에 데뷔한 애들이래. 나는 왜 못 봤지?”

“왜, 관심 있어?”

“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옛날 생각나서. 형도 그래서 애들한테 먹을 거 사준 거잖아.”

“귀신 같네.”

“내가 또 우리 형들 마음은 기가 막히게 잘 알지.”

우주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PD님이랑 주석 형님이랑 촬영 얘기한 것도 그거 때문이지?”

“그렇지.”

“끄으윽! 우리도 진짜 많이 성장했구나. 후배들 챙겨줄 수 있는 선배가 됐네.”

우주가 안전벨트를 매며 추욱 늘어졌다.

“형, 우리 말이야.”

“응?”

“미국,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말을 마친 우주가 나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다른 건 아니고 우린 이미 국내에서 잘하고 있잖아. 굳이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우리 위치를 더 공고히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의외였다.

우주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게.

성훈만큼이나 세계 무대로의 도전을 기대했던 거 같았던 그가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놀라웠다.

내가 놀라서 대답하지 않은 걸 다른 뜻으로 오해한 걸까.

우주는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아닌데. 뭐, 그런 거 있잖아. 미국으로 가면 우리는 다시 도전자고 처음 시작하는 개척자 취급을 받겠지. 어쩌면 신인 가수들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차라리,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해외 팬덤을 쌓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자.

여기서 조금 더 기반을 다지고 확장하자.

너무 공격적인 거 아니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려고?”

“음…. 한, 일이 년 뒤?”

“그때가 되면 루케 크롬블 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여러 관심이 우리한테 쏠렸을 때인 지금이 최고의 기회야.”

미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

그러나 그 두려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주 네 말도 맞는 말이야. 우리가 지금 너무 공격적이긴 하지. 그런데 지금처럼 우리가 성공가도를 달릴 때 도전하는 게 더 시너지를 얻지 않겠어?”

“…나는 잘 모르겠어.”

우주는 여전히 생각을 굽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형들이, 프로듀서님이 하겠다면 따라갈게.”

이거 곤란한데.

이런 식이면 우리가 미국에서 조금이라도 지지부진할 때 문제가 터질 거다.

미국 진출은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팀원 모두의 화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단순히 회의만 한다고 우주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반대는 하지 않으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보여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나도 이 길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인지는 몰라. 하지만 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은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우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말로 설득하지는 않을게. 같이 가자. 옆에서 걷다 보면 이 길이 맞는 길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

우주가 말없이 나를 보았다.

“…알았어.”

꽤나 많은 고민이 담긴 대답이었다.

나 역시 그런 우주의 어깨를 보듬어줄 뿐이었다.

임두현 역시 묵묵하게 차를 몰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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