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최강훈 대표는 황이서 프로듀서의 맞은편에 앉아서 턱을 괴었다.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미국 활동 말씀이십니까?”
“그래.”
“개인적으로는 성공할 확률을 80퍼센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 성공의 기준은?”
“당연히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들어가는 거죠.”
“그럼 나머지 20퍼센트는 실패라는 건가?”
“아니요. 10퍼센트는 대성공 할 확률입니다.”
황이서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성공의 기준은 빌보드 차트 1위?”
“네.”
“그럼 실패할 확률은 10퍼센트라는 거겠네.”
“맞습니다.”
“어디에서 기인한 확률인가?”
황이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경험입니다.”
“경험이라…. 한국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한 건가?”
“예, 물론 미국 쪽은 대표님이 더 자주 나갔기에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옆에서 보고 배운 게 있잖습니까?”
“황 피디 실력이야, 굳이 말할 필요 없긴 하지.”
최강훈은 자신감 넘치는 프로듀서 황이서를 응시했다.
“그 높은 성공률은 루케 크롬블 때문인가?”
“아닙니다.”
단호하고 빠른 대답.
당연히 그런 거물의 도움 때문에 자신감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럼 그렇게 높게 책정한 이유는 뭐야?”
“대표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올리오스 애들이 가진 매력이요.”
“훌륭한 애들이지….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다고? 나는 몇 년은 더 갈고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요. 지금이니까 가능한 겁니다. 성공을 이어왔던 지금까지의 경험이 자신감을 줄 거예요.”
“…….”
침묵하는 최강훈 대표를 보던 황이서가 말했다.
“대표님, 처음 애들을 영입할 때, 기억하십니까?”
“당연하지. 우주, 호진, 정민, 성훈이 그리고 건하까지. 하나하나 전부 다 기억하고 있네.”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들 첫인상이 어떠셨습니까?”
최강훈은 옛날 애들을 처음 영입할 때를 떠올렸다.
‘아, 안녕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독 자신감이 없던 우주.
말도 잘하고 특유의 에너지와 친화력이 있었지만, 노래와 춤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려울 거라 여겼다.
빛나는 재능이 있었고, 가능성도 있었지만 다른 연습생들과 비교해서 특출난 점이 당장 눈에 띄지는 않았다.
강점인 언변과 친화력은 확실히 강력한 무기였지만, 그걸 써먹는 것도 사실상 그룹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나 가능한 얘기였다.
무너지는 그룹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크려면, 단순히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부족했으니까.
‘이상할 정도로 연습생 내부 평가는 좋았지.’
그래서 다른 연습생들이 계약 해지를 당하며 소속사를 나갈 때도 우주는 끝까지 남아 데뷔조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호진이는 지금 와서 이렇게 말이 많아질 줄은 몰랐지.’
처음에 봤을 때는 춤을 잘 췄지만, 그뿐.
너무 낯을 가려서 무대 위에 오를 수는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막상 무대에서 누구보다 빛났지.
여전히 말수는 적었지만, 데뷔 3년 차가 다 되어가는 이런 상황에서 호진이는 본인의 단점을 보완하는 건 물론, 더더욱 노력하며 팬들에게 매력을 어필했다.
‘정민이야 가진 재능이 워낙 출중했지.’
작곡을 할 수 있는 멤버가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본인의 노력도 상당했고, 발전이 보이는 연습생이었기에, 많은 연습생들을 누르고 당당히 데뷔에 성공했다.
‘성훈이는 가창력 하나로 이미 모든 걸 압도했었고.’
혹여나 그룹이 잘못돼도 솔로 데뷔가 가능한 친구였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완벽한 멤버는 아니었다.
노래를 잘하는 성훈은 춤이 아쉬웠고, 정민의 보컬은 매력 있지만 서브로도 아쉬운 부분이 점이 많았다. 호진이는 낯을 너무 가렸고, 우주는 예능감 외의 부분이 전반적으로 부족했었다.
“다들 이렇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 못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건하도 마찬가지였고.”
훌륭한 재능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황이서에게 추천했지만, 이렇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은 못했다.
“그런 애들입니다. 누구의 예상도 벗어난 성공을 할 수 있고, 그만큼 성장해온 애들.”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다?”
“예. 심지어 루케 크롬블도 도와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 4년, 아니 3년만 지나도 슬슬 군대 얘기가 나올 겁니다. 그때 다들 입대하고 지나면 사실상 미국 진출은 포기해야 할 겁니다.”
군대.
한국 남자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국방의 의무.
그것이 방점이었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최강훈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 확실히 타이밍이 잘못 맞으면 2년을, 아니 최대 4년은 완전체로 모이지 못할 테지.”
“예.”
“후우…. 이번 미국 도전은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도전이라는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올리오스는, 국내에서 활동을 이어간다면 성공은 보장됐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활동.
최강훈 대표도 저들이 성공할 거라는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대표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졌다.
‘만약 실패한다면? 성공하더라도 이도저도 안 될 정도로 애매하게 성공해 버린다면?’
‘그로 인한 손실은?’
‘공백기가 지나고 실패해서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 정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생각해야만 했다.
모든 걸 책임져야만 하니까.
그렇기에 대표였다.
최강훈 대표는 황이서를 보았다.
“애들은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런가?”
“네. 물론 망설이는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만.”
“주류 의견이라는 거군.”
“맞습니다.”
최강훈 대표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알았어. 미국 활동을 시작하지. 얘기 들어보니 이미 황룡엔터 쪽에서는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군.”
윤건하의 미국 활동에 최대한 힘을 쏟겠다는 얘기를 직접 전해 들었다.
금액적인 투자와 인력 충원까지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는 게 황룡엔터 측의 얘기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번엔 자네가 미국에 가야겠어.”
“…제가 말입니까?”
“올리오스 담당은 자네였지 않은가. 이제 더 큰물에서 놀아봐야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몬스터즈가 미국 활동을 할 때보다 더 바빠질 것만 같았다.
* * *
앨범, <3RD>의 타이틀곡 <나비>는 국내의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수록곡의 순위는 여전히 높았다.
3주 연속 줄 세우기는 어려웠지만, 5곡이 여전히 TOP10 안에 들어가 있었다.
사실상 올리오스 열풍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잘 되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후우, 힘들다.”
대기실로 내려온 정민이 추욱 늘어졌다.
이번 활동의 마지막 음방 공연이 끝났기 때문일까.
조금은 풀어진 채로 소파에 누웠다.
이제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뭐랄까.
군대에서 짬을 많이 먹은 상병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실세의 여유가 느껴졌다.
대선배들이 들어오면 모를까, 그러지 않는다면 저 자세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민이 너도 많이 솔직해졌구나. 예전에는 맨날 허리 펴고 앉았던 거 같은데.”
“아, 그때 기억 나. 정민이 형, 후배들한테 멋진 선배가 되고 싶어서 맨날 멋진 척했잖아!”
우주가 지적하자, 정민이 시선을 피했다.
“그건 그때고.”
“우우, 초심 잃었다.”
“안 잃었어.”
“후배들이나 팬들이 앞에 있으면 목소리 엄청 멋지게 꾸미면서, 아, 얘들아, 안녕?”
우주가 정민의 목소리를 따라내자, 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우주야, 하지 마.”
“왜, 초심 잃은 민이 형한테는 충격 요법이 필수야!”
“이 자식이!”
“으악! 초심 잃은 민이 형이 괴롭힌다악!”
정민이 허우적거리며 우주를 붙잡으려고 하지만, 날쌘 우주를 잡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기운 차렸나 보네.’
나는 우주를 보며 생각했다.
미국 진출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말했던 때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꽤나 기운을 차린 듯 했다.
억지로 힘이 나는 척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주라면 형들이 어색해지는 걸 싫어하는 마음에, 그럴 수도 있는 아이었으니까.
‘잘 버텨주길 바라야지.’
결국 이전에 다짐했던 대로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니까.
그때였다.
우우웅.
전화기가 울렸다.
-홍우선입니다.
이제는 완전히 황룡엔터의 프로듀서가 된 홍우선.
트레블리의 성공 이후 자신감을 찾은 그는, 최근 트레블리는 물론 레프픽션과 협업하여 새로운 아이돌을 기획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조만간 황룡엔터가 레프픽션을 인수할 거라는 말도 도는 걸 보면.
‘황룡엔터 쪽과 트레블리는 이제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갈 거야.’
그리고 이번 미국 진출에 조력을 해주겠다고도 했다.
-결정됐습니다. 현재 GH엔터의 최 대표님과 협상 완료했고, 조만간 출장 나갈 거 같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루케 크롬블님과 무대, 정말 멋있었습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핸드폰에 뜬 창을 보았다.
[메인 퀘스트: 미국 진출]
[올리오스를 미국에 데뷔시키세요.]
[성공 시: 100 마일리지 포인트]
루케 크롬블과 헤어지고 미국 진출을 마음먹었을 때 새롭게 뜬 퀘스트.
오랜만에 등장한 메인 퀘스트였다.
돌발 퀘스트도 아니고 메인 퀘스트.
그 뜻은 하나였다.
내가 잘 가고 있다는 것.
진엔딩을 향해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적어도 방향만큼은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거 때문이라도….’
절대 미국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애들아! 고생 많았다!”
그때, 이두현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들어올 때까지 우주와 정민은 끝까지 투닥거리고 있었고, 성훈은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읽고 있었으며, 호진이는 혼자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너희는 여전하구나. 성공해도 변한 게 없네.”
“두현이 형, 변한 게 없다뇨! 정민이 형, 완전 초심 잃었어요.”
“야, 우주 너는 초심 안 잃은 줄 알아?”
귀여운 막내와 투닥거리던 정민이 숨을 헐떡거렸다.
“진짜 빠르네. 허억, 허억.”
그런 정민을 보던 두현이 말했다.
“중대 발표가 있다.”
“뭔가요?”
“대표님 허락도 떨어진 안건이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미국 진출이 확정되었다. 원래는 사무실에서 얘기해줄까 생각했는데, 그때쯤에는 기사로도 뜰 거 같아서 미리 얘기한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조금은 당황한 듯 했다.
“이제 한동안 쉬고, 휴식기에도 있는 일정 소화하면서 스케줄 조정 할 거다. 이번 앨범 <3RD>를 영어 버전으로도 새로 각색할 거고 아마 많이 바쁠 거야.”
방금 전까지 웃으면서 떠들던 정민과 우주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이두현의 말을 들었다.
“제대로 준비해서 이번엔 미국에 보여주자. 알았지?”
“네!”
모두의 표정이 비슷했다.
결연한 전사의 표정.
그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모두였다.
“시작하기 전에 파이팅이라도 할까?”
내가 손을 내밀며 말하자, 멤버들이 차근차근 내 위에 손을 올렸다.
“두현이 형도 와요. 같이 의지를 다져야죠.”
“알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잘해보자. 우리가 미국에서 보여주자. 선배들이 보여주셨던 것처럼.”
“오케이.”
“열심히 하자.”
“후우.”
멤버들이 굳게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을 보며 우리들이 매번 외쳤던 시그니쳐 인사말을 외쳤다.
“일, 이, 삼!”
“All we once!”
“올리오스! 파이팅!”
“악! 악! 악!”
모두 의욕이 넘쳤다.
의욕만으로 미국을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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