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8화 (8/224)

#008. 이런 누추한 곳에 (2)

유지원이 누구인가 하면, 2020년 최고의 남자 솔로를 꼽으라고 하면 누구라도 제일 먼저 떠올릴 국민 남동생. 남자 솔로 아이돌의 신화 그 자체였다. 수십 종이 넘는 CF에서 보여 줬던, 분명 그 얼굴이었다.

‘저 얼굴 하나로 팔아먹은 스킨이 몇만 병인데 그걸 기억을 못 하겠어.’

연예인들조차도 TV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연예인 중의 연예인. 그 유지원이 여길 나왔었다고?

나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을 비비며 번호 아래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139번]

[유지원]

‘진짜 유지원이네.’

보통 프로그램 방영 당시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어도 나중에라도 뜨면 화제가 되기 마련인데.

너무 초반에 떨어졌거나 아니면 통편집당하는 바람에 출연했다는 사실 자체가 숨길 필요도 없는 비밀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와, 여기서 유지원을 다 보네. 2022년이면 전용기를 끌고 다니는 대스타의 햇병아리 시절이라니.

눈을 비비고 봐도 믿기질 않아서 나도 모르게 그쪽을 너무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

이상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유지원을 에워싸고 서서 협박 같은 걸 하고 있었던 듯한 연습생이 나를 돌아보았다.

“…….”

아무래도 주위 시선도 있고 오디션을 앞두고 대기하는 자리이다 보니 대놓고 시비를 걸진 못하고, 뭔데 쳐다보냐 눈으로 욕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러면 누구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지.’

나는 수소문해서 만들었던 될성부른 싹 망태기 리스트를 머릿속 한구석으로 슥 치워 버리며 입을 열었다.

“음, 오지랖인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그거 같은 소속사 출신끼리라도 바꾸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놈들이 뭐 때문에 저렇게 옥신각신인지는 뻔했다. 오늘은 비대면 심사로 통과시킨 연습생들을 심사 위원들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날.

보통 동영상 오디션 따위에 그 정도로 공을 들여 조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동영상에서 보여 준 실력과 실제 실력에 차이가 큰 연습생들이 더러 있었다.

‘영상에서는 천상의 재능이었는데 실제로 불러와서 시켜 보면 딴판인 녀석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그래서 프로그램 제작진 측에서도 ‘진짜’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허들을 대면 오디션에 마련해 두었다.

기존 히트곡들을 10곡 정도 후보 리스트를 추려 준비해 오도록 공지한 것이다.

그러고는 기본적인 소양을 검증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심사받을 곡을 당일 랜덤으로 두 가지를 뽑게 하고 그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의 댄스곡 아니면 후크 송이라서 다 연습만 했으면 큰 상관 없을 텐데 말이지.’

그 안에서 또 뭘 고를 게 있다고 바꿔 달라고 실랑이를 벌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신데요?”

내게 룰 위반을 지적당한 연습생 중 한 명이 곧장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슨 상관이긴. 너희들이 내 될성부른 싹 망태기 안의 떡잎을 괴롭히고 있었잖아.

유지원의 곱상한 얼굴도 잔뜩 굳은 것이, 누가 봐도 편한 상황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한번 뽑은 거면 뽑은 거지, 바꾸고 싶다고 바꾸면 다른 사람들은 바보예요? 그리고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정론대로 입바른 소리를 하자 시비라도 걸린 줄 알았는지 스태프가 가까이 다가왔다.

“혹시 무슨 문제 있으세요?”

인턴에 가까운 신입 스태프인지 앳된 얼굴의 직원이 스태프 명찰을 찬 채 우리 쪽으로 와서 물었다.

“쳇.”

여기서 더 일을 끌어야 도움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유지원을 협박하던 연습생 중 한 명이 성질이 사나워 보이는 놈에게 귓속말로 뭔가 속닥거렸다.

“진짜? 그렇게 유명해?”

“어,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해. 일 키우지 말고.”

아마 내가 NO뉴페이스 출신이라는 걸 알려 준 듯했다. 놈이 낯빛을 싹 바꾸며 스태프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저희끼리 준비해 온 거 얘기하느라 잠깐 목소리가 커졌어요.”

“네, 안쪽에서도 들릴 수 있으니 대화하실 때는 조용히 부탁드릴게요.”

“넵, 죄송함다.”

그렇게 이목이 한번 쏠리고 나니 더는 바꿔 달라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라 생각했는지 자기들끼리 자리를 피해 다른 쪽으로 가 버렸다.

“앗….”

사건의 당사자였던 유지원만 빼고. 아니? 잠깐만. 이렇게 그냥 두고 가는 거야? 나는 느닷없이 유지원과 단둘이 되어 버린 상황에 어색하게 유지원을 쳐다보았다.

“…….”

별로 좋지 않은 일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것이 부끄럽기라도 했는지 귀때기가 아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유지원이 내게 할 말이 있는지 입을 우물거리다가 내 표정이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아 보였는지 휙, 고개를 숙였다.

‘뭐지…?’

내 표정이 많이 별로였나? 유지원의 뜻밖의 태도에 나도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혹시 과한 오지랖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혹시 할 얘기 있으세요?”

“어, 그게, 그러니까….”

유지원이 한참을 머뭇거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이제 조금 답답한데…? 이럴 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게 나았다.

“혹시 내가 잘못 끼어든 거예요? 그냥 바꾸고 싶었어요?”

그러자 유지원이 곧장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건 진짜 아니에요…!”

그럼 뭐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듯 고개를 까딱이자 유지원이 다시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저… 패… 패….”

호명 순서가 랜덤이라 언제 끌려 들어갈지 모르는데.

머뭇거리는 유지원 너머로 보이는 오디션장 입구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내 시선의 의미를 눈치챈 유지원이 후, 짧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외쳤다.

“패, 팬이에요!”

“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유지원이 두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얼굴로 겨우 말을 이었다.

“N, NO뉴페 연말 공개 영상 처음 올라왔을 때부터 팬이었어요…! 도와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아아. 생각해 보니 지금 나는 확실히 연습생들 중에서는 나름 연예인 축에 들어가는 위치였다.

개중에는 진짜 데뷔를 해 본 연습생도 섞여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진짜 연예인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메이저 소속사의 핵심 연습생 출신인 거랑 중소형에서 데뷔했다가 망해서 다시 도전하는 입장인 거랑 취급이 다를 수밖에 없지.’

실패 경험이 없는 내 쪽이 좀 더 높은 급으로 평가될 터였다.

‘사실은 여러 번 망한 신세였지만.’

그건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알 길이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좀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아. 네, 고마워요.”

여유 있는 미소를 띠고 대답하자 유지원이 다시금 흥분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뇨! 제, 제가 감사하죠! 곡도, 꼭, 제가 하고 싶었던 건데, 도, 도움 주셔서 감사해요!”

아이고야. 이거 이래서야 왜 떨어졌는지 알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삼키며 유지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오디션에만 집중하세요. 화이팅.”

일단 호감은 산 것 같으니 적당히 마무리하고 다른 녀석들은 어떤지 더 둘러보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유지원이 두 주먹을 꼭 모아쥔 채로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데뷔하기에 너무 어수룩한 것 같지.’

먼 훗날에 대박이 터질 싹이라도 지금은 저렇게 맹해서야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였다.

‘다른 녀석들은 어떤가….’

나는 다시금 벽에 붙어 서서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쪽에 마련된 의자가 있는 대기실에서는 내부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모니터로 보여 주고 있었다.

‘나도 저기 가서 모니터링이나 조금 해 볼까.’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남들은 뭐 하나 지켜보러 안쪽으로 들어간 탓에 강당에는 사람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슬쩍 모서리 쪽의 의자를 빼서 앉자 화면 속의 연습생이 잔뜩 긴장한 티를 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 번 더, Illusion, 흔들리는 불빛]

[내게 좀 더 다, 다가와, one step]

[지, 금 바, 바로, Hold on-]

안무를 같이 하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너무 떨려서 보는 사람이 괴롭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흔들리는 게 불빛만이 아닌 것 같은데.’

[거기까지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결국 완창도 못 하고 심사 위원에 의해 제지된 오디션은 곧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다음은 좀 잘하려나? 누가 나올지 가벼운 기대감과 함께 모니터를 지켜보던 그때.

‘흠?’

화면에 비친 건 내가 조금 전 선곡 바꿔치기의 위기에서 구해 준 그 유지원이었다.

‘뭐, 잘하기야 잘할 텐데. 지금은 노래도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 못할 시기려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심사 위원이 곧바로 간주를 재생시켰다. 딱 봐도 위축되어 보이는 소심한 태도에 모두가 기대 없이 시큰둥하게 비웃던 찰나, 유지원이 첫 소절로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Everything I have just crushed when I first met you-]

선곡 목록 중 유일한 팝송이었던 곡이었다. 유지원의 앳된 얼굴과 청량한 음색, 그리고 수줍게 붉어진 두 뺨이 너무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이래서 바꾸기 싫어했던 거구나.’

이따금씩 부끄러운 듯 쑥스럽게 짓는 미소까지 너무나 완벽한 청량 팝송 보컬이었다.

[Cannot control myself, like sudden accident-]

[Cannot control myself, falling falling falling-]

노래가 중반쯤에 들어서자 간주 중에는 슬쩍 스탠딩 마이크에 손을 대고 까딱거리며 머리를 쓸어 올리기까지 했다.

딱히 노리고 한 퍼포먼스는 아닌 것 같았으나 특유의 연하미 넘치는 분위기와 무섭게 잘 어울렸다.

“와….”

“분위기 진짜 좋다.”

다른 연습생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한마디씩 말을 얹고, 마침내 완곡에 성공하자 여기저기서 작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화면 속 유지원은 간주가 끝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인 다음 다시 고개를 들다가 머리를 그대로 마이크 스탠드에 들이박았다.

우당당탕, 스탠드가 넘어가면서 벌어진 소동에 유지원이 얼굴이 빨개진 채로 안절부절못하자 다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확실히 스타의 재목은 다르구나.’

질투를 느낄 새도 없이 그저 감탄만이 나왔다. 이어진 짧은 평가에서 호평만이 이어지자 잔뜩 혼이 난 사람보다 부끄러워하는 모습까지.

누군가는 짜증이 나서 확 밀어 버리고 싶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일 모습이었다.

역시는 역시다. 왜 회귀 전에는 존재감도 없이 탈락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잠시, 곧바로 다른 연습생의 오디션이 시작되어 나는 오늘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되새겼다.

유지원 하나만 볼 게 아니라 전반적인 수준과 누굴 눈여겨볼지를 봐야지.

‘정신 차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다음으로 또 괜찮은 재목이 나와 주기를 기다리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열 명쯤 이놈도 패스, 저놈도 영 아니네, 얘도 패스를 반복할 즈음.

딱 봐도 다른 녀석들보다 머리 반개 이상은 커 보이는 훤칠한 키의 연습생이 연단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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