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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1화 (11/224)

#011. 이러려던 건 아닌데 (2)

나는 영인을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로 데리고 갔다.

워낙 한산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은 노트북으로 일하는 듯한 직장인들 말고는 없었다.

“뭐 마실래? 내가 낼게.”

아직 잔고가 궁할 시기는 아니니까 카페 정도야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는데 그 순간 영인이 눈을 번뜩였다가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 그럼… 저 혹시 음료 말고 다른 것도 시켜도 돼요?”

“음료 말고 다른 거?”

“네, 저 점심을 대충 먹어서….”

“아아….”

영인이 대답과 동시에 바라본 건 각종 베이커리와 푸드류가 가득 진열되어 있는 쇼케이스였다.

그래 뭐, 열아홉이면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인데 밥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겠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

그리고 나는 곧 그 말을 후회하게 됐다.

“앗, 그러면….”

영인이 바로 눈을 빛내며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저 로제쉬림프베이컨파스타볼이랑 치즈올리브포카치아, 음… 그리고 아몬드몽블랑이랑 메이플생크림바게트, 또 BLT샌드위치, 치킨브레스트랩, 초코생크림푸딩이랑… 아, 저거도 맛있겠다. 바스크치즈케이크 하나씩 주시고요, 음료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 시럽 많이요!”

미친놈아, 아주 메뉴판을 불러라, 불러. 나는 기겁하며 물었다.

“아니, 그렇게 많이 사 준다고 하진 않았어.”

그러자 영인이 곧장 무슨 장화 신은 고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맑은 눈동자를 초롱초롱 깜빡여 대며 대답했다.

“아, 진짜요? 한국은 어느 나라랑 다르게 식사 대접만큼은 엄청 잘해 준다고 해서 기대했었는데….”

여기가 무슨 중동이나 중국인 줄 아냐? 배 터지게 먹여야 주인장이 모욕을 당하지 않는 걸로 알게? 나는 당장 표정을 찌푸리려다가 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소 지었다.

“아니…. 다 못 먹을까 봐 그렇지. 남기면 낭비잖아. 나는 원래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서….”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굳이 억지로 다이어트를 위해 쫄쫄 굶는 성격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혼자 자란 탓일까?

먹는 거로 경쟁해 본 적도 없고 뭐든 항상 여유 있게 주어진 편이라 식탐은 확실히 적은 편이었다.

많이 먹으려면 먹을 수 있긴 한데…. 속이 꽉 찬 더부룩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과식하기는 싫었다.

‘너 진짜 깍쟁이처럼 예민하다.’

한창 먹을 나이에, 친구들에게 우우 놀림 받았던 것이 순간 떠올랐다.

나는 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선까지만 먹는 게 좋았다. 내가 괜히 고상한 척하는 게 아니라 니들이 과하게 잘 먹는 거라고.

항상 이렇게 스스로를 변호해 왔던 내 앞에서, 영인이 해맑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저 진짜 잘 먹는 편이라.”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그래 보였다. 키가 대체 몇 cm야? 나도 작은 편이 아닌데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 보니 못해도 187cm 이상은 되어 보였다.

나는 영인을 쭉 한번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며 다른 핑계를 댔다.

“너 오늘 오디션 붙었으니까 촬영 준비해야 하지 않아?”

체중 관리해야 할 텐데 이렇게 먹어도 되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러자 영인이 다시금 해맑게 웃었다.

“저 원래 먹는 대로 다 에너지로 써서 살 안 쪄요.”

그것도 그래 보였다. 저 큰 키로 사방을 종횡무진하며 뛰어다니는데 칼로리 소비가 안 되면 그게 비정상이지.

“…….”

“저 호주로 돌아가면 다시 못 먹을 것 같아서 먹어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안 돼요?”

거짓말하지 마. 호주라고 디저트 파는 카페가 없을 리가 있냐.

마음 같아서는 응, 안 돼, 돌아가, 하고 싶었지만….

‘…괜히 아쉬운 기억 남길 필요는 없지.’

겨우 이런 일로 거리감을 만드는 것도 우스운 일일뿐더러, 고작 7만 원 정도 금액으로 이만한 인재의 호의를 살 수 있다면… 싼 편….

까지 생각이 닿으니 괜히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투자한 만큼 확실하게 뜯어낼 테다.’

나는 음흉한 속셈을 다짐하며 대답했다.

“그래, 먹고 싶은 대로 시켜. 어휴.”

그러자 영인이 활짝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면 치즈망고눈꽃빙수도 같이 주세요!”

정도를 모르는 놈. 나는 영인에 대한 첫인상을 한국말을 수상하리만치 잘하는 혼혈 또라이에서 양심 없는 또라이로 바꿨다.

***

“그러니까 형은 오디션 나오려고 소속사 연습생을 그만두신 거예요?”

영인이 눈앞에 놓인 새하얀 우유 얼음의 산을 푹 떠서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나는 조금 전에 본 쇼케이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우리 둘만 앉아 있는 6인 테이블을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무래도 개인 신분으로 준비하는 게 편하니까.”

데뷔에 실패했을 때는 돌아가서 바로 데뷔조에 합류해서 나올 수 있는 소속사가 있는 게 유리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 서바이벌 오디션의 성공에 사활을 건 입장이었다. 실패하면 죽는다고 생각해야지. 실패했을 때의 경우의 수는 고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영인이 그 점을 단박에 파고들었다.

“우와. 데뷔 못 하면 어떻게 하시게요?”

이 새끼 이거 지금 나 멕이는 건가? 나는 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것을 참으며 대답했다.

“못 할 것 같지 않으니까?”

“오올, 자만?”

…? 뭐라는 거야.

“뭐?”

내가 곧장 눈썹을 움찔거리자 아하하, 영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죄송해요. 저 평생 호주에서만 살다가 한국에 온 게 처음이라 가끔 단어 뜻을 잘못 알고 있을 때가 있더라고요.”

거짓말 같은데…. 의심스럽지만 달리 문제 삼을 만한 증거가 없었다.

나는 화제를 영인에게로 돌렸다.

“호주에서만 살았다면서 한국말 엄청 잘하네?”

영인이 천연덕스럽게 빙수 위의 토핑을 숟가락으로 가득 퍼서 먹으며 대답했다.

“아아. 아버지 빼고 외가 식구들 전부 호주에서 같이 살았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완전 한국분이시라 영어 기초 회화 정도밖에 못 하세요.”

사연을 듣자 하니 일가족 전체가 부모님의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호주로 농업 이민을 간 케이스였다.

이모와 이모 부부도 한국에서 교육 과정을 마치고 대학교까지 나온 토종 한국인에 어렸을 때 주로 돌봐 주신 조부모님은 영어를 거의 못 하는 환경.

학교는 현지 학교를 다녀서 본인은 영어와 한국어 모두 모국어 수준으로 유창하게 쓸 수 있었지만 엄마 아빠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족들은 한국어만 사용한다고.

‘그럼 아까도 그냥 둘러댄 거 아냐?’

조금 전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아아…. 그래서 한국말을 그렇게 잘했구나.”

“아무래도 집에서 매일 쓰니까요.”

“그럼 한국엔 가족들이랑 같이 온 거야?”

큰 의미 없이 던진 호구 조사에 영인이 호쾌한 표정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저 혼자 왔어요. 합숙도 못 하고 떨어지면 비행기표 안 끊어 준다고 헤엄쳐서 돌아오래요, 하하!”

이게 웃으면서 할 말이냐? 나는 할 말을 잃고 시선을 피했다.

***

영인과의 짧은 미팅… 이라기보다는 식사 대접을 마친 나는 거의 녹초가 되어 카페를 빠져나왔다.

건진 건 죄 TMI뿐인데 털린 건 무슨 대단한 접대라도 하고 나온 금액이었다.

‘아, 저 이거 가면서 테이크아웃해서 마시고 싶은데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금 계산해 달라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카운터를 가리키는 태도에 나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짜 범상치 않은 미친놈이다, 이거.’

생긴 건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금발의 혼혈 왕자님처럼 생겨서는 입을 열 때마다 가벼움이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깬다.’

신비주의 캐릭터를 덮어씌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면 차라리….

‘팀 내에서 개그와 엉뚱을 담당하는 외국인 멤버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엉뚱도 지나쳐서 통제가 안 되면 계륵인 법.

정말 별거 없는 스몰토크로 끝난 식사를 끝내고 남은 건 레드 카펫처럼 긴 영수증뿐이었다.

‘다음에 또 연락해도 돼요?’

영인이 호구라도 잡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물었지만 나는 단박에 잘라 냈다.

안 돼. 돌아가.

‘촬영장에서 보자.’

이놈에 대한 파악은 이미 끝났다. 더 붙잡을 수도 없게 빠른 걸음으로 자취방에 돌아오자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미션 클리어!]

[튜토리얼 미션 ▷ 우리여야만 하는 이유]

[어그로 지수가 (높음) 상태로 상승하였습니다.]

[첫 상승 보너스로 코인 1개가 지급됩니다.]

어디가?

내가 눈을 의심하며 시스템창을 바라보자 곧바로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하이라이트 장면을 다시 보기 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보면 참고라도 할 수 있겠지. 선뜻 예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작은 재생 화면 위로 제작진을 향해 도발했던 장면이 나타났다.

[저는 희극인이 아니라 가수가 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실력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아아. 하긴. 적당히 납득하고 있던 그때 곧바로 영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이어졌다.

[아니, 그렇게 많이 사 준다고 하진 않았어.]

[아, 진짜요? 저 한국은 어느 나라랑 다르게 식사 대접만큼은 엄청 잘해 준다고 해서 기대했었는데….]

‘…….’

이쪽 독자들은 이런 게 재밌는 건가.

그냥 내가 엿 처먹는 게 재밌는 거 아냐?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채로 재생 화면을 종료했다.

그러자 케이 피디가 기다렸다는 듯 이어서 안내했다.

[모든 튜토리얼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으므로 신규 기능 <등장인물>이 개방됩니다.]

등장인물? 하여간 컨셉 한번 열심히 지킨다 시니컬하게 보고 있으니 새로운 상태창이 떴다.

[등장인물]

[- 현재 등록된 인물 (3)]

[▶겟 데뷔 위드 미 참가자]

[▷[???]

유지원(?)]

[▷[???]

표영인(?)]

[▷[???]

조항준(?)]

하나는 좀 별로 안 보고 싶은 이름이 껴 있긴 한데.

[???]

과 (?)으로 표시된 부분을 손끝으로 쿡 눌러 보니 각각 [순위 평가 미실시] [등급 평가 미실시]라는 설명이 나타났다.

[등록된 등장인물은 교류 정도에 따라 각종 현황 및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래서야 정말 무슨 어드벤처 공략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

문제라면 그 게임이 내 인생 그 자체가 걸려 있는 현실이라는 거였다.

[곧바로 메인 미션 개시에 앞서 또 다른 정식 기능인 코인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오. 드디어. 마침 기대하고 있었던 참에 나온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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