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5화 (15/224)

#015. 네가 왜 여기서 나와 (2)

[오늘 이곳에 꿈을 이루기 위해 자리해 주신 연습생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데뷔를 거머쥐기 위한 뜨거운 경쟁! 도전하실 각오는 되어 있을까요?]

MC가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넘기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네!!!”

여기저기서 휘파람을 비롯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어 보려는 시도가 보였지만 나는 침착하게 옅은 미소를 띤 채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좋습니다! 스테이지 위까지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 꼭 마지막까지 간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곤 곧바로 무대 위의 조명이 더욱 환히 바뀌며 객석에도 불이 훤하게 들어왔다.

[우선 오늘 이 영광스러운 첫 시작에 함께해 주신 멘토단을 소개하겠습니다.]

멘토석의 첫 자리에 앉아 있는 심사 위원 겸 멘토들을 보니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몇 명은… NO에서 연습할 때 몇 번 마주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미지의 인물도 한 명 섞여 있었다.

‘마선경?’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멘토는 정말 내 14년하고도 플러스알파의 연예계 인생을 통틀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시선을 빼앗긴 그때,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

나는 손을 들어 얼굴로 곧장 쏘아져 내려오는 빛을 가렸다.

이 흐름은 분명….

맥락을 파악하기를 잠시,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비안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용감하게 1위의 자리에 앉은 서인수 연습생! 소감 한마디 듣지 않고 넘길 수 없겠죠?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내가 곧장 대답하지 않고 가볍게 입꼬리를 당겨 웃어 보이자 비안이 한 번 더 멘트를 던졌다.

“어때요? 이 자리,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나는 그제야 비안이 건넨 마이크를 쥐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서인수입니다.”

급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연습생 생활이 길었어요. 오래 연습한 만큼, 기다려 주신 팬분들께 저를 보여 드리기 위해 이제는 정말 데뷔를 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말은 즉, 이 자리를 내줄 생각은 없다는 말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서인수 연습생?”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영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몇몇은 명백한 적의를 내비쳤다.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온전히 실력으로 나를 이기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본인들이 드라마 속 악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권모술수를 꾸미고 있겠지만….

‘미안한데 나도 물러설 곳이 없어서.’

나는 최대한 거만해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팬 여러분들, 그리고 여기 계신 멘토님들, 연습생분들이 기대하시는 만큼의 모습을 보여 드릴 생각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되면, 이 자리를 내어드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이 정도는 자신감으로 괜찮겠지. 나는 자기가 말해 놓고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악의적으로 편집된다고 해도 표정이 거만해 보이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수줍게 웃으며 마이크를 든 손을 내리기 무섭게 아래에서 오오,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직 아진만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각도에서 쳇, 하고 혀를 찼다.

비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영인에게로 옮겼다.

“그러면, 표영인 연습생은 어때요?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영인이 나를 흘끔 올려다보더니 힘차게 소리 질렀다.

“어…. 하하,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놈이?’

나는 내 얼굴을 보며 씨익 웃는 영인의 이마에 남몰래 핏대가 섰다.

영인의 위로는 나밖에 없으니 날 이기고 1등을 하겠다는 말을 저렇게 웃으면서 날 보고 한다고?

일부는 비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사전 오디션에서 영인의 무대를 봤던 연습생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두 분 다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데요! 여기 유지원 연습생은 얼굴이 아주 터질 것 같아요! 괜찮은 것 맞습니까?”

비안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지원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곳곳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마저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는지, 활짝 웃어 보인 비안이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좋습니다! 스스로를 최상위권으로 지목한 연습생 세 분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아주 기대가 되네요!]

다시 무대 중앙에 자리한 비안이 양팔을 활짝 벌리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겟 데뷔 위드 미! 입소에 앞선 등급 심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등급 심사는 기본적으로 이름순, 소속사별 진행이었다. 미리 각오를 했는지 ㄱ으로 시작되는 소속사 출신 연습생들부터 쪼르르 알아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결과는 D 두 명, F 한 명. 삼인조 전원 그리 눈에 띄는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저게 D라고?”

연습생들 눈에는 아닌 것 같았지만. 원래 자기가 경험하기 전에는 기준이 가늠이 안 되는 법이니까.

‘나는….’

서인수니까 앞으로 최소 20명 정도는 더 나오고 내 차례가 되겠군.

이후로 나오는 팀 모두 높아 봐야 B, 평균적으로 C, D만 잔뜩이었던 그때.

네 팀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눈에 띄는 팀이 나타났다.

[정은찬(22) & 박하연(19)]

[Credit Monster]

두 사람의 네임 태그 아래 붙어 있는 소속사를 확인한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크몬에서 아이돌도 키우나?”

그 누군가가 입을 틀어막은 동시에 모두가 머릿속으로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하다고.

크레딧 몬스터.

대한민국 힙합 레이블 명문 다섯 손가락 안에 꾸준히 손꼽히는 전통 있는 강호.

대표이자 메인 프로듀서인 글렉은 같은 방송사에서 하는 힙합 경연 프로그램, Kill & HIP의 주요 멘토 중 한 명이었다.

‘언제는 대중성에 맞추느라 음악성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으면 죽일 것처럼 참가자들을 몰아세우더니.’

결국 돈이 되는 것 같으니까 아이돌 판에도 뛰어든다 이거지.

따로 오디션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으로 보아서는 아직은 시험 단계에 있는 것 같았다.

‘자체적으로 스카웃해서 키우긴 했는데 비주얼이 괜찮아서 한번 실력 검증할 겸 내보내기로 했을 수도 있고.’

두 명 중 한 명은 일단 멀리서 봐도 비율이 상당히 좋았다.

‘얼굴도….’

저만하면 나쁘지 않지. 키 큰 쪽인 박하연은 호감형의 상당히 훈훈한 인상이었다.

정은찬은 살짝 비실비실하게 생기긴 했는데… 저런 인상을 쥐 상이라고 좋아하는 수요가 꽤 탄탄했다.

피부 뽀얗고, 가로로 긴 눈에 약간 예민해 보이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까지.

키가 큰 편은 아니어도 마니아층이 있는 외형이었다.

[간단히 자기소개 좀 해 주시겠어요?]

네 명의 멘토 중 랩 멘토를 담당하는 젊은 남자 래퍼, 카나스가 단박에 레이블을 알아보고 눈을 빛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크레딧 몬스터 연습생, 박하연-]

[정은찬입니다.]

‘정은찬은 스크린으로 보니 동안이기까지 하네.’

더더욱 수요가 있는 캐릭터성이었다.

[반갑습니다. 우선 준비해 온 심사 무대부터 부탁드릴게요~]

실력이 탄탄하다면 쓸데없이 자기소개로 말이 길어질 이유가 없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다짜고짜 시작된 무대였음에도 두 사람은 퍼포먼스 중심의 미러 댄스를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짧게 준비한 댄스 퍼포먼스가 끝나고 기다렸다는 듯 비트가 깔리자 분위기가 한 층 더 고조되었다.

‘잘하네.’

크몬에서 내보냈으니 랩 잘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로우 톤을 담당하는 하연의 저음과 은찬의 깔끔하게 꽂히는 날카로운 딕션의 조화가 아주 좋았다.

[방금 보여 주신 무대, 자작곡 맞죠?]

무대가 끝나자마자 멘토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자 은찬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끝?

여기서는 좀 더 자기 PR을 해도 괜찮을 텐데. 괜히 내가 아쉬움을 삼키던 찰나 하연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은찬 형이 작곡과 편집을 굉장히 잘하는 형이라서요. 앞으로도 멋진 무대와 프로듀싱 보여 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연이 대신 PR을 떠먹여 주는 동안 은찬은 내내 특유의 굳어 있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볍게 까딱일 뿐이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1% 아슬아슬하게 아쉬운 상황. 곧이어 하연은 A, 은찬은 B 등급을 받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이후로 이어진 무대는 7연속 꽝이었다.

‘이놈도 저놈도 진짜 쓸 만한 놈이 없어!’

이러니까 프로그램이 망했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암전이었다.

‘대한민국에 이렇게까지 아이돌 인재가 없을 수가 있냐….’

나는 속으로 연거푸 한숨을 삼키며 침착하게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앞에서 연달아 최악의 무대를 보일 때마다 바로 아래에 앉아 있는 두 놈이 어깨를 들썩이며, 오, 헉, 우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 바람에 내 신경만 더 예민해진 상태였다.

리액션 하는 것 자체는 좋다 이거야. 하지만….

‘좀…. 다들 지켜보고 있으니까 친한 척 좀 자제하라니까.’

영인이 자꾸 같은 소속사에서 나온 막역한 사이처럼 지원에게 말을 걸려 드는 바람에 나는 몇 번이고 영인의 어깨를 손으로 눌러야만 했다.

그렇게 나의 인내심이 한계를 시험받고 있던 그때, 겨우 숨통을 트이게 해 줄 만한 인재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블레인온 제현호 연습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훤칠한 키, 딱 떨어지는 선 굵은 이목구비에 낮은 목소리. 흔치 않은 비주얼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잘생겼다.”

이런 인재가 짝수 팀에 숨어 있었던 건가. 이 정도로 비주얼이 독보적이면 서서 뚝딱거리며 입만 벙긋거려도 화제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화제가 안 됐다는 건….’

방송에서 어지간히도 꼭꼭 숨겼거나 화제가 되기도 전에 조항준이 날아올라서 묻혀 버렸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실력이 정말 못 내보낼 정도로 최악이었거나.

‘어느 쪽이냐, 대체….’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기다린 심사 무대는 생각 이상으로 괜찮았다.

‘진짜 괜찮은데?’

1인 무대라서 허전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과 달리 낮게 허밍 하는 듯한 음색의 싱잉 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 멋진 무대를 반감시키는 악재가 하나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릴게요~]

보컬 멘토를 담당하는 중년의 여자 트레이너가 마지막 소감을 부탁한 그때, 현호가 한 건 그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이었다.

[끝?]

멘토가 황당하다는 듯 묻자 현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도 수 초, 무대 위에 멀뚱히 선 제현호는 말이 없었다.

‘정은찬은 양반인데…?’

이 자식, 말주변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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