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뭐가 또 자꾸 (2)
‘어떻게 찍혔으려나….’
걱정 반 기대… 아니, 기대 같은 걸 할 리가 없잖아. 걱정만 100%인 마음으로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길 기다린 순간.
“어…?”
카메라가 정말 기가 막힌 드리프트 실력으로 다른 쪽으로 앵글을 돌렸다.
‘…….’
이거 진짜 통편집된 거 아냐? 뒤이어 다른 연습생들도 조금씩 0.3초씩이나마 단독 샷이 잡혔다.
모두가 완벽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만한 부분은 있었다.
비주얼이 나쁘지 않다거나, 부담스럽긴 하지만 열심히는 한다거나.
개중에는 내가 눈여겨보던 연습생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슬슬 끝날 때인데.’
이대로 정말 통편집인가? 정말 순간 캡처라도 단체 미션곡 MV에 얼굴이 보이는 거랑 안 보이는 거랑 차이가 큰데….
아쉬움에 미련이 밀려오던 그때, 화면 한가운데에 제일 짜증 나는 놈이 떡하니 등장했다.
“아하하, 와, 표정 봐.”
“개웃기네, 진짜.”
웃기냐, 이게. 내 신경을 계속 박박 긁어 대는 장본인, 조항준이었다.
‘이놈에 비하면 아진은 차라리 양반이지.’
걔는 나랑 마찰이 있는 거고 최소한 프로그램을 살리면 살렸지 망칠 요소는 아니다. 아차 하면 저놈과 같이 데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아찔하긴 하지만….
‘어차피 활동 기간은 1년이니까.’
1년만 눈 딱 감고 버틴다고 생각하면 X같은 새끼랑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어.
하지만 조항준 이놈은 실질적으로 활동에 해를 끼치는 악재라는 점에서 차원이 달랐다.
‘아진 저놈이 아무리 싫어도 개그맨이랑 같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고.’
저 컷 좀 편집으로 잘라 내고 유지원이나 넣고 싶은데.
아쉬움에 쯧, 혀를 찼다. 이제 무대는 정말 막바지, 유지원이 원샷을 받을 가능성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아쉽지만 별수 없나.’
포기하던 그 순간.
“…어?”
“오, 대박.”
예상치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내내 그 누구보다 가슴 졸이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유지원이 입을 틀어막았다.
“…!!??”
그도 그럴 것이.
영상의 마지막, 가장 빛나는 장면에 자신의 얼굴이 보란 듯이 비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엔딩 표정 진짜 좋다.”
영인이 순수한 감상을 내뱉었다.
화면 안의 지원은 리허설 때 버벅대고 당황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부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 산뜻하고 풋풋한 표정, 이마에서 반짝이는 땀과 묘하게 거친 숨결까지.
사람들이 원하는 완벽한 아이돌의 모습이었다.
“헉, 어, 어어…!”
지원이 이제야 상황이 받아들여진 듯 얼빠진 감탄사를 내질렀다.
처음에는 시기와 질투의 눈빛으로 엔딩의 주인공을 쳐다보던 연습생들이 지원의 반응을 보고 곧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따로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저 어수룩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반응을 보고 어떻게 더 나쁜 소리를 할까.
자기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고 눈꺼풀을 비벼 대는 지원에게 다가간 나는 손목을 붙들고 말렸다.
“눈 그만 비벼. 메이크업받은 거 눈에 들어가면 결막염 생겨.”
“아. …네!”
지원이 화들짝 놀라 눈가에서 손을 떼더니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그,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걸 왜 나한테…. 표영인 그놈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나한테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열심히 해요.”
엔딩을 장식한 건 순전히 지원 스스로 이룬 성취였다. 나한테 감사할 게 아니었다.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애써 웃으며 풋풋하게 미소 짓는 지원은 억지로 꾸며 내지 않은 10대 그 자체였다.
물론 현실의 10대들이 전부 저렇게 개안 비주얼로 생기진 않았지만.
아이돌로서 데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재능 넘치는 10대 소년.
‘방송에서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이상향적 이미지겠지.’
아이돌 수명은 생각 이상으로 짧다. 물론 일부 히트 그룹은 오래오래 사랑받으며 30대 이후에도 활동을 지속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의 이야기니까.’
대부분은 20대 중반에 수명이 끝난다. 데뷔 시기가 보통 10대 후반임을 생각하면 10년도 되지 않는 셈이다.
일부 대박 케이스들이 30대, 40대까지 살아남아 활동하는 것을 보고 요즘은 30대도 아이돌 하는데?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보이는 것만 보고 하는 얘기고.’
1%도 되지 않을, 대중의 눈에만 자주 보이는 케이스를 모두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니 방송에서도 최대한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내세울 스타를 10대 중에서 찾으려 하겠지. 최대한 어릴 때 데뷔시켜서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얼굴을.
그런 면에서 아진이나 유지원 같은 어린애들이 유리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화면도 잘 받았고, 예쁘게 잘 나왔네. 나는 안도하면서도 약간은 부러운 마음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식당으로 이동해서 식사하시면 됩니다!”
지겹도록 길었던 촬영이 끝나고, 드디어 하루를 마치는 시간이 다가온 그때.
나는 누군가 불쑥 연습생들이 모여 있는 대열을 이탈하여 세트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
남들보다 반 뼘씩 큰 키,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 체격만으로도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연습생은 많지 않았다.
‘제현호…?’
쟤 왜 저러는 거지? 아까 연습 때에 이어 돌발 행동을 하는 모습에 나는 눈을 의심했다.
저쪽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이상하게 여긴 순간 나는 조금 전 모니터링했던 영상에 제현호가 단 한 번도 잡힌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통편집당한 것 때문에 자존심 상했나?
물론 풀샷으로는 군데군데 잡히긴 했다. 얼굴이 면봉만 해서 문제지.
그건 솔직히 나중에 데뷔하고 나서 팬들이나 ‘얘가 여기 있었어요!’ 하고 찾아보는 거지.
의미는 조금도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그래도 저렇게 뛰쳐나가는 건 좀…. 여기 나이 제한 만 15세부터였으니까 다들 고등학생 이상일 거 아냐.’
마음은 알겠지만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남의 일 보듯 쯧쯧 혀를 찬 그때 한동안 안 보였던 시스템창이 팟, 하고 눈앞에 나타났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 ▷ 도망자를 잡아라]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서브 에피소드? 처음 듣는 단어 조합에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 기울어지자 케이 피디가 등판했다.
[안녕하세요, 서인수 님.]
별로… 안녕하다고 하고 싶지 않은데. 지난번 세계관 혼자 쓰나 사태 이후로 케이 피디는 내 안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였다.
회귀라는 기회를 준 건 충분히 감사한 일이나 불공정 계약을 했다는 찝찝함은 가릴 수 없었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채팅창만 바라보고 있자 케이 피디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서브 에피소드란 저희 계약의 주된 목표인 성공적인 데뷔를 이뤄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뜻합니다.]
“그래서요?”
내가 거의 나한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케이 피디가 설명을 이었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을 클리어하실 경우 다양한 지표 보정과 보상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제야 피드백에서 줄줄 듣고 있던 얘기가 생각났다.
내가 좀 더 주도적으로 뭔가 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미션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자기 주도적인 것 같진 않다만.
가만히 내 할 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뭐 하나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나을 듯했다.
“미션에 실패했을 때 부작용, 뭐 그런 건 없는 건가요?”
내가 식당으로 이동하기 직전, 조심스럽게 묻자 케이 피디가 대답했다.
[여느 다른 행동과 마찬가지로 행동의 결과가 지표에 영향을 미칠 뿐 별도의 불이익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삽질하면 노잼이라고 어그로 지수 깎이고, 튀는 행동을 하면 이상한 짓 했다고 개연성 지수 깎이는 정도라는 거군.
그러면 충분히 뛰어들 만했다.
[예]
나는 재빨리 미션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이어 미션에 대한 구체적인 클리어 조건들이 떴다.
[2시간 이내로 등장인물 ‘제현호’를 찾아 프로그램에 복귀시킬 것]
[잔여 제한 시간 1:59:58]
“…!?”
나는 갑작스럽게 등판한 제한 시간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제한 시간이 이렇게 짧다고는 말 안 했잖아!
케이 피디는 실패해도 별도의 불이익은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영향이 없을 리 만무했다.
내가 여기서 똑바로 클리어를 못 하면….
‘무능하다고 뒤지게 까이겠지.’
제현호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피디에게 가서 하차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든 아니면 호스텔에서 뛰쳐나간 것이든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아오, 진짜. 이렇게 갑자기…!’
오늘 하루 종일 개고생하며 연습에 리허설에 본촬영에 시달린 만큼 저녁만큼은 평화롭게 먹고 싶었단 말이다.
나는 산새처럼 날아가 버린 평화로운 저녁을 떠나보내며 연습생 대열에서 이탈했다.
“…? 형 어디 가요?”
의아하게 생각한 영인이 뭐 재밌는 일 있나 나를 붙들었다. 그러나 영인까지 데리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잠깐 화장실 좀.”
“거기 화장실 아닌데?”
“그런가 보다 해. 저녁 안 먹을 거야.”
나는 영인을 보지도 않고 머리를 마구 헤집어 쓰다듬은 다음 튀었다.
***
나는 서둘러 제현호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무대 뒤편을 가리는 거대한 배경 세트 너머로 스태프들만 이용하는 문이 있었다.
‘이런 데는 또 어떻게 찾은 거냐.’
툴툴 불평을 삼키며 으슥한 복도를 헤치고 나가자 불 꺼진 공간이 나타났다.
‘여긴….’
왜 스태프 전용이라 붙어 있나 했더니.
그 스태프가 ‘겟 데뷔 위드 미’의 스태프가 아닌 모양이었다.
“…….”
온갖 폐가구에 오래된 침구, 커튼이 쌓여 있어 냄새가 진동하는 여기는 호스텔을 리모델링하며 나온 폐기물을 쌓아 놓은 공간이었다.
‘너무 어두워서 뭐 보이는 게 없는데….’
핸드폰은 기본적으로 기숙사에 두고 일정 외 시간에만 사용하도록 허용되어 있었다.
플래시라도 켜서 빛을 밝히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의지할 거라곤 군데군데 붙어 있는 비상구 방향을 알리는 야광 스티커뿐.
으스스한 분위기에 팔뚝에 저절로 소름이 돋았다.
‘이래서야 꼭… 무슨 담력 테스트라도 하는 것 같네.’
나는 어둠 속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나아가다가 불쑥 발에 무언가 걸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뭐지? 뭔가 가느다란 실타래가…. 아무 생각 없이 발에 걸린 걸 손으로 더듬던 나는.
“!!!!!”
한 움큼 걸려 올라온 머리카락에 숨넘어갈 것 같은 비명을….
“!!!!! 씨… X, 하…!”
지르려다가 간신히 참아 냈다. 간신히 붙잡은 이성의 끈이 필요 이상의 소란을 막아 냈다.
발에 걸린 무언가를 떼어 내기 위해 미친 듯이 발길질한 나는 건너편에서 들리는 소리에 2차로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뭐 하세요?”
삐딱하면서도 협조성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낮은 목소리. 나보다 먼저 이쪽으로 향했던 제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