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26화 (26/224)

#026. 그건 아니지만 (1)

당황한 기색의 영인에게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잖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시작선이 다른데.”

단체곡 MV부터가 애초에 차등인 동시에 차별이 베이스로 깔린 채 편집되는데 공정한 시작일 리 없었다.

모든 방영분은 의도를 가지고 송출된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사람들이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자기 자신을 어떻게 어필할 것인지는 개인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잘 생각해 봐.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고, 어떻게 해야 방송에 나갈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좋은 관심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이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어차피 같은 출연자인 마당에 나라고 남 얘기하듯 말할 건 아니지.’

잘난 척 충고하고 있지만 어쩌면 긴장하고 이 악물어야 할 건 영인이 아니라 내 쪽인지도 몰랐다.

영인은 제로부터 시작해서 의외로 이런 원석이 있네? 하고 발견되어야 할 입장이고….

‘나는 조금이라도 못하면 물어뜯길 테니까.’

사람들이 갖는 기본적인 기대치부터 차이가 나니 당연한 일이었다.

내 말에 영인이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털썩 침대 위에 머리를 대고 드러누웠다.

“그럼 지금은 일단 잘래요.”

잘 생각했다. 나는 조용히 내 쪽에 있는 전등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그래. 잘 자라.”

나는 영인이 부스럭부스럭 잠자리를 정돈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가져갔다.

내 순위는 당연하게도 1위였다. 그다음은 아진.

그 외에도 굵직한 소속사 출신이나 아역 배우 출신 등 다양한 커리어가 있는 연습생들이 상단에 배치되어 있었다.

‘저놈도 이 정도면 개인 연습생 중에서는 꽤 선방한 편인데….’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서 만족을 못 하는 건가. 당연하게도 조회 수는 실력순이 아니었다.

등록용 프로필 사진이 잘 찍힌 사람, 혹은 독보적으로 이상하게 나온 사람 등등 변수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조회 수로 10위권 안에 들어 있는 연습생 중, 연습할 때는 눈에 띄지 않아 아예 처음 보는 이름도 있었다.

[주혜성]

‘누구지…?’

단체곡 MV 찍을 때도, 녹음할 때도 못 들어 본 이름인데.

프로필 사진은 그냥 무난무난했다. 비주얼은 이만하면 합격점이지만 그렇다고 비주얼만으로 상위권에 들 만큼 엄청난 미모는 아니었다.

‘그럼 왜….’

곧장 포털 사이트에 주혜성을 검색해 본 나는 어렵지 않게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검색 결과] 주혜성

[활동 이력]

2008년 3월 보이 그룹 크라임B 데뷔

2011년 1월 보이 그룹 크라임B 공식 해체

2012년 11월 보이 그룹 원챈스 데뷔

2014년 6월 보이 그룹 원챈스 공식 해체

‘…….’

너무 망해서 이런 그룹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그룹에 두 번이나 속한 경력자였던 것이다.

심지어 크라임B는 위키에조차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정말 웬만하면 위키에 멤버나 공식 프로필 정도는 등록되어 있을 텐데.

그걸 할 의지가 있는 팬이 한 명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내가 주혜성을 알지 못한 이유를 뒷받침했다.

‘뭐…. 이런 케이스가 한둘이겠냐.’

나처럼 데뷔도 못 하고 연습실에서만 썩어 간 연습생도 농담 보태서 10만 명은 될 텐데.

온갖 소규모의 소형 기획사에서 데뷔만 하고 사라진 그룹은 또 얼마나 많겠어.

나이는 올해로 27.

군대를 다녀온 걸 감안하면 사회인으로서는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돌로서는 아니지.

연습생으로는 거의 수명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회귀 전의 내 나이가 28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이 사람 또한 데뷔가 진짜 목적은 아닐 것이다. 배우로 전향하기 전의 홍보 차원의 출연이겠지.

나 또한 외모가 이대로 일반인으로 살기 아깝다며 배우 전향 제안을 제법 받았었다.

‘아무래도 배우가 아이돌에 비해 연령 제약을 덜 받으니….’

하지만 나는 연예인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가수로 성공하고 싶었다.

시작은 길거리 캐스팅이었어도 데뷔를 준비하는 동안 내가 무얼 잘하고 무얼 하고 싶은 건지는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노래를 하고 싶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벅차게.

내가 얼굴만 그럴듯한 퍼포머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것도 고집이라면 고집이겠지만.’

사람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 하나 정도는 있는 거잖아. 그게 나한테는 무대였고 노래였던 것뿐이다.

‘어쨌거나… 잘됐으면 좋겠네.’

회귀 전의 나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여서 그런지 마음이 쓰였다.

나는 한참을 영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아침, 2차 미션을 앞두고 연습생들은 첫 번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별도의 투표가 진행된 것은 아니므로 순위에는 변동이 없지만 등급이 재편성되었다.

S등급 8명, A등급 8명, B등급 16명, C등급 24명, D등급 24명 F등급 19명.

등급당 정원 수는 동일했으나 연습생들의 수에는 변화가 있었다.

[현재 생존자 수]

96명

하위권을 중심으로 그사이 세 명의 하차자가 나왔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하에서의 결정일 터였다.

프로그램이 3개월 정도 방영하는 것을 감안하면 데뷔까지 남은 시간은 100일 남짓.

99명 안에서 8위 안에 들 승산이 도저히 없을 것 같으면 빠르게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반대로 말하면….’

데뷔 가능성이 있고,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연습생들은 더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겠지.

그 안에는 당연히 나도 포함이었다.

[자, 지금부터 등급 변동을 발표하겠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완벽한 컨디션을 자랑하는 비안이 무대 한가운데 서서 등급이 상승한 연습생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이상은 등급이 상승한 연습생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름이 불리지 않은 연습생들은 일순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하는 등급이 하락한 연습생입니다. 오천중 (C), 강찬형 (D)….]

마지막 한 명의 이름이 불릴 때까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차 미션부터는 방청객 투표가 순위 재평가에 반영됩니다. 오늘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꿈을 향해 더욱 정진하는 모습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해도 그게 쉽겠냐.

나는 희비가 교차하는 연습생 무리에서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삼켰다.

[그러면 지금부터 첫 번째 탈락자와 생존자를 가를, 2차 미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2차 미션은 여러분들의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포지션 평가입니다.]

비안이 연단의 한가운데에서 빙글 한 바퀴를 돌며 뒤편의 스크린을 가리키자 팟, 하고 간단한 설명 요약도가 나타났다.

[보컬]

[퍼포먼스]

[힙합]

‘올 게 왔군.’

[지금부터 간단한 미션을 통해 각 부문별로 4개 조, 총 12개 조로 조 편성을 진행할 겁니다. 모든 연습생분들께서는 2주 동안 8인이 한 팀이 되어 각 포지션에 맞게 조화로운 무대를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12개 조면… 꽤 빡빡하겠는데. 한 회차당 6팀씩 무대를 보여 준다고 해도 최소 2주 방영분이다.

96명이나 되는 연습생들의 준비 과정을 모조리 보여 줄 수는 없으니 방송에 나가는 것부터 경쟁이 치열할 것이 예고되었다.

[무대는 앞으로 2주 후, 금요일 오후 4시부터이며, 현장 참관객 투표가 순위에 반영되니 많은 유의 부탁드립니다.]

현장 참관객 투표가 이번 미션부터 반영되는 거면… 시청차 투표는 3차 미션부터 반영된다는 소리였다.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시청자 투표를 메인으로 두는 플롯에서 노리는 건 어쨌든 투표 수익일 텐데.

방송국의 높으신 분들끼리 알아서 비즈니스 모델을 잘 검토하고 결정했겠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4차 미션에서 데뷔조가 결정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잠깐 곰곰이 따져 보려던 찰나 내내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로 규정을 설명하던 비안이 갑자기 씩 웃으며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그런데 여러분! 아침 식사는 든든하게 잘하셨나요?]

“…?”

갑자기 아침 얘기는 왜? 뜬금없이 던진 물음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린 순간 누군가 인파 속에서 외쳤다.

“아니요! 배고파요!”

“아하하, 뭐야.”

그러자 비안이 기다렸던 반응이라는 듯 입꼬리를 활짝 당겼다.

[식사만으로는 부족할 우리 연습생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국민 매니저님들을 대신하여 부상을 준비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등 뒤로 PPL일 것이 분명한 피자 브랜드의 로고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와, 대박!”

“감사합니다!”

[조 결정 미니 게임에 최선을 다해 주시고 이후 준비된 간식 시간을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비안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미니 게임 진행을 위해 세트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뀐 장소는 꼭대기 층의 강당. 지하 강당과는 다르게 아래에 푹신한 고무 마감 처리가 되어 있었다.

성인이 데굴데굴 굴러도 큰 부상을 입지 않을 것 같은 장소 선정.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뻔했다.

굴러라!

‘하…….’

슬쩍 카메라 뒤에 서서 팔짱을 낀 메인 PD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2차 미션의 과제는 심플했다.

각 부문별로 커버곡이 두 개씩 주어진다. 각 곡별로 A조 B조로 나뉘어 현장 투표로 승패를 가린다.

문제는 12개의 조 모두 8명이라는 인원 제한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원하는 부문의 원하는 곡을 원하는 멤버들과 커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

본격적으로 조 결정 게임이 시작되기 전, 내 옆쪽에 서 있던 영인이 가볍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너 어디로 갈 거야?”

보컬, 퍼포먼스, 힙합 어느 한쪽도 부족함이 없는 녀석이니 어딜 들어가도 잘하긴 하겠지만.

이 녀석이 보컬을 택하리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어쨌든 이놈이랑 같은 조가 되면 한 명 정도는 내 발목을 잡지 않겠구나 안심할 수 있으니까.’

나의 그런 미약한 기대를 영인은 아주 매몰차게 내동댕이쳤다.

“저 퍼포요. 형은요?”

나한테 그걸 물어서 뭐 해. 나는 아쉬움을 숨기며 대답했다.

“나는 보컬.”

“그럴 것 같았어요.”

“너도.”

그럼 남은 건 지원이랑 제현호인가.

지원이는 당연히 보컬로 가야 하고, 제현호는…. 슬쩍 고개를 들어 제현호가 있는 방향을 보자 우연인지 아니면 일부러 나를 본 건지 시선이 마주쳤다.

‘퍼포로 가요, 퍼포로.’

나는 입 모양을 벙긋거리며 제현호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놈이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된 미니 게임은 의자 뺏기.

게임의 룰은 심플했고 나도 피지컬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만큼 어렵지 않게 보컬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아니었다.

“…!!!!”

나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원을 보며 미간을 쥐었다.

‘너어는 진짜….’

이놈을 진짜 데리고 가, 말아. 나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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