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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47화 (47/224)

#047. 천재성의 대가 (2)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형 안무 진짜 괜찮았어요. 괜히 비안 선배님도 제일 좋은 안무로 꼽은 게 아니니까….”

일단 급한 불은 꺼야겠다 달래 주려니 주혜성이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아, 미안…! 내가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구나….”

네, 맞아요. 하지만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아뇨, 괜찮아요. 사람이 항상 신나는 얘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경 안 써요, 저는.”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

이번 미션 진짜 어떻게 하냐. 2주 동안 팀을 유지할 수나 있을까?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이 혼란에 정점을 찍은 건 그 직후 울린 노크 소리였다.

‘누구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주혜성이 먼저 문밖을 향해 물었다.

“누구세요?”

그러자 문 너머에서 깔끔하게 떨어지는 단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저 박하연인데요.”

박하연? 나는 걔가 누구… 까지 생각했다가 크몬 콤비의 동생 쪽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바로 대답했다.

“아, 네네. 나갈게요!”

정리하던 짐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당기자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의 박하연이 나를 맞아 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여러모로 당황한 내색을 숨기지 않은 데다 혈색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내가 침착하게 묻자 박하연이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대답했다.

“그…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

무슨 사과? 나는 문 앞에 걸쳐 선 채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무슨 사과요?”

이 녀석이랑 나는 지금까지 뭐 하나 접점으로 겹친 게 없는데 웬 사과?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나 들어 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은찬 형이 조별 회의 하면서 좀… 여러모로 폐를 끼쳐 드렸을 것 같아서요.”

그건 맞긴 한데. 그 사과를 네가 왜? 나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하연을 올려다보았다.

“왜 하연 씨가 사과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은찬 형이 대신 사과해 달라고 보낸 거예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묻자 하연이 곧장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은찬 형 사과를 왜 박하연 씨가 해요?”

하연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은찬 형이 좀 강하게 나오시긴 했죠. 뭐… 당장 사과받을 마음도 없거니와 은찬 형은 하연 씨랑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던데요.”

지금까지 보아 온 정은찬의 행태로 보았을 때 놈이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본인이 생각이 없는데 남이 와서 사과하는 게 무슨 소용이지?

나는 괜히 비꼬는 말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켰다.

얼떨결에 내가 하연을 괴롭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마음 써 준 건 알겠어요.”

내 입에서 겨우 긍정적이라고 할 만한 말이 나오자 하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미안한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예상하시는 것처럼 지금 팀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아주 잠깐 화색을 띠었던 하연의 낯빛이 다시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일단 형 쪽이 확실하게 계륵인 건 알겠고.

‘동생 쪽은 어떠려나.’

처음 받았던 인상 그대로, 천재이긴 하지만 사회성은 개나 줘 버린 형과 그 뒤치다꺼리나 하러 따라 보낸 동생 콤비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동생 쪽도… 마냥 뒤치다꺼리만 하기엔 아까운 느낌인데.

일단 피지컬이 좋았다. 훤칠한 키에 호감형인 인상. 거기에 아직 나이가 어려서 앳돼 보이는 것은 물론, 무대에서 팬들을 내려다보며 짓는 환한 웃음까지.

그야말로 선량한 인상의 참한 미청년 그 자체였다.

‘래퍼로 데뷔하기엔 너무 아까운 비주얼이란 말이지.’

하지만 지금 하는 꼴을 봐서는 은찬 형 떨어지면 저도 안 할래요,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이게 단순히 나의 추측일지 아니면 합리적인 예측일지 좀 더 판단 근거가 필요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잠깐 따로 얘기 좀 하실래요?”

그러나 장소가 썩 마땅치 않았다. 연습실은 사람이 들어가면 즉시 자동 카메라가 돌아가는 곳이다.

정은찬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나는 흘끔 주혜성을 돌아보았다.

“아.”

어색한 분위기 속에 주혜성이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매점 좀 다녀올게.”

데뷔와 해체를 반복하면서 짬이 차긴 했는지 눈치는 빠른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아냐, 바람도 좀 쐬고 들어올게.”

주혜성이 눈에 띄게 쭈뼛거리며 박하연에게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들어와서 잠깐 얘기 좀 해요.”

이제 뭐라고 말을 꺼내지…. 나는 반대편 침대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하연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은찬 형이랑 많이 친한가 봐요?”

시작은 취조가 아닌 가벼운 스몰토크부터였다.

***

‘이러려던 게 아닌데.’

낮의 조별 미팅에 이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늦어도 한참 늦어 버린 후였다.

“그때 형이 클라우드에 공유했던 믹테 반응이 얼마나 좋았냐면요, 해외 레코드사에서도 혹시 같이 일해 볼 생각 없냐고 연락이 와서 저희 대표님이….”

하연으로부터 은찬의 이야기를 30분째 듣고 있으려니 나는 이제 레퍼토리를 다 외울 지경이었다.

‘아주 은찬 장군님이 5살에 비트로 섬진강을 건너는 기적을 선보이시었다 하지 그러냐.’

작작 해…. 첫 10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었으나 별로 호감이지도 않은 인물의 찬양 연대기를 30분 넘게 듣고 있으려니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왔다.

“알겠어요. 은찬 형 진짜 대단한 거 저도 알겠으니까….”

“네, 맞아요. 진짜 대단하죠! 원래 겟데뷔 말고 다른 프로그램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 때문에 같이 나와 준 거라서….”

‘어?’

나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튀어나온 출연 비화에 눈을 크게 떴다.

이거 미션 해결한 거 아닌가? 맞지 않나?

나는 줄줄 좋을 대로 또다시 은찬이 말은 그렇게 해도 얼마나 정이 많고 속이 깊은 사람인지 늘어놓는 하연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그러곤 곧바로 시스템창을 확인했다.

[등장인물 ‘정은찬’의 출연 이유를 밝혀낼 것]

[잔여 제한 시간 65:45:11]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있나.

하연을 돕기 위해 나왔다는 건 하연이 생각하는 표면적인 이유고.

또 다른 진짜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걸 어느 세월에 알아내지.’

일단 박하연에게서 최대한 힌트를 얻어 내는 수밖에 없는데….

“형이 좀…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걸 잘 못 해서 오해를 많이 받긴 하지만… 진짜 나쁜 형은 아니에요.”

그래, 세계 제일의 폭군도 누구 한 명에게는 세상 좋은 사람일 수 있는 법이다.

“알겠어요.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좀 물어봐도 돼요?”

기왕에 분위기가 쓸데없이 가벼워진 김에 실없는 소리인 척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하연 씨는 은찬 형이 같이 안 나왔으면 출연 안 하려고 했어요?”

과연 하연이 어디까지 솔직하게 대답할 것인가. 나는 숨을 죽이며 반응을 살폈다.

***

그렇게 길고 길었던 학부형… 아니, 보호자 면담이 끝난 건 장장 한 시간 후였다.

연습 시간을 빼앗긴 것은 물론 주혜성은 졸지에 몇 번이나 자기 방문 앞을 서성이며 대화를 엿들어야 했다.

내용이 궁금해서나 혹은 다른 음침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대체 언제쯤 방으로 들어가도 될지 확인하기 위해서.

“형도 고생 많았어요.”

“아니야…. 내내 촬영장이랑 연습실에 있었는데 산책로 가서 바람 쐬니까 좋더라.”

그런 것치고는… 마지막 20분 동안에는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네 번이나 들렸다.

내가 미안해져서 얼른 대화를 끊고 싶을 정도였다.

아무쪼록 혜성의 희생 덕분에 은찬과 하연에 대해 알게 된 건 크게 네 가지였다.

먼저 크레딧 몬스터에 먼저 들어간 건 은찬, 하연이 인터넷에 올린 노래방 영상을 보고 은찬이 실제로 랩 하는 걸 들어 보고 싶다고 대표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자길 발굴해 준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뭐, 맞는 말이기도 하지.

은찬은 원래 데뷔할 생각이 없었고 프로듀싱 전문으로만 나설 예정이었다고. 그러나 아이돌 전문이 아닌 크레딧 몬스터에서 하연 혼자만 내보내는 것은 불안하다고 판단.

은찬을 설득해서 동반 출연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데….

‘좀 짚이는 부분이 있단 말이지.’

사람의 자질을 잠깐 본 걸로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냐마는… 은찬은 춤에는 썩 재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죽도록 연습해서 팀원에게 폐 끼치지 않을, 딱 그 정도.

등급 심사 때 준비해 온 무대에 비해 지난 조별 무대 때 안무의 난이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만 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녀석들이 말이 나올까 봐 파트를 줄인 게 아니라 어쩌면….’

거기서 분량이 더 늘어나면 본인이 완벽한 수준으로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반면 하연은 그 반대였다.

무대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천연 아이돌. 특유의 온화하고 선량한 인상이 더해져서 미워하는 사람이 쓰레기가 된 기분을 느껴야 하는 타입이었다.

‘유지원이랑은 또 다르지.’

유지원은… 때때로 눈치가 조금 없고 소심해서 사람 속을 긁어 놓는 구석이 있는데, 얘는 싹싹하고 성격 좋은 게 포인트니까.

유지원이 싫다고 하면 약간… 걔가 나쁜 애는 아닌데 가끔 상황이 그렇게 될 때가 있어, 라고 실드라도 나오지.

박하연을 싫어한다?

너 대체 속이 뭐가 어떻게 꼬였길래 걔를 보고 그런 심보가 드는 거냐? 하고 뭐가 문제인지를 궁금해할 터다.

‘그래서 대체 정은찬은 겟데뷔에 왜 나온 거야?’

정말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박하연을 프로듀서 역할로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뭐지?

나는 혼란에 빠진 채 혜성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은찬 형이랑 하연 씨가 정말 많이 친한 건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혜성이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것 같더라….”

“정작 궁금했던 건 그게 아니긴 한데…. 은찬 형이 어떻게 좀 팀원들이랑 어울릴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내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자 혜성이 옆에서 함께 침음을 흘렸다.

“아직은 모르겠네요. 일단 지금 저희 할 수 있는 거나 할까요? 한두 시간 정도 더 연습하실 수 있죠?”

원래 내 목표는 제현호와 유지원을 케어하는 거였는데. 혜성이 여러모로 애쓴 만큼 혼자 남겨 두고 냉큼 빠져나가기가 눈치가 보였다.

“앗, 응! 좋아…!”

혜성이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 스포츠 타월이며 물병이며 바리바리 담긴 연습용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안 물어봤음 큰일 날 뻔했네.’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와서 나는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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