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그렇게까지는 좀 (2)
다음 날, 당연하지만 가장 현실적이면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한 기획안을 만든 건 나였다.
일단 우리 팀에 메인 래퍼들 중 제일 잘하는 사람이 들어 있으니 하연을 잘 활용하는 게 좋았다.
댄스는 메인 댄서 지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부족한 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라이브 실력을 어필하면서 댄스도 가능한, 전체적으로 강도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무대를 선보이고 싶었다.
다른 팀들은 못 할 만한 거. 우리 팀에 마침 올라운더형이 셋이나 있으니 보컬과 퍼포먼스 모두 꽉 잡은, 각 잡힌 무대를 만들고 싶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슈트 퍼포먼스 같은 것도 괜찮겠고. 미성년자가 한 명 있다고 해도 최장신인 영인뿐이니까 좀 더 무게감 있고 멋있는 컨셉을 잡아도 되겠다.
이래저래 이거면 자신 있다! 생각하고 기획안을 내밀었으나.
‘…….’
나의 오산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도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다른 녀석들의 기대치만 못할 것이 분명한 기획안은 보고도 아무 말 안 했던 유 대표가 내 것만 의미 모를 지적을 했다.
“이게 정말 서인수 연습생이 하고 싶은 거예요?”
그야 당연히 하고 싶으니까 제안을 했겠죠? 머릿속에 곧장 떠올랐으나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 대표가 다시 치고 들어왔다.
“왜요?”
뭐지? 심층 심문인가. 나는 놀란 기색 없이 말했다.
“저희 모두의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팬분들도 좋아해 주실 것 같고요.”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 말을 좀 잘못 이해한 거 같은데. 결과를 보여 달라는 게 꼭 동기가 그것뿐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
영문 모를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 기울자 유 대표가 이어서 말했다.
“타인의 인정만을 목표로 삼지 마세요. 내가 요구한 건 아이돌로서 뭘 하고 싶은지를 그림을 만들어 오라는 거였지, 뭘 해야 팀 전체에게 도움이 될까, 팬들이 좋아해 줄까 이게 아니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딘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타인이 감탄할 만한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물론 당연히 교집합이 얼마든지 존재하겠지만요.
서바이벌 8인조 미션에서 그 모든 걸 충족해야만 할까요? 더구나 이미 나는 지난 미션 때 한번 그렇게 밀어붙인 적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여기서 내가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 대표의 눈매가 더욱 매서워졌다.
그때 유 대표가 묘하게 머뭇거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인수 연습생은 아이돌이 왜 되고 싶은 거예요?”
갑자기 여기서요?
사전 인터뷰 때도 물어본 적 없었던 질문에 일순 말문이 막혔다.
막연하게 생각한 건 있지만 정리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내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니까.
단순히 노래하는 것만 중요하다면 그냥 솔로 가수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돌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만 잘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일반 보컬리스트가 아닌 아이돌일 때 보여 줄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았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 좀 더 직관적으로 피드백이 오고 가는 점도 좋았다.
이 모든 걸 요약하자면 그냥 내가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좋아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시건방지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유 대표가 청천벽력 같은 과제를 쥐여 주었다.
“이대로는 오늘도 안 될 것 같고요.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하고 싶은지 다들 다시 설득해 보세요. 하루 더 드리겠습니다. 내일 저녁까지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더라도 좋습니다.”
저희 연습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그렇게 얼결에 내일은 완전히 통으로 휴일 아닌 휴일을 얻게 된 팀원들은 다들 갈피를 잃은 표정이었다.
“솔직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괴롭히시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름이 박성환이었나, 팀원들 중 지금까지 가장 존재감이 없었던 멤버가 중얼거렸다. 다들 쉽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 팀 정말 괜찮은 걸까. 설마 그래도 연성인데 시간 부족으로 엉망진창인 무대를 올리게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들 이미 몇 차례 미션을 거치면서 다른 팀은 어떻게 하나 이어진 연락망을 통해 다 듣고 있는데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연한 건 오로지 공민형뿐이었다.
“서로 상의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난 먼저 들어가 볼게.”
이 우중충한 분위기에 더 남아 있을 이유 없다는 듯 민형이 떠나고 나니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쑥, 영인이 하연에게 물었다.
“내일 뭐 할 거예요?”
“어?”
“아니, 뭐 내일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아니면 그냥 쉬게?”
뭘 해도 좋다고 하긴 했지만 그냥 쉬었다가는… 또 유 대표한테 뭘 한 거냐고 깨지는 거 아닌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자 영인이 불쑥 제안했다.
“나 가 보고 싶은 곳 있는데 같이 갈래요?”
“뭐?”
영인의 생각도 못 한 말에 다들 늘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뭘 하면서 보내도 좋다.’를 정말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여기서 기차 타고 30분만 가면 된다는데.”
“뭔데? 어디 가게?”
규민이 흥미가 당긴다는 듯 묻자 영인이 신나서 대답했다.
“이거 촬영지거든요? 여기 지금 일반 관광객들한테도 개방 중이라고 해서.”
어디를 말하나 했더니 케이 팝 뮤직비디오에서 종종 촬영지로 들르는 유명한 화원이었다.
색색의 허브와 꽃들이 드넓은 언덕에 끝없이 심어져 있어서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내게 해 주는 곳이었다.
“지금 가면 사람 많지 않으려나?”
규민이 슥 어플로 달력을 확인하더니 곧장 정정했다.
“어, 아니다. 평일이라 오전에 가면 사람 없을 거 같은데.”
“그럼 같이 고고?”
“그럴까?”
이놈들은 왜 갑자기 의기투합하고 난리야. 나는 곤란하다는 듯 끼어들어서 말렸다.
“여기서 역까지 어떻게 가려고?”
그러자 영인이 그늘 한 점 없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나 가는 방법 알아!”
***
“…….”
얼결에 지역 택시에 한계까지 끼어 탄 채 영혼 없는 표정으로 기차역에 도착한 나는 중얼거리듯 물었다.
“누가 표영인한테 콜택시 번호 알려 줬어?”
이 동네는 택시 어플로는 죽어도 배차가 잡히지 않을 곳이었다. 애초에 이 지역 기사님들도 대부분 어플 안 쓰실걸? 유명 관광지 근처나 좀 왔다 갔다 하지.
그러니 자차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딱 하나, 길이 있었으니 지역별로 존재하는 지역 업체의 콜 번호를 이용해서 호출하는 방법이었다.
이걸 외국인인 영인이 스스로 알아냈을 리는 없고, 누군가 말해 준 놈이 있을 거다. 확신을 품고 묻자 하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러나 어쩐지 표정이 석연치 않았다. 뭔가 일이 더 있는 게 분명했다.
“박하연 말고.”
강제로 손을 내리게 하자 내가 놔주기 무섭게 박하연이 다시 손을 들었다.
“박하연 말고.”
그러자 하연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손을 다시 들었다.
“진짜 저예요.”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말했다.
“진범 빨리 자수해라.”
뻔히 듣고 있던 이규민이 딴청을 피웠다.
“그러게, 누구일까. 진짜 궁금하네?”
나는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됐다, 가라.”
“아, 왜. 뭔데.”
“가라고.”
평일인 데다가 한산한 노선이었기 때문에 객실에 사람이라곤 우리뿐이었다. 그야 아무래도 이 시간에 여길 이걸 타고 가는 건 우리밖에 없겠지.
나는 창밖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푸르른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하품을 삼켰다.
원래 가려던 멤버는 영인과 하연, 규민 이렇게 셋뿐이었다.
‘또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그냥 보내.’
영인이 단순히 그냥 몇 번 엮여서 친분이 있는 연습생에 불과했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우리가 같은 팀으로 묶여 있는 한 내부도 아니고 외부에서 사고를 치게 놔둘 수 없었다.
‘아…. 그냥 제작진한테 얘기 하고 나올 걸 그랬나.’
혹시 얘기했다가는 외출은 어렵다고 거절당할까 봐 오전 안에 다른 팀원들은 모르게 빨리 다녀오는 거로 얘기가 끝나긴 했는데.
애초에 숙소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촬영 전 작성했던 출연 계약서에도 촬영에 충실하게 협조해야 한다고만 나와 있지 촬영지 이탈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그야 당연히 누가 이탈하겠냐 싶었던 거겠지.’
여기 그 ‘누가’가 있었다.
유 대표에게 ‘그럼 저희 밖에 나갔다 올게요!’라고 물어보게 할 수도 없고. 내 멋대로 ‘여기 밖에 나가려는 연습생이 있어요!’ 고발이라도 했다간….
‘자기 외출 계획을 망쳤다고 단단히 삐칠 게 뻔하지.’
그럴 바에는 역시 내가 따라가서 얌전히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연습실 카메라는 24시간 돌아가지만 그 외의 공간은 카메라맨이 유 대표와 함께 방문해서 촬영하기 때문에 어쨌든 들키지 않고 빨리 다녀오기만 하면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리는 아니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애써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영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데 영인이 뜬금없이 외쳤다.
“노래 부르고 싶다.”
“갑자기?”
“아니,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그렇긴 한데.”
무슨 뮤지컬 영화도 아니고. 하지만 영인은 의지를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음~ 흠~ 음~”
그건 또 어디서 들었는지. 유명 락 밴드의, 여행하면 떠오르는 곡이었다.
“도망치듯 Far away. 저 멀리 날아가 볼까~”
워낙 유명한 히트곡이었기 때문에 다음 가사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 둘 셋,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
규민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가사를 받은 다음 천연덕스럽게 손에 마이크를 쥔 것처럼 하연에게 내밀었다.
“…!?”
하연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곧 규민이 뭐 하고 있느냐는 듯 손목을 까딱이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 지금부터 지워 버려. run away~”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난 안 할 거야.”
그러자 곧장 영인과 규민의 야유가 돌아왔다.
“우우.”
“재미없어.”
“눈치도 없고.”
“누가 눈치가 없다는 거야.”
최소한 진짜 눈치가 없는 영인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우우, 노잼. 우우, 붐따.”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온 거야.”
아무 말이나 내뱉는 영인에게 지적하자 영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있어요. 형처럼 재미없는 사람들은 못 보는 곳에서 요즘 많이들 써요.”
“됐다. 재미없는 서인수 씨는 빼고 우리끼리 놀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끼워 달래? 자기네들끼리 유유자적하게 불러 대는 꼴을 보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왔다.
“치즈, 웃어 봐. 내가 제일 잘 나왔을걸~”
“하나 둘 셋, 날아올라. fly high~”
어느새 하연까지도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손끝이 들썩였다.
규민이 장난스럽게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더니 곧 곡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자기네들끼리 좋다고 노는 꼴을 보니 왠지 괘씸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클라이맥스 소절이 된 순간, 나는 규민보다 빠르게 끼어들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dream high. 뛰어내려, 지금~”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제일 기대했던 파트를 빼앗긴 규민이 계속 쫑알쫑알 뭐라고 했지만 조금도 귀담아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