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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71화 (71/224)

#071. 그렇게까지는 좀 (3)

잠시 후, 한쪽은 목장, 한쪽은 화원과 온실로 꾸며진 농원에 도착한 우리는 재빨리 마스크와 모자를 썼다.

“사람이 그래도 조금은 있네?”

“그러게. 평일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평일이라고 정말 아무도 안 오면 아예 영업을 안 하겠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나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빨리 보고 돌아가자.”

“힝.”

“뭐가 힝이야.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표나 끊어.”

영인이 뭐라 투정을 부리든 조금도 귀담아듣지 않고 매표소로 떠밀었다. 영인이 주머니에서 구깃구깃 지폐를 꺼냈다.

그 순간 영인이 이전에 했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제 재산 절반이에요!’

설마 저게 남은 절반인가. 기차표와 택시비는 일단 규민이 결제하고 나중에 인원수대로 정산해서 나누기로 했던 터라 불쑥 영인의 경제 사정이 신경 쓰였다.

“너 그거 쓰면 현금 한 푼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러자 영인이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No! 할아버지가 저 방송 나온 거 보고 용돈 보내 주셨거든요. 한국에서 쓸 수 있게 계좌도 만들었고! 아, 카드도!”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체크 카드를 내밀었다.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일까, 어린이용과 호환되는 디자인인지 알록달록 공룡이나 장난감 따위가 그려진 패턴이 인상적이었다.

“니가 Kid냐….”

“이게 제일 귀여우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 그럼 가서 귀엽게 계산하고 와.”

더 얘기해 봐야 내 입만 아팠다. 영인이 순순히 가서 4인용 표를 끊어 왔고,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어디부터 가지? 여기 꽤 넓은 곳이었네?”

촬영지로 주로 사용되는 명소는 여름을 맞이하여 라벤더밭으로 단장을 해 놓은 상태였다.

“일단 라벤더밭부터 갈까요? 거기가 제일 유명한 거 같던데요.”

하연의 제안에 지도에 표시된 갈림길을 따라 라벤더밭으로 향했다.

“와, 멋있다~ 빨리 사진 찍어, 사진.”

“잠깐만요. 저희 좀 바짝 붙어야 할 거 같은데요.”

“야, 야, 너무 밀지 마. 나 화면에서 나간다?”

규민이 SNS에 올릴 생각인지 냅다 셀카 봉을 꺼내 드는 바람에 나 또한 엉겁결에 바짝 붙어선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올려도 되나? 나중에 각자 데뷔하고 나면 예능 같은 데 올려서 비화 같은 거로 푸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쓸데없는 고민이 밀려든 그때 하연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셔터 누를게요! 하나, 둘…!”

“셋!”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화면을 보고 웃었다. 기록으로 남는 건 아무튼 문제없도록 활짝 웃고 있어야 했다.

“이번엔 내 폰으로 한 번 더 찍자.”

찰칵, 셔터음이 울리기 무섭게 영인이 셀카 봉에 연결된 핸드폰을 바꿨다.

“아, 흔들렸잖아.”

“진짜요? 다시, 다시.”

어수선하고 복작복작해진 분위기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얼른 돌아갈 생각을 해야지. 누가 보면 근처 학교에서 단체로 체험 학습이라도 온 줄 알겠네.

“한 번만 해, 한 번만.”

내 말을 들은 이규민이 놀리듯 헛소리를 했다.

“인내심 없는 서인수 씨 화내기 전에 빨리 찍자.”

“우우, 붐따.”

그 이상한 옛날 유행어 좀 그만 쓰라니까. 유행과 고전은 원래 돌고 도는 거라지만 10년 전 유행어를 어디서 보고 온 건지 어이가 없었다.

“다시 찍을게요. 하나, 둘!”

“셋~!”

“됐다, 됐어!”

내가 재빨리 화면에서 몸을 숙여 빠져나가자 규민이 뭐라 쫑알거리며 셔터를 연달아 터트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빨리 다른 곳도 보고 얼른 가자.”

오전 안에 돌아가야 다른 팀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슬쩍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을 수 있을 테니까.

걸음을 재촉해서 먼저 다른 구역으로 발을 옮기자 뒤에서 투덜거리며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쓸데없이 태평하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아니고. 사람이 넷인데 후폭풍을 걱정하는 건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온실 쪽으로 향한 그때 규민이 내 옆쪽으로 붙더니 장난스럽게 물었다.

“너 혹시 숙소 나온 거 오늘이 처음이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이해를 못 했다는 얼굴로 규민을 노려보자 이규민이 히죽거렸다.

“와, 진짜인가 보네. 1위라고 다들 따돌리고 안 놀아 줬어?”

“…?”

여전히 무슨 소린지 영문을 모르겠어서 규민을 빤히 노려보자 규민이 핸드폰 갤러리를 보여 주었다.

“너 빼고 다 한 번씩은 나갔다 왔을걸. 애들 사이에서 숙소 근처 맛집 정보도 다 돌았는데.”

규민이 내민 화면을 보니 익숙한 얼굴은 물론 잘 모르는 연습생들까지 우르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었다.

뒤에 걸린 메뉴판을 보니 중국 음식점인 듯했다.

“…? 언제 나갔어?”

“공식 일정이 8시면 끝나는데 다들 넘치는 게 시간이지.”

그 외에도 프랜차이즈 카페, 분식집 등등 부지런히도 놀러 다닌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러니까 무대 수준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지자 규민이 풉, 어깨를 떨며 웃었다.

“와, 너 방금 유 대표님이랑 완전 똑같았어.”

“뭐가.”

내가 흰소리는 그만하라는 것처럼 규민에게서 멀어지자 규민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아니, 그 미간 움찔하는 거. 그거 일부러 하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그냥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거야?”

“아, 가라고, 좀.”

내가 더 상대하기 싫어 걸음을 재촉하자 뒤에서 하연과 영인이 달려와서 합류했다.

“무슨 얘기 해요?”

“아무 얘기도 안 했어.”

“아니, 지금까지 아무도 외출 안 데려가 줬대.”

규민이 대단한 빅뉴스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자 영인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야 아무래도 형은 스태프들한테 이를 것 같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이미지가 워낙 성실하셔서….”

“뭐, 문제 되는 짓 하는 것도 아니고 맛없는 배식 밥 말고 맛있는 거 좀 먹고 오는 건데.”

“S등급 배식에 너무 만족해서 불만이 없으셨나 보지.”

“아~.”

더 듣고 있다간 나까지 해이해지다 못해 어디 놀러 온 분위기에 휩쓸릴 것 같았다.

“잡담 그만하고 빨리 들어가.”

세 놈을 우르르 밀어 넣은 온실은 제법 널찍한 규모였다.

안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

‘커플들은 우리 알아볼 수도 있겠는데.’

슥 모자를 눌러쓰고 다른 놈들도 눈에 띄지 않도록 후드를 씌워 주자 뒤에서 탁, 외부로 통하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

가장 뒤따라오던 하연이 뭔가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내가 앞서가다 말고 묻자 하연이 확신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뭔가 신호음 같은 게 들린 것 같아서요.”

“뭐지? 뭐 점검하나?”

그러나 온실 내부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새장을 모티브로 설계한 듯 감각적으로 꾸며 놓은 내부는 어디든 포토존이었다. 온실 중앙에는 가끔 라이브 공연이라도 하는지 피아노와 기타가 놓여 있었다.

“별일 아니겠지. 다른 손님들은 못 들은 거 같은데.”

“그렇겠죠? 저 이명 같은 건 없긴 한데….”

두런두런 떠들며 내부를 둘러보고는 이제 나가기 위해 출구를 찾은 그때.

우리보다 먼저 입장해 있던 손님들이 출구 앞에서 우왕좌왕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

규민이 먼저 앞으로 나서자 손님들이 뒤를 돌아보고는 난처한 표정으로 발을 굴렀다.

“지금 출구 문이 안 열리는 것 같은데 혹시 입구 쪽은 열리나요?”

“네?”

“엥?”

생각도 못 한 질문에 영인이 재빨리 입구 쪽으로 튀어갔다.

철컥철컥 잠금쇠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영인이 외쳤다.

“여기도 안 열려요!”

계속 수동 열림 버튼을 눌러도 도어락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거 아예 중앙 시스템 같은 거로 잠근 것 같은데요?”

하연이 한참 도어락을 이것저것 만져 보며 테스트를 하더니 내부에 전시된 패널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스템 오류, 내부 점검 중.]

“아니, 이거 왜 이래.”

당황하기도 잠시, 나는 아까 들어오기 전에 간판에 쓰여 있던 안내 전화번호를 떠올렸다.

“전화 바로 해 볼게요.”

아까 매표소에 사람 있었으니 전화하면 바로 열어 주러 오겠지.

그러나 야속하게 돌아온 건 뚜뚜뚜뚜, 부재중 신호음이었다.

- 현재 담당자가 외근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입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 주세요.

꼼짝없이 갇혔다는 실감이 든 순간 아이가 으웃,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냐, 도윤아,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직원분이 오셔서 문 열어 주실 거야.”

그러나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아이에게는 어른들도 당황하는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한 듯, 울음이 좀처럼 멎을 줄을 몰랐다.

“흐끅, 우읏…. 흐어엉…!”

“아냐, 괜찮아. 무서운 거 아니야. 괜찮아~”

아이가 째지는 울음소리로 목청을 높이자 내부를 둘러보고 있던 두셋 남짓의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아이에게로 쏠렸다.

엄마 아빠 모두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애를 썼으나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문만 열리면 큰 소리를 내도 될 만한 곳으로 가서 달래 주면 될 테지만.

온실 내부에 다 같이 갇혀 있는 신세다 보니 확성기라도 튼 것처럼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조용히 좀 시키지.”

“머리가 다 아프네.”

부모가 아무리 용을 써도 아이는 지칠 기색이 없어 보였고 점점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는 물론 엄마도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갔다.

조용히 다시 한번 관리실로 전화를 해 보았으나 여전히 부재중이었다.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다.’

이대로 계속 여기 있다간 우리를 알아보는 손님들도 있을 텐데.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은 순간, 온실 중앙의 무대에서 챠르릉, 기타 소리가 들렸다.

“…?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나?”

“기타?”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아이가 아닌 무대로 쏠렸다.

무대 위에서 기타를 만지고 있던 건….

“이규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순간, 다른 젊은 손님들도 무대 위의 주인공을 알아보았다.

“어, 대박. 거기 겟데뷔인가 나오는 걔 아냐?”

그리고 그 옆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건 표영인이었다.

‘대체 뭘 하려고?’

둘 다 얼굴을 가렸던 모자며 후드며 다 내동댕이친 상태였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미니 공연 같은 거 하나?”

“사람이 이렇게 없는데?”

규민과 영인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더니 무대 위에 나란히 섰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라도 되는 양, 과장된 몸짓으로 무대 아래를 향해 인사를 올린 두 사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악기를 손에 쥐었다.

짧은 반주와 함께 둘이 연주하기 시작한 곡은 누가 들어도 익숙한 멜로디였다.

“저 멀리 떠나자, 푸른 초원과 넓은 강을 건너서. 이 바람이 시작된 곳으로~.”

가요와 동요의 경계선에 놓인 곡으로 초등학교는 물론 유치원에서도 재롱 잔치용으로 가르치는 노래였다.

“친구들과 꽉 잡은 그 손, 용기를 내서 물거품 위로 날아올라~”

아이를 바라보며 가사를 흥얼거리던 하연이 내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어느새 째지던 울음소리는 멎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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