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각오만으로는 (2)
[XOXO] (사진) 오후 10:32
XOXO가 보낸 메시지를 클릭하자 대용량 사진을 다운받기 위한 로딩 아이콘이 떴다.
“악…!”
너무 보고 싶은데 동시에 보고 싶지 않아. 인수가 이번에도 당연히 잘했으리라는 기대감과 혹시나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인덕의 모순적인 마음이 충돌한 순간 드디어 무대 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
뭐야, 이거. 심장이 너무 떨려서 놀라기도 잠시.
XOXO가 보낸 사진 속 주인공은 인수가 아닌 다른 연습생이었다.
[나] 아 뭐냐고 오후 10:32
[나] ㅡㅡ 오후 10:33
[XOXO] ㅈㅅㅈㅅ 오후 10:33
[XOXO] 우리보송딸기맛솜사탕의인화숨쉬기만해도애교장인사랑스러움으로무대를녹이는유…라고하는청년사진을한번만봐주세요 오후 10:33
저걸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쳐서 보낼 순발력이라니. XOXO도 현장 무대를 보고 어지간히도 혼이 나간 모양이었다.
[XOXO] (사진) 오후 10:33
[나] 노답; 오후 10:34
인덕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지만 사진 속 유지원은 비주얼만큼은 합격점이었다.
‘얘도 진짜 그냥 연습 캠에 잡히는 것보다 무대 위에서 훨씬 괜찮네.’
무대 아래에 있을 때는 맨날 이상한 실수 하고 버벅거리고 뒤에 숨어 있기나 하던데.
무대 위로 올라가면 더는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일까, 혹은 의외로 무대 체질인지 이상한 실수로 무대를 망치는 일은 없었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나 인덕은 케이팝의 역사와 함께해 온 짬이 길었다.
이 녀석… 어그로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건 인수도 마찬가지였다. 어그로 탱킹 능력으로 인수를 따라올 연습생은 단언컨대 없었다.
여기서 ‘하지만’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인수에 눈이 멀어서 객관성을 잃어버렸다는 증거나 다름없지만….
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인수는 그걸 버틸 멘탈이 되는 인재란 말이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얘는 주변에서 잡아 줄 사람 없으면 그대로 꺾이면 어쩌나 걱정되는 수준이라서….’
대체 이런 유약한 멘탈로 어떻게 이런 정글 같은 서바이벌에 도전할 생각을 한 건지.
이제 7회차 방송까지 나온 마당에 우는 장면만 다섯 번은 나오지 않았을까? 순도 높은 두부 멘탈에 염려가 앞섰다.
그럼에도 지원을 응원하는 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건 나름의 매력이 선방하고 있기 때문일 터다.
‘여러모로 성장 서사로 밀어주는 편집을 받고 있는 것도 있고….’
인수처럼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기캐가 있다면, 조금씩 성장해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는 참가자도 분명 필요하긴 했다.
1회차 방영 때만 해도 솔직히 춤이 압도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아무리 유약한 사람이라도 서바이벌이라는 밀림 속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성장이라는 걸 하고야 만다는 것을 유지원은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여전히 다른 형들과의 치열한 기 싸움이나 경쟁에서는 밀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는 하고, 결과물만큼은 또 잘 나와서 응원하게 되는 성장형 연습생.
‘그게 애초에 프로그램에서도 메인으로 밀고 싶어 하는 소재일 거고.’
하지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인덕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나] 인수는요ㅠㅠㅠㅠㅠㅠㅠ? 오후 10:35
[나] 그게 제일 중요함 오후 10:35
결국 인덕이 눈물을 잔뜩 보내고 나서야 진짜 인수 사진이 메시지창에 올라왔다.
[XOXO] (사진) 오후 10:35
[나] 악 오후 10:35
[나] 아악 오후 10:35
[XOXO] (동영상) 오후 10:36
용케 찍었다 싶은 2분짜리 영상을 본 먼저 본 순간 인덕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미쳤네…….”
아악. 이건 미쳤다는 말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멀리 왔지! 돌아보면 까마득한 길-!]
엄마, 인수가 목 긁어요……. 그래도 돼? 대한민국 국보 4382908902호 성대를 그렇게 써도 되는 거야?
아예 한 옥타브를 올려서 거칠게 치고 올라가는 고음에 걱정이 먼저 앞섰으나 정작 본인은 너무 태연했다.
태연한 정도가 아니라 ‘하면 안 되는 짓’을 당당히 할 수 있어서 즐거워 보였다.
‘X발…….’
그동안 무대 위의 인수는 누구보다 훌륭하게 퍼포먼스를 수행해 냈다.
마치 기계처럼 완벽하게 자기 할 일을 알고, 실수 없이 선보이는 것이 인수의 역할이었다.
빈틈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그 점에 인덕이 마음을 빼앗긴 것이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인간적인 면모로 치고 들어오니 어디가 고장 난 것처럼 삐그덕거렸다.
‘인수야, 행복하니….’
이번에도 또 뭔 개 같은 렉카한테 걸려서 고생했을 텐데, 루머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완벽한 무대로 증명해 낸 스물한 살짜리 어떻게 안 사랑하는데….
인덕은 모니터 앞에 고개를 박고 드러누운 다음 다른 연습생에게 어깨동무를 건 채 환히 웃고 있는 인수를 수십 분간 바라보았다.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사진 속 서인수 연습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마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대를 마치고 아래로 내려오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는지 걸음이 잠시 휘청였다.
“…? 괜찮아?”
규민이 놀라서 부축이라도 할 것처럼 가까이 왔다. 나는 곧장 고개를 가로저어 거절했다.
“어, 내려올 때 잠깐 발을 잘못 디뎌서 그래.”
무대 위에서는 함성이며 반주며 너무 시끄러워서 잘 몰랐는데, 심장 소리가 원래 이렇게까지 컸나.
계속 열이 가라앉지 않을 만큼 세차게 뛰는 바람에 내려오자마자 대기실에 주저앉듯 기댈 수밖에 없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가까이 어울린 세 놈은 물론 다른 연습생들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다른 팀 무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폭발적인 호응이었으니까.
데뷔만 못 했지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나도 이 정돈데 우리 팀 연습생들은 오죽할까.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본 적 없을 연출이라 누구 하나쯤은 솔직히 불만이 있었을 텐데.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말은 안 나오겠네.’
무대는 최고의 반응을 끌어냈다. 각자 받을 등수는 본인 재량의 결과였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무대 아래로 내려왔음에도 열이 가라앉질 않아서 세수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았다.
“혼자 가도 괜찮겠어요?”
하연이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괜찮아. 그 정도로 지친 건 아니라서.”
“곧 이동할 거라니까 얼른 다녀와.”
“10분 안에 올게.”
마찬가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지친 팀원들을 뒤로하고 복도를 나섰다.
다들 한창 마지막 순서를 백업 중인지라 스태프 한 명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 저쪽이었나.’
무대 시작 전 들어올 때 봤던 구조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모퉁이를 돌자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아니, 의외는 아닌가.’
나는 곧장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
마침 우리 대기실로 오는 길이었던 것 같은 유 대표였다.
“덕분에 잘 마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자 유 대표가 여전히 미동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말이 없으시네.’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만 보고 있는 유 대표를 보고 있자니 지난 준비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 대표가 하는 질문마다 좀 의아한 구석이 있었지.
‘하고 싶은 무대가 뭐냐고….’
나는 방금 내가 하고 내려온 무대가 정말 즐겁고, 내가 하고 싶었던 무대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그런 무대를 하고 내려왔음에도 나를 대하는 유 대표의 태도에는 한 점 변화도 없었다.
‘대체 왜 나한테만 이러시는 거지.’
기준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사람인 건가. 심지어 혹시 다른 녀석들은 말조차 섞기 싫어서 나한테만 이러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느 쪽이든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감사 인사를 했으면 대답 정도는 해 주시지.’
속으로 쯧, 혀를 찬 순간 유 대표가 입을 열었다.
“지금보다 더 억울한 상황도 많을 겁니다.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요.”
걱정하는 것 같은 문장이었으나 말투에 온기라고는 없었다. 시비조로 들릴 정도로.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나는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며 고개를 들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걸 이번만 알았겠나요. 지난 14년 동안 질리도록 체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가 좋았다. 노래하는 것이 좋았다. 이제는 이 뒤에 있는 게 데뷔가 아니라 나를 더 망치는 길이라고 해도 멈출 수 없었다.
“서인수 연습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보람도 없는 길일 수도 있어요.”
그 말이 꼭 내가 포기하도록 설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유 대표가 했던 말을 변형해서 되돌려주었다.
“대표님.”
“…….”
“저는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요.”
사실 거짓말이지만. 여기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저는 남에게 인정받거나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가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무대에 오르는 거예요.”
이것만큼은 조금의 허풍도 없는 사실이었다.
잠시 눈썹이 움찔거린 유 대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은 운이 좋았지만, 대중에게 낙인찍히는 건 순간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저런 꼬리표가 따라붙을 텐데 그래도 계속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나는 겨우 그런 말에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그게 대표님이 무대를 은퇴하신 이유신가요? 저를 왜 설득하려 하시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유 대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유 대표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후 걸음을 옮겼다.
‘왜 저러는 거지….’
혹시 뭐 내가 본인 젊었을 때랑 겹쳐 보이기라도 하는 건가.
‘……?’
의문을 품은 채 화장실에 다녀오니 곧바로 장소를 옮길 시간이었다.
지체 없이 공개된 경연 순위는 당연하게도 1위였다.
방영일 및 음원 발매일에 대한 안내와 함께 3번째 순위 변동식을 위한 투표 안내가 이어졌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제 TOP 16이네요.”
지금으로부터 3주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에 다들 긴장이 바짝 들었다.
“다들 고생했어.”
“뭘 벌써 헤어질 것처럼 말을 해요.”
“각자 뭐, 생각은 다를 테니까.”
다른 연습생들이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내내 공민형은 얼이 빠진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저래?’
내가 갑자기 뒤통수를 쳐서 놀랐나? 그래도 연습은 성실하게 하길래 어쨌든 위로 올라가는 게 목표이긴 한 줄 알았는데.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들이 너무 많았다.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다.’
피로에 전 채 모니터링용 화면을 들여다본 그때, 생각도 못 했던 문장에 다들 귀가 번뜩 트였다.
[이번 2차 공개 국민 매니저 투표부터는 글로벌 시청자 참여가 가능합니다!]
“뭐?”
“???”
넋이 나가 있던 민형까지도 놀라서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만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