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80화 (80/224)

#080. 종착역 (2)

[TOP 2]

[표영인]

[913,738표]

[+50,000표]

‘와우.’

베네핏을 합하니 3위와의 격차가 20만 표가 넘는 수치였다. 다들 이 정도까지는 예상을 못 했는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1위는 나겠네.’

겨우 안도한 채 무대 위를 올려다보자 비안이 나를 바라보며 찡긋 웃었다.

“……?”

그야 무대 위에서 사회를 보는 입장이니 인솔해야 할 출연자들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묘하게 나에게만 무슨 신호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아서 미심쩍었다.

‘왜….’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마지막 차례로 TOP 1과 TOP 16이 동시에 발표되었다.

[자, 그러면 오늘의 하이라이트! TOP 1과 TOP 16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름표는 두 자리가 비어 있지만 사실상 공석은 하나.

남은 33명이 간절하게 TOP 16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

지난 미션 때 함께했던 홍수민이나 주혜성은 물론, 이번 미션을 함께했던 팀원들까지.

모두 저마다의 간절함을 안고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던 것을 알기에 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침내 TOP 16이 공개된 순간.

대기실에서는 적막이 흘렀다.

[TOP 1]

[서인수]

[1,810,991표]

[+50,000표]

[TOP 16]

[주혜성]

[358,440표]

화면에 이름이 뜨자마자 주혜성이 그대로 풀썩 바닥에 주저앉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아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감 발표를 위해 주혜성과 함께 무대로 올라간 나는 나오기 전 양어머니가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셨던 손수건을 미리 꺼냈다.

“그만 울어요. 살아남았는데 울 게 뭐가 있어요.”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대 주자 주혜성이 끄덕끄덕 울긋불긋하게 물든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저, 정말 감사드리고요. 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가, 감사합니다….”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주혜성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긴장하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듯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간절한 건 혼자만이 아니지.’

대기실에 남아 있는 인원들 중에서도 울음을 간신히 참거나, 아니면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는 연습생들이 있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이고 비참한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렌즈를 번뜩이고 있었다.

[서인수 연습생! 소감 부탁드립니다!]

그 처참한 감상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마이크가 내게로 넘어왔다.

“감사합니다. 믿고 지지해 주신 만큼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내 주신 응원의 무게에 보답하는 서인수가 되겠습니다.”

침착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자 곧바로 카메라가 탈락자들을 향해 넘어갔다.

다시금 비안이 웃는 얼굴로 무대 중앙에 섰다.

[나머지 호명되지 못한 열여섯 명의 연습생들은 겟 데뷔 위드 미를 떠나 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곤 곧바로 종종걸음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와 울먹이는 연습생들을 달랬다.

“괜찮아요. 다들 너무 잘했어. 울지 말고.”

비안이 무대 위에서와 달리 인간적인 얼굴로 탈락자들을 위로해 주는 와중에도 카메라는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흑, 감사, 합니, 다, 흑….”

“어유, 앞으로 더 잘할 텐데 뭐가 걱정이야. 눈물 뚝, 하고.”

그렇게 KMB만이 훈훈하고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생각할 시간이 이어지던 그때.

여기서 끝낼 리가 없다는 듯 팟, 대기실 뒤쪽을 가리고 있던 분리막이 걷히며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멋진 무대를 보여 준 열여섯 분을 위해 KMB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특별한 손님?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조명이 들어온 쪽을 바라보자 탈락자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다음아!”

“정안아, 괜찮아. 잘했어~!”

“에구, 우리 아가 울지 말지!”

비안의 위로에 겨우 아쉬운 맘을 달랬던 탈락자들이 다시금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무대 할 때 부르는 것도 아니고 탈락할 때 부르는 건 무슨….

아마 탈락자들이 많이 힘들 테니, 현장에서부터 위로해 주시라는 빛 좋은 구실을 붙여 데려왔겠지. 참가자들에게 배려 있는 처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순위 발표 직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지.’

지난 촬영분을 복기한답시고 하나하나, 스페셜 멘토 4인의 지르밟는 듯한 피드백을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좋은 소리를 들은 연습생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기껏 칭찬받아서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순위에서 밀려 탈락한 연습생이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가루가 되도록 털린 연습생이나, 비참하긴 매한가지였다.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 심정은 오죽할까.’

그래서인지 애썼다고 위로해 주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이 난감하고 어색한 상황에 불편한 내색을 숨기지 않는 가족들도 있었다.

“얼른 가자. 날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가야지.”

“뭐 해. 얼른 가자.”

떠나는 사람만 하진 않겠지만, 그걸 지켜봐야 하는 남은 연습생들도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던 그때, 탈락자들을 배웅한 비안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지 알려 줄 시간이었다.

[겟 데뷔 위드미에 남은 TOP 16 여러분,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2주 후에 있을 생방송 무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데뷔조를 어떻게 추리든 8명씩 두 팀이 되어야 하는 상황은 명확했다. 어떻게 할 셈이지? 8위에서 순위대로 컷? 아니면….

잔뜩 긴장하고 있던 순간 어깨 위로 갑자기 훅, 손이 얹어지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형 표정 좀 풀어요.”

바로 옆에 서 있던 영인이었다. 내 표정이 이 녀석이 걱정할 정도로 안 좋았나. 급히 영업용 미소를 띠고 카메라를 바라보자 영인이 완벽하다는 듯 등 뒤쪽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번 미션을 마치면 겟 데뷔 위드미를 통해 데뷔할 8명의 아이돌이 탄생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응원해 주신 국민 매니저님들을 위해! 최고의 무대,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팀은 어떻게 짜고, 승패는 어떻게 가릴 건데. 모두가 그것만을 간절히 궁금해하는 순간, 등 뒤로 스크린이 눈부신 빛을 발했다.

[겟 데뷔 위드 미, 파이널 미션! 데뷔조를 결정짓는 마지막 승부를 위해 여러분들은 8명이 한 팀이 되어 제시된 키워드에 맞는 무대를 2주 후 생방송으로 선보이게 될 겁니다.]

[최종 승패는 생방송 투표 결과로 결정되며….]

다들 숨을 죽인 채 비안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팀의 승패는 소속된 팀원이 받은 전체 득표수를 합산하여….]

그럼 그렇지. 글로벌 투표까지 확장한 마당에 개인별 득표수를 활용 안 할 리가 있나. 안도하기도 잠시 비안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능숙한 진행을 이어 나갔다.

[팀의 승패 및 심사 위원 평가와 각각 40%, 30%, 30% 비율로 산출된 점수로 결정됩니다.]

“…?”

“엥?”

“음?”

비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나 역시도 순간 대체 뭔 소리를 하나 의문이었는데 납득이 안 가는 방식은 아니었다.

‘멤버 전체 득표 합산으로만 정하면… 내가 들어간 팀이 곧 데뷔조 확정이 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수익은 팬들이 간절하게 한 표 한 표 끌어모은 화력에서 나온다. ‘어차피 인수가 들어간 팀이 이기겠네.’ 하고 상대편 팬덤이 지레 경쟁을 포기해 버리면 제작진으로서는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심사 위원 평가는 또 무슨 개수작이야.’

상대편에게는 일말의 희망을, 내게는 안심할 수 없도록 긴장을 주는 방식이었다.

‘너무 불안해할 건 또 없나.’

내 별명 중에 ‘환승 센터’가 생겼을 정도로 지금은 팬덤이 초기에 비해 다양해지긴 했다만.

여전히 겟데뷔 시청률의 30%쯤은 내 팬덤이 견인해 주고 있을 터였다. 내가 여기서 데뷔를 못 하면 조작이다, 서인수 화제성만 이용해 먹고 버렸다, 항의가 보통 들어오는 게 아닐 것이었다.

‘골치 아프네….’

어느 쪽이든 무대만 잘 올리면 된다. 나를 견제하기 위해 바꾼 제도라고 해도 이전처럼 뭔 승리 팀에서 몇 명, 패배 팀에서 몇 명 이런 식으로 장난질을 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지막 미션을 위한 팀 편성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한 대목이었다.

***

[이상으로 팀 레드, 팀 블루의 편성을 마쳤습니다. 각자 팀별로 연습실로 이동하여 팀 회의를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1시간이 넘는 팀 편성이 끝나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아니, 무슨 팀 편성을 이딴 식으로….’

내내 2위를 탄탄하게 지켜 왔던 공민형이 돌연 하차한 이상 그동안의 팬덤 구조가 깨져 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순서대로라면 1위인 나를 민형과 아진, 그리고 그 아래를 바짝 따라붙은 아진네 패거리들이 견제하는 구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공민형은 하차, 아진은 5위 아래로 추락하는 바람이 이 견제 구도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사이 내 투표수는 곧 200만을 넘을 기세로 치솟아 버렸고 거기에 나와 같은 라인으로 묶이는 영인까지 생각도 못 한 글로벌 투표의 수혜자가 됐다. 1위와 2위가 의기투합하고 있는, 승패가 뻔히 보이는 승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서치할 때 중국어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중국 팬덤이 실력 있는 강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어느 나라든 다 비슷한 모양이었다.

‘국내 팬덤과 경향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국인 연습생들한테는 생각보다 큰 영향이 없네.’

아무쪼록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리니 이전 미션처럼 리더 한 명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팀을 꾸리게 하면 제작진으로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서인수네 팀과, 그 팀에 끼지 못한 나머지들 팀 같은 구도가 되어 버리면 기껏 방식을 고안한 보람 없이 승부가 뻔해질 테니까.

제작진이 다시 머리를 굴리고 굴려 쥐어짜 낸 대안은 터무니없었다.

[팀 결정 텔레파시 - Red or Blue?]

데뷔 후에 예능에서나 할 법한 걸 여기서….

어떻게든 나를 따라서 팀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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