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종착역 (4)
그렇게 러프한 아이디어 미팅을 마치고 향한 곳은 이 호텔에 몇 개 안 되는 12인실 방이었다.
“와, 방 진짜 넓다.”
40평이 넘는 크기라고 해서 예상은 했다만, 준비된 방만 4개에 방별로 싱글 침대가 두 개씩 자리 잡고 있어서 침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일은 없어 보였다.
“우와, 깔고 잘 수 있는 이불 세트도 있네요?”
나머지 초과된 4명분의 침구는 거실에 이불을 펴고 자는 방식인지 영인이 벌컥 붙박이장을 열자 침구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일단 늦었으니까 빨리 씻고 자자.”
방이 넓은 만큼 욕실도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인원이 인원인 만큼 모두가 잘 준비를 마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럼 이제 불 끌게요.”
“네~!”
“넵!”
“네!”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오는 와중, 나는 이 꼴이 정말 진심인가 의문스러워서 거실 조명 스위치 앞에 선 채 물었다.
“진심으로?”
지금 꼴이 대체 어떤 수준인가 하면, 4인용으로 제공하는 이불 위로 6명이 대충 구깃구깃하게 누워 이불도 덮지 않고 베개만 챙겨 웅크린 꼴이었다.
“네, 진짜요.”
“응…!”
나름대로 사연은 있었다. 12인실이 자주 사용되는 방이 아니다 보니 방에 입실하고 나서야 각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시스템 에어컨이 먹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은 한여름이었고 아무리 강원도 한적한 시골 동네라지만 문도 안 열고 자는 건 찜통에서 쪄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선 못 할 짓이었다.
그럼 창문을 열고 자면 되잖아? 할 수도 있겠지만….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지.’
엄청난 크기의 나방과 벌레들이 구멍이 숭숭 벌어진 방충망 너머에서 우매한 인간이 창문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영인이 진작 용감히 창문을 열기 위해 시도했지만 기괴한 비명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후였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천만다행으로 거실의 스탠드 에어컨은 좀 덜덜거리긴 해도 무사히 작동됐다.
그 결과 이렇게 스탠드 에어컨 앞에 옹기종기 모인 꼴이 된 것이었다.
내가 잠시 침묵하며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자 규민이 당당하게 물었다.
“너야말로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네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패배를 승복한다면 50X40cm 사이즈는 내어줄 수 있어.”
“뭐냐, 그 사이즈는.”
“우리 초롱이가 쓰는 가성비 깔끔 패드 미디엄 사이즈.”
“됐어.”
나는 저들이 알아서 하라는 생각으로 탁, 불을 껐다.
무더운 방 안에서는 죽어도 못 자겠다고 튀어나온 인원은 여섯.
그중 은찬이 포함되어 있는 점이 상당히 의외였으나 하연이 재빨리 대변해서 설명했다.
‘은찬 형 원래 더위 엄청 타서 그래요.’
박하연의 역할은 저 성격이 좀 나아지더라도 여전하구나. 다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 지 오래라 바닥에 깐 이불 위에서 둘이 나란히 붙어 있어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바닥에 뒤엉켜서 자는 걸 택하지 않은 건 나와 제현호뿐이었다.
“우리는 그냥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자자.”
내가 선택한 건 거실과 가장 가깝게 붙어 있는 방이었다.
문을 굳이 꼭 닫고 잘 생각은 없었으므로 입구에 선풍기 하나만 틀어 놓으면 찬 바람을 방 안까지 들여놓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방에서 잘 건데, 너는?”
거실파들이 두런두런 시시콜콜한 잡담을 반쯤 졸음에 취한 채 중얼거리는 사이 선풍기 세팅을 마치고 제현호에게 묻자 놈이 예의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형이랑 같은 방에서 잘게요.”
어차피 침대는 두 개니까 상관없었다.
“그래, 그러든가.”
폐소 공포증이 있으면 방에 혼자 있는 것도 무서워하는 건가. 잠시 걱정이 뇌리를 스쳤으나 제현호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힘들면 어련히 알아서 이야기하겠지.’
주섬주섬 이불을 걷고 침대 위에 드러눕자 이제 조용히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루의 마지막 일과로 연예 커뮤니티에 내 이름을 검색하자 바로 CF 소식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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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데뷔 전부터 CF 찍은 대세 연습생 (+286)
[본문]
(사진)
(사진)
(사진)
설명이 더 필요가 없다
은혜로움 그 잡채ㅠㅠㅠㅠㅠㅠ
(동영상)
이거 박스로 사면 포카 주냐고 바로 고객 센터에 문의해 봤는데 아쉽게도 준비된 건 없대ㅠㅠㅠ제발요 저 이거 못 가지면 죽을 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
+ 규민이랑 같이 찍은 덤? 쿠키? 영상도 귀여움!
(동영상)
[댓글]
[- 와 CF 납치 개빠르네 회사 판단력 대단하다 계약 기간 최소 연 단위일 텐데 데뷔하고 나면 광고 단가 확 뛸 테니까ㅇㅇ… 미리 침 발라 두기ㄷㄷ]
[└ 와 이 생각은 못 했네 내가 이래서 대기업에 못 들어간 걸지도]
[└ ㄹㅇ나도 보자마자 머리 좋네 이 생각부터 함22222]
[- 하… 서인수 얼빠 소리 한 번만 들어 보고 싶다… 어떻게 사람이 비주얼이 저런데 실력까지 개탄탄해서 팬이 얼빠 소리 못 듣게 원천 봉쇄까지 해 주지ㅠ]
[└ 공개 연생 발표됐을 때 무조건 얘는 비주얼이다 싶었는데 보컬이래서 개놀람]
[└ (사진) 이날 NO 차세대 비주얼 떴다고 난리 났었는데 벌써 세월이 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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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내가 혹여나 부당 계약을 했을까 봐 걱정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그건 알아서 감수했던 부분이었다.
‘데뷔하고 나서 계약하는 게 금전적으로 유리한 거 나도 알지.’
그러나 내 목적은 수익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미 지금도 전국 지하철 곳곳에 내 얼굴이 걸려 있긴 하지만, 지하철 광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붙어 있는 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기 일쑤니까.
‘나도 회사 망하고 데뷔한 지인들 보기 힘들었을 때 고개만 숙이고 다녔더니 안 보고 다닐 수 있었지….’
하지만 TV나 유튜브 광고에 나오면 아이돌은커녕 연예인조차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내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얘가 누구지? 요즘 유명한 앤가? 정도의 호기심만 불러올 수 있어도 내게는 이득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좁쌀만 한 인지도라도 더 끌어올려야 유리한 타이밍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광고 캡처로 영업을 시도하는 게시글 댓글에도 겟데뷔 안 봐서 누구인지 몰랐는데 광고 보고 관심이 생겼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거면 충분하지.’
뿌듯한 마음에 스크롤을 내리던 그때, 불쑥 트집을 잡는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 서인수 ㅈㄴ 약은 척하더니 머리 잘못 굴렸네ㅋㅋㅋㅋㅋ 데뷔하고 계약했으면 금액이 더블이었을 텐데]
뭔가 싸하다 싶어서 새로 고침을 한 순간, 댓글의 공감 수가 3에서 순식간에 27로 올라갔다.
[└ 존나 별것도 아닌 걸로 조롱하네 이런 댓글은 굳이 왜??? 남기는 거예요???]
[└ 심보가 왜 이렇게 못됐냐 빨리 망하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 같은 너낌이네]
댓글 공감순 상단에 올라가면서 하나둘 비공감을 찍어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으나 또다시 빠른 속도로 공감 수가 올라갔다.
‘이거 뭔가….’
안티나 경쟁 연습생을 응원하는 팬덤이 만든 단톡방에 좌표 찍혀서 공격당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큰가…?’
혹시 나중에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괜히 등 뒤가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걱정이 쌓여 가기도 잠시, 몇 년 전에 연습생 단체 무대에서 친분을 쌓았던 현역 아이돌 지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쭈] (사진) 오전 00:37
[쭈] 음원 터졌네 너무 잘됐다!!! 오전 0:38
앞서 발매된 음원이 수일째 실시간 순위에 차트인, 이제 안정적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것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음원도 잘됐으니까 뭐…. 크게 걱정할 건 아니다만.’
주변인들의 인성 인증이며, 광고며, 음원이며 일부 반응을 제외한 대부분의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괜히 신경 쓰이기 시작해서일까, 음원이 처음 발매됐을 때 읽었던 악플이 문득 떠올랐다.
[- 솔직히 프로그램이 워낙 화제가 돼서 다들 궁금하니까 듣는 거지ㅋㅋㅋㅋ 찐리스너가 이걸 찾아 듣겠냐]
[- 음원 개별로임 인기빨로 팬들이 스밍 돌려서 순위 올려놓는 꼴 극혐]
어떻게든 대중적인 취향에서 벗어난, 팬들만 듣는 그뭔X 음원으로 몰아가고 싶었던 모양이다만….
‘즐겨 듣는 연령대 확인은 해 보고 하는 말일까.’
실제로 곡 정보 버튼을 눌러 확인 가능한 ‘즐겨 듣는 연령대’는 10~20대가 조금 지분이 크기는 했지만, 30대 이상에서도 고른 지수를 보여 주고 있었다.
With you는 대중적인 감성의 밴드곡이었다. 우리를 모르더라도 라디오나 차트 재생 등을 통해 의도치 않게 듣더라도 신날 만한 곡으로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연성에서도 프로듀싱할 때 최대한 대중성과 이지 리스닝에 초점을 두고 지원해 주었다.
어떻게든 억지로 깎아내리기 위해 애쓰는 시도들을 보니 씁쓸한 실소가 나왔다.
‘유튜브에는 또 이상한 거 계속 올라오고 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 보자 아니나 다를까, 당장 30분 전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영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인수 파트 뺏기고 비율 폭망 충격적인 근황]
‘뭐라는 거야?’
이런 건 클릭해서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 없는데, 도저히 무시하기 어려운 썸네일에 나도 모르게 클릭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 메인 보컬이라면서 비중 처참.
‘4분 중 50초는 내가 불렀는데…. 싸비는 파트로 안 치는 기적의 계산법인가?’
- 공민형 옆에 서니 완전 난쟁이에 비율망.
‘키 차이도 안 나고 머리는 내가 더 작은 것 같던데 애초에 나란히 선 적이 있나?’
등등의 헛소리와 함께 배경에는 화질구지 사진 하나가 박혀 있었다.
‘방청 와서 폰카로 찍은 사진인가.’
공민형에게 어깨동무를 하기 위해 잠깐 몸을 숙였던 짧은 타이밍에 찍은 사진이었다.
아니, 사진도 아니고 동영상을 엉성하게 순간 캡처해 놓은 이미지였다.
반동을 줘서 어깨를 낚아채기 위해 몸을 숙인 상태였기 때문에 착시 효과로 다리가 엄청 짧아 보였다.
‘역시 괜히 봤다.’
씁쓸한 마음으로 뒤로 가기를 누르자 다른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렉카 영상들이 우르르 눈에 띄었다.
‘영인이랑… 이규민도 있네?’
이런 계정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조심스럽게 서브 계정으로 채널 신고를 누르려던 그때.
“자요?”
불쑥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나는 아악,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트렸다.
“악.”
“아.”
다른 놈들은 다 거실에 드러누워 있었으니 지금 여기서 내게 말을 걸 만한 사람은 제현호뿐이었다.
“네?”
순간 당황해서 핸드폰을 꽉 움켜쥔 채 묻자 제현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뇨, 별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이놈 오늘 발표된 순위가 지난 미션 때보다 떨어졌던가.
혹시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아뇨, 말해요. 어차피 안 자고 있었어서.”
하지만 제현호는 한참을 묵묵히 인기척만 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사람을 열받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라고 누군가 그랬지.
‘왜 저러는 거야.’
나도 모르게 입이 삐쭉 튀어나오려는 찰나, 제현호의 입에서 상상도 못 했던 문장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