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85화 (85/224)

#085. 기다리고 있는 건 (3)

[왜 차단하세요ㅋㅋㅋㅋㅋ? @gudokandpalm]

[인증도 못 하고 가격 제시하니까 쫄튀 하네? @gudokandpalm]

[찔리는 게 있으니까 차단 박은 거 아님? @gudokandpalm]

[#겟데뷔 #겟데뷔팬싸 리셀 사기꾼 조심하세요 대화하다가 차단 박고 튐 @gudokandpalm]

미친놈 아냐, 이거. 1시간 동안 멘션을 무슨 수십 개를 우다다 남겨 놓고는 남의 교환까지 막으려고 초를 치고 있었다.

‘하….’

결국 판매용 익명 계정을 하나 새로 개설한 후에야 인덕은 무사히 교환을 마칠 수 있었다.

팀 레드에 1, 2위가 전부 속해 있는 상황이라 혹 끝까지 못 구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당일 직전, 서치에 서치에 서치를 거듭한 끝에 올라온 지 40초밖에 안 된 게시글을 발견해 낚아챌 수 있었다.

‘이건 우주가 나 꼭 가야 한다고 도와준 거라고 본다.’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입장 티켓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생이 조금 뒤따랐다.

티켓은 추첨제로 주인을 찾아갔지만 좌석은 추첨제가 아니다.

대기 줄 순서대로 입장해서 앞줄부터 채우는 방식일 것인 만큼 일찍이 가서 줄을 서고 있는 편이 안전했다.

‘기껏 힘들게 표 구해서 가 놓고 200명 뒤통수에 가려진 애들 얼굴 보겠다고 앉은키로 들썩거릴 순 없으니까….’

인덕과 최애가 갈린 지인들의 부탁을 받아 인수 외 다른 멤버들에게 줄 질문이 적힌 포스트잇도 챙겼고.

인수의 은혜로운 비주얼에 어울릴만한 소품들도 잔뜩 챙겼다. 사진을 찍어 줄 동행도 든든한 XOXO 님이니 자리만 잘 잡으면 된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인덕의 앞에 나타난 것은 벌써부터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진을 친 팬들이었다.

“와… 진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저희가 뛰는 놈일 줄은 몰랐는데….”

그나마 다섯 팀 내외 정도라는 것이 다행일까. 인덕은 주섬주섬 쇼핑몰 입구 앞쪽에 서 있는 줄을 따라 자리를 잡았다.

‘하…….’

내가 또 무슨 부귀와 영예를 누리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

앞선 줄의 팬들을 흘끔 지켜보니 인덕보다 어린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생도 있는 거 같고… 거의 다 대학생인가.’

인덕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대학 졸업장을 받은 만큼 체력으로 모든 걸 버틸 수 있는 시점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온 건데….’

대여섯 명이 모여서 까르르 웃으며 자기네들끼리 게임도 하고 장난도 치는 걸 보고 있으니 후회가 조금씩 밀려들었다.

“쪼 님….”

인덕이 슬쩍 눈치를 보며 부르자 이 늦은 밤에 선글라스를 챙겨 온 XOXO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왜요? 저 내일 과제 제출할 거 있어서 잠깐 눈 좀 붙일라고요. 내기만 해도 A+인 것도 이젠 지겹다…. 하….”

“…….”

인덕이 꽁트를 받아 주지 않고 그저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자 XOXO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왜요. 뭐, 왜. 저 올해 입학했거든요.”

“…….”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그때, 인덕의 앞 순서였던 무리가 갑자기 휙 뒤를 돌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

뭐지? 인덕과 XOXO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앞사람을 바라보자 해맑은 표정의 대학생쯤 되었을까 싶은 팬이 활짝 웃었다.

“앗, 저희 간식으로 가져온 게 좀 많이 남았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드실래요?”

“…….”

“앗….”

인덕과 XOXO의 시선이 동시에 교차했다. 저녁밥은 든든히 먹고 온 참이라,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기는 한데….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에 인덕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아, 감사합니다.”

“……?”

XOXO가 그걸 왜 받고 있냐는 듯 인덕을 바라보았지만 인덕이 받은 이상 분위기 때문에라도 거절하기가 민망했다.

“아,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아니면 이쪽으로 좀 더 붙으실래요? 음료수도 있는데 뭐 드실래요?”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여는 데는 먹이를 제공하는 것만 한 게 없다고.

예상치 못했던 친절에 인덕과 XOXO가 녹아들기까지는 채 10분이 더 걸리지 않았다.

***

팬 사인회 당일 아침.

태복에서부터 서울까지는 최소 3시간이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야 했다.

“흐아암.”

“…….”

“흠… 으음….”

기상 시간이 세 시 반이었나. 메이크업 샵을 예약한 시간이 일곱 시였으니 여유라곤 없었다.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숙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화장실에서 늦장 부리고 안 나온다 싶었더니 졸고 있던 놈, 못 일어나서 이불 뒤집어쓰고 시위하는 놈, 아침은 이대로 걸러야 하는 거냐며 입맛 다시는 놈.

온갖 빌런들을 챙겨서 사람 몫 하게 만드는 건 아주 다행히도 나만의 몫이 아니었다.

“내가 간식이랑 칼로리바 같은 거 좀 챙겼으니까 이따 차 가서 줄게.”

주혜성이 생각 이상으로 싹싹하게 맏형 노릇을 해 준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쪽도 일단은 두 번째 연장자인데 말이지.’

폐는 끼치지 않도록 하연과 함께 일찍 준비하기는 했다만, 최연장자인 혜성이 맏형답게 팀원들을 챙기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은찬은 툭 치면 쨍그랑하고 깨질 것처럼 얼어붙어서는 이거 이러다 사고 치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떨고 있었다.

“형 괜찮아요?”

안 괜찮아도 끌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만, 그래도 어떻게든 순서를 뒤에 배치한다거나 배려를 할 수는 있으니까 우려차 물었다.

“음. 괜, 찮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표정이 제법 결연해서 초 치는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네. 그럼 얼른 나가죠. 저희가 일찍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스태프분들이 덜 고생하시니까요.”

주섬주섬 대기할 때 입을 만한 편한 옷을 챙긴 가방을 들고 로비로 나서자 일찍이 15인승 승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 레드랑 같이 이동하는 건 아닌가 보네.’

애초에 날짜부터 다르긴 했지만, 혹시나 일찍 서울로 이동해서 그쪽 숙소에서 대기시킨다거나, 등등.

생각도 못 한 방법으로 상대 팀과 어울리게 될까 봐 걱정했었는데.

그 정도로 배려가 없는 건 아닌지 운전을 담당할 스태프와 관계자 두 명을 포함해서 딱 낑겨서 탈 만한 차량이었다.

‘나중에 데뷔하고 나면 밴 두 대로 나눠서 이동하게 되려나.’

아직 나중의 일은 장담할 수 없다지만.

아무리 프로그램 준비에 투자한 돈이 많다고 한들 연습생 출연료는 열정 페이 수준에, 중간 광고도 회차당 대여섯 개씩 쑤셔 넣었으니 제작비쯤은 우습게 회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겟데뷔의 흥행 수준을 생각하면 더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였다.

‘협력 운영사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지원은 해 줄 수 있는 정도의 흥행 아닌가?’

비좁은 시트에 두셋씩 낑겨 앉으려니 온몸에 좀이 쑤셨다.

“앞으로 시트 조금만 밀어 주시면 안 돼요? 저 다리가 너무 끼는데….”

“앗, 저도….”

하연과 영인은 다리를 구깃구깃 접어서 수납하느라 고문이라도 받고 있는 듯한 자세였다.

“정 불편하시면 한 분이 조수석에 타실래요?”

“앗.”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하연이 조수석으로 가고, 스태프와 뒤엉켜 탄 모습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넵!”

불평은 여기까지 하자. 마음을 비우고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눈을 붙였다.

혜성이 나눠 준 칼로리바를 여기저기서 우물우물 씹는 소리가 들렸으나 잠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한 게 7시 20분. 앞 구간에서 사고가 나서 도로가 한동안 꽉 막히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어졌다.

정시에 왔어도 시간이 여유 있지 않은 마당에 늦기까지 하는 바람에 야단법석이 따로 없었다.

“저 이거 입으면 되나요?”

“앗, 아뇨! 그건 현호 님 의상이에요! 헉, 현호 님 지금 뭐 입고 나오신 거예요?”

무대는 몇 번 올라가 봤어도 이런 행사는 다들 처음이었기 때문에 혼란에 혼란이 이어졌다.

서로 의상을 바꿔 입는 것은 예사요, 테이블 순서를 정하는 거로도 한바탕 얘기가 길어졌다.

“그럼 그냥 내가 첫 번째로 앉을게.”

나는 솔직히 어디에 배치해 놔도 상관없었다. 알아서 아무도 안 앉으려는 데다 배치해 줘라, 정도였는데.

첫 순서가 아무래도 팬들을 맞는 첫인상이다 보니 다들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아, 근데 그러면….”

그러면, 또 뭐? 눈을 가늘게 뜨고 규민을 바라보자 규민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냐, 됐어.”

꼴에 새침하게 손등을 턱에 괴고 고개를 돌리는 꼴이 가관이었다.

“뭔데. 빨리 말해.”

귀찮게 시간 끌지 말고 불라는 듯 노려보니 곧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네가 아무래도 우리 팀 간판이니까 맨 앞에 있어도 되나? 싶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아무래도 많은 수가 나를 보는 걸 기대하고 왔을 테니 그것도 신경 쓰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너무 의미 두지 마. 하나하나 신경 안 써도 돼.”

결국 정해진 순서는 나 - 현호 - 영인 - 지원 - 규민 - 혜성 - 은찬 - 하연 순이었다.

‘영인이 좀 돌발 행동을 하긴 해도 아이돌로서 매너는 잘 알고 있으니까.’

어떤 때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어떨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하는 희한한 녀석.

지원이 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태연히 잘 잡아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규민도 뭐… 지원이 당황해서 사고 치고 있는데 내버려 둘 놈은 아니니까.’

어쨌든 함께 데뷔하게 될 팀을 위해 무엇이 이득인지 아는 놈이니까 맡길 수 있었다.

‘…….’

꼭 규민을 믿고 의지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퍼드덕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쳤냐. 자기 할 일 정도는 하는 놈이니까 그렇다는 거지. 또 2차 미션 때처럼 긴장해서 화장실이나 들락거리지 않으면….

불신의 눈으로 이규민을 노려보았으나 용케 이번에는 긴장을 좀 떨쳤는지 미리 준비해 온 멘트 같은 것들을 외우고 있었다.

“…….”

알아서 잘하겠지. 잠시 숨을 고르자 곧 사인회장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주말 오전 11시. 그냥도 사람이 바글바글 미어터질 종합 쇼핑몰 한복판에서 팬 사인회를 하겠다는 생각을 대체 어느 머리가 결정한 것인지.

예정된 시간보다 약간 이르게 출발했음에도 중앙 광장 전체가 행사 진행을 위해 출입을 막아 둔 부분을 제외하고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저기 뭐 연예인 왔나?”

“겟데뷔라고 뭐 케이블에서 하는 프로그램 출연자라는데?”

“아, 그 아이돌?”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사람이 모여 있으니 관심을 갖는 행인에, 추첨에서 탈락했으나 그림자라도 한번 보려는 마음가짐으로 찾아온 팬들까지.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

“이쪽으로 이동하실게요!”

겨우겨우 시큐리티와 스태프가 진입로를 뚫어 세트장 위에 올라가자 얼마나 많이 모인 것인지 실감이 났다.

“2층 출입 에스컬레이터 차단하겠습니다. 더는 입장 못 하게 출입구도 통제해 주세요.”

더는 이 층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통제를 해야 할 수준이라고? 그제야 줄이 저 입구 쪽까지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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