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91화 (91/224)

#091. 기대했던 순간 (3)

녹화가 종료된 참이었기 때문에 곧 인터뷰 진행을 위한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촬영장에 불은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방송이 1시 넘어서까지 나간다고 했으니까 지금쯤 2시 좀 안 된 시간인가.’

워낙 늦은 시간이니 그럴 만도 하지. 불 꺼진 복도를 가로질러서 화장실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취미는 없었다.

‘아까 스태프용 화장실이 어디 있다고 했었는데.’

거기는 아직 스태프들이 한창 철수 중이라 불 안 꺼 놨을 것 같은데.

나는 여태껏 왔던 길을 돌아 조금 멀리 있긴 하지만 확실히 불이 켜져 있을 법한 곳으로 향했다.

‘그러네. 여긴 아직 훤하네.’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직 철수하지 않은 관계자가 있는지 불은 꺼지지 않은 채였다.

‘빨리 얼굴만 씻고 돌아가자.’

생얼에 자신이 없는 편도 아니니까 망가진 메이크업은 최대한 지우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세면대 앞에 서서 물만으로라도 최대한 메이크업을 씻어 낸 다음 벽에 붙어 있는 페이퍼 타올로 물기를 제거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울긋불긋한 열감이 내가 어지간히도 서럽게 울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좀 부끄럽네.’

민망하기도 하고. 어쨌든 당장의 목적은 달성했다. 무대에서의 떨림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아 손끝이 조금씩 바들거렸지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인터뷰 찍고 해산하면 집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그리고 뭘 해야 하는지 K 피디랑 얘기를 좀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던 그때.

“앗.”

생각도 못 한 인물과 맞닥뜨렸다.

“…….”

‘이 자식은 왜 또….’

오늘 꽤나 태연한 얼굴로 게스트석에 앉아 있었던 공민형이었다.

‘아까는 방송용으로 표정을 관리하고 있는 거였나.’

언제 웃고 있었냐는 듯 놈의 얼굴은 다크서클보다 더 어둑하게 가라앉은 채였다.

복도 코너에서 의도치 않게 마주치게 된 공민형이 피식, 조롱하듯 말했다.

“좋겠네, 데뷔해서.”

당연히 좋지, 안 좋겠냐. 전보다 한층 더 어두워진 듯한 공민형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때아닌 염려가 밀려왔다.

4차 미션에서 놈은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는 단순히 1등인 나에 대한 농도 짙은 경계… 겸 트롤링이라고 생각했는데.

‘데뷔까지 정해진 마당에 이러는 것을 보아하니….’

어쩌면 저게 온전한 본인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거기에 따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내게 반감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승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오지랖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고마워.”

굳이 시비로 맞불을 놓을 필요는 없어 보여 살짝 찝찝한 표정으로 축하를 받았다.

짧게 대답하고 지나치려던 순간, 이대로 멀어지고 나면 두 번 다시 민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나도 은근히 오지랖 넓어서 문제라니까.’

나는 속으로 후, 한숨을 삼키고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너 그때… 무슨 얘기 하려고 했던 거야?”

불쑥 물은 질문에 민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뭔가 나한테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것 같아서.”

“…….”

짧은 침묵이 흐른 끝에 하, 공민형이 코웃음을 쳤다.

“아~, 그거. 부모 빽 든든해서 좋겠다고.”

“무슨 소리야.”

내가 부모 빽이 든든하다니. 양부모님이 두 분 다 좋은 분이라는 건 사실이나 빽이 있는 분들이냐고 하면 그건 결단코 아니었다.

‘그랬으면 내가 인생 1회차 때 진작 데뷔했지, 그렇게 계속 망하기만 했겠냐.’

나는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부모님 그냥 평범한 공무원이신데.”

최소한 방송계에서만큼은 빽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울리지 않을 분들이었다.

그러자 공민형이 외려 자신이 더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뭐가?”

“어이없네.”

“그러니까 뭔지 말을 해야 내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는 건지 답을 해 주든가 할 거 아냐.”

이쪽도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자 민형이 비웃음을 던지며 대답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지금 대기실 C호로 가 봐.”

공민형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사라져버렸다.

‘대체 왜 저러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걸음이 C호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인데….’

이 안에 누가 있나? 똑똑 노크를 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다가가자 안에서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뭘 어떻게 해. 애초에 끼어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어.”

“그럼 이대로 지켜보겠단 소리야?”

30대에서 40대쯤 되는 것 같은 진중한 목소리가 약간의 날을 세운 채 오가고 있었다.

‘내가 끼어들어도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닌데?’

한 명은 너무 지겹도록 들어서 이제는 친척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비안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쪽도 익숙하긴 마찬가지인데.’

익숙하긴 한데, 누군지 바로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사이 문 너머의 사람들이 대화를 이어갔다.

“방해할 명분도 자격도 없잖아. 투표는 공정했어. 스스로의 힘으로 데뷔한 것까지 방해할 수도 없고 방해하고 싶지도 않고.”

누구에 대해 말하는 거지? 눈을 가늘게 뜬 채 귀를 기울이던 나는 곧이어 나온 이야기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래, 잘하긴 잘하더라. 누구 아들인데 실력으로 모자라겠어.”

‘데뷔 멤버 중에 저 사람 아들이 있다고?’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문장은 더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너는 내가 이렇게 된 게 너무 즐겁고 신나서 비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

“글쎄. 나도 이 정도 심술은 부릴 자격이 있지 않아? 내가 누구 때문에 데뷔도 못 할 뻔했더라?”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야. 사과도 보상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해. 이제 그만 좀 해.”

“아니, 그만 못 해. 언니도 처신 잘해야 할 거야. 박 대표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끝에 누군가 입을 열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걔는 자기가 왜 그런 일을 당하는지도 모를 텐데. 부모가 되어서는, 최소한 미안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 순간, 나는 문 너머에서 비안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비로소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데뷔도 못 할 뻔했더라?’

비안과 같은 그룹으로 데뷔해, 대한민국 아이돌 역사의 첫 문을 연 사람.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 대표’로 불리는 골든링 미디어 박현민 사장과 단언컨대 가장 악연일 사람.

‘유 대표가 자식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 결혼 안 하지 않았나?’

내가 여기서 몰래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민형은 대체 왜 이쪽으로 가 보라고 한 것인지 의문이 스쳤다.

‘가자, 시간도 꽤 지났고.’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비안의 목소리가 다시 귀에 들려왔다.

“정신 차려, 언니. 한 번 물 먹이려 했으면 됐지, 두 번 세 번은 나도 그냥 두고 못 봐.”

유 대표가 멤버 중 한 명의 데뷔를 막으려고 했다고? 이렇게 되면 나로서도 끝까지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옮기려던 걸음을 다시 멈춰 세웠고.

“인수는 언니만 가만있으면 알아서 잘할 거야. 박 대표가 또 허튼짓하면 그땐 내 이름 걸고 데뷔한 애들 가지고 장난질 못 치게 나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이어지는 비안의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왜, 왜 내 이름이 거기서….’

순간, 지금까지 겪었던 사건의 어떤 파편들이 맞아들어가듯 머릿속에 펼쳐졌다.

‘인수 말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한테 말해 볼까? 도와줄 수 있는지….’

‘어쩜, 눈이 많이 닮았네요.’

‘와, 너 방금 유 대표님이랑 완전 똑같았어.’

‘하….’

그리고 유 대표가 나에게 수없이 아이돌을 포기하라는 듯 이야기했던 것도.

“X발….”

나는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따질 것처럼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 내가 들은 게 사실이냐고. 정말 당신이 내가 알고 싶었던 동시에 죽을 때까지 알고 싶지 않았던 친부모가 맞냐고.

따져 묻고 싶었으나 숨이 턱 막혔다. 모든 게 혼란스러워서 도망치고 싶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데뷔의 기쁨으로 떨리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긴 것처럼 욱신거렸다.

“…….”

홀린 듯 문고리를 잡으려던 그때.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진동으로 설정되어 있던 핸드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도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

[이규민]

[미확인 메시지 381건]

단톡방은 물론 생방송으로 데뷔를 지켜본 지인들이 축하 메시지를 폭탄처럼 보내고 있던 탓에 화면이 어지러웠다.

“…….”

나는 일순 문 너머에서 들리던 말소리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왜? 그토록 궁금해했던 거잖아. 내 부모가 진짜 나를 버린 건지,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건지.

지금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니,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정면 돌파가 아니었다.

유 대표는 분명, 더 이상 내게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대화 내용을 생각하면 그 말을 완전히 신뢰하긴 어렵지만.’

설령 그 말이 거짓이었다고 해도, 유 대표는 내가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걸 절대 원치 않는 눈치니까.

내가 조금 전 상황을 직접 확인한 이상 키는 내가 쥐고 있는 셈이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지금 밝혀서 팀에 도움이 될 게 없어.’

유 대표는 왜 내 데뷔를 방해했을까. 기획사 대표로 잘살고 있는 자신에게 버린 자식인 내가 방해가 될까 봐?

만약 그가 자기 앞길의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 그런 짓까지 할 부모라면.

‘앞으로 유 대표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패를 쥐고 있는 게 나아.’

내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긴 프로그램을 함께 헤쳐 온 팀원들이었다.

다 내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멘탈을 꽉 잡고 버텨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복도를 가로질러 대기실 앞을 떠났다.

“헉, 헉….”

내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인터뷰실에 도착하자 규민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전화를 몇 번이나 한 줄 알아? 나한테는 화장실에서 안 나온다고 그렇게 뭐라고 하더니만.”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웃었다.

“화장실 불이 나가서 불 켜진 곳 찾느라 좀 헤맸어.”

그리곤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들 너무 잘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앞으로도 잘해 줄 거라고 믿고요, 이 팀원들과 함께 데뷔할 수 있게 된 게 제 최고의 행운인 것 같습니다.”

침착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손이 덜덜 떨렸다.

“……?”

다들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과 해냈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 와중, 내가 평소와는 컨디션이 다르다는 걸 알아챈 건 한 명뿐이었다.

“잠깐만요.”

느닷없이 내 앞을 막아선 제현호가 불쑥 이마 위로 손을 짚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