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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92화 (92/224)

#092. 재계약 (1)

슥슥, 제현호가 내 이마를 짚었던 손을 자기 윗옷에 문질러 닦았다.

“지금 식은땀 엄청 흘리고 있는데요.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엥?”

제현호의 말에 앞으로 숙소 생활하면 청소는 어떻게 나눠야 하냐는 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던 팀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어? 그러게. 물이 아니라 땀이었어?”

이규민까지 다가와서 남의 이마를 만지려고 드는 바람에 나는 재빨리 규민의 손을 밀어내고 뒷걸음질 쳤다.

“됐어.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긴장이 풀려서 그래.”

“웬일이냐, 남들 다 긴장할 때 맨날 멀쩡하던 놈이.”

문득 괜히 너무 까칠하지 않았나 걱정이 앞섰으나 규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놈이 어쨌든 단세포라 다행이다.’

내가 더 이상한 티를 내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안색이 나빠 보이는 모양이었다.

괜히 더한 추궁을 받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했다.

해산하기 전에 회식을 해야 한다느니 떠드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나는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먼저 가시라고 할걸.’

그리고 그 말 그대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양아버지가 정말 주차장에 차를 댄 채로 운전석에서 졸며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똑똑. 가볍게 운전석 쪽의 창문을 두드리자 양아버지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나를 보고 환히 웃어 주셨다.

“오늘 정말 너무 고생 많았다. 이제 다 잘될 일만 있을 거야. 아빤 네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 너도 기쁘지?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드디어 데뷔하게 됐으니.”

양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친부모 따위, 그렇게 알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은 말마따나 기쁘기만 해야 하는 날인데.

두 분을 앞에 두고 친부모 때문에 이리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 죄송스럽기 짝이 없었다.

“네, 그동안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앞으로 제가 더 열심히 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나는 애써 웃으며 본가로 향했다. 양어머니의 축하 속에 뒤늦게 잘 준비를 하고 심란한 마음으로 침대에 눕자, 기다리고 있던 화면이 나타났다.

[메인 미션 클리어!]

[메인 미션 ▷내가 키운 우리 애들 수행 완료]

[보상 수령]

[코인 5개]

[스탯 보정 (1단계)]

[재계약 제안]

코인이랑 스탯 보정은 뭔지 알겠는데… 재계약?

지금까지 뭐 제대로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재계약은 또 뭐야?

의문을 표하기도 잠시 바로 새로운 버튼이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지금 이게 중요하겠냐. 나는 뻔히 아는 내용이 요약된 줄거리는 흐린 눈으로 넘기고 코멘트를 확인했다.

[- 주인공 진짜 답답하네. 미래 정보 활용 안 할 거면 회귀 왜 했음?]

[- 시스템은 왜 있는 거야? 활용 안 할 거면 굳이 시스템 들어갈 필요가 있나?]

[-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 지지부진 답답한 내용 계속 반복. 패턴이 되니까 질림.]

응원하는 내용도 많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불호 댓글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위축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K 피디가 아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인수 님! 우선 미션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그토록 간절히 희망하셨던 데뷔를 거머쥔 기분이 어떠신가요?]

데뷔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당연히 기뻤다.

그 뒤에 알게 된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충격적이라서 문제지.

‘…내가 충격받을까 봐 일부러 말씀을 안 하셨던 건지, 아니면 유 대표가 입막음을 했던 건지….’

양부모님께 내 생부 생모는 일종의 금기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계속 덮어 두고만 살았는데.

느닷없이 닥친 진실에 마음이 심란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별로 기뻐 보이지 않으시네요?]

마치 내 속을 읽은 것처럼 K 피디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니, 게다가 부정적인 코멘트를 잔뜩 보여 줘 놓고서 아무튼 데뷔했으니까 난 됐음, 할 줄 알았냐.’

나는 속으로 불평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뇨, 기쁘죠, 당연히. 언제부터 줄곧 꿈꿔 왔던 순간인데.”

유 대표 일만 아니었어도 앞으로 무슨 컨셉을 하고 싶고, 뭘 해 보고 싶고, 어떤 무대에 오르고 싶고 앞으로 해 볼 것들에 대해 생각하느라 벅차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있었을 터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거래를 훌륭히 끝마치신 것에 무척 감사드리며 좋은 평가 부탁드리겠습니다!]

K 피디의 멘트와 함께 팟, 하고 별점을 입력할 수 있는 창이 나타났다.

[거래의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

‘…….’

심란한 기분이 남은 건 내 개인적인 문제고, 어쨌든 나도 원하던 목적은 달성했으니 다섯 개를 줘야 하나 고민 중이던 그때.

이제부터가 본론이라는 듯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떴다.

[계약 종료]

[지금까지 KJG미디어와의 거래를 훌륭히 끝마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후에도 좋은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10분 후 자동으로 복귀됩니다.]

“음…?”

복귀라니? 어디로?

생각도 못 한 단어의 출현에 나는 다급히 물었다.

“복귀라니 어디로요?”

그러자 K 피디의 태연한 메시지가 돌아왔다.

[저희와의 계약이 무사히 종료되었으니 서인수 님께서 활동하고 계셨던 세계선으로 다시 복귀시켜드릴 예정입니다!]

“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이대로 계속 사는 거 아니었어? 망한 인생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 거래를 받아들인 건데 다시 돌아가라고?

[복귀를 희망하지 않으시면 계약을 연장하는 방법도 있으신데 설명이 필요하실까요?]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으면서 이렇게 태연하게 말한다고? 나는 반쯤 졸린 눈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대로 계속 이렇게 사는 거 아니었어요?”

[그건 저희 KJG미디어와 계속해서 계약을 갱신하실 때의 한정된 상황으로, 계약 만료 시 더는 현재 체류 중인 세계선을 이용하기 어려움을 알려드립니다.]

그제야 나는 속았다는 실감이 났다.

그러니까… 데뷔를 시켜 주긴 시켜주는데, 그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보장하지 않았으니 자기네 책임은 거기까지라는 소리였다.

‘미친 거 아냐?’

데뷔를 시켜 줬으면 당연히 그 이후의 활동도 계속할 수 있는 줄 알지, 말 그대로 데뷔‘만’ 맛본 수준이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럼 재계약은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건데요?”

이런 미친…. 욕이 저절로 나왔지만 지금은 내가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가 원래 세계선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만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빠지는 건가? 아니면 팀 자체가 엎어지거나, 이 세계선에 다른 녀석들까지도 운명이 달라지는 건가?

이규민을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원래 데뷔조가 아니었으니 내가 운명을 바꾼 덕분에 데뷔하게 된 녀석들이라고 해도.

‘이건… 이건 아니잖아.’

어떻게 되든 3개월 넘게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재계약을 희망하실 경우 이전 거래를 훌륭히 완수하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재계약 우선 협상권이 서인수 님께 주어집니다.]

[다만, 서인수 님께서 앞서 클리어하신 미션은 ‘초심자 난이도’로, 계약 연장을 희망하실 경우 난이도가 상승하게 된다는 점, 인지 부탁드립니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 했다.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러면 다시 거래를 제안하도록 하겠습니다.]

[KJG미디어가 서인수 님께 거래를 신청합니다.]

[진행]

나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진행 버튼을 눌렀다.

[교환]

[받는 아이템]

- 1년간의 아이돌 활동 기회

[보내는 아이템]

- 인생

받는 아이템을 확인한 나는 이번엔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1년간 아이돌 활동이면, 겟데뷔 활동 계약이 끝나면 이 계약도 종료된다는 뜻인가요?”

그러자 K 피디가 산뜻하게 대답했다.

[이해하신 것이 정확히 맞습니다.]

결국 이것도 어떻게든 잘 마무리 짓고 나면 다시 재계약을 하거나 본래의 세계선으로 쫓겨나지 않을지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럴 수는 없지.’

“그럼 받는 아이템으로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은데요.”

한 번 당한 수에 두 번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무엇을 추가하고 싶으실까요?]

“이번 계약 만료되더라도 현재 체류 중인 세계선에 원하는 만큼 체류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시켜 주세요.”

그러자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K 피디가 재빨리 새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현재 서인수 님께서 지불하실 아이템의 가치로는 1년 활동 기회만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럼 이쪽도 뻔뻔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제가 꽤 가능성 있는 소재라고 하시지 않으셨던가요? 지금도 제가 재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서 난이도를 올려 재계약을 진행하려 하는 것부터가 제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은데.”

나는 표정 없는 얼굴로 시스템창을 노려보며 덧붙였다.

“<서인수>라는 소재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말을 고르고 있는지 K 피디는 곧장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저는 제 이야기가 앞으로 훨씬 더 재미있어질 수 있을 거라고 보거든요.”

스스로의 미래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자니 뭔가 기시감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이미 겟데뷔 1위를 시작부터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 가치를 증명했다.

더는 증명한 것도 없으면서 내세우는 근자감이 아니었다.

“멤버들은 이제 막 정해졌고, 활동은 이제부터예요. 루트가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을 벗어나서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 궁금하지 않을까요?”

여지를 줄 생각이 없었던지라 계속해서 말을 몰아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신… 로딩만 뽑아내고 있던 K 피디의 시스템창이 바르르 떨렸다.

“유 대표님이 제 친모라는 게 지금 막 밝혀졌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겠다? 재계약을 못 해서? 그거야말로 웃기지도 않은 절벽 엔딩 아닌가?”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당당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상 갖고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낸 마지막 베팅이었다.

“제가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재계약을 안 하면 그쪽도 손해인 건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내부 협의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놈의 협의는 무슨. 나는 흥, 콧방귀를 끼며 K 피디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그렇게 30초, 1분, 5분, 10분… 마침내 15분이 넘게 지났을 때.

나는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남은 잔여 체류 시간]

[00:00]

조금 전 계약 완료 메시지가 뜬 순간부터 카운트가 줄어들던 타이머가 00:00으로 바뀐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재계약이 결렬되면 이대로 그 옥탑방으로 돌아가는 건가.’

평생 내가 그래도 데뷔는 한번 해 보긴 했다면서, 미친놈의 망상처럼 떠올리고 살아가라고.

아니, 지금의 나는 정확히는 데뷔가 확정된 거지, 제대로 데뷔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뭐야, 결국 데뷔는 또 못 한 거나 다름없잖아.’

데뷔는 데뷔 싱글을 내고 쇼케이스를 하고 차트에 데뷔 음원이 올라가야 한 거지, 지금은 그냥 연습생 신분에서 벗어난 상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이런저런 불안감에 심박이 점점 빨라지던 그때.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 쫄리게 만드는 K 피디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계약 만료 시 영구 체류권을 획득하시기를 희망하시는 경우 특약 사항을 추가해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됐다. 떡밥을 물었다.

“특약이 뭔지 한번 확인해 보고 나서 다시 말씀드릴게요.”

이제 주도권은 나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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