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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95화 (95/224)

#095. 새 출발 (1)

당연하게도 서로 편하기 위해 단체 생활에서 규칙을 정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주혜성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자 은찬 또한 당연하다는 듯 수긍했다.

“나머지는? 괜찮아?”

나이가 어린 멤버들을 중심으로 돌아보자 지원이 지나칠 만큼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규민이 흘끔 지원의 반응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다들 1년간은 운명 공동체니까, 하나 망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생각으로 뭉쳐야지.”

표현이 좀 과하긴 하지만 규민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그럼 먼저 건의하고 싶은 거 있는 사람?”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했던 혜성이 뭔가 떠올랐는지 손을 번쩍 들었다.

“뭔데요?”

혜성이 약간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연애 절대 금지. 이것부터 못 박고 시작하자.”

아.

나는 그제야 혜성이 속해 있던 그룹이 망했던 이유 중 하나가 떠올랐다.

‘원챈스가… 멤버 중 한 명이 웬 배우랑 스캔들이 났었지.’

애초에 너무나도 무명돌이었기 때문에 뭐든 관심을 끌 수 있으면 다행인 수준이긴 했으나….

그 좁은 판에서나마 제일 인기 있었던 핵심 멤버가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여자 배우와 스캔들이 나 버렸으니 불바다를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여자 쪽은 열애를 인정했는데 남자는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라고 부정을 해 버렸다.

‘음방 출연 한 번이 간절한 기회인 무명돌이었던 만큼 아무래도 스캔들에 더 공포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만.’

혜성이 속해 있던 그룹은 그 길로 ‘사귀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할 우리 배우님에게 망신까지 준 쓰레기 그룹’으로 찍히고 말았다.

그런 경험이 있는 이상, 혜성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것도 썩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그룹 활동에는 큰 도움이 될 규칙이기도 해서, 나는 흔쾌히 혜성의 손을 들어 주었다.

“다른 사람들 의견은?”

사실 연애에 크게 목매다는 타입이 아니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규칙이었다.

활동 기간은 고작 1년이고,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 지원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저, 솔직히… 그, 가족분들 종종 오시는 건 괜찮지만 그게 아니면… 숙소에 다른 여자분들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어도 안 데려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연이 그런 지원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연애 금지라고 할 때는 그것도 당연히 포함인 거야.”

“앗, 아, 그, 그렇구나….”

“막내가 귀여운 걱정을 다 하네.”

형들이 이제 한창 남고를 다니다 방송에 끌려 나온 막내를 잔뜩 귀여워해 주던 그때.

제현호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긴장했으나 현호의 입에서 나온 건 생각보다 상식적인 의문이었다.

“그럼 남자는 데려와도 되는 건가요?”

“그 남자가 남자인 친구면 괜찮지 않나? 남자 친구면… 그건 아무래도….”

규민의 너무 나아간 가정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아무나 남자 사람 친구라도 다 데려와도 되는 건 난 좀 불편한데.”

은찬이 침묵을 깨 주기 전까지 그 어색함에 다들 말없이 고개를 돌려야 할 정도였다.

“저는 데려오지 말았으면 해서 말한 거였어요.”

제현호가 급히 혹여 오해라도 받을까 정정했으나 의견이 갈렸다.

“어, 나는 나랑도 같이 놀 거면 괜찮은데? 근데 나만 빼고 놀 거면 오지 말고.”

그리고 은찬과 내가 동시에 외쳤다.

“…표영인 발언권 압수.”

“표영인 발언권 압수.”

나는 짧게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정리했다.

“일단 확실한 건 연애 금지, 숙소는 가족 제외하고 이성 출입 금지, 남자는 데려와도 되긴 하는데 그날 숙소에 있는 멤버들한테 미리 물어보고 데려오기. 어때?”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 하연이 물었다.

“만약 중간에 누가 스캔들이라도 나면, 그때는 어떻게 제재를 하는 건가요?”

그러자 영인이 번쩍 손을 들었다.

“발언권 1회 준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영인이 헛소리를 했다.

“거세를 합시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끝에 은찬이 물었다.

“화학적으로, 아니면 물리적으로?”

“아니, 마음 같아서는 둘 다 한다고 하고 싶긴 한데 너무 비인도적이라 현실성이 없지.”

“그럼 뭐 자필 사과문이라도 쓰기?”

“그건 너무 약하지 않나.”

“그럼 탈퇴빵.”

“그거야말로 다 같이 침몰하는 루트잖아.”

서로 한마디씩 얹다 보니 말이 끝나질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됐어. 여기서 청계천 얼마 안 걸리니까 청계천에 빠져 죽어서 죽음으로 사죄해.”

“거기서 익사를 할 수가 있어?”

“그 정도 각오는 하란 뜻이야.”

정신없이 헛소리를 늘어놓다 보니 나까지 혼이 나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배달 음식 주문하는 방법이라든가, 청소 담당이라든가 이것저것 정하고 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잠깐 먹으면서 얘기할까요?”

어느새 돌아온 매니저가 사 온 간식을 다들 하나씩 입에 물었다.

“아, 이제 다이어트 열심히 해야 하는데….”

“솔직히 태복에서 먹은 게 그냥 다 다이어트지, 뭐.”

다들 시시콜콜한 얘기나 하면서 매니저와도 말을 붙여 보니 처음 받은 인상만큼 조곤조곤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매니저로서 강단이 있는 사람이냐면 잘 모르겠긴 한데….’

만약 서포트해야 하는 그룹이 말썽쟁이에 불량아 그룹이었다면 눈물, 콧물깨나 흘렸을 타입이었다.

‘엔카운터는 그런 녀석은 없으니까.’

영인이나 규민이 종종 돌발 행동을 하긴 하지만 악의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인성 문제가 불거질 만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외부 소통에 큰 지장만 없다면 나름 합이 잘 맞는 조합이라 할 수 있었다.

“다 먹었으면 이제 다시 사무실로 갈까요? 실장님 복귀하셨대요.”

실장님이라고 해도 지원 팀 다 해서 4명밖에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실질적으로는 팀장 정도의 위치라고 봐야 했다.

대표보다는 그래도 좀 전문성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빌었으나 급히 적은 예산에서 데려온 경력직이 눈물 날 만큼 유능한 인재이기를 바라는 것은 솔직히 과욕이었다.

“…해서 강렬하고 빠른 템포의 일렉트릭 팝을 제안하고 싶은데요.”

윤 실장이라 불리는 30대 중반쯤 되는 여자 직원분이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순간.

솔직히 만족스럽기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많았다.

‘내가 NO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도 영향이 있을지도.’

나쁘다 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확 마음이 끌릴 만큼 멋진 기획도 아니었다.

‘빠른 템포로 좀 강렬하게 끌고 가는 건 좋을 것 같긴 한데.’

우리 팀의 장점은 어느 모로 보나 탄탄한 보컬이었다.

내가 보컬 라인의 대장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래퍼 라인인 은찬과 하연조차도 웬만한 서브 보컬 정도 수준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신나게 들을 수만 있다면 곡 자체의 난이도는 좀 높아도 괜찮았다.

안무도 마찬가지였다.

‘올라운더가 이렇게 많은 것도 솔직히 복이지.’

은찬과 지원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때마침 팀에 몸치가 둘이었다.

얼마나 다행이야. 한 명만 그랬으면 그 하나만 숨겨 놓는 것도 일이었을 텐데.

그 둘만 좀 안무 복잡도를 낮춰서 대칭으로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연출한 것처럼 그들을 커버할 수 있었다.

‘이런 걸 좀 더 복합적으로 반영했으면 좋겠는데.’

다들 입이 근질근질한지 하나둘씩 의견을 보태다 보니 윤 실장의 기획은 뼈대만 남고 살은 우리가 붙인 모양새가 되었다.

“그럼 이번엔 시간이 없어서 우선 저희가 준비해 둔 데모로 진행하도록 하고요, 프로듀싱은 은찬 씨가 맡아 주시면 될 것 같은데….”

회의가 마무리되려던 그때, 은찬이 무표정한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아뇨. 작곡도 제가 할게요. 다른 분들이랑 같이 협업은 해야 되겠지만….”

아무리 자신 있어도 시간이 그렇게 안 될 텐데? 윤 실장이 잠시 은찬을 설득하려 했으나 은찬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괜찮을 거예요. 저희 미션 때도 시간 2주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잘해 주셨으니까.”

물론 그건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되는 많고 많은 프로그램용 음원이니까 그렇지, 할 수도 있긴 하나….

‘그 음원들이 결과적으로 지금 전부 TOP 100에 올라가 있는 걸 생각하면 믿어 볼 만하지.’

여전히 사람이 독선적이긴 하지만 그 재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다행히 컨셉 쪽도 일단락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을 때.

나는 왜 은찬이 자신이 작곡까지 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섰는지 알 것 같았다.

“쯧.”

웬일로 은찬이 SNS를 다 보고 있기에 뭔가 했더니, 웬 이상하게 생긴 남자의 포스팅을 보고 있었다.

“뭐예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한다는 게 혀 차기라니. 지금 어깨에 책임이 막중한 멤버가 무슨 일인가 싶어 슬쩍 묻자 하연이 나서서 끼어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긴.”

서로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붙어 있는 인간들이 말이 다르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진짜 아무 일 아닌 거 맞아요?”

그러자 은찬이 후, 짧은 한숨을 삼키며 조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화면을 보여 주었다.

[- 가능성 있는 후배 키운다더니 씬에 큰 획 그을 수 있는 애들 데리고 fake나 만들고 잘하는 짓이다.]

누군가를 저격하는 듯한 게시글이었다.

fake를 만들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은찬에게 물었으나 하연이 대신 대답했다.

“아… 그게, 저희 사장님이요.”

“…? 최 대표님?”

조금 전까지 최 대표 얼굴을 보고 있었으므로 나도 모르게 내뱉은 순간 하연이 정정했다.

“아, 아뇨! 크레딧 몬스터 대표님이요!”

“아아.”

뭐, 래퍼들끼리 디스전 그런 거라도 하는 건가. 두 사람에게는 대충 알아들은 척하고 곧바로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찾아보니 생각보다 내막이 복잡했다.

우선 실력 있는 사람이 어디 가도 주목받는 건 당연하겠지만, 하연과 은찬은 힙합 씬에서도 유망주로 꼽히던 신예였다.

은찬은 프로듀서 라인에서, 하연은 래퍼 라인에서 샤라웃도 많이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럼 데뷔해서 다행이라고 축하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안타깝게도 그건 내 오산이었다.

[박하연, 정은찬은 진짜 크몬에서 제대로 키워야 한다. 이 둘은 진짜 각이 보임.]

일부 팬들이 바라는 것은 두 사람이 ‘진짜’ 뮤지션으로 활약하는 것이었으니까.

[근데 그런 애들 데리고 아이돌? 미친 거 아니냐?]

아이돌 ‘따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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