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00화 (100/224)

#100. 첫 단추를 잘 끼우려면 (3)

“진짜… 너무 감사드리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계속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가 제게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

이 인간 어쩐지 도수 높은 거만 계속 내준다 싶었지. 30도가 넘는 칵테일을 여섯 잔째 비웠을 즈음 슬슬 사고 회로가 꼬이면서 ‘그동안 무대 위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감사를 언제까지 하는 거야, 인 수씨.”

“아니, 근데 진짜… 제가 연습생 생활을 너무 오래 했잖아요. 지금까지 기다려 주신 팬분들께 너무 감사해서…. 그동안 무대로 찾아뵙지 못해서 너무 죄송했거든요….”

“알겠으니까 그만 좀 감사해요. 인수 씨가 무슨 감사 전도사야?”

결과적으로 촬영 마지막 30분에는 내내 감사하다는 얘기밖에 안 해서 제법 웃긴 연출이 되긴 한 것 같았다.

입에 발린 멘트가 아니라 구구절절하게 진심을 담은 감사라서 더 웃긴.

“컷! 고생하셨습니다!”

마침내 컷 사인이 떨어지고, 나는 언제 추태를 부렸냐는 듯 멀끔한 얼굴로 일어나 문을 열며 인사를 마무리했다.

“오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즐거웠어요. 다음에도 불러 주시면 또 올게요.”

지금까지 보여 드렸던 모습은 모두 연기였습니다. 사실 저는 전혀 취하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듯 씩씩하게 일어난 것까진 좋았는데.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인수 씨… 거긴….”

“에…?”

하필 내가 당당하게 쥔 문고리가 화장실 손잡이였던 탓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 것은… 다시 생각해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다.

***

그리고 다음 날, 미리 먹어 둔 숙취 해소제가 무안할 정도로 세상을 저주하면서 눈을 뜬 나는 압도적인 두통에 굴복하며 바닥을 기었다.

“아… 죽겠다….”

회귀 전이면 몰라도, 이즈음의 나는 이렇게 마셔 본 적이 없으니 내성이 없는 게 당연했다.

“죽지 말고 일어나. 연습 가야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로 드러누워 있으니 이규민이 옆구리를 발로 쿡쿡 찔렀다.

“알겠다고. 잠깐만.”

리더가 돼서 약한 소리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끙,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10분 만에 정신 차리고 온다.”

머리를 감싸 쥔 채 비장한 각오로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때, 누군가 설치해 둔 함정이 발동했다.

쏴아아-

세면대가 아닌 샤워 헤드에서 물이 쏟아진 탓에 전혀 예상 못 한 방법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야, 샤워기 쓰고 안 돌려놓은 사람.

“화장실 샤워기 마지막으로 쓴 사람 누구야.”

숙취와 몰골을 깔끔하게 교환한 내가 눈을 선득하게 빛내며 나오자 거실에 있던 멤버들이 시치미를 뗐다.

“나 아닌데?”

“저도 아침엔 화장실 안 썼어요.”

“나도 어제 씻고 안 들어갔는데.”

그럼 누구야? 괜한 화살을 돌리고 있을 즈음 일찍 일어나서 작업실에 다녀온 은찬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불쑥 물었다.

“형 나가기 전에 샤워하고 나갔어요?”

그러자 은찬이 물로 쫄딱 젖은 내 꼴을 훑어보고는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왜, 불만 있어?”

아침부터 일하고 왔다는데 괜히 시비 걸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르륵 머리에서부터 흐르는 물방울을 수건으로 닦아 냈다.

“아뇨.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요.”

그러곤 순순히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는 등 뒤로 규민이 불평했다.

“저거 저거, 내가 했으면 한 30분은 뭐라 뭐라 잔소리했을 거면서.”

나는 규민이 있는 거실을 향해 외쳤다.

“다 들린다.”

그러자 규민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아무 말을 뱉었다.

“아빠 안 잔단다, 치사해서 채널 안 돌린다, 그래.”

뭔 헛소리야. 너도 새벽부터 나가서 작업하고 오든가.

잔소리할 것도 없이 오늘도 모든 멤버가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점심 먹고 나가는 사람?”

다행히 차량 이동 정도는 회사에서 큰 문제 없이 지원을 해 줘서 이동이 불편하진 않았다.

‘이동할 때마다 담당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게 좀 걸려서 그렇지.’

아직은 단체 스케줄보다는 멤버 개개인별 스케줄이 많아서 많아야 셋씩 움직이는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15인승 승합차까지 동원할 정도는 아니라 판단했는지 코드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영업용 차량으로 픽업을 도와주었다.

“어, 저 좀 일찍 먹으면 먹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먹고 나가, 나가면 더 먹기 힘들 테니까.”

아침은 안 먹는 녀석들이 많아서 각자 해결이고, 오늘 점심과 저녁 담당은 나였다.

부지런히 주방을 뒤져 딱 사람이 먹고 죽지 않을 정도 수준만 되는 아침밥을 내놓자 불평이 쏟아졌다.

“아, 이게 뭐야.”

“이건 너무하잖아요, 형. 우우.”

뭐긴 뭐야. 직접 차려 먹기 싫으면 주는 대로 먹어. 나는 흐린 눈으로 불만을 외면했다.

봐라, 팩폭으로 제일 문제인 은찬도 잘만 먹잖아.

나는 우물우물 맨밥을 김에 싸서 먹는 은찬을 보며 흥, 콧방귀를 뀌었다.

“불만 있으면 직접 해 먹으라니까.”

이것도 나름 신경 쓴 결과였다. 어묵볶음(사 온 거), 진미채(사 온 거), 콩나물무침(사 온 거)에 김, 계란프라이(노른자 터짐), 간장, 참기름.

이 정도면 먹을 게 없는 건 아니잖아? 그랬더니 하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 7세 정식 같아요.”

“약간 그거다. 우리나라 미취학 아동의 식단을 책임지는 반찬 세트.”

식단 조절이 중요한 마당에 햄이나 고기 같은 반찬을 매 끼니마다 턱턱 낼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만을 가뿐히 무시한 채 오늘 스케줄을 복기했다.

이따 끝나면 모여서 안무 맞춰 볼 거고, 또….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피로감에 몸이 무거웠지만 불평할 수는 없었다.

말마따나 불러 주는 곳이 많은 건 감사한 일이고, 막내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형이 돼서 모범을 보여야지.

나는 지난주 지원이 보내 준 모니터링 영상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였다.

‘귀엽긴 진짜 귀여웠지.’

예의 즉석에서 섭외한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얻어먹는 예능에 출연한 지원은 꽤 좋은 반응을 받았다.

출연한 멤버는 지원과 하연 둘. 둘 다 선하게 생긴 데다가 어리기까지 하고 호감형 인상이어서 어느 집에 가도 더 못 먹여서 안절부절못했다.

‘저, 진짜 죄송한데 배가 너무 불러서….’

결국 지원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으로 사과를 할 때에서야 가정집 식사 무한 리필이 멈췄다.

‘죄송해요… 이렇게 신경 써 주셨는데….’

되레 집주인분들이 미안한 마음에 속상해하는 지원을 달래 주는 그림이 아주 인상 깊었다.

‘아유, 아니에요~ 우리가 너무 많이 차렸다, 그치? 그럼 혹시 이건 좀 싸서 가져가지 않을래요? 아, 우리 아들이 과일 받아 온 거 있는데, 그것도 좀 가져가요.’

게다가 마지막까지 더 먹이는 것은 포기 못 하셔서, 먹을 것을 챙겨 주기까지 하셨다.

‘와~ 우리가 지금 이거 1년을 찍었는데 이렇게까지 협조적이셨던 적이 없었는데.’

MC들까지 나서서 이례적인 호의에 놀랄 정도였다.

케이 팝에 관심이 많아서 둘을 알아보고 비명부터 지르는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누군지도 모르면서 먹이려고 드는 게 꽤 재미있게 장면이 뽑혔다.

‘시청자 반응도 아직 방영 전이지만 좋을 것 같고.’

다른 녀석들도 하나하나 겟데뷔에서 얻은 유명세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무사히 순항 중이었다.

‘한 명만 빼고.’

은찬은 아무리 생각해도 리스크가 리턴보다 더 클 것 같아서 예능 출연에서 제외했다.

단체 예능이면 몰라도 개인 출연은 아무래도 커버 쳐 줄 사람이 부족하니 등 뒤로 아찔한 진땀이 흘렀다.

덕분에 은찬에게는 다른 멤버들보다 많은 여유 시간이 주어졌고 은찬은 그 시간을 앨범 준비에 오롯이 쏟았다.

‘우리 활동 기간을 생각하면 못해도 3개월 안에는 미니 앨범이라도 나와야 하니까.’

데뷔 싱글을 선공개곡 개념으로 앨범에 포함시킨다고 해도 준비해야 하는 곡이 최소 3~4개.

그걸 다 자작곡 또는 공동 프로듀싱곡으로 채우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다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우리 천재(feat. 폭탄)가 좋은 의미로 터트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곧 묵묵하게 밥그릇을 비우고 싱크대에 그릇을 두고 간 현호를 시작으로 하나둘 식사를 끝냈다.

“오늘도 파이팅…!”

혜성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제 쇼케이스까지 남은 시간은 1주일. 준비된 시간이 짧았던 만큼 선택과 집중을 택해 밀도 있게 준비했다.

‘아쉬운 점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스페셜 미션이고 뭐고 도저히 신경 쓸 새가 없이 바빠서 미뤄 두고 있는 게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었다.

‘지금 악플 확인하다가 멘탈 나가면 진짜 중요한 것까지 놓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아직 ‘뻐꾸기’의 강도가 상향된다는 알림은 도착하지 않았다. 일단 쇼케이스부터 잘하고 생각하자.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 쇼케이스 당일.

“와…. 시청 예약 건수만 벌써 20만 명이래.”

라이브 플랫폼의 모니터링용 화면을 본 혜성이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이따 방송 시작하면 더 늘어날 텐데 벌써부터 긴장하면 어떡해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듯한 혜성을 토닥이며 진정시키자 혜성이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아, 조금…. 아직은 현실감 있게 안 느껴져서 그런가 봐.”

방송이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인데 아직 아이돌 그룹으로서 활동한 게 하나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제 쇼케이스가 끝나면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엔카운터’로서 살아가게 될 터였다.

1년의 활동이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엔카운터 출신’ 태그를 붙인 채 활동하게 되겠지.

그러니 남은 기간 동안 앞으로의 평생을 책임질 활동이라는 각오로 온 힘을 쏟아 내야 했다.

“시작하기 전에 구호 한번 하자.”

무대로 향하는 출구를 앞에 두고 둥글게 모이자 인원이 많은 탓에 대형이 꽉 찼다.

“구호 뭐로 하지?”

“우리 인사법 쓰면 되나?”

서로 중구난방으로 고민 중이기에 하나로 딱 잘라 정했다.

“Dream your universe 하면 엔카운터! 하는 거로 해.”

원래 인사법으로 고안한 멘트였으나 다른 게 채택되는 바람에 B안으로 남은 문구였다.

“아, 오키, 오키.”

다들 기대에 찬 눈으로 내가 선창하기를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흠흠 목을 가다듬고 외쳤다.

“드림 유어 유니버스!”

그리고 동시에 일곱 명분의 목소리가 힘차게 답했다.

“엔카운터!”

바깥에서는 드디어 긴 기다림을 끝내고 쇼케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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