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2)
“으아, 죽겠다~”
제현호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고.
대놓고 엄살을 부리는 규민부터, 말은 안 하지만 발갛게 상기된 뺨으로 가슴을 헐떡거리는 영인에,
“…….”
지원은 정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으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고, 은찬은 소파 쿠션에 머리를 박은 채 주저앉은 꼴이었다.
“형, 괜찮아요? 죽은 거 아니죠?”
하연까지도 평소에는 신성한 은찬 형한테 감히 못 썼을 어휘로 물어보는 걸 보니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무대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되었다기보다는.
이 무대 한순간을 위해서 한 달 동안 너무 갈려 나간 탓에 긴장이 풀린 상태라고 봐야 했다.
제현호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고.
“다들 정신 차리고 정리해. 옷 갈아입어야 숙소 가지.”
누구 하나 멀쩡한 정신인 녀석이 있었다면 당장 음원 차트부터 살폈겠지만 지금은 그럴 힘이 없었다.
그동안 겟데뷔에서 공개됐던 곡들도 성적이 꽤 좋아서 음원에 기대가 컸던 나조차도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이따 숙소 가서나 확인해 볼까.’
매니저가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차 대기시키러 가기 전에 먼저 확인해서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해 줬겠지만.
극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건 지원 팀도 마찬가지여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됐다. 그거 찾아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까 핸드폰을 어디에 뒀더라. 주섬주섬 대기실에 던져 놨던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고 있는데 영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와, 미친!”
뭐야? 하나둘 파김치가 된 꼴로 허물처럼 옷을 벗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외침에 영인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1위 했는데요?”
“뭐?”
나조차도 스스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뭘 본 거야…?’
현재 시점으로 흔히 차트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의 기준은 ‘코코넛 뮤직 차트’였다.
줄여서 일명 코코차트. 각종 수상 및 음악 방송에서 참고하는 음원 성적도 코코차트의 순위였다.
이 코코차트는 또 세부적으로는 세종류로 나뉘는데, 바로 신곡 차트, 실시간 차트, 데일리 차트.
여기서 중요한 건 실시간과 데일리였다.
‘다른 건 솔직히 팬들 만족용이라서.’
신곡 차트는 최근 일주일 이내 발매된 음원만 순위를 매기는 차트였다. 아무래도 달성 난이도 면에서 격차가 컸다.
1위를 달성하면 인터넷 신문사 홍보용 소재로나 쓰일까. 대부분의 팬덤에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차트였다.
‘일부 그룹 팬들이 신곡 차트 1위 한 걸 나머지 차트들이랑 동급인 것처럼 바이럴 하는 바람에 싸움이 난 적도 있었고.’
나는 당연히 신곡 차트일 줄로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물었다.
“실시간이랑 데일리는? 뭐가 1위라는 거야?”
실시간은 잘하면 20위 안쪽, 데일리는 100위 안쪽에 들었으려나.
그래도 겟데뷔가 최근 3년 내 방송했던 서바이벌 중에는 제일 흥했는데 그 정도는 했어야 부끄럽지 않을 텐데.
그동안 각종 방송 및 예능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체감했던 인기도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아직 공식 팬클럽 활동 기간이 시작되지 않아 전부 공개 추첨이라 경쟁률이 더 치열했을 텐데.
그걸 뚫고 찾아와 준 팬들이 무슨 멘트 한번 칠 때마다 열렬하게 반응해 줘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솔직히 토크는 그다지 자신 없어서 재미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잘 웃어 주셔서 덕분에 긴장하지 않고 잘 마무리했으니까.’
대체 어디서들 스케줄을 보고 찾아오시는 건지 출퇴근길도 매번 응원해 주는 팬들로 인산인해여서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한 것도 있었다.
‘물론 찾아와서 응원해 주지 않았다고 덜 열심히 하려 했던 건 아니다만.’
여하튼 기대와 이목이 잔뜩 쏠린 만큼 눈에 보이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던 게 아닌지라, 영인이 있는 방향을 향해 귀가 쫑긋 섰다.
그러자 영인이 본인도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전부 다요.”
“뭐?”
다들 갈아입던 옷을 내동댕이치고 순식간에 영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맹렬했는지 꼭 피라냐 떼를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영인이 확인시켜 준 화면 속 차트는 실시간 차트.
그 제일 상단에 고정되어 있는 1위는….
“대박. 미쳤다, 진짜.”
[1위] CHASE - ENCOUNTER
곡 제목과 그룹명 모두 대문자만 꾹꾹 눌러 담았더니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진짜 실시간 1위라고?”
솔직히 말하면 한 자릿수까지는 조금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성적에 나도 모르게 조금 전 영인이 했던 말은 잊어버린 채 다시 물었다.
“그럼 데일리는?”
그 정도면 데일리도 20위 안에 들었겠는데? 기대에 차서 묻자 영인이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데일리 차트를 클릭했다.
그리고 곧바로 로딩된 화면을 본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갈 뻔했다.
[1위] CHASE - ENCOUNTER
아니, 잠깐만. 이거 일부러 조작된 사진으로 지금 우리 반응 보려고 낚는 거 아닌가?
나는 영인을 믿지 못하고 곧바로 핸드폰을 찾아서 직접 코코넛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켰다.
[실시간 차트]
[1위] CHASE - ENCOUNTER
[데일리 차트]
[1위] CHASE - ENCOUNTER
그리고 정말 양쪽 모두 1위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기절할 것처럼 바닥을 향해 쓰러졌다.
그러니까 지금이 아직, 이 시기의 1군 남자 아이돌인 피어러시가 케이 팝의 애국가로 불리는 대히트곡을 발매하기 전이니까.
신곡, 데일리, 실시간 세 개 모두 트리플 1위를 발매 첫날 달성한 건 피어러시가 1년 반쯤 뒤에 최초로 달성할 기록이었다.
그때보다 더 앞선 시기인 지금, 우리가 그것보다 더 빨리 기록을 세운 셈이었다.
“이거 꿈 아니지? 막 이제 저 구석에서 카메라 나오고 그런 거 아니지? MC 아저씨 나와서 지금까지 작전 카메라였습니다, 하는 거 아니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혜성이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내가 마찬가지로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꿈 아니에요. 저희 진짜 트리플 크라운이에요.”
2014년 초에 차트가 개편된 이후로 최초로 차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그룹.
이 타이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우리 모두 알지 못했다.
***
엔카운터 일행이 뒤풀이는커녕 손 하나 까딱 못하는 상태로 생각도 못 한 성적에 굳어 있는 그때.
실시간으로 엔카운터의 진입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
발매 전부터 미친 듯이 예능 돌리면서 우리 데뷔합니다, 싱글 들고 나옵니다 홍보를 해 댔으니 성적이 나오기는 하겠지.
그래 봤자 최근에 음원 강자로 유명한 솔로 가수들과 대박 난 드라마 작품의 OST가 버티고 있으니 별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이를 까득 갈며 새로고침을 반복하다 드디어 차트 집계에 반영되는 시간이 된 그때.
예상도 못 한 결과에 어둠 속에서 화면을 들여다보던 누군가가 코웃음을 쳤다.
“뭐냐? 이게 말이 돼?”
그러고는 재빨리 키보드 위로 손을 옮겨가 바쁘게 타자를 쳤다.
그리곤 누군가와 한참 바쁘게 메시지를 주고받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 그럼 그렇지.”
누군가의 손이 재빨리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 ̄
[제목]
[엔카운터 음원 순위 이상하지 않아?]
[본문]
겟데뷔 흥한 건 알겠는데 얘네가 트리플 달성할 만큼 코어가 있나?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던데ㅋㅋ
우리 반 애들 대부분이 팀 레드 응원하던 애들이라 팀 블루 데뷔한 거 보고 다 코어 빠질 거라고 했는데ㅎ ̄ ̄ ̄ ̄ ̄
아무리 봐도 학교를 다니는, 아이돌에 관심 많은 여학생처럼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으나 인터넷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말만 하면 될 수 있었다.
그 작성창 옆에 띄워 놓은 화면에는 수십 명이 서로 자기 좋을 대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100퍼 사재기임ㅋㅋ] 오후 7:10
[얘네 투표도 다 중복이었을 텐데] 오후 7:10
[투표수 안 나올까 봐 급하게 글로벌 투표 투입한 거만 봐도 각 나오는데] 오후 7:10
[기계 스밍을 사람이 어떻게 이김요ㅋㅋㅋ] 오후 7:11
증거라고는 없었지만 누군가 맛있는 키워드를 던진 순간 삽시간에 불붙듯 같은 내용이 인터넷 전역에 퍼졌다.
마침내 누군가가 글쓰기를 마치고 전송 버튼을 누른 순간.
쭈욱 기지개를 켜며 그 주변에 덕지덕지 누더기가 된 채 붙어 있는 사진에도 모니터 불빛이 반사되었다.
조악한 화질로 인쇄된 누군가의 얼굴 사진이었다.
완고하게 우뚝 솟은 코, 얇게 진 쌍꺼풀이 두드러지는 차가운 눈.
웃지 않으면 세상 싸가지 없어 보이는 인상이나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는 순간 그 차가움이 새침함으로 바뀌는 스물한 살짜리.
현재 케이 팝을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전 연습생, 현 아이돌 서인수였다.
***
잠시 후, 겨우 숙소로 돌아온 나는 분장도 제대로 지우지 못한 채로 이불에 쓰러지려다가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었다.
헉, 얼굴로 그대로 베개에 다이빙했으면 밤새 메이크업 냄새 맡으면서 자야 할 뻔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뒤집어 눕자 나와 다르지 않은 꼴의 제현호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
얘 왜 이러는 거야, 화들짝 놀라서 내가 내려다보자 제현호가 눈을 감은 채로 꼼지락거렸다.
“…이러고 잠깐만 있을게요.”
나는 그제야 드디어 쇼케이스를 무사히 끝낸 건 끝낸 거고 이놈과 계산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 다시금 생각났다.
“너 너, 아까 진짜.”
내가 벌떡 몸을 일으켜 놈을 노려보자 저도 잘못한 걸 아는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도망쳤다.
“어딜 도망가. 설명이라도 제대로 해 봐.”
방 밖으로 도망칠 수 없도록 그대로 문고리를 잡고 시위하듯 막아서자 삐질삐질 진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
내가 죽어도 들어야겠다는 듯 노려보자 한참의 정적 끝에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 비슷한, 것… 같은 사람을… 객석에서 봐서요.”
“……!”
예상은 했지만 설마 싶었던 문장에 놀라 눈이 커지기도 잠시, 제현호가 오해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니, …었어요. 스크린 올라가고 조명 빛 받으면서 자세히 봤는데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그리고 영하처럼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나 또한 뭐라고 해야 할지 당장은 머리가 안 돌아가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으려니 누군가 똑똑 노크를 했다.
“그, 우리 다 씻어서, 욕실 두 개 다 비었으니까 써도 돼.”
지원이었다. 나는 퍼뜩 다시 정신 줄을 잡고 대답했다.
“어, 조금 이따 나갈게!”
다들 자는데 부스럭거리면서 씻는 것도 못 할 짓이라 나는 다시 제현호를 노려보았다.
“앞으로도 그럴 거야?”
“…….”
또 한 번에 못 알아들은 척하지. 나는 후,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다시 구체적으로 물었다.
“또 누나 같아 보이는 사람 있으면 무대 버리고 갈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