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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03화 (103/224)

#103.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3)

그러자 제현호가 눈썹을 움찔거리며 반박했다.

“가진 않았어요.”

“갈 뻔했지. 진짜 맞았으면 갈 거였잖아?”

다시금 이어진 침묵시위에 나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의 불만 가득한 눈이 아니라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망설임이 뒤섞인 눈이었다.

‘에휴, 이 정도면 됐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말했다.

“네 목적이 뭔지 알더라도 일단 같이 팀으로 묶인 이상 나는 팀의 목표를 우선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그게 싫었으면 하차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 숱한 기회를 차 버리고 점점 무대에 빠져든 건 제현호 본인이었다.

그러면 본인이 택한 선택에 책임을 져. 나는 녀석의 시선이 떨어진 자리를 흘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스스로 통제 못 하고 얼빠진 짓이나 하고 있으면 오늘 그랬던 것처럼 멱살을 잡고서라도 무대 위로 끌고 갈 거니까, 너는 그딴 걱정 하지 말고 네가 제일 잘하는 거나 해.”

무대 위로 올렸는데도 못하면 그때는 진짜로 밀어 버려야지.

제현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사람 얼굴을 제대로 보네. 나는 보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게 뭔데요.”

평소였다면 어느 정도 돌려서 말해 줬겠지만 지금은 나도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상황이라 쿠션 없이 직구를 꽂았다.

“입은 싹수없이 털면서 무대는 짜증 날 만큼 잘하기.”

“흡, 켈룩, 켁.”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뭘 웃어? 반성하라고 한 소리인데.”

나는 곧장 놈의 뒷덜미를 잡은 다음 그대로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잔뜩 놀란 듯한 멤버들을 바라보며 깔끔하게 선언했다.

“오늘 갑자기 메댄이 멈칫거려서 많이 놀라셨죠. 우리 메댄이 잠깐 사춘기가 왔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뭐?”

다들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보기에 나는 제현호를 냅다 잡아 사과하도록 어깨를 눌렀다.

“너도 얼른 제대로 사과해.”

“…죄송했습니다.”

제현호가 살짝살짝 눈치를 보면서 멤버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 우리 메댄의 진심 어린 사과도 들었으니까, 말 나온 김에 잠깐 정리 한 번만 하자.”

그리고 내게도 해당하는 말을 꺼냈다.

“앞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논란과 유혹이 많을 거고 각자 저마다 사정이 있으니까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서 나를 올려다보는 멤버들을 훑어보았다.

사실 제일 불안한 건 나인가. 대놓고 서브 퀘스트로 집단 악플러가 붙은 상황이니까.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 온 이상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엔카운터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그때마다 명심해 줘. 우리한테 제일 중요한 건 팀원이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년 동안만큼은 우리가 제일 중요한 거야.”

그러자 그새 기운을 차린 규민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 안 해도 그럴 거거든. 여기서 투자비 더 늘릴 일 있냐.”

그룹 활동이 날아가면 정말 갚을 방법이 막막한 빚더미만 끌어안게 되는 규민이 끙, 기지개를 켰다.

“농담으로 하는 말 아냐.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우리가 팀으로 묶여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아이돌 못 그만둬.”

잠깐 지나치게 진지해진 분위기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

소파 아래에 드러누운 채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던 영인이 불쑥 손을 들었다.

남들 다 입 다물고 있을 때 어김없이 침묵을 깬 영인에 나는 순간 푸핫,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참고 물었다.

“뭔데?”

“이것도 어기면 청계천에서 익사로 벌칙 가는 거예요?”

“아.”

벌칙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잠시 머뭇거린 순간 어디선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 분위기에 누구야?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주혜성이었다.

“앗.”

모두의 시선이 쏠린 것을 의식했는지 혜성이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냥, 이것도 우리가 한 달 동안 열심히 한 결과가 좋아서 하는 얘기구나 싶어서.”

그거야 그렇지. 첫 싱글부터 망했으면….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다 같이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투자비 적게 잡힌 채로 탈주할 수 있을까 머리 굴려야 했을 테니까.

“그건 그래요. 다들 열심히 하신 만큼 좋은 결과 있어서 다행이에요.”

하연도 나서서 자축하는 분위기에 손을 얹는 바람에 갑자기 화제가 다른 쪽으로 튀었다.

“아… 씻고 늘어져 있었더니 배고프다. 우리 진짜 한 달 동안 고생했는데 오늘 하루만 치팅 데이 하면 안 돼?”

겟데뷔 종료 이후, 솔직히 말하자면 식단 관리의 난이도가 훅 뛰어서 다들 스트레스가 임계치였다.

방송 중에는 얌전히 매끼 차려 주는 거 먹으면 되니까 뭘 먹을지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니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시키는 음식들은 다 열량 초과지, 그렇다고 해 먹자니 다들 솜씨가 없지.

매니저가 사다 주는 다이어트용 간식들이나 샐러드를 중심으로 퍼먹다가 다들 입에서 셀러리가 자랄 것 같다고 비명을 질렀다.

‘지원 쪽으로는 웬만해선 불평 안 하는 정은찬도 오리엔탈드레싱만 보면 뭐가 올라올 것처럼 구는 지경이 됐으니까.’

그동안 오래 고생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고 해 놓고 냉큼 수락하는 것도 우스운 꼴이었다.

물론 이건 종류가 다른 유혹이긴 한데… 그래도 리더가 되어서 모범이… 까지 생각한 순간.

꼬르르륵-.

배에서 민망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인이 똑똑히 들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헐. 형도 지금 배고픈 거 맞죠? 우리 오늘 아까 점심에 대충 먹은 샐러드랑 아침에 숍에서 먹은 김밥 반 줄이 식사의 전부였잖아요!”

옷을 아침 일찍부터 핏이 딱 예쁘게 나오도록 조여서 입혀 놓은 탓에 하루 종일 뭘 먹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들 김밥을 서너 줄씩 흡입하고 싶었으나… 살짝 드러난 허리선 위로 볼록 튀어나온 뱃살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 그럼 자기 전에 먹고 다들 부기 빼고 자는 거야.”

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의하자 영인을 중심으로 단숨에 모여들었다.

“나 부대찌개가 진짜 너무 먹고 싶었어.”

“시켜요. 메뉴 불러 주시면 제가 리뷰 제일 많은 곳으로 주문할게요.”

“그럼 나 즉떡.”

“즉떡 시킬 거면 로제로 시키면 안 돼요? 넓적당면 추가해서.”

“와, 이 새끼 먹을 줄 아네. 역시 메랩이야.”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난장판처럼 메뉴를 주문해 대는 와중 스윽, 이런 데 절대 안 낄 것 같았던 인물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치킨 치즈플레이크디핑치킨.”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은찬이었다.

하연은 물론 나머지 멤버들도 지금 자신이 귀로 들은 게 맞나 귀를 의심하며 은찬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은찬이 화악, 얼굴은 멀쩡하나 귓불을 새빨갛게 물들인 다음 반복했다.

“치즈플레이크디핑… 도 배달돼?”

규민이 홀린 듯 대답했다.

“XX, 당연이 되죠.”

“당연히 아냐?”

내가 조건 반사적으로 지적하자 규민이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이건 밈이에요, 어르신.”

“그래, 너 잘났다.”

나도 주섬주섬 같이 앉아서 메뉴를 고르다 보니 어느새 오늘 있었던 제현호의 소동 따위는 모두의 안중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 너도 하나 고를래?”

보니까 적게 먹는 편은 결코 아니던데.

아무리 낮에 좀 신경 쓰이는 짓을 했어도 먹는 데 빠트리는 건 못 할 짓이라는 생각에 제현호를 부르자 어색하게 쭈뼛거렸다.

“저는 아무거나 먹을게요.”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는데~”

결국 영인에게 붙들려서 기어이 메뉴 하나를 고른 제현호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갈 집이 있는 게 신기한 느낌이라고 했었지.’

어차피 1년 후에는 팀도 해체하고 사라질 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이 뭉쳐 있는 동안에는 좀 안정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어느새 다른 녀석들 사이에 끼어 있는 제현호를 보며 입꼬리를 당겼다.

‘뭐, 어쩌면 굳이 노력 안 해도 될 거 같기도 하고.’

흩어지는 웃음과 함께 곧 매니저가 햄버거를 양손 가득 든 채 들이닥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헉, 아니, 저희….”

“네? 왜요? 햄버거 혹시 못 드시는 분 있으세요? 전에 드시는 거 봤을 때는 괜찮았던 거 같아서 사 왔는데….”

차마 곧바로 저희 지금 치팅 데이 조지려고 배달 엄청 시켰는데요, 라고 실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쯤 울며 겨자 먹기로 각자 마음속에 품은 메뉴가 있음에도 우물우물 햄버거를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종류별로 다양하게 사 왔으니까 다들 넉넉하게 드세요.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어요.”

고생 많은 거 알면 스케줄을 조금만 조정해 주시지. 순간 영인의 진실의 입이 열릴 뻔했으나 그런 배부른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저것도 정말 일머리 없는 사람이면 중간에 스케줄 중복으로 겹치고 꼬여서 사고 치고도 남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도록 착착 정리하는 게 일머리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프로듀싱만 우리가 꽉 잡고 잘하면 되겠네.’

그렇게 다들 조마조마하며 매니저가 빨리 돌아가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첫 번째 배달이 도착하고 말았다.

“앗. 혹시 야식으로 먹을 거 배달시키셨어요?”

매니저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그 누구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배달이, 잘못 온 것 같….”

영인이 거짓말로 변명하려는 것을 내가 손목을 꽉 꼬집어 말렸다.

“저희가 주문했어요. 내일 모처럼 스케줄 없으니까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다시 관리할게요.”

최대한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우리 정말 믿어 주셔도 돼요, 하고 어필해 보았으나 그 뒤로 연달아 배달이 도착하는 바람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 대체 몇 개나 주문하신 거예요?”

혜성이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지금 온 거까지 해서 네 개예요.”

그리고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인터폰 벨 소리가 울렸다.

“…다섯 개요.”

정답은 여덟 개였다. 결국 매니저까지 가세해서 눈물겨운 야식을 해치우고 나니 새벽이 다 된 시간이었다.

모처럼 먹고 싶은 걸 먹은 은찬이 평소보다 훨씬 유해 보이는 얼굴로 만족스럽게 배를 쓰다듬었다.

‘행복해 보이네.’

공개된 음원의 리뷰란에는 다들 아이돌 자체 프로듀싱곡이 이 정도 퀄리티로 나올 줄 몰랐다는 감탄으로 빼곡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저번에 저격 글 올린 사람도 쪽팔리겠다.’

아이돌 시켰다고 그렇게 뭐라고 했는데 이쪽에서 탑 찍고 잘나가면 할 말이 없을 테니까.

‘보는 눈이 많으니 열심히 하는 게 좋겠지.’

그게 전부는 아니어야 하겠지만.

한바탕 풀어진 분위기에 하나둘 잘 준비를 하던 그때.

그제야 그동안 내내 미루고 있던 것이 퍼뜩 떠올랐다.

‘맞다, 뻐꾸기.’

서둘러 유튜브에 내 이름을 검색해 본 나는 상단에 뜬 결과에 눈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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