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07화 (107/224)

#107. 뱀의 머리라는 함정 (1)

- 골든링? 그쪽은 잘 모르겠는데. 거기 요즘은 아이돌 사업 안 하잖아.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냥 안부 인사 물은 셈 치고 전화를 끊으려 했는데.

- 아, 근데 너 진짜 공민형이랑 뭐 싸웠어? 아니면 그냥 편집이 그런 거야?

갑자기 드리프트를 틀어서 다소 내키지 않는 주제로 화제를 전환하기에 나는 만능 대답을 던져 주었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서로 워낙에 경험 쌓인 것도 있고 주관도 강하다 보니까 부딪히는 것처럼 나간 거죠. 안 싸웠어요. 무대 할 때도 같이 잘했고요.’

그리고는 정말 정말 원치 않았으나 공민형과 사이가 나쁘다고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걔도 진짜 열심히 하더라고요. 아시잖아요, 저 열심히 하는 애들은 싫어하지 않는 거.’

그랬더니 옳거니 하고 차라리 듣지 말았어야 할 소식을 전해 준 것이다.

- 아, 그래? 그럼 그것도 알겠네? 걔 겟데뷔 나가고 지금 프리점프에서 데뷔조 제안받았다더라.

‘네?’

나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커져서 켁, 황급히 입을 가리고는 물었다.

‘걔가 프리점프를 왜요?’

당연히 지금 현재 소속 중인 소속사에서 데뷔조 꾸려 놨으니까 몸만 빠져나오라고 하차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회사를 옮겼다고? 미쳤나? 나는 듣고도 귀를 의심했다.

- 나야 모르지. 나 아는 애가 프리점프 지금 데뷔조 안에 들어가 있는 애라서 뭐라고 엄청 하소연하더라고. 인지도 때문에 서바이벌 출신 껴서 가고 싶은 건 알겠는데 걔가 갑자기 들어오면 한 명 자리가 비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아….’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급하게 굴러들어 온 돌이 있으면 급하게 자리를 뺏긴 돌도 있겠지.

기존 데뷔조 멤버들이 불만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합류했을 때 분위기 장난 아닐 텐데, 그걸 다 감수할 만큼 조건을 좋게 해 줬나?’

나는 서둘러 겟데뷔 연습생 프로필 공개 페이지에 접속해서 공민형의 연습생 기간을 확인했다.

‘5년 차….’

보통 7년이 국룰인 만큼 아직 계약 종료를 논하기에는 빠른 시기였다.

‘그럼 그동안 투자비까지 다 대신 내 준다고 하고 빼간 건가.’

본인이 하차하기 전까지 쭉 2위를 유지해 왔으니 프리점프에서 그 정도의 손실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인간 도박 중독이라 금전 감각이 박살 났는지 돈은 잘 썼었지.’

날 영입할 때도 조건을 상당히 좋게 해 줘서 나도 좋은 마음으로 합류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그렇게 뒤통수를 칠 줄 몰랐지.’

내 예상대로라면… 프리점프 대표가 원정 도박 논란으로 회사째 파산하는 건 앞으로 1년 반 후쯤의 일이었다.

공민형의 데뷔 그룹이 지금 당장 데뷔하면 1년 반쯤 바짝 히트 쳐서 벌어 두고 파산할 경우 그나마 낫겠지만.

‘내가 미래를 아는 게 문제지…. 하….’

프리점프는 향후 2년 내에 보이 그룹을 론칭하지 못 한다.

왜냐면 지금 활동 중인 선배 그룹이 대표가 터지기 전에 1차로 터지면서 프리점프 전체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니까.

순서를 정리하자면, 선배 그룹에서 먼저 원정 접대 문제가 터질 걸 알았더라면 나도 절대 소속사를 옮기지 않았을 것이었다.

내가 NO에서 나와 프리점프에 합류하고, 프리점프의 선배 그룹의 비리가 터치고, 최종적으로 대표까지 터지면서 프리점프가 망하기까지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후….’

선배 그룹 터졌을 때 빨리 튀었으면 다른 데서라도 데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순진하게 아~ 멤버들이 개인적으로 일탈을 벌였구나, 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 대표라는 놈이 자기는 걔들한테 너무 실망했고 충격이 크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오죽 잘했어야지.’

마침내 수년이 걸린 수사가 끝나고, 그 대표가 소속사 연예인들에게 접대와 도박을 알려 준 장본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진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지인과의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심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합류하지 않은 빈자리에 공민형이 대신 들어간 거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렇게까지 의식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공민형은 내가 밟았던 루트를 밟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이가… 스물셋일 때 공중분해 되는 건가.’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다. 나는 그때 빠르게 솔로 전향을 할 생각으로 군대에 가서 그렇지 군대를 뒤로 미루면 얼마든지 재데뷔를 기약할 수 있는 나이였다.

‘나는 정말 최악의 수가 겹친 거고, 그놈은 그렇게까지 되진 않을 테니까….’

복잡한 기분으로 베개에 머리를 박고 있으려니 어느새 방으로 들어온 현호가 내 눈치를 살폈다.

‘…….’

덩치는 커 가지고 말수도 적고, 표정 변화도 없는 게 물끄러미 나를 지켜보며 뚱한 얼굴로 있는 게 모양이 괜히 우스워 헛웃음이 나왔다.

“나 아무 일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러자 현호가 시선을 피하다가 물었다.

“제가 어제 사고 쳐서 기분이 안 좋으신 거예요?”

그걸 아직도 걱정하고 있었나. 나는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뒤끝이 긴 편은 아니었다.

“그런 거 아냐. 신경 쓰지 마.”

그러자 현호가 여전히 나를 빤히 보다가 권했다.

“그럼 나가서 저녁 간단히라도 먹어요. 많이 남았어요.”

“그래.”

확실히 밥도 안 먹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걱정할 만하겠네.

나는 서둘러 거실로 나가서 배를 채웠다. 냉동으로 얼려 둔 다이어트 도시락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나니 다시 고민이 밀려들었다.

‘당사자한테 말을 해 줘, 말아.’

심란한 마음으로 씁쓸한 입맛을 다신 그때, 한동안 잠잠했던 시스템창이 떴다.

[서브 리퀘스트 미션 ▷ 공민형 연습생 구하기]

[예상 수령 보상]

[▷코인 1개]

[▷지표 1단계 선택 보정 2회]

[▷S등급 아이템 확정 뽑기권]

‘아….’

왜 또 한동안 코인 한 개 정도로 퉁치는 것들만 시키더니 갑자기 보상이 좋아지고 난리야.

지금껏 수십 개의 코인을 털었건만 S급 아이템이 나온 건 단 한 번뿐이었다.

‘그마저도 하필 4차 미션 때 벌어진 논란을 잠재워 보겠다고 어쩔 수 없이 막 사용하고 새로 뽑아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날렸지.’

비교적 평온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이라면? 유용하게 사용할 만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너무 아까웠다고. 적재적소에서 활용하면 유용하기도 하고 개연성이나 사이다도 올릴 수 있는 걸 쌩으로 날렸으니….’

구미가 당기는 한편 덥석 먹이를 물 수는 없었다.

[케이 피디님.]

재빨리 메시지창을 입력하자 잠시 딜레이가 있다가 케이 피디가 나타났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에둘러 떠보지 않고 직구를 던졌다.

[보상이 너무 좋은데요. 제한 시간이 말도 안 된다거나 해서 실패 확률이 높거나 하는 식으로 함정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케이 피디가 억울하다는 듯 학을 뗐다.

[재계약 조정의 일로 저희에게 불만이 접수되신 점은 이해하나 이번 미션은 저희가 사전에 안내드린 ‘난이도 상승’과 관련하여 추가된 신규 미션입니다.]

신규 미션? 내가 더 설명해 보라는 듯 채팅 입력란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끼자 케이 피디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네, 독자분들께서 직접 서인수 님께 수행을 희망하는 미션을 의뢰하는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에서 보장하는 보상 외에 독자님들께서 추가로 얹어 주신 보상이 포함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서브 에피소드 미션보다 많은 보상이 제공됩니다.]

‘오….’

이거라면 납득 가능한 설명이었다.

[그러면 미션을 수행하는 난이도 자체는 그렇게 높아진 게 아니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자면 독자분들 중에 공민형 군을 아끼는 분께서 의뢰한 미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놈한테 그 정도 투자를 해 줄 만한 독자가 있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일이었으나 공민형도 어쨌든 한때 2위까지 올랐던 몸. 인기가 있을 이유야 충분했다.

특유의 엄친아 같은 뭐든 잘하는 이미지에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교회 오빠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교회 오빠보다는… 철저하게 무교일 것 같은 인상이라 이과 선배 같은 이미지라고 하더라….’

딱히 수학을 잘하진 않았는데, 공부 머리가 부족한 편은 아니라서 자퇴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딩장 활동해야 해서 출석 일수가 빠지는 것도 아니고 기왕이면 좋은 성적표로 수능도 보고 대학도 가고 싶었으니까.’

결과적으로 그게 엄청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인맥 중 상당수가 학교에서 만난 녀석들이 섞여 있으니 데뷔 준비한답시고 자퇴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 자체는 후회가 없었다.

여튼 공민형을 그 망하는 지름길로 빠지지 않도록 말려 달라는 거지.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수락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안 내키는 건 여전하지만.’

공민형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평생 내 출생의 비밀에 대해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본인은 반쯤 심술에서 알려 준 것 같다만 내 나름대로는 도움을 받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의도가 어찌 됐든 덕분에 내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 어떤 카드로 쓰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충격을 받을 때 받았어도 알게 된 건 내게 훨씬 잘된 일이었다.

‘그러니 걔가 망할 게 뻔한 길로 가는 걸 그냥 두고 보면 나도 속 편할 것 같지 않다고.’

굳이 그런 마음의 짐이 있는 게 아니었더라도, 아진처럼 정말 대놓고 척을 졌던 놈이 아닌 이상 마음에 걸렸을 터였다.

나는 팟, 미션 내용이 구체적으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

[공민형의 프리점프 이적을 막을 것]

[잔여 제한 시간: 71:59:59]

아니, 이렇게 중요한 설득을 시간을 사흘밖에 안 준다고? 나는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며 항의했다.

[제 개인적인 활동 스케줄도 있는데 이건 너무 촉박한 거 아닌가요?]

그러나 아주 얄밉게도 케이 피디에게서는 더 이상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인지 악마인지 뭔지. 어쨌든 스스로 수락한 의뢰였다.

나는 얌전히 공민형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그리고 30초도 안 돼서 결론을 내렸다.

‘망했다.’

입꼬리는 산뜻하게 호를 그리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진짜 망했는데?’

시뮬레이션 2회차를 돌려 보았으나 여전히 결과는 파멸뿐이었다.

‘심지어 이번엔 내가 프리점프 대표한테 명예 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했어.’

아찔한 상상에 등허리로 진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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