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31화 (131/224)

#131. 없다니까요 (1)

컴백 스케줄이 잡힌 후 더 바빠질 것을 생각하자니 벌써부터 정신이 없었지만,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번 앨범 활동 끝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 테니까….’

정규는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활동 마지막쯤에나 낼 수 있을 테고, 그사이에는 싱글 중심으로 활동하게 될 테니 지금처럼 몰아치는 일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의 긍정 회로를 돌리며 하루를 정리했다.

‘그럼 내일 잡힌 일정이….’

자기 전 마지막으로 스케줄을 확인하는데 다가오는 날짜 중 계속 눈에 밟히는 날이 있었다.

‘이 날짜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왠지 이상하게 익숙한데.

그리고 그 익숙함의 정체는 바로 다음 날 알 수 있었다.

***

“그러면 이날 단체 라이브로 인사 올리고 공식 오픈하는 거로 결정할게요!”

매니저의 잔뜩 들뜬 목소리에 멤버들 모두 같은 톤으로 입을 열었다.

“네!”

“네~”

엔카운터의 벌룬 입점이 공개된 이후 첫 공식적인 단체 라이브 일정이 정해졌다.

그동안 각자 사용하는 SNS를 통해 개인 라이브 방송은 몇 번 진행한 적 있었으나 데뷔한 이후로는 회사 차원에서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무래도 멤버별 개개인의 SNS보다는 공식 SNS 계정을 확장하는 데 힘을 줘야 할 시기니까 이해는 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늦긴 했지만 벌룬 입점에 대비를 하고는 있었다니 조금은 놀라웠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인력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솔직히 입점만 시켜 놓고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방치하는 건 또 아니라서 아예 기대를 말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솔직히 벌룬 입점도 데뷔 싱글이랑 거의 동시에 되었어야 베스트지.

반박자씩 늦는 감은 계속해서 있으니, 우리가 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있을 필요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오픈 홍보용 단체 라방 이야기를 꺼내니 다행히 별다른 반대 없이 수용되었다.

‘이걸 반대하는 거야말로 트롤이니까.’

정해진 날짜는 5일 뒤, 오후 9시. 날짜를 미리 봐 두면서 계속 눈에 밟히길래 대체 뭔가 했는데, 일정을 잡기 위해 멤버들과 상의하던 중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날 날짜가 뭔데 이렇게 익숙하지?’

나뿐만 아니라 영인도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이날 뭐 출연 신청이라도 받는 날이었나 정체 모를 익숙함에 머릿속에 남은 정보를 뒤지던 중 혜성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

‘음?’

모두의 시선이 혜성에게로 쏠린 그때, 혜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날, 내, 생일이야….’

‘아.’

어쩐지! 멤버별 프로필을 다들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머릿속에 어렴풋이 숫자로만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와, 대박! 형, 왜 말 안 했어요!’

규민이 장난스럽게 혜성의 어깨를 다독이며 물었으나 그야 당연하지 않나.

보통 당일이면 모를까, 아니 당일이라도 찔러서 절받기식 축하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자기 생일 얘기 안 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당일도 아닌 날에 미리 생일 예고부터 하는 관종이… 있긴 하겠지만 그게 주혜성 성격이랑 어울릴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혜성 본인은 다른 녀석들 생일을 줄줄 꿰고 있겠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 챙겨 주는 걸 좋아하는 성격에서 나온 습관이고, 생일에 그렇게 의미 부여하는 스타일은 아니어 보였으니까.

‘아니, 뭐… 회사에서 공지해 줄 테니까….’

다들 어렴풋이라도 기억할 줄은 몰랐는지 혜성의 귓불이 얼룩덜룩했다.

어쨌든 남이 챙겨 줘서 싫을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내친김에 제안했다.

‘그러면 그날을 아예 혜성이 형 생일 축하 겸 벌룬 입점 기념일 방송으로 준비하는 게 어떨까요?’

벌룬 입점 기념 라이브를 하는 김에 주혜성 생일도 같이 축하한다, 이런 느낌보다는 처음부터 주혜성 생일을 기념해서 첫 단체 라이브! 라는 느낌으로.

사측에서도 따로 반대할 이유는 없어 그대로 통과되었다.

“그, 그렇게 안 챙겨 줘도 괜찮은데….”

주혜성의 얼굴이 여전히 평소보다 더워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싫은 기색은 아니니 괜찮을 듯했다.

“챙겨 준다고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생일도 어쨌든 결국엔 마케팅의 일종이니까 오히려 저희가 형 덕을 보는 거죠.”

그제야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지 혜성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계속 불안해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주혜성은 기본적으로 자존감과 자신감 모두 낮은 타입이었다.

정은찬이 자존감은 높은데 자신감은 낮아서 문제라면 이쪽은 둘 다 낮아서 문제랄까.

‘실패를 두 번이나 했으면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긴 한데….’

겟데뷔를 통한 데뷔 과정이라도 좀 독보적이었으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을 텐데, 계속 운 좋게 살아남았다가 팀 잘 만나서 버스 탄 케이스로 언급되니 자존감이 회복될 턱이 없었다.

나는 주혜성과 관련해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게시글이 떠올라 입안이 썼다.

 ̄ ̄ ̄ ̄ ̄

[제목] 주혜성이야말로 ㄹㅇ 겟데뷔 최고 수혜자 아님? (+441)

[본문]

1차 - 49위

2차 - 57위

3차 - 32위

4차 - 16위

TOP 8까지는 수가 워낙 적어서 들어가기 힘들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TOP 16에 들어간 것도 끝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생존한 건데ㄷㄷ

49위에서 최종 데뷔조 버스 타고 ㄹㅇ 꿀 빤 거 아님?

프리라이딩 레전드

 ̄ ̄ ̄ ̄ ̄

댓글을 보니 혜성이 다른 그룹으로 활동할 때의 처참한 성적을 가져와서 엔카운터 활동의 성적과 비교하는 것도 있었다.

‘아니, 이름 없는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만 하고 홍보는 하나도 못 했던 성적이랑, 사전에 시청률 대박 터진 프로그램으로 화제성 1위 찍고 낸 데뷔 싱글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상황도 맥락도 맞지 않는 비교였으나 하려는 말은 일관적이었다.

주혜성이 지금 맞지 않는 옷을 운 좋게 입고 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대중성이든, 팬덤이든 모자라는 주제에 같은 위치인 줄 안다.

‘참나….’

이미 데뷔는 했고, 과정이 어떠했든 이렇게 여덟 명이 모여 데뷔한 이상 이 조합이 아닌 엔카운터는 이제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멤버들 사이에서 누구는 핵심 멤버고 누구는 필요 없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신경 쓸 필요 없는 트집이었다.

‘아무래도 개인 팬이 많은 팬덤이다 보니 멤버 내부에서도 팬덤끼리 견제 기류가 있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거기에 멤버들이 직접 영향을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하연이 혜성에게 악의 없이 물었다.

“생일이면 서포트나 광고, 같은 것도 걸리겠네요?”

아이돌에 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다른 멤버와 달리 아직은 알고 있었던 것보다 직접 체험하면서 알게 된 것이 더 많은 하연은 해맑기 그지없었다.

‘별로 좋은 화제는, 아닌데….’

가뜩이나 멤버별 인기 차이를 의식하고 있는 혜성인데, 아차 싶었으나 이걸 입단속해 두는 것도 지나친 일이라 나는 얌전히 분위기를 살폈다.

“아… 응. 정말 감사하게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서포트는 아직 사옥으로 전달하기 이전이었고, 광고는 이번 주부터 막 게시되기 시작한 듯했다.

“와, 대박. 진짜 너무 좋겠다. 인증 언제 가실 거예요?”

괜히 내가 너무 긴장한 걸까. 혹여 불편하게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걱정한 것과 달리 혜성은 순수하게 기뻐 보여서 겨우 마음이 놓였다.

“그, 실은… 이미 다녀왔거든…. 당일에 올리려고 사진은 아직 안 올렸긴 한데….”

“앗?”

“혼자 다녀왔어요?”

“같이 가지!”

다행히 회의는 또 정신없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고 나는 겨우 졸인 가슴을 내려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혜성이 멤버 간 인기도 차이로 자격지심을 느끼거나 불편해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서바이벌로 데뷔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은 해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을 좀 줄일 필요가 있어.’

약간의 자기반성과 함께 회의가 마무리되고 다시 연습실로 이동하려던 그때.

“형, 혹시 저희 연습할 때 먹을 간식 차에 있는지 봐주실 수 있으세요?”

“아, 응! 빨리 다녀올게!”

규민이 불쑥 혜성에게 잡일을 시키기에 뭔가 했더니만.

혜성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재빨리 말을 꺼냈다.

“누구 혜성이 형 생일 파티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계속 날짜만 눈에 익고 왜 익었는지도 모른 채 혼란이었는데 그걸 준비하고 있었을 리가.

“아무도 없어? 그럼 지금부터 해야 되는 거지?”

“케이크는 매니저 형이 준비해 주실 것 같긴 한데….”

“우리도 따로 하는 게 낫지 않나? 예약할 수 있는 곳 있는지 한번 찾아볼게. 비용은 각자 각출하더라도.”

규민을 비롯해 다른 녀석들도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라방 외에 숙소에서 따로 작게 또 파티를 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혜성이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돌아온 데다가 사비를 또 썼는지 간식을 잔뜩 들고 와서 마음이 무거워진 건 덤이었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건 규민이었지만 다들 그동안 혜성의 도움을 많이 받아 왔기에 부채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형이 평소에 팀을 그렇게 잘 챙겨 줬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해 주는 건 역시 좀 그렇잖아.’

단순히 배달 음식 잔뜩 시켜다가 배불리 먹는 건 지원이 복귀했을 때도 했고, 생일 파티만의 뭔가를 또 준비한다고 결국 혜성 몰래 은밀히 단톡방을 개설했다.

‘이런 건 멤버 전체가 나서서 같이해야 뒤탈이 없을 텐데….’

은찬이나 현호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거로 시간 뺏는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지만 이 역시 나의 과한 걱정이었다.

크게 손이 가는 일은 아니긴 하지만, 은찬이 혜성이 그동안 불렀던 파트들을 모아 리믹스처럼 들을 수 있는 메시업 음원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몸이나 비용으로 때운 다른 멤버들보다 확실히 눈에 띄는 선물이었다.

현호도 따로 선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듯하고.

‘나는 뭘 준비하는 게 좋으려나….’

고민하는 사이 또 정신없이 연습과 외부 일정을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침내 혜성의 생일 당일.

사옥의 회의실 하나를 작게 꾸며 생일 파티 공간으로 만든 후 카메라 앞에 서자 다들 전에 없던 긴장감이 느껴졌다.

“오늘 몇 분이나 오시려나?”

첫 무대에서 너무 요란하게 긴장한 티를 내서 그렇지, 이제는 꽤 덤덤해진 규민이 물었다.

“매니저 형은 최소 30만에서 50만 보고 계시던데요?”

“으악.”

영인의 상큼한 대답에 여기저기서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차트나 음방에서 증명된 화력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나도 예상하고 있었다. 잘하면 그것보다 잘 나올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고.

“숫자로 말하니까 엄청 떨리네. 실수 하나 했다가는 진짜 여기저기 다 박제되는 거 아냐?”

나는 순간 ‘알면 잘해.’라고 뾰족하게 대답할 뻔했으나 참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지. 10분 후 시작이니까 화장실 다녀올 사람 다 다녀오고.”

그러고는 오늘의 주인공, 주혜성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응?’

뭐지? 왜인지 오늘 제일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할 당사자의 얼굴에 그늘이 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