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41화 (141/224)

#141. 분명 휴가일 텐데 (1)

“나도 여기저기 나돌아다니긴 할 거라서, 집에 오래 붙어 있진 않을 거니까 편하게 지내.”

나는 혹시나 내가 숙소에 너무 안 있으면 무슨 일 있나 걱정할까 싶어 현호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현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현호에게는 말해 둔 게 없기도 하고 현호 앞에서 공유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서 나는 텅 빈 옆방으로 가서 핸드폰 화면을 켰다.

[공민형]

[010-XXXX-XXXX]

바로 전화를 할까, 아니면 메신저로 일단 운이나 띄워 볼까. 고민하던 참에 화면 상단에 알림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엔카운터 표영인] (사진) 오후 3:11

[엔카운터 표영인] (사진) 오후 3:11

[엔카운터 표영인] (사진) 오후 3:11

[엔카운터 표영인] (사진) 오후 3:11

공항에 도착한 영인이 인증 샷을 벌룬으로 보내다 못해 멤버들 단톡방에까지 뿌려 대고 있었다.

[엔카운터 정은찬] 알겠다고 오후 3:14

[엔카운터 정은찬] 그만 좀 보내 오후 3:14

결국 은찬이 짜증을 내고 나서야 미친 듯한 인증 샷 러시가 멈췄다.

[엔카운터 표영인] 가서 맛있는 거 많이 사 올게요!! 오후 3:16

[엔카운터 표영인] (이모티콘) 오후 3:16

멤버들 중 가장 먼 길을 떠나온 신세이긴 하지만 지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래도 내심 계속 집에 가고 싶었는지 짐을 쌀 때부터 엄청 들떠 보였다.

‘탈락하면 바다를 헤엄쳐서 오라고 했었나….’

아직 성년도 안 된 자식을 덜렁 무일푼 수준으로 한국에 보낸 것부터가 범상치 않은 가족이구나 싶긴 했는데.

어쨌든 탈락이 아니라 명실상부 최고의 톱스타 신분으로 집에 귀가하게 되었으니 신이 날 만도 했다.

가족들에게 선물을 사 가야 한다며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새벽 배송이니 택배니 해서 짐을 엄청나게 싸 대는 것부터 그 들뜬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집 가니까 좋아?’

이제는 본가에서 가족들과 북적거리며 지내는 것보다 혼자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게 익숙해진 나였기에 영인이 어떨 마음일지 온전히 이해되진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쭉 대가족 사이에서 부대끼며 자란 것 같던데.

멤버들과 우글우글 생활하고 있다고 해도 어렸을 때부터 편하게 지내온 가족들과, 어땠든 타인이고 봐주는 것 없는 형들과 지내는 건 다르니까.

‘네! 올 때 형 선물도 꼭 사 올게요!’

아직 통장에 돈 한 푼 꽂힌 거 없으니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가족들 가져다줄 짐으로 꽉 찬 캐리어와 가방을 올 때도 같은 수준으로 채워 오겠다며 장담하는 영인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내 건 안 사와도 되니까 조심히 다녀와.’

우리가 n년 차 슈퍼스타라서 전용기를 펑펑 타고 다닐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은 전세기는커녕 뽑은 지 10년은 된 것 같은 낡은 승합차가 우리의 단골 교통수단이었다.

‘거기에 가끔 개인 스케줄 갈 때는 직원들 자차로 이동하기까지 하니….’

빛나는 명성과 화려한 차트 순위, 그리고 중대형 체육관을 1분 만에 매진시켜 버리는 팬덤 화력이 무색했다.

뭐, 데뷔 초기니까 한창 제작비 회수하느라 난리일 테니 그건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고.

상단에 뜬 알림을 모두 지워 버린 나는 공민형과의 대화창을 화면에 띄웠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게 만날 장소를 전달받았던 그때의 기록이었다.

나는 더 긴말할 것도 없이 뉴스 기사를 하나 찾아서 링크째로 공민형에게 보냈다.

[나] (URL) 오후 3:19

[나] 감상이 어때? 오후 3:19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대로 씹기로 작정한 거냐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즈음 읽음 확인 표시가 떴다.

서로 필요한 걸 교환한 거니까 고맙다는 말은 안 하겠다고 하려나. 어쨌든 내가 사람 한 명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살린 셈인데…. 인사치레를 들으려고 한 짓은 아니었으니 좀 얄밉긴 해도 하는 수 없었다.

‘무슨 반응을 보이려나.’

공민형에게서 답장이 오기를 다시 얌전히 기다려 보았으나 10분, 20분이 지나도 아무런 회신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읽씹 하고 끝?’

언제는 사람을 무슨 노래 잘 부르게 해 주는 원적외선 마사지기 파는 약장수처럼 의심을 하더니만.

막상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던 게 밝혀지니 이제 볼일 끝났다는 거냐. 괜한 괘씸함에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규민에게 슬쩍 전해 들었던 근황이 생각났다.

프리점프 신규 영입 건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고, 전 소속사랑 완전히 갈라선 건 확실한 것 같다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뷔도 못 했고 그렇다고 다른 소속사로 이적해간 것도 아니니 빚만 잔뜩 진채로 쫓겨난 건 아닐 듯했다.

‘뭐, 절망 편을 생각하자면 그랬을 수도 있고.’

처참한 수준이었던 민형의 자취방을 생각하니 입 안이 썼다.

이것도 승자의 여유라고 하면 할 말은 없었다. 그래도 나보다 잘나간다고 하면 배가 좀 아프기야 하겠지만 영영 연습생 신분에서 멈춰 버리는 건 좀 아까운데.

이러니저러니 쓴소리를 하긴 했어도 실력만큼은 확실한 녀석이었다.

‘내가 아쉬울 정도면 다른 매니지먼트 전문가분들이 봤을 때는 더 안타깝겠지.’

내가 차차 대중들에게 잊혀지고 점점 무너져 갈 때도 여기저기서 ‘걔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참 안됐어.’ 하고 술안주로 쓰이곤 했었다.

그중 대부분은 그냥 말만 하고 나의 불행을 가십거리고 소비하는 게 전부였지만, 일부는 내가 목구멍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도록 자잘한 보컬 일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공민형도 겟데뷔에서 상당히 선전한 편이었으니 여기저기서 나 아니어도 챙겨 주려고 할 사람이 많을 터였다.

‘…알아서 잘하겠지.’

상황이 딱하긴 해도 소속사랑 계약 문제가 계속 얽혀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소속사로 넘어가서 데뷔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일 터다.

너무 늦어지지만 않으면 팬들도 일이 년 정도는 기다려 줄 테고.

그 이상으로 딜레이가 되면 공백기가 치명적일 수 있겠지만 세상 모든 일은 닥쳐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거니까.

본인이 연락을 안 받겠다고 피해 버리면 나로서도 더 손쓸 방법이 없었다.

‘그쪽에서 뭐 더 힌트가 될 만한 건 없나 한번 캐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왜 아무 말도 없냐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내 보려던 순간 불쑥 화면에 조금 전 봤던 연락처가 떴다.

[발신자]

[공민형]

[010-XXXX-XXXX]

깜짝이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여간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라느니 속으로 꿍얼꿍얼 불평한 순간 걸려 온 전화에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하, 깜짝이야.”

나는 겨우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누가 건 전화인지 뻔히 알고 있지만 정중하게 전화를 받자 민형이 당황한 듯 잠시 멈칫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내 말이 거짓말 아닌 거 알았으니 만족스러워?”

그러고 보니 그래서 프리점프 제안을 거절한 건지, 아니면 받아들이기로 한 건지 확실하게 들은 게 없잖아.

받아들였다면 진작 데뷔조에 합류해서 연습하고 있었을 테니 규민의 소식통을 통해 전해 듣긴 했겠지만, 혹시나 나를 기어이 못 믿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 …….

내 퉁명스러운 질문에 공민형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

나도 더 시비를 거는 것처럼 굴고 싶지는 않아 입을 다물었더니 싸늘한 적막이 흘렀다.

‘혹시 전화 끊어진 거 아냐?’

슬쩍 화면을 확인하자 통화는 아직 연결되어 있었다. 아니면 혹시 뭔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거나….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고맙다는 인사는 안 할 거야.

퉁명스러운 문장에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 바보인가?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랑 뭐가 다른데. 그게 그냥 감사하다는 인사 아냐?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틈을 타 공민형이 빠르게 쏘아붙였다.

- 메시지 하나 보냈으니까 알아서, 확인해.

냅다 통보하듯 던진 말에 나는 인상을 쓴 채 물었다.

“뭔데? 그냥 다짜고짜 메시지 보라고 하면 다야?”

그러자 공민형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 알고 싶을 거 아냐. 왜 네 사정을 너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알고 있는지.

“뭐?”

- 이제 나도 너한테 빚진 거 없는 거야.

그러고는 뚝 전화를 끊어 버렸다.

“뭐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본 화면 속 메시지에는 공민형이 공유해 준 연락처가 있었다.

[이비안 선배님]

[010-XXXX-XXXX]

“…….”

‘아니, 고작 이거 전해 주면서 그 유세를?’ 싶은 생각과 ‘스태프를 거치지 않고도 비안에게 연락할 수 있는 직통 번호를 얻은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하는 긍정적인 해석이 교차했다.

코드비 담당자나 겟데뷔 제작진을 통하면 연락처를 받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거쳐서 연락을 받아야 하는 만큼 내가 비안의 연락처를 구한다는 사실이 반쯤 공공연하게 알려지는 셈이었다.

그러면 또 이상한 사족이 붙을 것이 뻔했다. 최악의 경우 스캔들일 수도 있고, 차악이라고 해 봐야 서인수가 엔카운터 해체하면 들어갈 소속사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인.

어느 쪽이든 별로 내키는 방향은 아니었다.

‘박 대표로부터 외압을 받은 당사자일 테니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알고 있을 테고.’

그걸 나한테 말해 줄지는 미지수였다.

‘아니면 이 기회에 유해라 대표에게는 알리지 않더라도 비안 선배님께는 알고 있다고 밝히고 도움을 좀 청하는 것도….’

어쨌든 유 대표와 입씨름을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게 우호적인 입장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공민형하고는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 거지?’

탈주한 애를 대기실에 불러다가 타이를 정도면 꽤 가까운 사이 같은데….

‘혹시 내가 엿들어서 유 대표가 친모인 걸 알게 된 것까지 얘기한 거 아닌가?’

비안이 나와 만나 줄지도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가서 내가 어떤 패를 내밀어야 할지 미리 생각을 해 둬야 했다.

나는 민형이 그 짧은 사이에 나를 차단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나] 비안 선배님이 내가 그날 유 대표님 관련해서 나랑 무슨 관계인지 알게 된 거 아셔? 오후 3:47

이번엔 메시지를 보낸 지 1분도 안 돼서 읽음 확인이 떴다.

[공민형] 모를 거야. 네가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닌 적 없으면 오후 3:48

아무튼 본인은 말 안 했다 이거지. 그거면 됐다. 나도 누구에게도 말 한 적 없으니까.

[나] ㅇㅋ 오후 3:48

짧은 답장을 마지막으로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손등으로 미간을 짚었다. 이제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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