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쉬는 기분이 안 드네 (1)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보이는 비안과 달리 그 옆에 있는 다른 놈의 표정은 아주 뚱하기 짝이 없었다.
다과는 둘째 치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좀 당황스러워서 나는 최대한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게 노력하며 물었다.
“저, 그런데… 민형 씨는….”
내가 마지막 팀플 때 사용했던 호칭도 내동댕이치고 존칭을 사용하자 비안이 너스레를 떨며 말렸다.
“어휴, 민형 씨는 무슨 민형 씨야! 그냥 민형이라고 해요. 둘이 동갑이지? 친구 하면 되겠네~”
친구는 무슨. 같은 반 데면데면한 학우들끼리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겠다. 나는 슬쩍 공민형의 눈을 바라보며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움직였다.
“…….”
그러자 돌아오는 반응이 아주 가관이었다. 그대로 휙 고개를 돌려 버린 것이다.
“하, 정말. 협조 좀 해 달라니까.”
비안이 옆에서 눈치를 줬지만 공민형은 여전히 의욕이라곤 없는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여간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무튼! 선물까지 사 오고, 정말 고마워요. 내가 자몽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 안 사와도 되는데~ 나도 요즘 혈당 관리해야 한다고 해서 궁금했었거든.”
안 사 와도 됐던 것치고는 지금 너무 좋아하시는데요.
얼굴이 활짝 핀 걸 보니 선물은 잘 골랐던 것 같고.
원래는 슬쩍 대화하면서 한창 데뷔 초 활동하셨을 때 어떠셨냐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자리에 공민형이 껴 있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런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 걸까. 비안이 의중을 알 수 없는, 장난기가 느껴지는 입매로 씩 웃어 보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란 눈치네요? 우리 사무실에 생각도 못 한 얼굴이 있어서?”
조금의 포장도 없이 던진 돌직구에 나는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다.
“아, 오늘 선배님이랑 저랑만 만나는 자리인 줄 알고 있었어서 조금 놀랐어요. 막 불편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민형이랑 겟데뷔 때 같이 팀 무대도 했으니 초면도 아니고요.”
물론 초면이 아니기만 했지. 그 촬영 과정과 편집된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공민형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남돌 기 싸움이라고 까글까지 올라갔겠냐고.’
나뿐만 아니라 공민형도 꼴이 우습다고 조롱하는 글이었기에 이것만큼은 뻐꾸기의 짓도 아닌 것 같았다. 만약 놈이었으면 팀플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민형을 방해하고 귀찮게 했다고 나만 욕먹었을 테니까.
비안도 누구보다 철저하게 자기 출연 프로그램의 모니터링을 하는 만큼 나와 공민형의 사이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걸 알면서 한 자리에 불러냈다는 건 명백히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표정만 봐도 그래 보이고.’
싱글벙글 웃는 얼굴 뒤에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했다.
“아, 맞다 그랬지? 둘이 어떻게 좀 친해졌어요? 무대 위에서 막 어깨동무도 하고 그러던데.”
다 뻔히 알면서 이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안 친하다고 대답하겠냐고요. 나는 속으로 이를 꽉 깨물고 입을 열었다.
“저희 둘 다 워낙 의욕적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방송에 나간 것처럼 좀 투닥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어쨌든 저희 둘 다 더 좋은 무대를 보여 드리고 싶다는 목표는 같으니….”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적절하게 다듬어서 반복하려던 그때, 비안이 냅다 내 말을 잘랐다.
“자자, FM적인 발언은 여기까지 하고! 둘이 사이 안 좋은 거 나도 알거든요? 오늘 좀 오해도 풀고 친해져 보라고 부른 거니까 일단 나가죠!”
“네?”
갑자기 노골적으로 너희 안 친한 거 안다고 말하는 것에 1차로 놀랐는데, 나가자니? 어디로? 나는 놀란 토끼 눈을 떴다.
“얼른! 밖에 스태프들 대기하고 있으니까 꾸물거릴 시간 없어요. 얼른 일어나!”
그럼 다과는 왜 내온 건데?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에 이게 뭔 일인가 파악하려 했으나 공민형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냥 잔잔하게 짜증 난 무표정이었다.
“네?”
“네~? 가 아니라! 지금 휴가인 걸로 아는데 3시간 정도 괜찮죠? 너무 늦지 않게 돌려보내 줄게요.”
그렇게 냅다 사무실 밖으로 등 떠밀려 나가니 건물 앞에 카메라를 든 스태프와 조명 기구를 든 스태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자, 얼른 타세요~ 시간 없으니까~”
거의 납치나 다름없이 커다란 승합차에 올라탄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강제로 이동당했다.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놀랍게도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로드 매니저가 아닌 비안 본인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면 뭐? 내리게요?”
“네?”
내가 황당함을 금치 못해서 반사적으로 말꼬리를 갈라지듯 올리자 그게 퍽 재미있었는지 비안이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이상한 데 가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그렇게 끌려간 장소는 다름 아닌 대형 테마파크였다.
“……?”
진짜 영문을 모르겠어서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자 비안이 다시금 쾌활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둘이 재밌게 놀아요!”
놀라고 해도…. 얘랑요? 주차장에 내린 채 멀뚱멀뚱 비안을 보고만 있으니 냅다 입구 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뒤에 붙어서 따라오는 스태프들은 촬영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어깨에 장비들을 인 채 움직이고는 있는데 뭔가 적극적으로 촬영 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위화감을 느끼는 걸 알아챈 건지 비안이 장난기 많은 얼굴로 웃었다.
“카메라가 있고 없고가 차이가 커서요. 카메라가 있으면 ‘아, 뭐, 촬영하나 보다.’ 하고 다들 생각보다 반응 안 하기도 하는데, 카메라가 없으면 뭐 못 할 일이라도 하는 줄 안다니까?”
나는 순간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말았다.
“아무튼 신경 안 써도 된단 얘기예요. 카메라 있으면 다들 촬영인 줄 알고 내버려 두니까.”
“아.”
나는 그제야 내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확신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평일 낮이라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확실히 카메라가 따라다니니 행인들의 흘끔거림이 덜했다. 또 뭐 웹 예능 같은 거 찍나 보다, 정도의 관심 외에 선을 넘는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자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돌아야 해요! 아, 저거 재밌다더라!”
우리가 주춤거리면서 아무 데도 들어가지 않자 결국엔 비안이 놀이 기구를 콕 찝어서 이거 타라, 저거 타라 무슨 미션 지시하는 상사처럼 쪼아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셋인데 뭘 어떻게 타려고… 본인이 혼자 탈 생각인가?’
머릿속에 의문이 생긴 순간 어느새 롤러코스터에는 나와 공민형만이 탑승해 있었다.
“둘이 잘 타고 와요~”
비안의 작별 인사와 함께 출발한 기구를 다 타고 내려오니 비안이 입구에서 뽑아 온 스냅 샷을 보여 주며 깔깔 웃었다.
“둘 다 원래 기구 잘 못 타요? 비명은 안 지르는 것 같던데 표정 어떡할 거야. 아하하.”
정확히는 지를 새도 없었습니다만.
기절할 정도로 무섭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른 속도에 비명을 지를 여유도 없이 놀이 기구가 끝나 버린 탓이었다.
“자~ 그거 탔으면 이제 물 뿌리는 거 타러 가요. 얼른!”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놀이 기구에 탄 건 나와 민형뿐. 비안은 아래에서 사진만 찍고 있었다.
‘뭐지…?’
이래서야 꼭, 무슨 아들 둘 가진 어머님이 애들 놀라고 데려와서 자기는 사진만 찍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제 여기서 유명한 건 거의 다 탄 것 같은데, 다음 장소로 이동할까요?”
비안의 예상 못 한 기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우리를 끌고 간 곳은 사계절 내내 운영하는 아이스 링크장이었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입구에서부터 마중을 나온 관리자와 친분이 있는지 꽤 가까워 보이는 인사를 나누기에 뭐지 싶었는데.
내부로 들어가자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만큼 통으로 대관을 한 듯 내부에는 직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짠!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너무 좋죠? 편하게 놀아요~!”
이것마저도 정말 애 데리고 체험 시설 돌아다니는 학부형이 따로 없었다.
‘놀라고 해도 이놈이랑 뭘 어떻게….’
신발을 스케이트로 갈아 신고 어정쩡하게 빙판 위로 내디디니 스케이트를 신어 본 건 처음이라 자세가 영 불편했다.
“어, 스케이트 한 번도 타 본 적 없어요?”
비안이 불쑥 등 뒤에서 묻는 바람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 네. 아무래도 시간 내기가 힘들었어서요.”
보통은 학교에서 단체로 한 번쯤은 다녀오는 모양이지만, 초등학교 때는 기회가 없었고 중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루 종일 연습 또 연습. 방학을 맞아 진행하는 합숙 중에는 핸드폰도 반납하고 숙소 밖으로는 나갈 수도 없었다.
허락되는 건 기껏해야 숙소 건물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 출입 정도일까. 그마저도 밤에는 야식 먹지 말라고 걸리면 엄청나게 혼났다.
‘생각해 보면 진짜 무슨 데뷔라는 출소를 기다리는 죄수들도 아니고 뭐야….’
지금도 사실 스케줄이 바쁠 때에는 외출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율이었다.
임시 소속사라서 더 느슨한 것도 있긴 하겠으나 대표도 매니저도 소속 연예인을 꽉 잡을 생각은 없는 사람들 같았다.
그러니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나들이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알아보는 눈이 너무 많아져서 문제지.’
그냥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마저 사진 한번 잘못 찍히면 영원히 인터넷에 박제되어 버리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까.
괜히 남의 눈에 띄는 곳을 돌아다니느니 집에서 편히 쉬는 게 나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이렇게 모처럼 촬영 말고, 편히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나 싶었으나….
‘이걸 왜 공민형이랑?’
이걸 반강제로 시키고 있는 사람이 비안이고, 별로 원하지 않는 동행인이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아 재밌었다~”
아이스 링크장에서 또 무슨 술래잡기를 하자고 사람을 뛰어 만들어서 땀을 빼고, 마지막으로 대관한 듯한 양식집에 가서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그제야 나를 코드비 건물 근처에 내려 주었다.
“오늘 어땠어요? 괜찮았죠?”
나를 내려 주고 잠시 도로변에 정차한 비안이 운전석의 창문만을 내린 채 물었다.
“음….”
단순히 괜찮았냐, 아니냐를 따지자면 중간쯤이었다. 평소라면 못했을 것들, 못 다녔을 것들을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해 볼 수 있었던 건 나쁘지 않았는데. 그 옆에 저 녀석이 있는 건 감점 요인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대답했다.
“네, 괜찮았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건 별로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또 이렇게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