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46화 (146/224)

#146. 쉬는 기분이 안 드네 (3)

‘뭐 어쨌든… 차근차근 돌발성 미션들도 수행했고 아예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니까.’

한때 4단계 직전까지 치솟았던 뻐꾸기 단계도 지금은 2단계 이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리퀘스트 미션을 수행하면 0.5단계가 추가로 내려가니까 1단계의 고지도 멀지 않은 상태였다.

‘나야 좋기는 한데…. 정작 저쪽에는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는 건지 알 방법이 없으니.’

악플러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바른 말 고운 말만 써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진 않았을 거 아냐.

하향된 수치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 호감도 미션 때처럼 어떤 나비 효과가 발생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하향돼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겠는데….’

나는 다시금 키워드 목록을 열람하고 지금껏 모인 단서들을 훑었다.

[수집된 단서]

[- 박 대표와 골든링 미디어]

[- 프리점프]

[- 공민형]

[- 밀키즈]

[- 수상한 스태프]

[- 자가 복제형 악플]

[- 임희록]

[- 실수 연발의 콘서트]

[- 현찬의 비밀]

[- ???]

[- ???]

‘일단 이 정도인가.’

아직 남은 키워드 두 개가 대체 무엇인지 확신이 서는 것이 없었다.

‘공민형이나 비안이랑 관련된 것이면 좋겠는데….’

머릿속으로 혼자 곰곰 떠올려 보는 사이 현호가 다음 빵을 내밀었다. 솔직히 이제 정말 관리를 위해서라도 그만 먹고 싶은데.

“…….”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기대감을 품은 듯한 표정에 나는 한숨도 쉬지 못하고 현호가 내민 빵을 집어 들었다.

‘내일 회사 가서 유산소라도 태우고 와야겠다.’

어쨌든 나를 생각해 주는 모습이 기특한데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없어서 나는 묵묵히 남은 빵을 먹어 치웠다.

‘이걸 웃어야 돼, 울어야 돼….’

애매할 땐 일단 웃는 것이 상책이었다.

***

그렇게 인수가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의도치 않은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어느 작은 방 안에서는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않은 몰골의 젊은 청년이 신경질적으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왜 또 연락이 안 돼, 이 인간은.”

[나] 그래서 입금은 언제 해 주실 건데요? 오후 10:54

[나] (링크) 오후 10:54

[나] 글 올렸잖아요 오후 10:54

[나] (캡처 이미지) 오후 10:55

[나] 단톡방에서 활동도 존나 열심히 했는데 왜 요즘 확인을 안 하세요? 오후 10:55

[나] 저기요 대표님 오후 11:21

[나] 전화드릴게요 오후 11:40

[나] ? 오후 11:45

[나] 왜 전화도 안 받아요? 오전 12:02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머리를 굴려 떠올린 날짜는 벌써 2주도 전이었다.

‘갑자기 왜 이래?’

그에게서 지원을 받아 하루 종일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만을 들여다본 지도 벌써 수개월이 넘었다.

한때는 저도 무대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직업을 꿈꿨던 주제에, 태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돈을 만져 본 일이 악플로 남들을 선동하는 것이라니.

우습기 그지없었으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일 당시 희록은 낭떠러지 끝에 내몰린 상태였다.

절대 추적 당할 리 없으리라 자신했던 방식은 허무하게 들통났다.

VPN 결제 기록부터 음원을 조작한 조각 파일까지 모두 자신의 노트북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회사는 당연하다는 듯 절차대로 계약을 해지했고 해지 사유는 모두 희록의 책임이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 을의 귀책 사유로 발생한 부정적인 이슈에 의해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을은 갑에게 계약 기간 중 투자받은 비용을 상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내가 사고만 안 치면 되는 것 아닌가. 대수롭지 않게 서명했던 조항 하나로 희록은 단순히 연습생에서 퇴출된 것이 아니라 인생이 실전이라는 사실을 체험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받을 거 다 받아 가 놓고서 뭘 선심 쓰듯이 말하고 XX이야….’

그동안의 정을 봐서 이 정도만 청구하겠다던 관계자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려도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부모님에게 마냥 손 벌릴 수 있는 나이는 지났고, 뭐라도 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집을 뛰쳐나온 신세에 오갈 데도 없어진 희록에게 손을 내민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희록 군은 프로그램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나?’

그는 방송국은 원래 띄워 줄 스타를 처음부터 정해 두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시청자들이 이입하고 응원할 수 있는 주인공과 자극적인 일화로 욕받이로 만들 악역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그러니 네가 겟데뷔를 촬영하면서 겪은 일들은 네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방송 작가 놈들과 제작진들이 처음부터 짠 판에 네가 불운하게 휘말린 것뿐이라고 했다.

희록은 본래 성격대로라면 그런 허울 좋은 감언이설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러나 말마따나 제작진들에 의해 불공평한 특혜를 받는 놈들을 지적하려다 보복을 당했다고 굳게 믿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그, 그렇죠? 제가 재수 없이 잘 못 걸렸던 거죠?’

희록에게 접근한 이는 부당하게 성공한 녀석들의 추잡한 본모습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연예계 전체를 위해 누군가는 나서야 할 일에 네가 팔을 걷어붙여 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일이 잘 해결되고 네 누명이 벗겨지면 데뷔할 수 있도록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는 제안에 희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을 외쳤다.

[- 인수 진짜 악플러 징하게 붙었나 보다 무슨 호글 올라오자마자 바로 비공감이 수십 개씩 박히네]

[- 다른 멤도 까들 붙은 거 보면 왜 저러고 사나 징그럽긴 한데 인수 까들이 진짜 정상 아닌 것 같아;;; 무서울 정도임]

인수와 관련된 글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이성적으로 공감을 눌러 대는 무지성 팬들이 하는 말 따위는 우습기만 했다.

애초에 정당한 여론이 커뮤니티에 반영될 수 있도록 그쪽에서 먼저 우르르 몰려다니며 추천을 눌러 대지만 않았어도 이럴 필요 없었을 것 아닌가.

희록은 서른 개나 되는 아이디를 로그인하고 로그아웃하기를 반복하며 정성스럽게 각기 다른 말투로 댓글을 남겼다.

[- ㅋㅋㅋㅋ 무지성빠들 반박할 말 없으니까 주작으로 몰아가는 거 봐라]

[└ 케이 팝 오래 파 왔지만 이 판처럼 눈귀막 하는 팬덤은 처음이네요ㅎ]

남들이 보기엔 악플처럼 보이는 이 행위가 미디어가 낳은 거대한 음모에 반격하는 위대한 발걸음이라는 착각 없이는 불가능한 짓이었다.

희록에게 접근한 이는 희록의 빚을 대신 갚아 준 것도 모자라 희록이 온전히 이 위대한 싸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었다.

연습생 기간 동안에는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었던 목돈이 턱턱 입금되고, 그렇게 수상한 조력자가 희록에게 인생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을 즈음.

‘……?’

느닷없이 그와의 연락이 끊겼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뭐지?’

그래도 아직은 한두 달 정도는 더 생활할 수 있는 돈이 남아 있었다. 무슨 사정이 생긴 걸까? 아니면 제작사 놈들이 설마 대표님한테 뭔가 해코지라도 했나?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면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으려 했으나 슬슬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니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X발. 왜 전화도 안 받는 건데?’

당장 두어 달 후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희록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그동안 그리 성실하게 일해 본 경험이 없으니 며칠 만에 잘리기 부지기수였다.

‘그… 음… 아무래도 아이돌 쪽 준비하다가 서비스직 하려니까 익숙하지 않은 건 알겠는데… 기존에 일하던 친구들이 좀 불편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희록 씨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걸로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결국 희록은 다시 수상한 제안을 했던 남자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왜 전화 안 받아요? 혹시 번호가 차단당했나 싶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자 잠시 후 전화를 받을 수 없는 번호라는 처음 듣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나 지금 이렇게 팽 된 건가? 희록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트리며 남자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나] 대표님 그동안 저 도와주신 은혜도 있고 해서 저도 이렇게는 생각 안 하려고 했는데요 오전 1:47

[나] 지금 솔직히 제가 이상하게 느낄 만한 상황이 맞는 것 같거든요 오전 1:48

[나] 아니면 제가 오해한 게 맞다고 확실하게 해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오전 1:50

이번에도 메시지는 어김없이 읽음 확인도 뜨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씹혔다.

[나] 계속 저 이렇게 무시하시면 저도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오전 1:52

[나] (캡처 이미지) 오전 1:52

희록은 그간 그에게서 입금받 아왔던 기록들을 캡처해서 보냈다.

자신을 사주해서 한창 잘나가는 아이돌에게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도록 지원한 것이 밝혀지면 그쪽도 무사할 수 없으리라는 협박이었다.

‘이게 먹혀야 할 텐데….’

까득, 까득. 손톱을 물어뜯다 못해 피가 비치고 나서야 희록은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대체 왜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된 것인지, 여전히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

[서브 리퀘스트 미션 클리어!]

[▷먹방 초심자]

[보상 수령]

[▷코인 1개]

[▷뻐꾸기 단계 0.5단계 하락 조정]

마침내 휴가 5일 차, 겨우겨우 길었던 서브 리퀘스트 미션을 끝낸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속으로 환호했다.

‘이제 더는 억지로 안 먹어도 된다!’

군것질도 초반 며칠 정도나 좋았지, 원래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 억지고 먹고 싶었던 척해야 했다 보니 여간 고역인 게 아니었다.

‘차라리 CF처럼 짧고 굵게 컨셉에 맞춰서 찍고 끝나는 거면 할 만하겠는데.’

이건 그것도 아니고 현호 나름대로 나를 위한답시고 리스트에 없는 것까지 자꾸 먹이려고 하는 통에 괴롭기 그지없는 나날이었다.

나는 서브 리퀘스트 미션을 클리어한 것과 동시에 현호에게 이제 정말 살이 쪄서 먹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고, 현호고 납득한 듯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나는 마무리 지었고, 남은 건 휴가가 끝나기 전에 비안을 다시 만나러 가는 일정이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방해꾼 없이 둘이서 보는 거겠지.’

현호에게 외출할 일이 있다고 간단히만 이야기하고 사무실로 향하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차하면 유 대표가 내 친모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까지 밝히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어쩐지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너무 떨지 말자.’

마침내 다시 지난번에 소득 없이 돌아갔던 사무실에 도착한 순간.

‘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안의 사무실에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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