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56화 (156/224)

#156. 도쿄에서 생긴 일 (4)

“으음…. 원래는 안 되는데….”

매니저가 상당히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꼬리를 늘였으나 어쨌든 여기는 대표가 있는 한국이 아니었고 바다 건너 타지였다.

“대신 조금이라도 위험하겠다 싶으면 바로 중단하고 귀가하는 거예요. 딱 한 곡에서 두 곡 정도로 끝내는 거고요.”

“네!”

매니저의 허락까지 받았으니 더는 망설일 것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일본어를 잘 못 해서 일단 한국어로 말할게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준비해올게요!”

규민의 당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고백(?) 뒤에 이어진 건 짧은 버스킹이었다.

MR은 대충 핸드폰과 연결한 미니 스피커가 전부라서 쌩목으로 커버하는.

급조한 티가 팍팍 나는 이벤트였으나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다.

<뭐야? 저쪽에서 뭐 공연하나?>

<아까 전시관에서 쇼케이스 했던 아이돌이라는데?>

<진짜? 선착순으로 끝났잖아. 밖에서 또 하는 거야?>

하나둘 웅성거리며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던 인원 외 다른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두 손을 잡고 기도하듯 diving]

[다시 돌아보는 순간 펼쳐지는 내 stage 방심하지 마]

진짜 열심히 준비했는데 무대에서 짧게 보여드리고 가는 것도 역시 너무 아쉬우니까.

마이크를 대신하기 위한, 아까 도시락 먹으면서 여분으로 받았던 일회용 숟가락을 쥐고 멤버들끼리 열심히 배턴 터치를 했다. 그것조차도 제법 귀여워 보였는지 반응이 좋았다.

[눈을 의심하겠지 spotlight 더욱 높은 곳까지 higher]

나를 비롯한 몇 명이 주도해서 냅다 끌고 나온 거라 혹시 멤버들 중 불만이 있는 녀석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건 애초에 할 필요도 없는 기우였다는 듯 멤버들 또한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한가…’

늦은 시간까지 오로지 우리를 보기 위해 기다려준 팬분들이 공연장도 아닌 곳에서 이토록 무대에 집중해주는 경험이 흔치는 않으니까.

한국이었으면 진작 소속사 선에서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막혔을 상황이기도 하고.

[후회 따윈 없는 걸음 네게로 closer 뛰어들어줘]

의도한 건 전혀 아니었지만 가사말 그대로 팬들 사이로 뛰어든 순간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커졌다.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인해 피로감은 한국에서 활동할 때의 두세 배 이상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엔카운터 였습니다!>

오로지 우리만 바라보는 선명한 시선과 실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한 집중감, 그리고 점점 많아지는 인파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특수한 압박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오고 싶어요!>

한 곡 불렀으니 이제 슬슬 됐다는 듯 매니저가 불안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어쨌든 매니저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문책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만들어준 기회인 만큼 이제 정리하고 순순히 호텔로 향하려던 그때….

“앵콜! 앵콜! 앵콜! 앵콜!”

누군가 힘찬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한국인인가? 주위의 일본인 팬분들이 당황하기도 잠시 다른 곳에서도 같은 단어가 터져 나왔다.

<앵콜! 앵콜!>

그러자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눈치를 보며 서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던 다른 관객들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여기서 딱 한 곡으로 끝내고 싶지 않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서.

다들 괜찮나? 싶어서 슥 멤버들을 둘러본 순간 제현호와 눈이 마주쳤다.

“…전 괜찮아요.”

그 괜찮아요가 어떤 의미인지 오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그러면 어쩔 수 없네~.”

“그죠그죠, 안 할 수가 없네~.”

규민과 영인 콤비와 함께 멤버들 모두 아하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더 할게요!>

내가 대표로 외친 순간 다들 아쉬운 목소리를 내면서도 눈을 빛냈다.

[Three two one, action, 빛나는 flash 눈감아 벌써]

[빨라지는 pitch 속도를 높여 더 higher emotion]

보컬보다는 아무래도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곡이라 매니저가 미리 시작에 앞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주었다.

감사하게도 다들 두세 걸음씩 뒤로 안전하게 물러나 주셔서 큰 지장 없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깜빡하는 순간 달아나지 또 catch me if you can]

[Black box는 남겨둘게 계속 더 기억해줘 날]

공간이 확실히 넓어져서 그런가. 동작을 조금 전처럼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인지 하연이나 영인을 비롯해서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는 멤버들이 훨훨 날아다니는 게 눈에 보였다.

‘좀 억지를 써서라도 시간 내보길 잘했네.’

다들 잔뜩 흥분한 것이 눈에 선할 만큼 즐거워 보여서 나까지 덩달아 동작이 평소보다 커졌다.

[Broon' Broon' Broon' Turn on the radio]

[Listen up 태워봐 더 뜨겁게]

마침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버스킹이 끝나고 이제 진짜 작별을 고한 순간.

<고마워요!>

<다음에 또 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감사 인사와 작별의 말 속에서 이제는 정말 철수해야 한다는 듯 울먹이는 매니저가 열어주는 차 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창문을 연 채 한참을 바깥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 끝에 마침내 차량이 인파 속을 빠져나간 순간.

“으아아…”

“죽겠다.”

다들 그동안 꾹 억누르고 있었던 피로감과 긴장이 쏟아지는지 차량 곳곳에서 죽는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진짜 호텔 가면 바로 쓰러져서 잠들 것 같다.”

그럴 만했다. 일본으로 오기 전부터 한국 활동도 완전히 쉴 수는 없어서 틈틈이 개인 활동 정도는 하고 있었고, 호텔로 온 후에도 온전히 휴식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버스킹까지 감행한 건 정말 우리의 남은 체력을 끌어다가 조금의 비축도 없이 소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우리 이러고 내일 생방에서 실수하면 진짜 가루가 되도록 까일걸.”

어제 무리했으니까 다들 고생 많이 했구나~ 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욕하려면 뭐로는 건수를 못 잡을까 싶다만 ‘쓸데없이 안 해도 되는 고집 부려서 진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할 때 엉망으로 일하는 프로 실격’으로 패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 당연하죠. 저희를 뭐로 보고.”

“그래 그럼 다행이고.”

더 잔소리를 해봤자 다들 제로가 된 기력이 갑자기 솟아나는 게 아닌지라 나도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내일 4시 반까지 로비에서 집합하는 거로 할게요!”

우리가 출연 일정이 잡혀있는 아침방송이 8시 반부터 방영되는지라 덩달아 집합 시간까지 빨랐다. 다들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와중에도 대답은 제때 해야 한다는 정신머리는 박혀있는 탓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매니저도 다른 스태프들과 같이 사용하는 방으로 돌아가고, 멤버들 역시 이제 각자 배정된 룸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근데 재밌긴 진짜 재밌었다.”

규민이 무심코 중얼거리는 순간 다들 지친 와중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못할 일이다 보니까….”

지원이 중얼거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그랬으면 엔카운터쯤 되는 대형 아이돌이 길막했다느니 민폐라느니 라이벌 관계에 있는 팬덤들이 가루가 되도록 깠을 것이다.

일본이니까 인파가 한국만큼 몰리지 않기도 하고.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얼렁뚱땅 넘어간 거지.

이것도 길어졌으면 따로 적절한 조치 없이 길바닥에서 공연을 한 게 불법이냐 아니냐 문제로 골아파 졌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다들 고생했어. 푹 쉬고 내일 보자.”

남은 일정이 아직도 한가득이다만 어쩐지 벌써 반 이상 고비를 넘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한편 그시각.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부러움에 이를 박박 갈며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었다.

“아! 미친 애들 버스킹 했네?”

조금 전 끝난 쇼케이스 스트리밍 화면을 막 끈 참이었기에 이제 편집 조금만 더 하고 자야지 마음먹고 있었던 인덕은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XOXO] (동영상) 오후 9:34

문제가 된 건 쪼님이 보낸 짧은 영상이었다. 조금 전 선착순으로 컷하는 입장에서 잘려 포카만 받고 끝났다기에 애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생만 했겠네 위로해준 참이었는데.

퇴근길에 팬들에게 들려서 인사를 해준 것도 모자라 즉석에서 버스킹까지 했다는 소식에 부러움에 속이 뒤집힐 정도로 배가 아팠다.

“와 진짜 가까운 데서 찍었네.”

XOXO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가 준전문가용이라 잘 찍힌 것도 있지만. 이전처럼 멀리서 줌을 당겨 찍은 게 아니라 정말 거의 코앞에서 찍은 거라서 메이크업으로 가려지지 않은 잡티는 물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하나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와 어떻게 얼굴이 이렇게 잘생겼는데 피부까지 좋냐.”

감탄이 나올 만큼 흠이라고는 없는 비주얼이었다. 물론 TV 속 화면으로 봤을 때도 그래 보이긴 했는데.

필터 보정이 어느 정도 되어있는 화면으로 보는 거랑 이렇게 보정 하나도 없이 코앞에서 찍은 쌩사진으로 실감하는 거랑 와닿는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있었다.

[XOXO] 멤버들이랑 한 번씩 아이컨택 다 한 듯 오후 9:35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코앞에서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찍는데 눈에 안 띌 수 있겠냐! 심지어 영상을 보니 규민이나 영인, 인수처럼 눈치가 빠른 멤버들은 아예 방송용 카메라를 보는 것처럼 계속 화면을 바라봐주고 있었다.

[나] 빨리 원본 오후 9:36

[나] 원본 내놔 오후 9:36

[나] 원본 좀 빨리 오후 9:37

[나] 현기증 나니까 제발 오후 9:37

현생 때문에 바로 일본으로 따라가지 못한 것이 이렇게 한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덕은 인수가 카메라에 대고 씩 웃어 보이는 순간만이라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영상이 도착할 때까지 도배 테러를 감행했다.

[XOXO] 알겠다고

[XOXO] ㄱㄷ

[XOXO] 나도 정리 좀 하고

XOXO로부터 원본을 건네받은 건 30분 후쯤의 일이었다. 잠시 후, 인덕의 알림창이 행복한 비명이 나올 만큼 터져나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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