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60화 (160/224)

#160. 예상외의 관심 (1)

“왜? 또 뭐라고 해?”

그러자 하연이 곧장 고개를 가로저으려다가 천천히 끄덕였다.

“근데 별거 아니에요.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표정이 왜 그래.”

내 지적에 하연이 자기 얼굴을 한 번 슥 만져 보더니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그냥, 좀… 불편해서요.”

하연은 보통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참고 삼키는 편이었다. 성격 자체가 모나질 않아서 두루두루 이쁨받을 만한 인상이기도 했고, 키도 훤칠하니 이미지도 좋아서 먼저 선빵을 치는 사람도 드물다고 해야 하나.

은찬이 걸어 다니는 어그로 머신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 둘이 팀 내에서 제일 친하다는 게 모순이라면 모순이었지만.

그런 하연이 저렇게 신경 쓸 정도라는 건 평소와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자.”

나는 하연에게 현관문 쪽으로 손짓하고는 거실을 향해 외쳤다.

“잠깐 하연이랑 뭐 상의 좀 하고 올게.”

우리 둘끼리만 같은 브랜드 앰버서더로 선정돼서 그런지 다들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엉~.”

방문 안쪽으로 흔들흔들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하는 손의 주인은 아마도 규민이었다.

아무튼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하연을 데리고 빌라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곤 옥상 문이 닫히자마자 물었다.

“뭔데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다고 생각했나. 하연이 우물쭈물하다가 캡처된 이미지 하나를 보여 주었다,

“…말했잖아요. 별로 중요한 건 아니라고.”

슬쩍 고개를 들어 화면을 확인하니 그 말 그대로 별 시답잖은 내용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신경 쓰이긴 하는 거잖아.”

내가 입 끝을 늘어트리며 어깨를 으쓱이자 하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처음 아니지? 보니까 계속 그랬던 거 같은데.”

하연이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곧바로 하연에게서 핸드폰을 빼앗아 들고는 촬영장에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찍었던 셀카 몇 개를 골랐다. 특히 브랜드 로고가 제일 잘 보이는 것으로.

“이게 좋겠다.”

마침내 내 의도와 딱 어울리는 사진을 한 장 선별해서 곧바로 조금 전 떠올린 멘트와 함께 게시하려 하자 하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말렸다.

“뭐, 뭐 하시려고요? 이건 왜요?”

그러면서 기껏 내게 쥐여 주었던 핸드폰을 다시 회수하려고 하기에 나는 힘을 주어 버텼다.

“잠깐만, 좀 있어 봐.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털었는데 이쪽에서도 원하는 대로 응수해 드려야지.”

“아뇨! 형, 잠깐만요!”

그제야 내 의도를 알아차린 하연이 놀라서 나를 말리려 했으나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전송 완료]

엄지로 꾹 게시 버튼을 누르자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팝업 화면이 어플 한가운데에 예쁘게 나타났다.

“아…!”

나는 하연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잘 마무리된 핸드폰을 건넸다.

“아, 형, 형이 그래 버리면 저는 어떡해요.”

“어떡하긴. 처맞고 가만히 있지 않은 사람 되는 거지.”

사진이 게시되기 무섭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공유 수와 댓글, 좋아요에 곧 하연이 수습을 포기한 듯 한숨과 함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삐쳤어?”

내가 놀리듯 묻자 하연이 시선을 피하며 볼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됐어요.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말 그대로였다. 나는 규민이나 영인이 평소 하는 것처럼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하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인 건 나쁘지 않은데. 너무 스트레스받아 가면서까지 모두에게 예쁨받으려고 하지 마. 어떻게 헤도 나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연이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아는데요….”

“알면 실천을 해야지.”

하연이 제 머리를 북북 헤집더니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는 거랑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거랑 다르잖아요. 파장이 어디까지 튈지도 모르고,”

“걱정하지 마. 너한테만 뭐라고 한 것도 아니더만. 이 갈고 있던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다 네 편일 거야.”

하연이 입술을 삐죽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조금은 속 시원하긴 하네요.”

그러고는 옥상 문을 열고 먼저 아래로 내려갔다. 거봐라, 나는 하연이 문을 닫고 내려가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탁, 문이 완전히 닫히자마자 핸드폰 화면을 켰다.

근데 난 거기서 만족할 생각 없거든. 일단은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을 계속 괴롭혀 온 인간이고 그냥 한 줄 반격으로 끝내는 건 아쉬우니까.

“어디 보자… 지금 연락할 수 있을 만한 분들이… 아.”

그러고는 각종 인터뷰나 취재 등을 진행하면서 연락처를 교환해 두었던 기자분의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반응을 이끌어 내려면 빠른 대응이 필수적이었다.

[나] 안녕하세요, 기자님.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혹시 잠깐 통화 괜찮으실까요? 오후 8:32

이제 두 시간 정도만 있으면 나한테 더 고마워하게 될 거야. 나는 하연의 게시글의 공유 수가 10k 건을 넘어선 것을 확인하며 웃었다.

***

한편 어두운 작업실 안. 한쪽에 널브러져 있는 낡고 푹 꺼진 소파 위에 누군가 푸푸, 코골이를 하며 드러누워 있었다.

끼익, 입구 쪽에 있는 철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와 잠들어 있는 이를 깨웠다.

“형, 좀 일어나 봐요. 아까부터 DM을 몇 번을 했는데 아직도 자고 있네.”

좁고 어두운 작업실. 방금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탁, 스튜디오 안의 불을 켜자 잠들어 있던 이가 끙,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눈을 떴다.

“뭔데…. 뭐길래 시끄럽게 난리야.”

반쯤 여전히 잠에 취한 채로 웅얼거리자 불을 켠 누군가가 남자의 어깨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기사 뜬 거 봤어요? 내가 링크 보냈는데. 아. 자고 있어서 그것도 못 봤나?”

“뭔 소리야, 기사라니.”

“형 사고 쳤어요. 지금 반응 장난 아니에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고를 쳤다는 건 뭐고 반응이 장난 아니라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남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아직 몽롱한 정신으로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자 그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 개찌질함 진짜ㅋㅋㅋㅋㅋㅋㅋ]

[- 얼굴로 열폭하는 건 답도 없다]

[- 이런 식으로 후배 꼽 준 게 한두 번이 아니네]

[-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지 매번 잘되는 사람 물고 늘어지는 것 좀 그만해요]

[- 내가 언젠가 이렇게 떠내려 올 줄 알았다]

[- 옹졸한 마음씨만큼 옹졸한 인상이다 진짜]

[데비론 형님] 너 SNS에 그거 뭐냐 지금 난리 났던데 오후 9:11

[성호균 피디님] 펀보잉 씨 기사 확인했어요?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우리 영상 올리는 거 좀 미뤄야 할 것 같은데…. 오후 9:17

신곡을 냈을 때도 받아 본 적 없었던 엄청난 양의 알림에 방금 눈을 뜬 남자, 래퍼 펀보잉은 자기가 뭘 보고 있는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다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댓글 알림이 제일 폭발하고 있는 게시물을 확인하자 댓글이 벌써 수백 건을 돌파하고 있었다. 전부 자신을 조롱하거나 꾸짖는 내용들뿐이었다.

‘내가, 내가 뭘 했지….’

펀보잉은 댓글이 잔뜩 달린 게시물의 내용을 더듬더듬 확인했다. 그래, 제일 먼저 기억이 나는 건 녹음실에 오기 전 지인과 밤새도록 술을 마셨던 것이었다.

‘너 그거 봤냐. 걔 내 후배, 이번에 지난 시즌 거기 나갔잖아.’

굳이 무슨 프로그램인지 말하지 않아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자타 공인 대한민국 힙합 씬 최대 경연 프로그램이자 신인, 무명 래퍼들의 등용문.

탄탄하게 자리 잡은 기성 래퍼들도 거기서 성적 낸 게 없으면 ‘왜 너는 안 나가냐, 쫄려서 못 나가냐.’ 조롱받는 그 화제의 프로그램 킬 앤 힙.

나가서 웬만큼 성적을 내고 주목받으면 행사 출연료가 10배, 20배로 뛰는 기적 같은 방송이었다.

‘나가서 뭐요.’

펀보잉이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이미 거나하게 취한 지인이 히죽이며 대답했다.

‘걔 지금 클럽 가면 여자들이 그렇게 달려든다더라. 번호 좀 줄 수 있냐고. 홍대 강남 건대 어딜 가도 다 알아보는 사람들이라 피곤해 죽겠다고 아주 난리야.’

펀보잉은 지인의 말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그 새낀 얼굴 말고 볼 거 없잖아요. 본선 가자마자 본전 다 털리고 떨어져 놓고서 얼굴 가지고 유세야, 유세는. 래퍼가 랩을 잘해야지.’

펀보잉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XX, 야. 걔 지금 페이가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걔 이번에 음원도 대박 났잖아. 떨어진 거 그거는 솔직히 룰이 너무 불리했던 거고 얼굴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니까?’

지인의 결론은 결국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좀 방송이나 공연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그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애. 음원 장사만 할 게 아니면. 걔네도 봐 봐 그. 글렌 형님 밑에서 연습생 하던 걔들. 라이브 잘하고 무대도 볼 게 많으니까 아주 날아다니더만~.’

나름 생산적인 고민이었으나 마지막으로 덧붙인 발언이 펀보잉의 자격지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이돌, 그놈의 아이돌. 펀보잉은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야, 그거 다 편법이야 편법! XX 실력으로 자신 없으니까 얼렁뚱땅 아이돌로 빠진 거지.’

‘저거 또 헛소리한다. 야 또 이상한 열폭할 거면 간다.’

지인이 질린다는 듯 한숨을 쉬며 자리를 뜨자 펀보잉의 열등감은 더 잘못된 방향을 향해 튀었다.

언젠가 두 놈들의 소속사인 크레딧 몬스터의 스튜디오에서 둘을 직접 만나 봤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좀 잘한다 싶어서 괜찮게 봤더니만 뭐? 아이돌? 결국 무대는 진심이 아니고 여자들 인기나 얻고 싶었다는 거 아니냐.

결국 두 사람의 데뷔가 확정된 이후 펀보잉은 홀로 엔카운터를 견제해 대기 시작했다. 그저 무대 위에서 표정이나 찡긋찡긋하고 잘생긴 척할 거면 댄서나 하든가.

펀보잉은 제가 하는 생각이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모멸과 조롱에 가깝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래퍼의 길에서 도망친 배신자들에게 용감한 일침을 날리는 자신에게 취해 있었을 뿐이었다.

‘다들 열정이 없어 열정이.’

힙합 씬을 지지해 온 헝그리 정신도 없이 죄 눈에 보이는 것만 좇는 바보들.

그러는 본인은 슬럼프를 핑계로 벌써 몇 달째 신곡 하나 작업 못 하고 있는 주제에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신곡을 못 내는 건, 방송이 무서워서 도망친 건 더 완벽한 앨범을 위한 밑 작업일 뿐이고, 남이 노력하는 건 전부 본질에서 벗어난 삽질 취급이나 하고는 핸드폰 녹음 버튼을 켜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얼굴로 먹고살 거면 래퍼 때려치우고 모델이나 하든가.

욕설과 함께 웅얼거린 30초짜리 영상을 올린 펀보잉은 그대로 작업실 침대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다시 떴을 때. 펀보잉은 생각도 못 한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스타핫이슈> 래퍼 펀보잉, 내로남불 일침에 누리꾼 공분 사….]

[베비루스의 스타칼럼 ‘아이돌 래퍼는 공격하기 편한 샌드백이 아니다.’]

[<일간연예토픽> 래퍼 펀보잉 ‘아이돌 래퍼는 Fake 래퍼, 누리꾼 ’본인 앨범이나 내고 말해라.‘]

그리고 그다음 본 건 지인이 보내 준 누군가의 SNS 화면이었다.

[Ain't fake]

자신이 올린 영상 속 모습과 거의 비슷한 구도로 찍은, 디스 대상자의 환히 웃는 셀카가 화면 속에서 펀보잉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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