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63화 (163/224)

#163. 버거운 듯해도 (1)

두 번째 싱글 활동이 시작된 건 귀국하고부터 2주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나마 앨범 활동이 아니니 수록곡이나 서브 활동곡은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훨씬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월하다는 게 꼭 ‘쉽다’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첫 번째 겨울 활동을 맞이하며 추위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실감하고 있었다.

“와 뒤지게 춥다.”

“언어생활 좀 단정하게 해라.”

“추운 걸 춥다고 하지 덥다고 할 수는 없잖아.”

뉴스에서 연일 역대급 추위라고 내보내더니만 숙소 밖으로 나갈 때마다 이까지 덜덜덜 떨리는 것이 절로 실감이 되는 날씨였다.

이동을 위해 차에 탈 때마다 이게 신형인데도 이렇게 추울 수가 있나 어디 문짝 나사 풀린 거 아니냐며 의심해야 할 정도였다.

“바꾸기 전 차였으면 진짜 가다가 동사하는 거 아냐?”

“가능성 있는 추측이긴 해요.”

겨우겨우 얼어붙은 차체를 체온으로 녹이며 방송국으로 이동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엄청난 대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방송국 건물은 낡았고 방풍도 보온도 뭣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나마 여름에 에어컨은 잘 나와서 그건 다행인가.’

바깥보다 더 추운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실내에서 보온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히터와 플러그마다 꽂아 둔 전기스토브뿐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저놈의 히터가 우리가 앉는 소파나 휴식하는 장소까지는 채 힘을 뻗치지 못하고 천장만 아슬아슬하게 덥히는 게 한계라는 것이었다.

“무슨 가습기를 틀어도 습도가 30도 위로 안 올라가.”

하루 종일 위에서 히터를 트느라 공기는 건조하지, 두피는 뜨거운데 몸은 차갑지. 스토브니 가습기니 보완할 것들을 잔뜩 들고 다니는데도 보온이 엉망인 건 마찬가지라서 다들 비타민이나 목캔디, 인후 스프레이 등을 달고 살았다.

“그거 뿌리면 좀 나아져?”

감기 걸리지 않도록 긴장 상태인 건 모든 멤버가 마찬가지였던 탓에 꽤나 진귀한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내가 감기 예방 차원의 목 관리로 수시로 인후 스프레이를 뿌려 대는 것을 보고 은찬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으슬으슬하고 목 좀 간지럽다 싶을 때 뿌리면 바로 나아요.”

은찬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흔치 않아서 하나 더 구해다 줄까 싶었는데.

“나 비슷한 거 여분 있는데 하나 줄까?”

혜성이 눈을 빛내며 은찬에게 여분의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내민 덕분에 나는 얌전히 지출을 아낄 수 있었다.

“프로폴리스 그거 효과 좋아요?”

“막 화하고 그런 건 없어서 나는 이게 더 좋더라고.”

“아~.”

각자 마스크부터 목도리까지 각양각색의 비책으로 대비하는 와중. 겨울의 진짜 고난은 무대 위에 있었다.

이번 싱글의 컨셉은 첫눈. 물론 첫눈은 진작 내리긴 했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듣기에도 제격인 컨셉이라서 음원 순위가 지난 활동곡들보다 좋았다.

기본적으로 잔잔한 팝 발라드 베이스의 곡이라서 동선이 자주 바뀌는 걸 제외하면 안무도 크게 복잡하지 않아서 준비 과정에는 유독 큰 문제가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름~가을 동안 활동했던 곡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한 거 아냐? 싶겠지만….

“진짜 장단을 어디다 맞춰야 할지 모르겠네!”

대기실과 무대 아래는 영하의 날씨여도 무대 위로 올라가만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겨울에도 머리 위에서 강렬하게 내리쬐는 조명을 받고 있으면 두피 열이 느껴질 만큼 금세 머리가 뜨거워졌다.

거기에 겨울 코트에 니트 등으로 코디를 하다 보니 무대 한번 하고 내려오면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한 수준이었다.

그 상태로 영하의 날씨와 직접 마주하면 땀이 흘러내리다가 얼어붙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다들 건강관리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지금 감기 걸리면 독감 올 수도 있으니까.”

미리미리 비활동기 때 컨디션 조절을 해 가며 예방 접종을 맞아 둬서 다행이지.

같은 시기에 활동하는 다른 그룹에서 독감 감염자가 나와서 무대에서 빠지거나 하는 공지가 올라올 때마다 긴장이 바짝 들었다.

‘다른 그룹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우리는 정말 활동 기간이 1년도 안 남은 시한부니까.’

무대 한 번 한 번이 절대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인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야.’

커뮤니티 반응을 쭉 훑어보며 호평 중심인 것을 확인한 나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콜라보 컬렉션도 무사히 전량 매진됐다고 했고.’

C 브랜드와 협의한 대로 싱글 화보를 촬영했을 때를 생각하면 그땐 좀 아찔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게 잘 풀렸으니 다행이었다.

‘처음에 컨셉 이미지 받았을 때는 진짜 큰일 난 줄 알았는데.’

파리에서 만났던 디렉터가 직접 작업한 거라고 했던 컨셉화는 솔직히 난해했다.

멤버별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데 솔직히 닮은 것도 잘 모르겠고 이게 정말 나라고? 싶을 지경이었다.

‘외국인들 눈에는 내가 이렇게 보이는 건가?’

게다가 무슨 모피도 아니고 뭔가 동물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서는 동물원보다도 박제를 잔뜩 전시해 둔 스산한 박물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게 첫눈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경쾌하고 밝은 이미지의 팝 발라드와 이게 어떻게 어울린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러다 처음으로 컨셉 가지고 욕먹는 거 아니야?’

대표는 C 브랜드와 콜라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인 것처럼 눈이 뒤집혀 있지. 대체 무슨 꼴을 만들려고 이런 걸 줬나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잠시.

현장에서 마주한 의상과 세트장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보일 만큼 멋있었다.

‘실제로도 예술이기는 한가.’

각 멤버별로 이미지화했던 건 어디까지나 인상을 그렇게 표현해 본 거고, 실제 의상은 깔끔한 화이트 톤에 베이지, 아이스 블루, 그리고 포인트로 레드 컬러가 들어간 컬렉션이었다.

대체 그 동물은 어디서 나온 건가 했더니. 모피를 인조 소재로 대체하는 움직임을 반영하여 각 멤버의 의상별로 이전에는 모피를 사용했으나 페이크 원단으로 대체한 소재나 모티브가 된 장식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원이가 저 퍼 달린 부츠를 신은 거군.’

지원의 컨셉화에 아기 북극곰이 그려져 있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컨셉 동물은 사슴이었다. 의상 자체는 깔끔한 겨울용 재킷에 정장 느낌이 나는 옷이었는데 콜라보 라인으로 판매되는 가방이 은으로 된 사슴뿔 장식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평상시에 들고 다니기에 좀 투머치한 게 아닌가 싶긴 한데 멋있긴 하니까….’

지난 앰배서더 촬영 때처럼 각 분야의 업계 최고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분들이 달라붙어 주신 덕분에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차원의 멋진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우와…. 진짜 멋있다….’

‘그러게, 찍을 땐 좀 의아했는데 결과물 보니까 너무 괜찮다.’

마침내 컬렉션 홍보용 촬영까지 마치고 받은 재킷용 시안들은 이게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느낌으로 따뜻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이돌 재킷으로는 조금 모험적인가 싶기도 했지만 일단 미감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과연 팬분들이나 대중이 보기에도 괜찮을 것인가.

조마조마했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온라인 수량 매진]

[재입고 예정 X]

온라인 수량이 1분 만에 전량 매진된 것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오픈런 줄이 수백 미터는 섰다고 뉴스 보도까지 탔으니 이보다 완벽한 성공은 없을 정도였다.

직전에 발매한 활동곡이 아직도 차트 40위권 내에서 건재한 와중 또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 출연하는 음방마다 1위.

그야말로 더 바랄 게 없는 성공을 이루고 나만 심각한 걱정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2단계는 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지?’

미친 듯한 해외 스케줄 미션을 완료한 후로 벌써 수 주가 지났다.

곧 슬슬 뻐꾸기 2차 미션을 주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으나 시스템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지금의 호평 일색인 반응이 곧 뻐꾸기 미션이 시작되면 다시 어그로로 점철되리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속이 쓰려 오는 기분이었다.

‘굳이 나쁜 거 생각할 시간에 좋은 일만 떠올리는 게 좋기는 한데….’

언젠가는 거대한 고난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는데, 마냥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일만 생각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2차 미션은 언제쯤 시작되는 건가요?]

시스템 쪽에도 문의해 보았으나 시원한 대답 대신 현재 의뢰 들어온 리퀘스트 미션을 연결해 준다며 새로운 돌발 미션들을 띄울 뿐이었다.

‘그럼 당장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활동 기간은 아직도 반년 이상 남아 있으니 전체 기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조바심 낼 것까진 아닌가 싶다가도.

‘요즘은 이상한 댓글 많이 안 달리니까 좋다. 후후.’

‘그러게. 전에는 자꾸 조작이라느니 이상한 시비 거는 글들 자주 올라와서 신경 쓰였는데.’

‘한 달 전인가부터 확 줄었단 느낌이지?’

다른 멤버들도 의식할 정도니 그 뒷사정을 아는 사람으로서 심경이 복잡미묘했다.

마냥 기뻐하기도 그렇다고 걱정하기도 뭐한 나 혼자만 심란한 연말.

우리가 당장 당면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자 일정 나왔으니까 확인 부탁드려요. 21일 K사 연말 대중 가요 대상, 23일 B사 연말 대축제, 24일 D 연예 대상, 25일 N 영화제, 27일 M 가요 대상, 29일 J 가요 축체, 31일 KMB 어워드. 이렇게 총 7곳 출연 예정입니다.”

그렇다. 연말의 꽃. 각종 행사와 수상이 넘쳐나는 지금. 남자 아이돌 중 단연 가장 주목받는 그룹이라고 해도 무방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것이었다.

‘연말 무대 어떻게 하냐.’

그룹 단독 무대는 물론 콜라보 제안이 방송사를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사실 콜라보 무대는 좀 걱정이 앞서는 것이 무대 올리기 직전에 두 번 맞춰 보면 기적적으로 스케줄을 낸 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연습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내 곡도 아니고, 소속사도 다 달라서 여러 번 맞춰 볼 수도 없는데. 뚝딱거리면서 허술한 부분이 보이면 두고두고 욕먹는 것이 콜라보 무대의 함정이었다.

‘물론 잘되면 친목 무대 희망편으로 길이길이 레전드라고 언급되겠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콜라보 무대에 서야만 하는가.

이렇게 근본적인 부분으로 파고들며 고민하다 보면 애써 외면하고 있던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당연히 서야지….’

연말에 팬분들이 가장 기대하는 무대일 텐데.

우리가 올해 수상을 얼마나 받을 것인가. 대상을 받을 수는 있나. 이건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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