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65화 (165/224)

#165. 버거운 듯해도 (3)

‘원동기는 있는데요.’

그걸 또 언제 딴 거야. 나는 곧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앞으로 서른 전까지는 그냥 주민 등록증 하나 더 있는 거라고 생각해. 취미를 즐기고 싶으면 나중에 아이돌 은퇴하고 나서 하고.’

물론 은퇴 전에도 자유롭게 라이딩을 취미로 즐기는 선배님들이 계시지만….

‘권장할 만한 사안은 아니니까.’

그냥 운전면허여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판에 굳이 알려져서 좋을 것 없는 정보였다.

‘알았지?’

내가 한 번 더 확실하게 대답을 요구하자 현호가 조금 어리둥절해 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렇게 컨셉도 정해졌겠다. 이제 남은 건 연말 무대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다들 내일 아침에 늦지 않게 알람 잘 맞춰 두고.”

“넵~.”

다들 저마다 머릿속에 무대를 그리며 잠을 청하러 가는 걸음이 가벼웠다.

몸은 고생하더라도 마음만큼 편한 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

그리고 우리의 환상이 단단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2주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니 근데 이거 진짜 한 번 맞춰 보고 바로 무대 올릴 수 있나?”

“그냥 가서 운에 맡기는 거지 뭐. 아님 대기 시간 기니까 그때 알아서 모여서 맞춰 보거나.”

“아니~. 진짜 스케줄을 뭐 이렇게 짜 주는데.”

하나둘씩 방송사 콜라보 무대 제의가 추가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좀 너무하긴 한다. 공식 연습 일정이 이날 4시간밖에 안 되면 무슨 장기 자랑보다 준비할 시간을 안 주네.”

모든 제안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많아 봐야 이틀, 심지어 연습 시간으로 뺄 수 있는 건 몇 시간 되지도 않았다.

그야 한창 전성기를 맞아 활동 중인 그룹을 셋에서 다섯 그룹을 모아 놓으려니 시간 내기 힘든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만.

이미 각 방송사 본부별로 친한 소속사의 멤버들과 스케줄에 맞춰서 연습 일정을 짜고 우리한테는 통보식으로 던지는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야 우리는 KMB 소속이나 다름없으니까 지상파 입장에서는 남의 회사 그룹이나 마찬가지인가.’

어른들의 사정인 건 알겠는데 갈려 나가는 건 우리니 솔직히 마뜩잖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뭐 어쩌겠어. 달리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지.”

규민이 한숨과 함께 내뱉은 한마디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거절하거나 승낙하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다.

거기다 나나 영인이처럼 인기 멤버에게는 여기저기서 제의가 들어오지만 비교적 비인기군에 속하는 멤버는 제의가 많이 들어오지도 않아서 원하는 대로 거절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스케줄이 좀 타이트해서 힘들긴 해도… 아예 합동 무대에 안 서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렇게 다들 은근한 불만을 억누르기를 수일. 하나둘씩 출연할 무대를 결정짓는 와중, 그간 오래도록 기다려 왔던 소식 하나가 모처럼 좋은 일로 덤처럼 딸려 왔다.

“어? 큐 시트 나온 거 봤는데 공민형 솔로로 나오나 본데?”

“엥?”

느닷없이 들린 익숙한 이름에 모두의 시선이 말을 꺼낸 규민에게로 몰렸다.

“아니 이거 봐 봐.”

규민이 내민 큐 시트 공유본에는 과연 공민형의 솔로 무대가 당당히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Second place] [공민형]

곡명은 처음 들어 보는 미공개곡이었다. 그 말은….

“공민형 연말에 데뷔하나?”

이벤트성 솔로 무대거나 아니면 그 전에 데뷔하거나. 소속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민형이 이벤트용 곡을 어디서 턱턱 구해 왔을 확률이….

‘없지 않지.’

그 뒤에서 지원해 주고 있는 게 비안이라면 더더욱. 비안이 알고 지내는 프로듀서와 작곡가가 몇 트럭인데 불가능하진 않았다.

‘데뷔까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잠깐 얼굴 비치고 생존 신고할 겸 출연하는 거라고 해도 억지스럽진 않아.’

물론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민형이 스스로 하차하기 전까지 꾸준히 최상위권이다 못해 2위를 유지한 전적을 생각할 때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

‘생각할수록 이상한 놈이네.’

그대로 버텨서 데뷔 조에 껴서 데뷔했으면 대박이고, 패배 조에 껴서 떨어졌으면 화제성은 유지하고 하차한 것보다 이미지는 더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한 거지.

본인에게 물어도 대답해 줄 의향이 없어 보이니 더 궁금해해 봐야 소용없었다.

‘그냥 이참에 연락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물어볼까.’

물론 대답해 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는 슬쩍 멤버들 몰래 비안에게 연락해 보았다.

[나] 안녕하세요, 선배님!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실까요? 오후 3:47

[나]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연말 무대 준비하면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해서요, 한동안 민형이가 활동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번에 M사에서 솔로 무대로 출연하는 것 같더라고요ㅎㅎ 오후 3:48

[나] 민형이 드디어 데뷔 결정된 건가요? 아무래도 저는 먼저 데뷔한 입장이다 보니 민형이한테 자꾸 소식 물어보기가 좀 미안해서요. 오후 3:48

꽤 그럴듯한 핑계였다. 여기에도 뭐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서도.

다행히 10분쯤 후에 돌아온 답장은 꽤 긍정적이었다.

[비안 선배님] ㅎㅎ인수 씨 오랜만~ 오후 4:01

[비안 선배님] (이모티콘) 오후 4:01

아니 이모티콘 말고 본론부터 좀 말씀을 해 주세요. 답답한 마음으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비안이 흔쾌히 덧붙였다.

[비안 선배님] 내가 말하면 유출이니까 자세히는 말 못 해 주지만 오후 4:02

[비안 선배님]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거예요~ 오후 4:02

[비안 선배님] (이모티콘) 오후 4:03

쉿 비밀이야 같은 말풍선을 외치는 강아지 이모티콘이 은근 속을 긁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데뷔가 확정되기는 한 듯해서 마음이 놓였다.

[나] 아 다행이네요! 오후 4:04

[나] 잘되기를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오후 4:04

[나] (이모티콘) 오후 4:05

이모티콘을 하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나도 하나 같이 보내 드렸더니 잠시 후 뚱딴지같은 회신이 도착했다.

[비안 선배님] 아 근데 내가 말했던 떡볶이집 거기 본점 가 봤어요? 오후 4:08

[비안 선배님] 거기 K 본부에서 되게 가까운데 오후 4:08

[비안 선배님] 방송국 근처에서 식사해야 할 일 많을 텐데 완전 강추~ 오후 4:09

[비안 선배님] (이모티콘) 오후 4:09

[비안 선배님] (이모티콘) 오후 4:09

그러니까 그 떡볶이는 대체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날 얻어먹은 떡볶이는 맛있었다. 하지만 그냥 먹을 만하다와 꽤 맛있다의 중간 정도지 신이 내린 떡볶이라거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배달 맛집으로 유명한 집, 정도지 않나. 웬만한 지역마다 이 정도 만드는 집은 다 있을 것 같은데.’

대체 뭐가 그렇게 비안을 사로잡은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진짜 그냥 사장이 마음에 들어서 후배들한테 홍보하는 건가.’

내가 먹어서 다른 멤버들에게 퍼트리면 그 멤버들이 또 각자의 인맥들에게 퍼트려서 유명해지는 전략, 뭐 그런 거?

‘그러느니 그냥 본인 단골 맛집이라고 SNS에 한 번 올려 주는 게 낫겠지.'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슬쩍 영인과 규민에게 물었다.

“너네 춤추는 대박 떡볶이라고 알아?”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그게 뭔데.”

“뭐예요, 그게?”

나는 기대도 안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면 됐어.”

“아니 뭔데. 뭐 춤추는 크리스마스트리 그런 거?”

규민이 급 호기심이 당겼는지 싱겁게 끝내지 말라며 들러붙었다.

“전에 비안 선배님 찾아뵙고 감사 인사드렸을 때 사 주신 곳인데. 자꾸 거기 떡볶이 본점 가서 먹어 보라고 영업 아닌 영업을 하셔서.”

“처음 듣는 곳인데?”

영인이 재빨리 검색을 해 보더니 별 흥미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뷰가 좀 나오기는 하는데 막 엄청 유명한 집은 아닌가 봐요.”

그리고 잠시 후 영인이 비안이 왜 그렇게 나에게 강매를 했는지 알 것 같은 단서를 찾아냈다.

“아. 여기 사장님이 00년대 가수분들이랑 친분 있어서 종종 그 시절 연예인분들이 놀러 오신대요.”

“아~.”

역시 그냥 지인 장사를 홍보해 주는 것뿐이었나. 그러나 구체적으로 연예인 누구의 가족이라든가, 누구의 대학 동창이라든가 하는 정보는 나오지 않아서 다들 곧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뭐 다음에 K 본부에서 일 있을 때 한번 들러 보지 뭐. 본점에서 먹으면 배달보다 얼마나 맛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비안에게 짧은 감사 인사를 보내고 다시 아이돌로서의 활동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자, 다시 연습 재개합니다! 포지션 위치 잡아 주세요.”

잠시 쉬는 시간도 끝이 나고. 댄서분들과 함께 대형 연습장을 빌려 동선과 안무를 맞춰 보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얌전히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위치로 이동했다.

***

그리고 3시간쯤 후.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길었던 연습이 끝나고 해산의 시간. 댄서분들은 진작 빠져서 귀가하고 멤버들끼리만 남아서 각자 좀 더 보강하고 싶은 파트를 개별 연습하던 그때. 여기서 더 했다가는 내일 정말 근육통에 비척거리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좀만 다리 풀고 하자.‘

쉬기도 하고 다리도 풀 겸 자리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자 비안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설마 떡볶이 홍보 2차는 아니겠지.‘

에이 아무렴 그럴 리가. 웃으며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자 다행히 그냥 좋은 저녁 보내라는 인부 인사였다.

나는 확인했다는 체크 표시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이모티콘을 보내 답장했다.

’공민형한테는 또 연락해 봤자 씹히겠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친구 목록을 훑던 그때.

프로필이 업데이트된 계정이 눈에 띄었다.

’어?‘

임희록의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되어 있던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의 양식이 전과 달라져 있었다.

’뭐지?‘

자세히 클릭해서 내용을 확인한 나는 프로필 변경 이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례금이 지난번 적혀 있던 숫자의 세 배가 되어 있었다. 내용도 훨씬 절박해 보였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니면 그냥 시간이 너무 지나서 더 간절해진 건가. 임희록이 실종된 지도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었으니 단순한 가출로 보기는 어려워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 거지.‘

한번 다시 연락해 봐야겠다. 나는 슬쩍 연습실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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