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71화 (171/224)

#171. 되돌아갈 순 없지만 (1)

“와…. 드디어 시작이네…!”

대기 시간이 하도 길어서인지 지원이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간 꽤나 선을 긋는 듯한 태도를 유지해 왔던 다른 콜라보 팀 멤버들도 지원의 순수한 감탄에 웃음이 나오는지 어깨를 들썩였다.

“앞으로 4시간 안에 전부 다 끝나. 조금만 더 힘내자.”

우리 무대까지 앞으로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더욱 바짝 긴장감을 챙겨야 했다.

“응!”

아직 어린 나이긴 하지만. 무슨 진짜 친동생도 아니고 눈을 빛내며 애처럼 대답하는 지원이 웃기면서도 기특해서 부러 더 긴장할 만한 말은 하지 않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라이브 무대니까 평소보다 대기 중인 스태프들도 많고 별일 없겠지.’

리허설 막판까지 리프트가 좀 불안하긴 했지만 어쨌든 마지막에는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니까. 이제 남은 건 무탈히 끝내기를 기원하는 것뿐이었다.

[네! 귀여운 포인트 안무로 화제를 모은 미스프린의 무대 다들 즐거우셨나요!? 다음에는 또 어떤 멋진 스테이지가 준비되어 있는지 지금 바로 확인하시죠!]

MC들의 하이 톤 안내 멘트가 이어지며 무대와 해설이 반복되고, 슬슬 1부가 시작될 때의 설렘도 퇴색되어 갈 즈음 기다리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진짜 애매한 순서네.’

MC와 화제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 장식한 오프닝 무대를 보려고 채널을 튼 시청자들이 슬슬 유출된 큐 시트를 확인하고 자기 본진 순서를 체크한 후 빠져나갈 타이밍이었다.

‘차라리 오프닝 무대나. 오프닝 직후 무대였으면 주목도가 좀 높았을 텐데.’

그 이후의 애매한 시간대에 끼어서는 채널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네! 올 하반기 모두가 데뷔를 기다리고 있던 그분! 지금 바로 만나 보실까요?]

그리고 그 애매한 시간대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공민형의 데뷔 무대였다. M사 큐 시트를 제일 먼저 받았을 때는 M사 공연이 데뷔 무대인 줄 알았는데 K사가 먼저였군.

데뷔 무대랍시고 나름대로 인트로는 힘줘서 준비해 준 것 같은데 무대 위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방송에는 멋있게 나갔을 테니 그건 큰 상관은 없다만….’

모두의 시선이 무대 위로 집중된 그때 무대 뒤편의 스크린이 양옆으로 갈라서며 공민형이 걸어 나왔다.

아직 대중들에게 잊혀질 만한 시기는 아니었기에 공민형을 알아보는 방청객들이 힘찬 박수와 호응으로 공민형을 맞아 주었다.

[♩~♬-♪-]

대체 무슨 곡을 들고 나올까 궁금했었는데. 느린 템포의 R & B를 베이스로 한 댄스곡이었다.

어둠 속에서 마치 범인을 찾는 것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공민형이 느리고 묵직한 비트에 맞춰 절제감이 돋보이는 안무를 소화했다.

헐렁하고 루즈한 핏의 반팔 셔츠 아래로 관리를 열심히 했는지 힘줄이 도드라지는 팔뚝이 드러났다.

‘비주얼적으로 나쁘지 않긴 한데….’

데뷔곡으로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중성을 생각한다면.

이른바 팬들은 좋아하지만 대중 픽에서는 믿고 거름당할 컨셉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그 편견을 뚫고도 히트를 치는 곡이 얼마든지 있지만….’

한 500곡 나오면 하나 성공하는 확률을 두고 내 데뷔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최소한 내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데뷔 무대를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 선보이고 싶은 무대에 집중에서 꾸민다면 뭐 저런 컨셉도 나쁘지 않겠지.

무대 위의 공민형은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리어스하고 어두운 컨셉의 무대이니 당연하겠지만.

[잠든 감각들을 깨워 은밀히 깃든 지금]

[Listen 네 안의 Secret 그건 바로 진심]

철학적인 가사에 어두운 분위기. 소화하기 힘든 컨셉이었으나 다행히 공민형도 실력이 부족한 편은 아니었던 덕에 무대가 끝나자마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멋있긴 한데 진짜 괜찮나…?’

음원 성적은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막상 장본인은 무대를 실수 없이 무사히 끝마쳤다는 것이 더 중요한지 짜릿한 표정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린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 한순간이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림이라 여기저기서 셔터음이 울려 퍼졌다.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던 것 같네.’

객석에 앉아 있는 방청객들은 물론 시청자에게도 공민형이 누구인지 각인시키는 데는 완벽히 성공한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환히 웃으며 조명을 받는 모습은 겟 데뷔 촬영 때나 카메라 없이 만났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인상이었다.

매사 시큰둥하고 삐딱하고 어쩔 수 없이 하지만 대충하지는 않는 녀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기가 진짜 원하는 무대를 할 때는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잖아.’

내가 준비한 무대를 같이 올렸을 때는 내내 긴장되어 있거나 억지로 연출했거나 얼빠진 표정이나 짓고 있었으면서.

저 100%의 얼굴을 내가 못 끌어냈다는 게 새삼 조금은 분했다,

‘그때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지만.’

그 시기에는 나도 혹시나 뭔가 틀어질까 봐 계속 긴장하고 있던 때라서 지금과 같은 여유는 나오지 못할 때였다.

그냥 좀 아쉬운 거지. 만약 어쨌든 결과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아는 상태에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아쉬움 없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나는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거가 바뀌면 미래도 같이 변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 나 역시도 과거를 바꿔 완전히 달라진 미래를 살고 있는 주제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괜찮은 것 같아서 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고.’

이제 우리 무대를 잘 끝마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우리 순서는 1부의 마지막. 마지막 직전 무대를 콜라보 무대로 장식하고 그 뒤에 이어서 곧바로 1부 파이널로 엔카운터 완전체 무대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러고 마지막에 클로징 무대로 올해로 5년 차를 맞는 선배 그룹과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긴 하지만…. 그건 사실상 그냥 올라가서 다른 아이돌들과 인사하고 내려오는 자리라서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괜찮아.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잘할 수 있어.’

주문처럼 속으로 삼킨 문장과 함께 다시 긴 대기가 시작되었다.

***

그리고 30분쯤 후. 드디어 콜라보 무대를 선보일 차례가 됐다. 아직은 평평한 바닥처럼 보이는 리프트 위에 서서 간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설레면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때였다.

[자 숫자 셋 카운트하고 들어갈게요. 준비해 주세요.]

이어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신호에 따라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정해진 포즈를 취하자 천천히 무대 앞을 가린 암막 스크린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곧 웅장한 오케스트라풍의 간주가 깔리며 아래에서부터 모락모락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퍼졌다.

[♬~♩~]

시작부터 호흡이 긴 애드리브로 시작하는 곡이라 미리 이어 마이크를 살짝 잡고 감정선을 가다듬었다.

하나, 둘, 셋.

[스탠바이, 큐!]

리프트가 올라가는 신호에 맞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애드리브를 내지르자 커튼 아래로 점점 드러나는 객석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무대를 향해 열광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모두 함께 이 공간에서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실감 나는 찰나.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를 그렸다.

이 광경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었다.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수야!”

“서인수!”

“지원아!”

환호성과 함께 이름이 연호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침내 커튼이 완전히 말려 올라가고 리프트가 제일 높은 높이까지 솟아오른 직후,

[시간은 참 빨리도 가 벌써….]

내가 첫 소절을 끝내기도 전에 휘청,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

깜짝 놀라 균형을 잡으려던 그때 다시 한번 휘청. 리프트가 갑자기 아래로 훅 꺼지면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어떻게 순발력으로 대응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몸이 순식간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헉.”

“뭐야?”

이대로 넘어지면 근 3m 아래로 아무런 보호구도 없이 추락하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아무런 부상도 없겠지만 재수 없게 허리나 머리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던 순간. 누군가 다급히 내 팔을 잡아챘다.

“인수 형!”

급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지원과 함께 리프트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헉, 다, 다행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중계와 음향이 중단되었다. 제자리에 있던 관계자들이 하나둘 무대 앞으로 다가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섰다.

“다들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리프트가 멈춘 것과 동시에 모두 2m가 넘는 높이에 덜렁 서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무대보다 더 아래에 있는 플로어와는 단 차가 크게 차이가 났다.

결국 인 이어 장치를 통해 무대 위의 출연진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관계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만요, 지금 일단 작동은 멈췄는데 사다리 얼른 가져와서 내려 드릴게요!]

다음 무대가 다른 스테이지를 이용하는 무대면 곧바로 순서를 바꿔서 진행하기라도 할 텐데.

하필 메인 스테이지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연출이었던 탓에 방송국 전체가 비상사태에 빠졌다.

TV 화면에는 급히 광고라도 내보낸다지만 현장은? 싸늘한 분위기로 식어 있는 객석이 눈에 들어온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일단 리프트부터 빼!”

리프트 그 자체만으로도 무대 설비 중에서는 상당한 중장비였기 때문에 무대가 덜렁 중단되어 버린 사태는 어떻게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수습될 때까지 중단인가? 다 같이 얼어붙어 있는 와중 객석에 있는 방청객들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

나로서도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새하얘진 그때 어떤 팬이 들고 있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다.

[인수 노래 들으러 제주도에서 옴]

아 그렇지. 그 순간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중계에는 나갈 수 없어도, 장비가 엉망이어도, 지금 당장 노래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되지 않으니까.

관계자들이 리프트를 옮기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와중, 아직 마이크는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아까 미처 부르지 못했던 소절을 다시 불렀다.

[시간은 참 빨리도 가 벌써 일 년이라니.]

[아직 널 지우지 못한 난 계속 그 계절에 남아-.]

무반주로 쩌렁쩌렁 목소리만 울려 퍼지다 보니 꽤나 부담스러웠지만 실망으로 가득했던 팬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한 순간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혹시라도 네가 날 찾을까 봐 여기서 계속 널 기다려-]

순식간에 내 파트가 끝이 났다.

이제 내 뒤를 이어 부를 차례였던 다른 선배 그룹의 메인 보컬이 나설 차례였다.

‘제발 눈치 좀…!’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가 서 있는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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