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76화 (176/224)

#176. 그때의 선택이 (2)

‘대상 주는 시상식은 내일부터 시작이네.’

사실 올해 받을 만한 수상자가 우리밖에 없기는 했다.

물론 이유를 붙이면 히트곡이야 매달 나오니까 줄 수 있겠지만. 우리처럼 신드롬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흥행한 그룹은 없었다.

‘올해는 유독 음원 강세인 선배님들이 활동을 크게 안 하기도 했고.’

우리 다음으로 손꼽히는 후보는 매번 OST로 차트 순위를 점령하는 여성 솔로 선배님이었는데 올해는 OST를 맡은 드라마가 흥행에 참패하여 별다른 화제를 일으키지 못했다.

드라마 성적에 비해 곡이 너무 좋다고 다들 아까워할 정도? 대상을 받았을 때 다들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유행을 탔느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그 외에는 걸 그룹 중에 컴백을 세 번이나 한 선배님이 있기는 한데….

‘우리와 성적을 비교했을 때 하나라도 더 좋은 부문이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우리가 아니라 다른 후보에게 상을 주면 100% 엔카운터를 두고 ‘왜?’라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대상에 큰 욕심이 없더라도 별 이변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차지가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듯했다.

“너무 자만하지 말고. 무대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멋지게 보여 드리고 오자.”

상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상 타려고 데뷔한 것도 아니고. 내 덤덤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영인이 삐죽 입술을 내밀며 투정을 부렸다.

“그래도 멋있잖아요. 데뷔 첫해에 신인상이랑 대상 동시 수상하면!”

그야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케이스니까 눈에 띄기는 하겠지만.

“수상은 받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야.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각 제작사는 물론 방송사, 주관사, 유통사까지 합세하여 각자 가장 상업적인 판단하에 수상을 결정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라도 선뜻 방송사나 회사를 상대로 들이받기 어려운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가수가 빛나려면 어쨌든 방송을 나가서 대중들 앞에 선을 보일 수 있어야 하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소속의 특수성 덕분에 여러모로 이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만….’

요지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당장 시상식이 끝나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빈손으로 오진 않을 테니까 다들 즐기는 마음으로 가자.”

이미 마음은 죄 벌써 대상 받은 사람처럼 붕 뜬 느낌이라 내가 말해 봤자 다들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어쨌거나 올해까지니까 조금은 들뜨게 놔두는 것도 좋겠지.’

나는 옅은 웃음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얌전히 내 방으로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곧바로 잠옷을 입은 제현호가 꾸벅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기대돼?”

제현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별생각 없이 던진 물음이었는데 정답이었구만. 가만 보면 은근히 수상 욕심도 활동 욕심도 있단 말야.

본인도 예능은 영 아닌 걸 알아서 예능 욕심이나 개그 욕심은 없다만.

“뭐든 빈손으로 올 일은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얼른 자.”

하다못해 올해의 퍼포먼스상이나 예능상, 인기상, 라이징 스타상처럼 거의 참가상 격으로 나눠 주는 상 하나 정도는 줄 테니까.

대상 대상 노래 부르다 혹시라도 못 받으면 그건 너무 부끄럽겠지만. 어쨌든 우리 정도로 메가 히트를 친 그룹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리는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안심하며 밤을 보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생각도 못 한 반전이었다.

***

“와, 대박. 형 진짜 멋있어요.”

“축하해! 너무 잘됐다.”

꽤 앞자리에 위치한 ‘엔카운터’ 지정석에 앉은 우리가 축포를 터트린 건 시상식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였다.

신인 그룹들을 포함하여 여러 대선배님들이 준비한 축하 공연으로 포문을 연 시상식은 약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수상은 대부분 3부에 몰려 있었고 1, 2부의 거의 모든 분량이 특별 공연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아이돌들만 나오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오래 걸릴 수밖에.’

제작 지원상부터 투자상이니 해서 높으신 분들의 공치사를 하는 시간에 각종 정치인들도 참석해서 아마 여기 모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을 연사를 늘어놓았다.

[오늘날 이렇게 K-POP의 위상이 높아진 데는 모든 국민들께서 모아주신 관심과… 하여 앞으로도 쭉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으로서 우뚝 설 수 있도록 많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거기에 문화 수출 공로에 어떻게 숟가락 하나라도 얹을 수 있을까 싶어서 나온 듯한 지역 국회의원까지.

대체 이 사람은 여기 왜 나온 것인가. 객석은 물론 초대석에 앉아 있는 가수들조차도 누군지 모를 분들이 잔뜩 스쳐 지나가는 개회사가 마무리되자 다들 그래서 올해 신인상과 대상은 누가 가져갈 것인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대상은 아마 3부 다 끝나 가는 시점에 발표하겠지만.’

못해도 대상과 신인상, 그리고 보이 그룹상 이렇게 세 개 중 하나는 우리를 주겠지.

자만 같지만 우리가 만들어 낸 성과를 생각하면 결코 자만이 아닌 기대와 함께 참석한 우리에게 2부도 되지 않아 주어진 상은 ‘베스트 앨범 프로듀싱’상이었다.

‘베스트 앨범상이 아니라…?’

처음에는 우리 데뷔 앨범이 상을 받을 줄 알고 다 같이 나가서 수상소감을 발표해야 하나 싶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곧바로 다가온 스태프가 본상의 수상자는 ’엔카운터 일동‘이 아닌 ’정은찬‘이라고 안내했다.

“엥?”

당장이라도 계단을 그대로 가로질러 올라갈 기세였던 영인이 우뚝 멈춰 서서는 당황이 역력한 얼굴로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정은찬 님,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죠.]

다시 한번 또랑또랑하게 시상식장에 울려 퍼진 이름은 엔카운터가 아니라 정은찬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앨범 그 자체나 가수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프로듀싱 담당자에게 주는 상이라는 거지?

다들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자 누구에게 축하를 해야 할지가 명확해졌다.

“은찬이가 진짜 고생하긴 했지. 앨범 전체에 은찬이 손이 안 간 곳이 없으니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올해 우리가 히트를 친 싱글들 역시 정은찬의 공이 제일 많이 들어갔으니까.

우리 생각에는 충분히 받을 만한 상이지 않나 싶었으나….

‘와 반응….’

그건 우리 생각이고. 주로 제작 관계자들이 앉아 있는 초대석의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메라가 한참 촬영 중이니 말끔히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놓고 정색하거나 박수를 치지도 않고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프로듀싱 흉내나 내는 아이돌이 받아 갔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자기네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받아 가서 불만인 건가.

어느 쪽이든 시선이 곱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수상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다.

“……?”

물론 앨범 퀄리티는 본인도 자신이었지만 프로듀싱상 수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듯했다.

상태가 저래서야, 본인이 단독으로 마이크를 잡고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게 될 거라고는 더욱 예상 못 했을 것 같은데.

뭐 이상한 말을 하거나 겸손이 지나쳐 다른 관계자들을 엿 먹이는 말실수를 하는 건 아니겠지?

아찔한 긴장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음….”

은찬이 마이크를 손에 쥐는 것과 동시에 걱정이 앞서는 건 하연도 마찬가지였는지 잔뜩 긴장한 채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우선 이렇게 과분한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엔카운터와 함께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도록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영광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진 더없이 완벽한 100점짜리 인사였다. 그리고 문제는 그다음부터 줄줄이 이어졌다.

“올해 워낙 다양한 분들이 활약을 보여 주셨기에 제가 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상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이것도 해선 안 되는 말은 하나도 들어가 있진 않았다만. 요약하자면 심플한 내용이었다.

왜 내가 받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나는 아직 이거 받을 만한 수준이 안 된다.

그리고 그게 얼굴에 표정으로 너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상을 받아서 영광이고 감사하다고는 하는데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네! 소감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으로 리스너 분들께 기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 이후부터 이어졌다.

엔카운터의 특별 공연이 포함된 2부를 지나 3부가 끝나가도록 ’엔카운터‘가 한 번도 단독 수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물론 아예 아무 상도 못 받은 건 아니었다.

태현 플러스 트렌드 음원상인지 뭔지. 5팀에게 뿌리다시피한, 대체 근본이 뭔지도 모를, 특정 기업에서 협찬비를 주고 뿌리는 상 하나 받은 게 끝이었다.

‘태현 플러스가 뭐야?’

도통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라서 대체 뭔가 했더니만. 대기업에서 이번에 새로 시작한 구독 서비스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 하는 건데?’

그러잖아도 홍보용으로 만든 상이다 보니 MC가 설명을 줄줄 곁들였다.

[태현 플러스란, 태현 그룹의 각종 생활 서비스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하실 수 있는 구독 플랫폼으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

다들 어이가 없어 가까스로 표정을 가라앉혀야 했다.

하다못해 진짜 음반상을 주든, 신인상을 주든. 뭐 하나는 이제 정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올해 하반기는 거의 엔카운터가 지배했다고 봐도 무방한 압도적인 성적을 냈는데 이런 참담한 수상 실적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이 상황을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일부러 대상 주려고 다른 상을 아낀 건가?‘

그러나 길고 길었던 3부까지도 마무리되고 대상 수상자가 호명된 순간 방청석은 물론 객석까지도 적막이 내려앉았다.

[축하드립니다! 임주희 님! 올해의 가수상, 소감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불린 당사자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올해의 가수상 심사 지표는 기본적으로 음원 성적이 50% 이상 반영된다고 공개되어 있었다.

작년까지 공개된 가점 방식에 따라 산출한 점수 순위표에서 우리 싱글이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를 굳혀 둔 상황이었다.

그 큰 점수 차를 뒤집으려거든 우리가 내부 심사 위원 평가 점수와 외부 평론 점수에서 0점, 아니, 마이너스 점수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

다들 애써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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