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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83화 (183/224)

#183. 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1)

누군지도 모르는 쌩판 남을 내가 무슨 수로 설득을 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을 어르고 달래서 원하는 대로 하게 만드는 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이름도 몰라, 얼굴도 몰라… 아는 거라곤 성별밖에 없는 사람을 내가 무슨 수로.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운 와중 나는 제일 중요한 것부터 확인했다.

“그럼 그 누나분 연락처는 알고 계신 거예요?”

그러자 돌아온 건 더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 아니, 본인이 원치 않아서 저희한테는 알려 주실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개인 정보 보호법상 본인이 원치 않으면 안 된다고….

아니 그럴 거면 살아 있다고 기별은 왜 하셨는데요. 얼굴 보고 만나는 게 염치가 없어서 차마 못 할 짓이면 그냥 그대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하는 게 낫지 않나.

멀쩡히 이 좁은 한국 땅 어딘가에 살아 있는 걸 아는데 나와 만나기 싫다고 하는 게 더 상처겠다.

이건 정말 전적으로 나 또한 핏줄에게서 버려진 입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이제 와서 그 대단한 염치 핑계를 대며 못 만나겠다고 할 거면 처음부터 버리지 말았어야지.’

물론 저쪽은 나와는 그 부분에선 상황이 달랐다. 7살짜리와 성인은 책임질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니까.

유 대표 성격에 결코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친모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유 대표가 그런 이유를 대고 못 만나겠다고 했다면, 의 가정이었다.

현호는 어떻게 생각할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을까?

“…….”

나는 무슨 말을 해도 지금 상황에는 적절하지 못할 것 같아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일단 지금 먼저 확인해야 할 건…. 나는 통화가 끊어지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누나분께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다른 가족들이 반대를 한다거나, 부득이한 개인 사정이 있으시다거나….”

- 그건 모르겠네요. 센터에서도 그런 자세한 얘기는 말을 안 해 주니까… 하아… 우리도 정말 속상해 죽겠어.

마음은 알겠지만 이쪽은 퀘스트에 실패하면 무슨 리스크가 돌아올지 모르는 입장이었다, 안타깝고 속이 상하고 마는 거랑 실제로 인생에 페널티가 주어질 수 있는 건 다르다고요,

나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투정을 재빨리 속으로 삼키고는 물었다.

“혹시 센터 담당자분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번호를 받는다고 따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위선적인 핑계인지 구분은 해야 나도 움직이든 말든 할 거 아냐.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부탁드리자, 잠시 난색을 표했음에도 불구, 곧이어 문자로 번호 하나가 도착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통화가 끝나자마자 규민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야 뭐야. 너 어디 있어. 우리 곧 리허설 때문에 이동해야 하는데.

화면을 다시 확인하니 그동안 몇 번 더 통화 중에 전화를 걸었었는지 미씽콜 문자가 와있었다.

“아, 지금 바로 갈게.”

제현호는 괜찮나? 혹여 괜찮은 척 무리하고 있다가 무대 위에서 사고라도 치면 안 되는데.

그러나 잔뜩 걱정한 것과 달리 대기실의 제현호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컨디션이었다.

‘오히려… 조금 더 텐션이 올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원래도 워낙에 조용조용한 녀석이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 마지막까지 파이팅 해요.”

다른 사람이 보면 이게 기합을 넣는 사람의 태도냐, 싶을 만큼 미적지근한 구호였으나 이것이 제현호 최고의 온도임을 멤버들 모두가 알았다.

“파이팅!”

“예이~.”

대체 뭐가 예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좀처럼 뜨거운 말은 하지 않는 제현호가 멤버들을 북돋는 말을 하기에 다들 한마디씩 호응을 해 줬다.

“엔카운터, 잠시 후 신호드리면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넵! 대기 중입니다!”

흘끔 다시 확인한 제현호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었다.

’일단 리허설부터 끝내고 다시 접근해 보자.‘

결론을 내리고 모든 절차를 마쳤을 때는 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우, 아직도 대기 한참 남았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멀뚱히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재빨리 제현호의 뒤로 따라붙었다.

“……?”

내가 너무 집요한 눈으로 놈을 바라본 탓일까. 멀쩡하게 앞서서 걷고 있던 현호가 갑자기 휙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악.”

졸지에 우뚝 멈춰 서는 바람에 뒤에서부터 줄줄 이어서 오던 영인에게 들이받힌 나는 등짝에서부터 울리는 얼얼한 통증에 등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뭐야 무슨 미사일처럼 돌진을 하네.”

“아니, 형이 갑자기 멈췄잖아요.”

뒤에서부터 줄줄이 교통 체증이 벌어지는 모습을 현호는 잠시 당황한 눈으로 보다가 휙 뒤돌아 앞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일단 뭔가 위화감은 감지해 버린 것 같은데….’

몸을 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돌진할 수도 없어서 나는 다시 화장실에 가는 척 대기실을 벗어났다.

“너 또 화장실 가서 30분씩 안 돌아오려고 그러지. 방송국에서 연초라도 피우냐?”

“무슨 헛소리야.”

흡연이 목에 얼마나 안 좋은데. 일부러 목 긁고 싶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내가 미쳤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경멸을 담아 규민을 노려보자 규민이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평소 성격이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럼 뭔데 변비냐? 같은 소리를 할 것 같았으나 내 표정이 웬만큼 험악한 게 아니었는지 이상한 소리를 더 하진 않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 가서 통화부터 하고 오고.’

법 때문에 말해 주기 힘든 상황인 건 나도 알지만. 연락처를 주는 건 어려워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걸 말해 주는 건 담당자의 재량이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전에 협조를 구해야 할 상대가 있었다.

‘또 너무 나댄다고 경계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하지만 호감도 별을 다섯 개쯤 찍었을 정도면 그래도 나름대로 가까운 사이라고 여겨도 되는 거 아니냐.

자기는 내가 뭐든 의지하려고 하면 썩 나쁜 기색은 아닌 것 같다만.

내가 슥 제현호 앞에 서서 팔짱을 끼자 놈이 무슨 일이냐는 듯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 계속 대기실에 있을 거지? 멤버들이랑 같이 이동할 거고.”

그러자 제현호가 왜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나 잠깐만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 가족 일 때문에 급하게 연락해야 하는데 배터리가 없어서.”

“음….”

현호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흔쾌히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기요.”

순순히 OK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순진한 녀석을 속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도 어쨌든 다 도와주기 위해서니까.

‘일단 빨리 센터랑 통화부터 하자.’

세 층 정도 위로 걸어 올라가자 사람이 별로 안 다니는 층인지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빨리 통화부터 하고 다시 생각해야지.’

현호의 보호자분이 보내 주신 연락처로 전화를 걸자 잠시 기관을 대표하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오더니 곧 통화가 연결되었다.

- 안녕하세요, 희망꿈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짧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현호 학생과 함께 활동 중인 서인수입니다. 다름 아니라 현호 보호자분 통해서 사정은 들었는데 현호가 지금 핸드폰을 두고 사라져서요. 저희가 최대한 찾아보고 있는데 혹시 자세한 상황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 아, 네. 서인수 씨. 실례지만 제현호 학생이라는 무슨 관계… 어?

나를 관계자 A 또는 사칭으로 생각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려던 직원이 순간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엔카운터 서인수 씨 맞으세요?

“아. 네네. 본인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지금 현호가 대기실에서 핸드폰도 남겨 두고 사라져서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확인이 필요해서요. 잠깐 자리 비운 거면 너무 다행이겠지만 대기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현호 표정이 오늘 아침부터 너무 안 좋았어서 리더로서 걱정이 되네요. 누나분께 혹시 다른 사정은 없으신 건가요?”

회사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냥 혼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만. 지금은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당사자가 요청했는데도 안 알려 준다는데 그럼 어떻게든 더 극단적인 상황인 것처럼 시늉이라도 해서 알려 줄 수밖에 없도록 해야지.

이미 보육원 관계자분을 통해 최측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말한 덕인지 따로 내가 그 서인수임을 증명하는 절차 없이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 아…. 죄송하지만 저희가 연락처를 직접 드리는 건 어렵고요. 한번 다시 연락드려 볼게요. 누나분이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려운가 봐요. 이제 와서 돈 때문에 버린 동생 찾는 것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고 절대 만날 생각 없다고 하시는데 저희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서….

그럼 나중에 경제적으로 좀 회복하고 나면 그때는 만날 의향이 있다는 뜻인가.

뭘 걱정하고 또 뭘 염치없다고 생각하는 건진 알겠지만….

‘제현호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문제인데.’

일단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고 꼭 좀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으니 이제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가 다시 문제였다.

경제적으로 뭐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빚이라도 있나? 누가 갚아 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

우선 더 이상 나 혼자 독단적으로 쑤시고 다니는 건 무리도 있고,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제현호랑 둘이서만 얘기를 해 보고 싶은데.’

슬쩍 확인한 핸드폰 속 시계가 생방송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려면 일단 대기실부터 돌아가야지.’

끼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멤버들의 시선이 단숨에 내게로 쏠렸다.

‘음….’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여기 화장실 엄청 깨끗하더라. 온수도 잘 나오고.”

“엥? 아까 내가 갔던 곳은 세면대 타일 깨져 있던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둘러대고는 현호에게 다시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러곤 소파에 다시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현호를 밖으로 끌어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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